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역사 길 비봉산의 강이식 장군 (7)
강이식 장군은 누구인가? 1
6회에 걸쳐 수나라의 수양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이제 강이식 장군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강이식장군은 중국의 염제신농(炎帝神農)씨로부터 시작된다. 중국 광동 강씨보(中國廣東姜氏譜)에 공좌태조 이정천하후 양제찬위 공이퇴야(公佐太祖以定天下後帝簒位公以退野)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우리나라 숙종 을축년보(肅宗乙丑年譜)에 「수벌 고구려시 공위병마원수 지살수이 지수장란 잉류불반(隋伐高句麗時 公爲兵馬元帥至薩水而知隋將亂仍留不返)」의 기록이 있는 바와 같이 진주 강씨(晋州姜氏)는 중국(中國) 수양제(隋帝) 때에 우리나라에 건너 왔다. 시조(始祖) 이식으로부터 三十一대 자손 세의(世義)가 고부(古阜)로 낙향한 후 六대에 진창(晋昌)·우창(愚昌)·응창(應昌) 삼 형제도 이곳에 살았도다. (행록1장 1절)
강이식(姜以式, ?~?)은 고구려 명장이자 진주 강씨(姜氏)의 시조(始祖)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생몰연대에 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고구려인이기 이전에 수나라 사람이었다. 기원전 386년 제(濟)나라 강공(姜公) 때에 전화(田和)라는 자가 강공(姜公)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게 되자 실권을 빼앗긴 강씨들은 화(禍)를 피해 제나라를 떠나야만 했다. 제나라를 떠나 방랑생활을 하던 강씨들은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건국할 즈음인 기원전 2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원시조(原始祖 염제 신농씨)의 고향인 천수(天水)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700년이 지나 강이식 장군이 나타난다. 그는 양견〔수 문제, 재위 581~604〕을 도와 수(隋)나라를 건국(581)하고, 나아가 남북조로 갈라져 있던 중국을 통일(589)하여 중국 천하를 안정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15년 후 수 문제의 둘째 아들 양광이 아버지 문제(文帝)와 형 양용(楊勇)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자 문제를 도와 중국을 통일한 강이식은 수나라의 벼슬 직에서 물러나게 되는데, 이에 대한 기록은 중국 『광동강씨보(廣東姜氏譜)』에 “공(강이식)이 태조(수문제)를 도와 중국 천하를 안정시켰으나 태조의 아들인 양제가 제위를 찬탈하자 벼슬에서 물러났다(公佐太祖以定天下後帝纂位公以退野).”는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편 패륜을 저질러가면서까지 제위를 찬탈한 양광(수 양제)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앞서 말한 대로 주변 모두 나라를 정복하고 노예화하려는 신념으로 백성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또한, 이르는 곳마다 대단위의 궁궐을 축조했는데, 그 수만 해도 모두 40곳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수나라 백성들은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고구려 원정(遠征)을 결심하였다.
이때 벼슬에서 물러났던 강이식 또한 군사 징발대상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구려와의 대전(大戰)을 목전에 둔 양제로서는 중국 천하를 안정시킨 경험 많은 그에게 중책(重責)을 맡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강이식은 병마원수(兵馬元帥)의 자리를 맡게 되고, 이로써 전쟁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수 양제는 고구려 정벌을 감행한다.
그토록 많은 인원이 동원된 전쟁이었으나 불과 몇천 명밖에 살아 돌아가지 못했으니, 전쟁이 끝나더라도 수나라에는 백성들의 원성으로 인해 난리와 폭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숙종 을축년보(肅宗乙丑年譜)』에는 “강이식이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할 때 수나라의 병마원수가 되어 살수에 이르렀으나 수나라에 장차 난리가 날 것을 알고 이에 머물러 돌아가지 않았다(隋伐高句麗時 公爲兵馬元帥至薩水而知隋將亂仍留不返).”라고 기록하고 있다.
*(레 18:28)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다.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수양제가 행한 악은 그 땅에 임하게 되었고 땅은 그를 토해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강이식 장군은 수양제의 그 악을 보고 다시 수나라로 돌아가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나라를 배신한 것이지만 그 악이 수나라를 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에워싸이는 것을 보면 도망가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로마의 군사들이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다 도망을 쳤으나 비난한 사람들 100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는 자는 살게 되고 모르는 자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것인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