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첨벙~ 첨벙~’ 물장구 소리가 들렸다. “첨벙, 누가 부르는데?” “응?” “누가 불러요!” “응?” 바람을 거슬러 오는 소리를 오목하게 오므린 두 손바닥 위에 담았다. 첨벙~ 첨벙~ 소리를 하나씩 채집해 두 손 가득 넘칠 때쯤 놀이터가 나왔다.
큰 나무들 사이에 매달린 해먹과 두 나무를 이어주는 출렁다리, 그네와 줄타기 줄이 하늘에서 내려와 있다. 나무 그늘 아래로 바람이 뛰어다니고, 그림자 사이로 햇살이 기지개를 켜며 내려왔다. 나무 사이에 매달린 해먹이 말했다. "여기야, 첨벙." 해먹 위에는 담희가 물장구를 치고 있다. “여기 너무 멋있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 “나는 여기가 좋아.” “나도 여기가 좋아.”
하늘에서 내려온 줄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해먹 위에 있던 담희가 그네를 탄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와 해먹 위로 올랐다. 축축하고 콤콤한 곰팡이 냄새가 난다. 나는 해먹 속에 숨어 천 사이로 흐르는 햇살을 손바닥을 펴고 쓰다듬었다. 해변의 고운 모래처럼 따듯한 빛이 손바닥에서 떨어져 얼굴로 쏟아졌다. “어제 친구들이랑 놀이를 했는데, 한 사람씩 불러서 귓속에 단어를 하나 이야기해 줘. 그런데 한 사람에게만 다른 단어를 말해주는 거야. 이제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화를 하면서 다른 단어를 들은 사람을 맞추는 게임이야. 어제 모두에게 ‘곱슬머리’라는 단어를 말했는데 한 명한테만 ‘대머리’라고 말했어. 대머리라고 말하니까 첨벙이 생각났어.”
나는 그네에 앉았다. 앞뒤로 왔다 갔다 진폭이 커진다. 대머리가 바닥에 스칠 정도로 누워서 앞을 보니 세상이 뒤집혀있다. 담희는 여기. 모자는 저기. 휴대폰은 저어기. 신발은 저어어기. 다들 낙엽이 되어 굴러다닌다. 저어어어어어어기 삠빱이 건축수업을 듣고 있는 게 보였다. 듣는 게 보이다니 하찮은 초능력을 얻은 기분이다.
2.
담희랑 함양 놀이터에서 나눴던 평어를 사용한 대화는 관계와 말에 관하여 생각할 경험을 주었다. 개개인의 나이, 성, 지위, 역할을 떠나서 온전한 ‘너’와 ‘나’로서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어릴 때는 모두에게 반말을 하며 모두가 친구였는데,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같은 나이가 아니면 친구가 아닌 존재가 되었다. 최근에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나이를 따지며 (굳이) 나를 형 혹은 동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한두 살 나이차로 형, 아우를 따지는 수직적인 관계가 친밀도와는 별개로 다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릴 때 우리 앞집에 살던 희승이는 원래 친구였는데 그가 나보다 먼저 학교에 입학하는 바람에 느닷없이 희승이 형이 되었고 우리의 우정도 끝났다.
한쪽을 높이는 동시에 한쪽을 낮추는 차별적 어법인 ‘존비어체계’가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는 것은 놀랍다. 존비어체계를 그냥 존비어라고 부르지 않고 존비어체계라고 부르는 이유는 존댓말(존어)과 반말(비어)이 결합하여 하나의 체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중국은 권위주의적 사회이지만 존비어체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은 상하 관계에서도 대화가 활발하고 거침이 없다. 일상을 지배하는 존비어체계가 없는 중국 사람들은 공적 업무에서 벗어난 사적인 자리에서는 위아래를 따지지 않는다.
한국어의 존비어체계는 언어 체계 안에 권력 관계를 개입시켜 생각을 소통하는 방식을 강력하게 규정한다.
3.
지난 인생길 나눔 시간에 나의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에 앞서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하나는 평소 수업에 사용하는 의자와 책상이 아닌 바닥에 둥글에 모여 앉기. 또 하나는 평어 사용이었다.
바닥에 모여 앉은 이유는 가까이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평소에 수업 시간에도 사람에 비해서 책상과 의자의 간격이 너무 넓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하면 말하는 에너지도 덜 쓰고 미세한 표정도 나눌 수 있다. 언어는 말뿐 아니라 표정과 동작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좋다. 상병(쌤)은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왔다며 자리에 누웠다. 얼큰하고 근사한 사람(어른)이다.
평어를 사용한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한 담희와의 대화 덕분이다. 온전한 ‘너’와 ‘나’가 되어 이야기하고 싶었다. 각종 호칭들과 말의 형식에 얽매이다 보면 정작 필요한 말들은 놓치게 된다. 존댓말을 쓴다고 존중과 예의가 담겨서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극존칭을 쓰면서 무례함을 내뱉는 사람들도 많다. 존댓말이 만드는 불필요한 치레들을 줄여 더 선명하고 다정한 언어가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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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어는 우리 언어와 생각과 태도를 일상에서 여행지로 옮겨주는 듯하다. 주변의 불필요한 정보들을 없애버리고 진짜 중요하고 간결한 것들만 남게 한다. 내 기분과 너의 안부, 나와 너의 진짜 이야기가 오가게 한다. 평어를 사용하면 나와 너만 남고 다른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말 놓을 용기] 이성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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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용기 내어 평어로 이야기 나눌 동료들은 댓글을 달아줘!
첫댓글 안녕 첨벙! 지난 시간에 인생길 나누어주어 고마웠어.
어릴적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사용했던 평어는 학교에 들어가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를 만날 때 쯤부터 존대어에 반하는 반말이 되어버린 것 같아. '반말'이라는 말도 '말이 반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존중되지 않은 언어로 느껴지고.
'나'와 '너'로 만나 자연스레 존재했던, 다정하고 투명한 평어를 내가 그리워했구나 - 를 지난 첨벙의 인생길나눔에서 다시 느끼게 되었어. ㅎㅎ
나이, 성별, 종(species)에 담긴 사회적인 시선, 편견,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용기를 먼저 내어주어 고마워. 평어로 이야기 나누자 !
+ 나이, 성별, 인종, 종을 따지며 스스로를 낮추거나 우월하게 여기는 마음이 존비어체계에서는 아주 잘 작용되고 있다고 느껴. 그 마음으로부터 모든 폭력이 비롯되었다고 생각해.
안녕 해봄! 벌써 해봄이 나누어 줄 인생길 이야기가 기대돼. 그리고 나의 친구, 나의 동료가 되어주어서 기뻐. 요즘 내 말투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좀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다고 느껴. 그러지 못했던 말들이 밤이 되면 머릿속에서 노크를 하며 나를 깨우거든. 다음에는 더 다정한 단어들을 입에 넣어서 갈게! 내일 만나!
첨벙의 이야기 따뜻했어요 담희란 친구와 많은 얘길 나눴군요 우리가 수많은 인연으로 여기 함께 한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첨벙 안녕? 나도 평어 동료가 되고 싶어서 댓글을 남겨보아.
평소에 존비어에 담긴 위계가 온전히 대등한 너와 나의 존재로 만나는 데 거리낌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첨벙의 글에 무척 공감이 가고 반가웠어. 나누어주어 고마워.
하지제 때 잠깐이지만 인사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 또 만날 땐 첨벙님 안녕하세요 대신 첨벙 안녕? 이라고 인사하고 싶어. 첨벙도 그래준다면 더욱 기쁠 것 같어. 더운 여름이야. 건강히 잘 지내!
혜슬 안녕! 글에 공감하고 댓글 남겨줘서 고마워. 다음에 반갑게 인사할 날이 무척 기다려져. 나는 올여름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하면서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어. 혜슬에게도 여름이 즐거운 날의 연속이면 좋겠어. 그럼 다음에 또 만나!!
해변의 고운 모래처럼 따듯한 빛이 손바닥에서 떨어져 얼굴로 쏟아졌다는 이런 표현들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웃음이 나게 해주는 첨벙 ! 너무 고마워 ㅎㅎ 평어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느낄 수 있게 전달할 수 있다면 나도 쓸 용기가 생기네 !! 앞으로 평어로 대하는 이들에게도 말이야. 인생길 나눔은 나도 동료들과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한층 더 가까울 수 있는 자리가 되었던 것 같아. 첨벙도 부디 동료들과 그런 기억으로 남기를 ~!
매실, 안녕! 오늘은 바람과 비름의 인생을 나눔 받았어. 각자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교차로에서 함께 마주한 사람들의 발뒤꿈치가 닮아 있는 기분이야. 걷다 걷다가 뒤를 돌아서 그 길을 봤는데, 걸을 땐 어떻게 생긴 길인지 몰랐는데, 내가 저런 길을 걸었구나 싶은 거야. 그 길들을 발뒤꿈치가 닮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있어. 매실, 모기는 왜 위잉~ 위잉~ 거릴까. 모기 조심하고. 사무실에 내 피를 조금 나누고 갈게.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