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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예수께로 와서
28.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으니,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내게 대답해 보아라."
31.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며 말하였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다.
32.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서 왔다'고 대답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들은 무리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무리가 모두 요한을 참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3. 그래서 그들이 예수께 대답하기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마가복음11:27-33)
27 They arrived once again in Jerusalem. As Jesus was walking in the Temple, the chief priests,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elders came to him 28 and asked him, “What right do you have to do these things? Who gave you such right?”
29 Jesus answered them, “I will ask you just one question, and if you give me an answer, I will tell you what right I have to do these things. 30 Tell me, where did John's right to baptize come from: was it from God or from human beings?”
31 They started to argue among themselves: “What shall we say? If we answer, ‘From God,’ he will say, ‘Why, then, did you not believe John?’ 32 But if we say, ‘From human beings …’” (They were afraid of the people, because everyone was convinced that John had been a prophet.) 33 So their answer to Jesus was, “We don't know.”
Jesus said to them, “Neither will I tell you, then, by what right I do these things.”
우리가 보고 있는 마가복음 11장부터는 16장까지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이나 되는 대단히 큰 비중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근교 베다니를 오가고 계셨습니다.
성전과 나사로의 집을 오가셨을 것입니다.
태초의 그 일주일 동안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이 일주일 동안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막10:45)
주님은 꼭 죽으셔야만 하셨는데 그 죽으심을 통해서 많은 사람의 대속 제물이 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하신 후에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우리 눈이 떠져서 그리스도의 죽으신 뜻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제물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부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을 때 많은 사람이 호산나를 외치며 그를 환영했습니다.
다음 날 월요일에 예수님은 성전에 있던 상인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을 향해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셨습니다.
화요일 어제 주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어있었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과 논쟁을 벌이셨습니다.
수요일에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습니다.
목요일에 최후의 만찬을 하셨으며 주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 하셨습니다.
금요일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으며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 삼일 후 주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 날이 주일입니다.
오늘은 셋째 날 즉 화요일의 사건을 다룰 것입니다.
어제 성전에서 일어난 일은 대제사장과 율법사 또 장로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어제도 성전 안은 평소처럼 몹시 분주했습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드렸고
한쪽에서는 돈을 바꾸어 주고 양이나 비둘기를 거래했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는데 거기에 들어오신 주님은 상인을 몰아내시며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소리치셨습니다.
27.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예수께로 와서
27 They arrived once again in Jerusalem. As Jesus was walking in the Temple, the chief priests, the teachers of the Law, and the elders came to him
주님은 예루살렘 입성 때부터 저녁이 되면 예루살렘에서 나가셨다가 다음날 아침에 예루살렘에 다시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편히 누워 주무실 곳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을 적대하는 곳!
그 때 대제사장 율법학자 장로들이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적대하신 자들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긴장감이 돌았을 것입니다.
어제 예수님 때문에 누구 집의 좌판이 엎어졌더라면 경찰만 출동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어제의 일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일로 성전은 소란해졌고 드리던 제사도 중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매도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출동한 것입니다.
이 지도자들은 난봉꾼이나 패륜아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위해 일하고 있고 백성을 위해서 일하는 중이라고 여겼습니다.
혹시 우리가 거기 있었다면 어느 편에 서야 할지 판단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 분은 하나님이시고 다른 편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데 누구 편에 서야 제대로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인가?
그 때 예수님은 평범한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30대였습니다.
성전을 난장판으로 만든 분입니다.
대제사장과 율법사 장로들은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2,000년이 지난 여러분의 생각에는 예수님 머리 위에 세상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후광이 빛나고 있습니다.
또 관리들은 에덴동산의 사악한 뱀처럼 뚜렷이 구별되고.......
하지만 2,000년 전 예루살렘의 예수의 머리 뒤로 후광은 없었습니다.
제사장의 옷은 그의 권위를 드러내는 금빛 장식으로 빛이 났지만 예수님의 옷은 찢어지고 피에 흥건했습니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 누추한 목수의 아들!
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예수께 묻기를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하였다.
6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63.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고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들이 더 필요하겠소?
64.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정죄하였다.(막14:61-64)
권력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형상화한 보좌에 앉아서 초라한 몰골의 예수님을 세워두고 위엄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정체는 뭐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현실을 사실로 들어서 정체를 밝히셨는데 대제사장의 귀에 그것이 모조리 거짓말로 들린 것입니다.
목수의 아들이 하나님을 모독했다면서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결국 많은 무리도 예수님을 사형시키라고 외쳤습니다.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17. 그런데 스스로 유대 사람이라고 하면서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그분의 뜻을 알며, 율법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19.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스스로 눈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20. 율법에서 모든 지식과 진리의 근본을 터득하였다고 하면서,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으로 확신합니다.
21.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남은 가르치면서도, 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도, 왜 도둑질을 합니까?
22.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왜 간음을 합니까? 우상을 미워하면서도, 왜 신전의 물건을 훔칩니까?
23.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왜 율법을 어겨서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24. 성경에 기록된 바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한 것과 같습니다.
24 The scripture says, “Because of you Jews, the Gentiles speak evil of God.”(롬2:17-24)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두 수장들이 교회에서 신앙고백을 한 후 제 동족을 죽이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총 쏘는 사람은 사람 잘 죽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상대편은 나만큼은 총 맞아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우리의 신앙고백은 모순에 빠져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죽이고 있습니다.
24.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24 “Because of you Jews, the Gentiles speak evil of God.”(롬2:24)
하나님 모르는 세상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기독인 때문에 교회가 모독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자신부터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기독인이라고 고백하느냐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기독인의 내용을 갖았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실천이 있느냐?
여기 대제사장과 율법학자 장로들은 지금 하나님의 명분으로 예수님께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죽일 것입니다.
그 혼란의 원인을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적 측면과 둘째 정치적 측면 셋째 감정의 측면을 살펴봅시다.
어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 한 사람이 들어오시더니 성전은 완전히 뒤집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가장 성스러운 장소가 아닙니까!
거기에서 호떡장사
붕어빵 장사가 아닙니다.
우상이 그려진 이방의 동전을 유대 동전으로 바꾸어 주지 않으면 헌금을 할 수 없습니다.
또 저기 애급이나 바벨론에서부터 소나 양을 끌고 올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끌고 온다고 해도 그 먼 길에 쩔뚝발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제물을 미리 준비해서 제의의 편의를 도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봉사를 뒤집어 버리신 것입니다.
여태껏 거룩한 성전에서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실은 이 사건뿐 아닙니다.
공생애 초기에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주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거닐다가 벼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그런 일을 보았으니 당신의 제자들은 이 모양이냐고 지적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연히 사과를 하신 후에 잘못된 제자들을 꾸중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막무가내이셨습니다.
27.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조차도 주인이다."(막2:27,28)
목수의 아들이 자신을 인자라 부르면서 자신이 안식일을 제정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8. 인자는 안식일에조차도 주인이다."(막2:28)
이 예수님께서 어제 성전에서 상을 엎으시고 또 소리를 지르셨는데 그것은 제사장 개인 비리를 지적하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성전을 자체를 부인하신 것입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요2:19)
물론 예수님이 새 성전으로 오셨으니 옛 성전은 허물어질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사건입니다.
둘째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몰려다녔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아도 거기에 모인 장정만 5,000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한 2만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정치 세력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조짐이 있었습니다.
14.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신 표적을 보고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6:14,15)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던 그 무리가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모시려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집단 행위 자체가 로마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끌어들인 충분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28.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10:28)
몸을 죽일지라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이들은 세상 권력자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로마에 빌붙어서 권력을 누리는 이들은 말씀을 듣고 뭔 소리 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감정적인 측면입니다.
어제의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습니다.
삼촌 사돈네 팔촌 친지 동창.......
그런데 그들의 돈을 성전 바닥에 우루루 쏟아버린 것입니다 .
내 돈!
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막11:17)
그것으로 부족해서 자신들을 강도 두목이라고 정체를 밝히신 것입니다.
제 생각에 그들이 로마의 오판으로 자기 백성들이 혹시 해나 입지 않을까 하는 정치적인 염려에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독을 당했다는 신앙에 근거해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제 당한 수모를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적이 옳든지 말든지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예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들의 권위가 공개적으로 무시당했으니 예수님의 권위 출처를 물은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운운한 것은 종교적 포장에 불과했습니다.
실은 열바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신앙을 실족케하는 많은 원인은 감정 때문입니다.
모세조차 바로 그 감정 문제로 가나안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습니다.
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렀다. 백성은 가데스에 머물렀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어 그 곳에 묻혔다.
2. 회중에게는 마실 물이 없었다.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려고 함께 모였다.
3. 백성은 모세와 다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친척이 주 앞에서 죽어 넘어졌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다.
4. 어쩌자고 너희들은 주의 총회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의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는 거냐?
5. 어찌하여 너희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고약한 곳으로 데리고 왔느냐? 여기는 씨를 뿌릴 곳도 못 된다.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
6.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어귀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주의 영광이 그들 위에 나타났다.
7. 그 때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8. "너는 지팡이를 잡아라. 너와 너의 형 아론은 회중을 불러모아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다. 너는 바위에서 물을 내어, 회중과 그들의 가축떼가 마시게 하여라."
9. 모세는, 주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주 앞에서 지팡이를 잡았다.
10. 모세와 아론은 총회를 바위 앞에 불러모았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 반역자들은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하랴?"
11. 모세는 팔을 높이 들고,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다. 그랬더니 많은 물이 솟아나왔고,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셨다.
12. 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민20:
모세는 그 때 누이 미리암의 죽음으로 슬펐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위로는커녕 백성들은 똑같은 불평을 반복 해댔습니다.
“아침에도 만나 점심에도 만나 저녁에도 만나 어제도 만나 내일도 만나....... 이제 물조차 없지 않소.!”
그런 상황에서도 일단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래서 바위에서 물이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칠 때 피아니시모로 쳐야 할 것인데 포르테로 내리쳤던지
모데라토의 속도로 그것을 내리쳐야 하는데 열 받쳐서 비바체로 내리친 것인지
모세라도 순간에 욱하고 솟아오른 분노를 통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좌우간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함에 있어서 제 감정을 이입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니 문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가고 싶거든 제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28.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28 and asked him, “What right do you have to do these things? Who gave you such right?”
하나님의 제사장 하나님의 율법학자 하나님의 장로 가 강도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권위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권위를 따져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은근히 예수님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정식 교육과정을 수료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 공인을 받은 적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졸업장도 가지고 있었고 위임식도 다 치렀습니다.
권위를 드러내는 가운을 칠렁거리며 걷는 것은 폼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권위자들을 양치기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8. 나보다 앞에 온 사람은 다 도둑이고 강도여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들어오고 나가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11.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요10:8-13)
그런데 예수님은 그 때 그들의 출신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목자의 그 내용이 없는 지도자는 도둑이며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양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양을 위해 죽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실은 권세의 근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1:12)
믿음을 통해서 목자도 권세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그 권세를 위임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하심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요3:8)
그 권위의 출처를 졸업장으로 말씀하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성으로 말씀하십니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10:38)
십자가의 잔 즉 기독인의 내용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으니,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29 Jesus answered them, “I will ask you just one question, and if you give me an answer, I will tell you what right I have to do these things.
주님의 첫 번째 답이십니다.
만약 서너 살 아이가 어머니가 쓰고 있는 식칼을 보더니 달라고 하면 그것을 냉큼 주겠습니까?
너 몇 살이냐고 물으신 것이 주님 답입니다.
첫 번째 단 하나의 질문(just one question)을 던지셨던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한 가지를 보면 그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의 질문에 대해 반드시 답을 해야 합니다.
답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 때에 주님은 그들이 요구한 답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어떤 답을 하느냐가 예수님의 최종 대답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기도해도 그 응답을 듣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못 들으시거나 불공평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질문에 대답하는 태도로 인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너 몇 살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내게 대답해 보아라."
30 Tell me, where did John's right to baptize come from: was it from God or from human beings?”
주님은 단 한 가지의 질문(just one question)으로 세례 요한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의 출처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요한의 권위가 감리교 신학교에서냐 장로교 신학교에서냐고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냐 혹은 사람에게서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단순한 다양성이 아니라 본질이냐 비본질이냐 물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것이냐 혹은 유한한 것이냐?
죽음이냐 생명이냐?
우리는 매사에 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로부터냐 땅에 기인한 것이냐?
주님은 나중에 이 근거를 가지고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노상 세상 잣대를 가지고 잣대질 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못 갈 것입니다.
그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무슨 잣대로 잣대질하는가?
하나님 나라의 잣대를 가진 사람은 어떤 차이가 나는가?
요한은 하늘에 기인한 권위를 가졌으므로 사람들과는 차이 나는 곳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메마른 사막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맛집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음식이면 족했습니다.
사람들은 멋집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는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몸을 둘러싸는 옷 한 벌이면 족했습니다.
강북에서 사는지 강남에서 사는지
또 그 사람이 입은 옷이 무엇인지
그가 무엇을 먹는지
그것이 그 사람의 정체를 이른다는 말입니다.
또 그 관심사가 문제입니다.
요한이 했던 일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교인 두 배로 배가시키는 일 성전 멋들어지게 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그렇게 잘났던 사람이 변해서 제 가슴을 치면서 죄인을 용서해달라고 눈물 흘리면 따라서 눈물 흘렸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제 죄를 모르는 사람의 죄를 지적하고 다녔습니다.
회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 일이라면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절대왕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왕을 보고 동생의 마누라를 빼앗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예언을 했습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가 요한은 목 베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가 하나님께 온 그 권위를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바로 이 요한의 권위의 기원을 물었던 것입니다.
그 대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1.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며 말하였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다.
31 They started to argue among themselves: “What shall we say? If we answer, ‘From God,’ he will say, ‘Why, then, did you not believe John?’
예수님의 질문의 답은 엄청 간단한 것입니다.
저들이 생각하는 요한을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먼저 나와서 요한의 권위는 사람에서입니다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또 율법사는 나는 하늘이요
장로들 역시 나도 하늘인 것 같습니다. 하면 그만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만든 것입니다.
어떤 답을 해야 할 지 모여서 회의했습니다.
영어 성경은 그들이 논쟁(argue)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회의를 한 결과 날리면이라고 말하기로 정한 것입니다.
바이든이요하면 될 것을.......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날리면이라고 하기로 정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정직이란 의미 없는 짓에 속했습니다.
그들 집단에게는 세상 실속 차리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속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을 했던 것은 요한의 이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7. 그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8.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9. 그 무렵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셔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예수께서 물 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11.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막1:7-11)
요한이 하늘의 권세를 받았다고 할 경우 요한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는 소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이 인정한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할 수 밖에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강도가 되는 수밖에.......
이제 다음 질문입니다.
32.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서 왔다'고 대답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들은 무리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무리가 모두 요한을 참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2 But if we say, ‘From human beings …’” (They were afraid of the people, because everyone was convinced that John had been a prophet.)
그렇다고 그들은 사람에게서 왔다고 대답할 수도 없었습니다.
여론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대제사장과 율법학자와 장로들은 입을 가지고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말을 하게 되면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33. 그래서 그들이 예수께 대답하기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33 So their answer to Jesus was, “We don't know.”
Jesus said to them, “Neither will I tell you, then, by what right I do these things.”
거기에서도 청문회가 열린 것입니다.
모르겠는데요.
잊었는데요.
모르기는 왜 몰라!
영수증에 검은 매직으로 먹칠을 해놓고
사진 한 장으로 수천만 원짜리 영수증을 대신하고
검찰의 영수증은 이상하게 모조리 휘발하고.......
그런 작자들에게 주님이 이렇게 답을 해 주신 것입니다.
33.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33 “Neither will I tell you,”
그들은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답이 없는 것이 그들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셨습니다.
대제사장 율법학자 장로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도 질문하는 그 사람들의 정체를 물으신 것입니다.
오직 단 하나님의 질문을 통해서입니다.
29.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으니,
29 “I will ask you just one question,
오직 한 가지의 질문이 그들의 정체성을 충분히 드러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은 이런 면에 문제가 있습니다.
* 일관성
요한에 대한 입장은 곧 예수님께 대한 입장입니다.
그 신앙의 일관성입니다.
요한을 인정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인정합니다.
요한을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요한을 인정하지 못할 때 예수님의 정체를 그들에게 들려주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7. 그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8.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막1:7,8)
또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하나님께 고하는 사랑과 정의의 고백을 사람에도 고백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고백을 교회 밖에서 삶의 실천으로 일관되게 고백할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지적이 그것입니다.
1. "목소리를 크게 내어 힘껏 외쳐라. 주저하지 말아라. 너의 목소리를 나팔 소리처럼 높여서 나의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알리고,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려라.
2. 그들이 마치,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않는 민족이나 되듯이,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을 알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무엇이 공의로운 판단인가를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를 즐거워한다고 한다."
3. 주께서 보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합니까? 주께서 알아 주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행을 하겠습니까? 너희들이 금식하는 날, 너희 자신의 향락만을 찾고,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4. 너희가 다투고 싸우면서, 금식을 하는구나. 이렇게 못된 주먹질이나 하려고 금식을 하느냐? 너희의 목소리를 저 높은 곳에 들리게 할 생각이 있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금식을 해서는 안 된다.(사58:1-4)
야곱 집의 죄는 교회 안에서 목소리를 높여서 기도하지 않았다는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드럼치고 소리 지르고 난리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금식하더니 세상에서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돈 떼먹고
선지자의 지적이 단순히 다투고 싸웠다는 윤리적인 측면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금식하면서 공의로운 판단을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으로써 교회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과 다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관성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 기회주의
그들이 “예수님, 실은 이 대답도 저 대답도 우리가 말하기 곤란합니다.”
이렇게 솔직했으면 길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세속의 보장을 위해서 카멜레온처럼 부정직한 색깔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입니다.
이들은 왕 앞에서도 정의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낸 요한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색깔을 내야 하는지 회의를 거쳐서 헤롯 앞에서는 부정의의 헤롯 색깔을 내는 그들에게 주님은 답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인이든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더 주님을 예의주시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모를 리 없습니다.
즉 현실적인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1. 주님, 누가 주님 계신 곳에서 살 수 있는 사람입니까? 주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사람은 누굽니까?
2.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3. 혀를 놀려 남의 허물 들추지 않는 사람,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친구를 모욕하지 않는 사람,
4.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는 자는 경멸하고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존경하면서,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변함없이 지키는 사람입니다.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시15편)
불이익을 당해도 정의와 사랑의 색깔을 바꾸지 않은 사람입니다.
싹싹 제 색깔을 바꾸는 기회주의자가 아닙니다.
* 세속주의
그런데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땅입니다.
제 집안
제 집단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지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시는지 그 여부가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주시하는 이유는 세속의 처세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과 이 행동으로 인해서 로마로부터 불똥이나 튀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신앙을 철저히 처세의 방식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종말의 때에 보편적 현실이 될 것입니다.
5. 그리고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끊임없는 알력이 생깁니다.
6.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이 큰 이득을 줍니다.(딤전6:5,6)
우유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가치의 유산균을 넣은 다음에 아랫목에 두면 요구르트가 됩니다.
세속주의에 방관하고 그것을 아랫목에 두면 독을 품은 썩은 우유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단 하나의 질문(just one question)을 던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정체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33.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33 “Neither will I tell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