“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06/03월(月)사 40:1-8 / 막 1:1-4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사 40:3).
북 왕국 이스라엘 여호람 왕 시대에 아람왕 벤하닷이 그 성을 포위하고 이스라엘 말살 정책을 폈습니다. 경제 활동을 막으니 성안의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굶주린 사람들이 자식을 잡아먹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둥과 우뢔소리로 아람 군대를 쫓아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문둥병에 걸린 네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고 아람 진영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음식과 옷가지 살림살이가 넘칩니다. 성안의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자기들만 배불리 먹으면 하나님께 저주받는다고 생각하여 성안에 이 기쁜 소식(복음)을 전합니다. 기쁜 소식을 듣고 나온 백성들은 다 살아났지만, 그 말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다 굶어 죽었습니다. 이것이 복음 전파, 전도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영육으로 굶주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딤후 4:2-3).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 주님을 믿지 않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 굶어 죽어가는 신앙인의 불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주님이 내 삶 속으로 역사하는 길을 예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죄 사함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닿도록 죄악이 사함 받았다고 선언하라고 하십니다. 이 시대는 구약의 율법 시대라 그들의 죄는 그들의 노역으로 끝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죄 사함 받았으니 담대하게 미래로 나가면 됩니다. 인간은 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우리의 죄를 감당하셨고, 주님 안에서 영원한 속죄함이 일어났음을 믿고 확신할 때 미래가 있고, 주님의 길이 열립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충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엡 1:7)
▣주님의 길을 준비하려면 기도로 마음을 평탄케 해야 합니다.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사 40:3-4).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한 길이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사야는 그 길이 평탄해야 고향으로 갈 수 있듯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도록 마음을 평탄하게 하라고 합니다.
▣말씀 묵상으로 주님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사 40:5). 날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의 영광은 꽃과 같이 시들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를 영원히 살리고 생명을 주는 것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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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황에 맞는 말씀을 내가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말씀이 나를 붙듭니다. 말씀이 나를 붙잡을 때 사망의 길이 축복의 길이 되고, 주님의 길이 열립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삭막하던 미디안 광야는 이제 사막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동산이 되었습니다. 이제 모세의 삶은 그가 사는 날 동안 축복과 기적의 삶이 됩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 작은아들은 아버지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 그 아들을 살린 것입니다. 우리는 품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해결해주시고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나 자신을 볼 때 비록 부족하지만, 주님 안에 죄 사함이 있고 의로워졌다는 확신이 있을 때 주님의 길이 열립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타고 우리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늘 마음의 길을 평탄하게 해야 합니다. 높은 곳은 교만한 마음, 골짜기는 절망하고 실망하는 마음, 험한 곳은 남을 미워하는 죄악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교만하고, 절망하며, 남을 미워하는 죄악의 마음을 가지면 주님은 오실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 마음이 평탄해집니다. 기도할 때 교만이 깎이고, 골짜기의 절망이 채워지고, 험한 곳의 미움도 사라집니다. 기도는 나를 죽게 하고 주님을 크게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신비입니다.
지금 환경이 답답하다면 그 환경을 주님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내 눈으로 보면 답답한 환경도 주님의 눈으로 보면 그 환경에 축복이 보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영안이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갈이 물이 없어 대성통곡할 때 주님은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자 바로 옆에 물이 있었습니다. 환경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안이 열리면 답답한 환경은 하나님의 새로운 길을 여는 축복의 환경임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함께하면 환경은 전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때 환경은 변합니다. 어려운 환경을 허락하신 것은 내 생각, 내 뜻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왜 힘이 듭니까? 아직 내가 주인 되어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어야 하고,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죽으면 됩니다. 죽으면 힘들지 않습니다. 설 죽어서 힘든 것입니다. 내 생각, 내 뜻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며 마귀의 뜻입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에게 축복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은 내 모든 뜻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집니다.
나를 통해 주님이 나타남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늘, 함께 하시네
https://youtu.be/A8LQ6dICDVE?si=XvOcP17YtDSz83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