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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동거
이 홍사
불편하게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또 편하게 보이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교회와 절.
암자와 교회.
같이 엮어놓으면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교회와 암자이다. 이 두 단어는 묶어두기에는 좀 껄끄러운 거리가 있다. 허나 이 태백산맥줄기에서 뻗어 내린 대현산, 대현산의 고귀한 정기를 받은 신곡리에 교회와 암자가 앞뒷집으로 낮은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정말로 껄끄러운 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여승과 목사, 혹은 목사와 비구니스님. 이 또한 어울리지 않지만 신곡리의 같은 골짜기에서 대현산의 정기를 받으며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암자 뒤로는 집도 길도 없고 바로 대현산의 깎아지른 벼랑에 대나무 숲이라 준령한 산의 정기를 온전히 받고 있다.
한때 교회가 번성했으나 도시화되어 대처로 주민들이 빠져나가고부터 쇠락에 쇠락을 거듭하다가 신자라고는 가련하게도 삼십 년이 넘도록 장로를 맡고 있는 팔순이 가까운 최 노인뿐이다. 최 장로는 몇 년 전에 아내인 권사를 먼저 보내고 홀몸이다. 교회의 유성기 목사 역시 육 년 전에 사별하고 혼자 비탈진 밭에 사과농사를 지으며 교회를 꾸려가고 있다. 바로 뒤에 돌담하나를 사이에 두고 교회 뒷집인 해인암海印庵에 비구니 성애스님이 홀로 암자를 지키고 있다.
신곡리 골짜기에 주민이 그뿐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교회와 암자를 빼고 작은 개울 건너에 저쪽 산자락에 아직까지 일곱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지만 교회나 절에는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나마도 다 칠순에 가까운 노인들인데 부부가 남은 집은 고작 세 집이고 나머지는 다 늙은 과부나 홀아비다.
한 때는 팔십여 가구가 살았던 시골마을치고는 상당히 큰 촌락이었지만 도회로 빠져나가고 더러는 죽고 남은 가구가 겨우 일곱 가구뿐이다. 최 장로는 사별하고부터 서울에서 증권회사에 다니는 외아들이 올라오시라고 성화지만 자신이 올라가면 교회가 없어질까 봐 신곡리를 지키고 있다. 역시나 독실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매일 새벽이면 최 장로가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교회를 찾는다. 유 목사와 둘이서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소리가 들리는 시간이면 뒷집 성애스님역시 새벽기도를 하며 독경을 외고 염불을 한다.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와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가 뒤섞여 조용한 산골마을 신곡리의 새벽을 연다. 유 목사가 주기도문을 외우면 성애스님은 반야심경을 외운다.
일용할 양식을....... 관자재보살행심반야....... 하나님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아제아제 바라아제.......
골목에 서 있으면 이런 불협화음이 인다. 기도소리가 들리면 서로 질세라 목청을 높인다. 팽팽한 긴장감이 돌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 골짜기의 일상이 된 지가 오래 되었다. 다소 혼란스러운 새벽 기도가 끝나면 마을에 평화가 깃든다. 참으로 조용한 산골마을이다. 새벽기도를 할 때만 혼란스럽지 기도가 끝나면 어쩔 수 없는 이웃이다. 늘 하던 대로 오늘도 새벽기도는 그렇게 목청을 높이며 끝이 났다.
새벽기도가 끝이 나고 한참 후 성애스님이 요사체를 나와서 앞집 돌담에 붙어 서서 유 목사를 부른다. 골목으로 돌아가도 몇 발짝 되지 않지만 늘 하던 대로다.
-목사님!
유 목사는 그 시간 전자밥솥의 밥을 퍼고 있었다. 묵은 김치에 반찬이 시원찮은 지라 생선 한토막이 아쉬운 지경인데 성애스님이 부르는 소리가 살갑게 여겨졌다.
분명히 ‘목사님 계세요?’ 가 아닌 ‘목사님!’ 이고 보면 유 목사가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얘기다. 낮은 돌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고 산골마을이 하도 조용하여 신경만 쓰면 교회에 방문 여는 소리까지, 전자밥솥 김빠지는 소리까지 들리는, 껄끄러운 거리고 성애스님은 스님이라지만 어쩔 수 없는 여성이라 모성의 본능인지 몰라도 유 목사의 공양에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성애스님은 그런데 무심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유 목사가 방문을 열고 내다본다.
-아직 공양 안하셨지요?
-목사보고 공양은 무슨....... 막 아침 먹으려던 참이네요.
유 목사가 퉁을 먹였지만 성애스님은 아랑곳 않고 자기 할 말을 한다.
-이걸로 아침 공양을 하세요. 김치가 시어서 김치전을 붙였는데, 먹을 만해요. 날이 푹해서 그런지 김치가 빨리 시네.
유 목사가 슬리퍼를 끌고 돌담으로 다가와 스님이 내미는 접시를 못 이기는 척 받아서 들어간다. 잘 먹겠다거나 고맙다는 따위의 말은 생략되었다. 늘 하던 대로다. 다 먹고 난 다음에는 분명 빈 접시를 돌담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늘 하던 대로.
돌담너머로 오가는 것은 김치전뿐이 아니다.
동짓날이면 팥죽이 넘어가고 대보름이면 찰밥이 어김없이 넘어가며 특별한 게 생기면 수시로 넘어가는 곳이다.
유 목사가 당뇨기운이 좀 있다는 걸 성애스님은 알고 있다. 언젠가 읍내의 시장에 갔다가 약국에서 당뇨에 좋다는 약을 사는 걸 보고 그날부터 당뇨에 좋다는, 구지인가 뭣인가 뽕나무뿌리를 달인 물을 이틀이 멀다하고 플라스틱 물통에 담아 돌담너머로 건넨다. 유 목사가 그걸 받아서 성애스님 말대로 식사 전 공복에 한 컵씩 마시고 물통이 비면 돌담위에 올려놓는다. 늘 하던 대로. 돌담위에 빈 물통이 있으면 성애스님은 또 뽕나무뿌리를 달인다. 역시나 늘 하던 대로.
마을의 역사로 따지면 교회가 먼저 들어섰다. 유 목사의 교회가 신곡리에 들어온 지 사십 년이 넘었다. 당시에는 유 목사가 목사 안수를 받기 전인 전도사 시절이었고 총각이었다. 이 마을에 개척교회인 신곡교회를 짓고 선교활동을 하며 마을 주민 반 이상을 교인으로 만들어 집사가 열 명도 넘던 시절이 있었다.
주민들이 빠져나가며 마을이 조용해지자 성애스님이 대들보와 서까래가 튼실하고 대현산의 정기를 받는다는 이유로 빈집을 사서 들어와 암자를 만들었으니 그게 이십여 년 전쯤이다. 성애스님은 그 동안 불사를 해서 옛집은 현대식으로 고쳐서 요사체로 쓰고 법당을 아담하게 지어 단청까지 해놓아 밖에서 누가 보아도 암자인 줄 알게 만들었고 대현산해인암大賢山海印庵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신곡교회의 신자는 마을 안에 있고 해인암의 신도는 마을 밖에 있으니 이해타산관계로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거나 싸울 일이 없는 것이다. 싸울 일도 없거니와 협조할 일도 없는 사이다. 성애스님이 뒤집을 암자로 고치고 한동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앞뒷집에 십 년이 넘도록 살았지만 말도 잘 붙이지 않는 냉랭한 사이, 참으로 가깝고도 먼 거리에 살았다. 허나 육 년 전에 유 목사의 아내인 박 권사가 돌아가시고부터 달라졌다.
유 목사의 사모님이 돌아가시자 빈소를 교회에 차렸다. 그 때만 해도 교회 신자가 여럿 마을에 살고 있었다. 성애스님은 교회에 가서 빈소 앞에 자리를 잡고 목탁을 치며 극락왕생을 비는 염불을 올렸다. 뒤에서 교회 신자들이 눈총을 주거나말거나 염불을 했다. 한쪽에선 찬송가를 부르는데 한쪽에 비켜 앉아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했으니 어지간히 눈총을 받았을 것이다. 눈총을 받은 건 첫날 하루뿐이 아니었다. 다음날도 아침부터 빈소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천수경부터 금강경까지 지루하도록 극락왕생을 빌었다. 하긴 성애스님이 할 수 있는 부조는 그것뿐이었으리라. 인근 교회의 목사들이 소식을 듣고 문상을 와서 기도를 올리는데도 성애스님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유 목사는 난감했다. 방석을 깔고 염불을 하는 비구니 스님을 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목사들과 신자들은 성애스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염불이 들리는데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것 보셔요. 교회에 와서 염불하는 것이 말이나 되요?
염불이 끝나자 유 목사가 성애스님에게 못마땅하다는 듯이 비난했다.
-허, 대통령 죽었을 때 텔레비전 보지 않았어요? 한쪽에서 염불하고 한쪽에선 찬송가 부르고, 방법만 다를 뿐이지 본질은 같아요. 돌아가신 보살님이 극락왕생 하시리라 믿습니다.
성애스님이 옹골차게 받아치고는 목탁과 불경을 들고 일어났다.
-거 말조심 하세요. 권사보고 보살님이라니........
데면데면하게 굴었지만 지나고 나서 유 목사가 생각하니 성애스님이 고마웠다. 아내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스님으로 인하여 슬픈 줄을 모르고 지나간 것이고 성애스님이 그렇게 염불을 했으니 권사라고는 하지만 믿음이 약했던 아내가 천당이 아니면 극락으로 왕생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해인암은 신도가 자꾸 늘어나서 불사를 하는데 신곡교회는 신자가 자꾸 줄었다. 교회에 나오던 마을의 신자들이 죽거나 늙어서 농토를 버리고 자식들이 있는 도회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쇠락한 교회마당이 해인암의 주차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초하루나 보름, 법회가 있는 날이면 해인암 신도들이 타고 온 차가 교회의 너른 마당을 무단으로 점령해 버린다. 지난 초파일에는 유 목사가 본의 아니게 주차관리인이 되어버렸다. 교회마당과 골목 앞 공터를 점령한 차들이 엉켜 빠져나가지 못하자 유 목사가 보다 못해 호각을 물고 밀짚모자를 쓰고 종일 주차관리를 했다. 유 목사는 그날 점심도 굶었다. 목사가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암자에 들어가 배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성애스님역시 바빠서 그 점을 챙기지 못했다.
일용할 양식을 거론하니 하는 말인데, 유 목사는 먹고 사는 것이 교회에서 나오는 헌금이 아닌 지 오래 되었다. 대처로 떠난 마을 주민이 맡기고 간 사과농사와 산비탈의 밤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최 장로는 아침마다, 주말마다 주머니를 털어 헌금을 낸다. 그걸로 교회가 먹고 살기는 힘들다. 유 목사가 과수농사를 지은 지 십 년이 넘었다. 그 동안 사과나무는 과수로서는 고목이 되어 다시 개량종을 심어야 하지만 유 목사로서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 목사도 나이 칠십을 바라보니 사과나무를 다시 심더라도 새로 심는 과수가 이익을 낼 때까지 농사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칩이 지나고 신곡리에도 봄이 와서 대현산 자락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평화롭고 청아하게 들린다.
유 목사는 아침을 먹고 창고에 처박아 둔 농약 살포용 분무기를 꺼내다가 손질을 한다. 지난겨울에 가지치기를 한 잔가지를 다 정리했고 이제 곧 유황을 과수에 뿌려야 한다. 싹이 돋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밤농사는 일 년에 농약 한 번만 뿌리고 수확을 기다리면 되지만 사과농사는 손이 많이 간다. 유황을 치고 나서 잎이 돋으면 열흘이 멀다하고 농약을 쳐야한다. 요즘은 고성능 분무기가 나와서 이천 평이 넘는 과수원을 타고 다니며 한나절에 칠 수가 있지만 유 목사가 짓는 과수원은 계단식이라 그런 기계의 혜택을 볼 수가 없다. 질통으로 된 재래식 분무기에 약을 타서 메고 다니며 수작업으로 펌프질을 해서 뿌려야 한다. 그렇게 하니 다 합쳐서 고작 칠백 평 남짓한 과수원이지만 농약 한 번 치는데 꼬박 이틀이 걸린다.
유 목사는 창고 앞에 쪼그려 앉아 분무기에 기름칠을 하고 작동을 해 본다. 처음에는 뻑뻑하던 피스톤의 손잡이가 기름칠을 하고 몇 번 작동을 시키자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유 목사가 분무기를 손질하는 동안 성애스님은 외출준비를 한다. 겨울 누비 외투를 걸치다가 날씨가 푹해져 아무래도 둔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외투와 목도리를 벗어두고 얇은 가사장삼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그리고는 앞집 돌담에 붙어 섰다.
유 목사는 기척을 느꼈지만 돌아보지 않고 분무기에 묻은 기름을 닦는다.
-목사님!
-말씀 하소! 귀는 뚫렸으니까.
대꾸가 영 달갑잖다. 늘 하던 대로다.
-내일 모레가 보름이라 보름 장을 봐야하는데 장에 같이 가입시더.
-절에서 부처를 빙자해서 장사하려고 장 보러 가는데 왜 목사가 주책없이 따라나서야 돼요? 가는 걸음에 간고등어 한 손하고 꽁치 두어 마리만 좀 사다주소.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요. 중 보고 어물전을 기웃거리란 말이요?
-중이 교회는 기웃거려도 어물전을 기웃거리지 말라는 구절이 불경 어디에 있소?
-깐죽거리지 말고 거 같이 가입시더. 노는 손에 운전도 좀 해주고.......
-왜 노는 손이오? 지금 일하는 게 안보여요?
-별로 바쁘지도 않은 거 가지고 깨작거리지 말고 갔다 와서 하든지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되지. 가입시더. 별로 바쁘지도 않은 것 가지고서.......
-거 참, 찰지게도 달라붙어 졸라대네.
그 말을 뱉으며 유 목사가 힐긋 돌아보고는 대답 없이 손을 털고 방으로 들어간다. 유 목사는 그렇잖아도 읍내에 나갈 일이 있다. 간고등어나 꽁치 따위를 사는 일이 아니다. 설 아래 사과 남은 것을 조합을 통해 보냈는데 돈이 들어왔는지 능금조합에 가서 확인도 해야 하고 농협 농자재센터에 들러 유황도 두어 박스 사야한다. 작년에 쓰다가 남은 것이 있으니 두어 박스만 사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하며 와이셔츠와 점퍼를 갈아입고 통장을 챙긴다. 사실이지 성애스님이 닦달하지 않아도 오늘이나 내일쯤은 읍내에 나가야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는 이 신곡리에서 차가 없으면 꼼짝을 하지 못한다. 주민들이 좀 살 때에는 하루에 두 번 노선버스가 들어왔는데 주민들이 빠져나가니 버스 노선이 변경되며 버스가 말도 없이 끊겼다. 버스를 타려면 골짜기를 빠져 나가 이웃동네인 구곡리까지 걸어가야 한다. 거의 십리 거리인데 거기에 가더라도 버스가 자주 있는 게 아니다. 하루에 두 번뿐이고 이 놈의 버스는 남이 급한 건 안중에도 없이 이 동네 저 동네, 온 골짜기를 다 들렀다가 읍내로 간다.
유 목사에게도 차가 없는 게 아니다. 있긴 있지만 농사용으로 쓰는 사륜구동의 소형화물차인데 워낙에 오래된 놈이고 파워핸들이 아니라 그걸 끌고 읍내에 한 번 다녀오면 몸살을 할 지경이다. 중고차를 샀는데 그게 사과농사를 시작하면서였으니 차령이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농로를 끌고 다니며 사과나 비료, 거름을 싣기에는 그만이다. 운전석 아래가 낡아서 구멍이 숭숭 나고 차창에 제대로 올라가지 않아서 달리면 찬바람이 들어오고 온통 먼지투성이어서 누구를 태우기가 민망할 지경이지만 그게 없으면 발이 묶인다. 아니다. 발이 묶이는 건 아니다. 유 목사에겐 오토바이도 있다. 짧은 거리에 짐이 없으면 늘 오토바이를 이용하는데 겨울에는 찬바람이 뼛속까지 들어오는 것 같아 아직까지 창고 안에 있다. 그것도 곧 꺼내 손을 봐야 한다.
유 목사가 말쑥한 차림으로 방문을 나섰다.
-거, 운전 좀 제대로 배우지, 바쁜 사람 귀찮게 하네.
방문을 나서며 운전이라면 왕초보인 성애스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거, 참 말 많네! 자꾸 타봐야 배울 거 아닙니까? 남이 운전하는 거라도 자꾸 봐야 배우지.
골목을 나온 유 목사에게 키를 넘겨주며 성애스님이 대꾸했다. 유 목사에겐 그게 핀잔으로 들려 또 한 마디 한다.
-운전도 제대로 못하면서 차는 뭐 하려고 샀소?
-아이고, 운전을 뭐 날 때 배워서 나오는 놈이 있소, 그리고 이 차는 산 게 아니라 시주받은 거요. 시주! 목사 주제에 시주나 아시나 몰라.
성애스님이 조수석에 오르며 열을 올렸다.
-시주 같은 소리하고 계시네. 부처를 빙자해서 신도 등을 친 거지. 그 놈의 시주받은 차가 시동은 한 방에 잘 걸리네.
유 목사역시 지지 않고 시동을 걸며 중얼거린다. 성애스님은 그 소리를 아예 못 들은 척했다. 무슨 대꾸를 했다가는 또 내린다며 혼자 다녀오라고 난리를 부릴 게 뻔하다. 늘 하던 대로.
성애스님의 차는 흰색 소형승용차다. 재작년인가. 해인암에 나오는 신도 중, 읍내에서 금은방을 하는 최 보살이 차를 바꾼다며 헌차를 살 사람이 없고 중고매매센터에 끌고 가니 겨우 폐차시키는 값을 쳐주겠다고 한다며 차가 아깝다는 소리를 했다. 성애스님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고 같이 기도를 마친 신도들끼리 공양을 마치고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한 얘기인데 그게 늦은 공양을 하던 성애스님 귀에 들렸다. 그렇잖아도 신곡리에 버스가 끊겨 여북 불편한 게 아닌데 성애스님 귀에 확 트이는 소리였다. 둘러앉은 신도들은 헌 차의 찻값에는 안중도 없고 새로 나오는 차가 무슨 모델이냐면서 새 차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성애스님이 숟가락을 놓고 끼어들어 그 차를 좀 보자고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차는 바로 앞 교회마당에 서 있다고 했다.
당장 보자며 성질 급한 성애스님이 일어서니 차를 마시던 몇몇이 일어났다. 교회마당에 서 있는 흰색 승용차는 멀쩡했다. 구형 모델이고 연식이 좀되었지만 얼마타지는 않았다는 최 보살의 말이 있었고 성애스님은 키를 받아서 시동을 걸어보았다. 엔진소리가 부드러운 게 이제 겨우 길이 난 차처럼 여겨졌다. 성애스님은 폐차 시키는 값을 쳐줄 터이니 자신에게 넘기라고 하며 폐차장에서 얼마를 쳐주기로 했느냐고 물었다.
아이고, 스님께서 무슨 폐차장이에요? 무슨 돈을 받아요. 보험 야물게 들고 이전만 해가세요.
최 보살의 듣기 좋은 말이었다. 둘러선 신도 몇몇도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성질 급한 성애스님은 새 차가 언제 나오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는 대답이 없었고 스님 면허 있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있지. 내가 행자시절에 지리산에서 봉고차 운전을 얼마나 했는데.......
그런 말들이 오가고 나서 닷새 후, 토요일에 최 보살이 남편과 함께 차를 두 대나 끌고 해인암을 찾아왔다. 골목에 서 있는 두 대를 보니 어느 게 새 차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스님에게 드린다고 정비소에서 얼마나 손을 보았는지 새 차가 되었다. 시트커버도 가죽으로 된 것을 새로 깔았고 핸들커버와 매트와 타이어도 새 것으로 바꾸었고 오일부터 시작해서 소모품은 몽땅 갈았고 기름도 가득 넣었다고 했다. 그 동안 성애스님이 한 일은 자동차 보험회사라며 전화가 와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알려준 게 전부였는데 보험을 가입하고 이전을 해서 성애스님의 이름으로 된 자동차등록증까지 가져왔다.
성애스님은 보험료와 이전비용은 주는 게 도리라며 얼마냐고 물어보니 최 보살의 남편은 그것마저도 시주하겠다고 했다. 최 보살의 남편은 건축회사를 경영하는 젊은 양반인데 기어이 주려고 해도 도저히 못 받는다고 한동안 옥신각신했다. 그 일을 기화로 최 보살의 남편이 가끔 해인암을 찾아와 차를 점검하고 어디가 시원찮으면 차를 끌고 가서 정비소를 다녀온다. 정비소를 다녀온 날이면 어김없이 기름을 가득 넣어온다. 성애스님은 그 점이 늘 고맙다.
차를 가져오던 날 최 보살 남편과 돈을 주느니 못 받느니 옥신각신하다가 차를 교회 대문 앞을 막고 세워둔 걸 깜빡 잊었다. 그 시간 유 목사는 화물차로 과수원에 비료를 싣고 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골목을 막고 있는 차를 피해서 억지로 마당으로 들어가려다가 세워둔 차 범퍼를 살짝 긁었다.
아, 정말 신경질 나네. 차 좀 똑바로 세우지.
해인암 골목에서 유 목사가 암자를 보고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똥 뀐 놈이 성낸다고, 소리는 왜 질러요. 왕초보가 그렇지.
그때부터 유 목사에게 성애스님은 왕초보가 되었다.
성애스님과 유 목사가 탄 차가 사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읍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신곡리에서 읍내까지는 삼십 리 길이다. 시오 리 떨어진 곳에 면소재지가 있기는 하나 오일장이 없어진 지 오래다. 하여 우편물이나 택배를 부치거나 농협 볼 일등 작은 볼일을 제외하고는 읍내로 나간다. 사차선에 들어서자 유 목사가 속력을 높였다.
-아이고, 좀 천천히 가요. 누구 극락 보낼 일이 있어요?
읍내가 보이는 고개를 넘어서서 조수석에 앉은 성애스님이 힐책을 날렸다.
-왕초보가 드라이버의 이 참 맛을 어찌 알겠어요. 천당 보낼 일이 없으니 염려하지 마소.
천당이 아니고 극락입니다. 극락이 아니고 천당이라고 합시다. 극락이라니까, 둘이서 옥신각신하며 읍내로 들어가 차를 세운 곳이 공중목욕탕인 부곡한증막의 주차장이었다. 온천은 아니고 대중목욕탕이지만 간판은 그렇게 거창하게 달고 있었다. 둘이 말은 없었지만 읍내에 나오면 어디부터 들러야 하는지 서로가 알고 있다. 산골마을에 살면 가장 불편한 게 목욕이다. 여름에는 찬물 샤워를 하니 괜찮지만 겨울이 큰일이다. 읍내에 나올 일이 있으면 무조건 들러야하는 곳이 목욕탕이다. 서로 옥신각신하며 왔지만 목욕탕 주차장에 차를 세운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이견이 생긴 건 목욕시간이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겠죠. 지난번처럼 두 시간이 넘으면 혼자 차를 끌고 갑니다.
차 키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으며 한 유목사의 말이었다.
-한 시간? 때를 불리다 말겠네. 두 시간으로 합시다.
-아니, 중이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릴 일이 있나, 화장을 할 일이 있나, 뭐에 시간이 그렇게 걸려요.
-좋아요, 그럼 한 시간 반으로 해서 열두 시에 만납시다.
성애스님이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고는 삼십 분 양보했다. 그렇게 합의를 보고 각자의 주머니에서 각자의 요금을 내고 성애스님은 일 층 여탕, 유 목사는 이 층의 남탕으로 올라갔다.
유 목사의 목욕은 거의 사십 분 만에 끝이 났다. 느긋하게 한다고 했지만 목욕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그렇다. 유 목사는 나오지 않고 옷을 다 갈아입고 탈의실 소파에 앉아 맥반석으로 구운 계란을 두 개 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옛날 아내가 살았을 적에는 목욕탕에 오지 않았다. 집에서 가마솥에 장작을 피워 물을 끓이고 고무로 된 큰 함지박을 독탕삼아 목욕을 했다. 가끔 아내가 등을 밀어주기도 했는데 그 시절이 아련하고 목욕을 하는 여승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지금 처지를 생각하니 자기연민과 모멸감 비슷한 기분이 일었다.
다음부터 목욕만은 혼자 다녀야지.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고 있던 유 목사가 소파에 앉은 채 양말을 탈탈 털어서 신고 일어난다. 시간이 얼추 되어 간다는 얘기다. 유 목사가 느긋하게 신발을 찾아서 신고 목욕탕을 나오니 성애스님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웬일이오?
-점심은 냉면을 먹읍시다. 냉면이 당겨서 일찍 나왔소.
목욕탕 부근에 중국집, 태화루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지난번에 성애스님 입에 맞춘다고 우동을 먹었다. 중국집이라면 차를 복잡한 시장 골목으로 끌고 갈 일이 없다. 목욕탕 주차장에 그대로 두고 걸어서 가면 된다. 일단 냉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움직일 일이다.
-나는 돼지국밥이나 보신탕을 먹고 싶은데.
유 목사가 빈정거리거나 말거나 앞장선 성애스님이 태화루의 문을 밀고 들어간다. 유 목사 따라 들어오자 유 목사의 의향도 물어보지 않고 물과 컵을 주는 주인아줌마에게 물냉면 둘을 시킨다. 유 목사는 성애스님의 맞은편에 앉는다.
냉면이 나오자 성애스님 그릇의 냉면 위에 얹힌 편육을 유 목사가 말없이 젓가락으로 걷어간다. 그러자 성애스님이 반쪽 계란도 젓가락으로 집어 유목사의 그릇에 올려준다. 그리고 그릇을 앞에 두고 잠시 기도를 한다. 겉으로는 다정해 보이지만 속은 아니다.
다 먹고 나서 계산을 할 때에는 각자의 몫만 계산을 해서 식당 아줌마가 놀라는 눈치를 보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그랬다. 성애스님은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을 받고 유 목사는 냉면 한 그릇 값으로 카드를 긁었다. 점심을 때우고 나서 다시 차를 타고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물론 운전은 유 목사의 몫이다.
시장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성애스님은 바빠졌다. 과일가게에서 사과와 배 밀감, 참외, 바나나를 사고, 떡집으로 가서 절편과 시루떡을 사고, 성애스님은 손에 쥐고 다니는 쪽지를 본다. 늘 성애스님은 준비물을 적은 쪽지를 들고 다닌다. 건어물 가게에서 고사리와 숙주나물, 시금치 한 다발 사고 길 건너 단골로 가는 불교용품 가게에도 들러 양초와 향을 샀다. 물론 그렇게 비닐봉지에 넣은 물건은 성애스님이 들고 다니지 않는다. 성애스님은 계산만 하고 들고 다니는 건 유 목사의 몫이다. 유 목사는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그 안에 들어있는 바나나 하나를 뚝 분질러서 까서 먹으며 따라다닌다. 늘 하던 그대로다. 그걸 본 성애스님의 힐책이 날아온다.
-아니, 경우 없이, 부처님께 올릴 건데 거기다가 손을 대면 어떻게 해요? 뭘 믿는다는 사람이 하는 것 하고는....... 장에만 나오면 애들 같다니까.......
유 목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장에 나오면 항상 성애스님의 볼일부터 먼저 본다. 살 것을 다사서 차 트렁크에 넣고 나서 다시 시장을 돌아다니며 유 목사의 볼일을 본다. 유 목사가 들고 있는 비닐봉지는 한 짐이다. 공영주차장으로 가서 그걸 트렁크에 넣고 스님과 목사는 어물전으로 향한다. 유 목사는 간고등어 한 손과 꽁치 세 마리를 골라서 주문한다. 어물전 아줌마가 그걸 요리하기 좋게 잘라서 손질해서 비닐에 담는 동안 성애스님은 어물전 근방에는 얼씬거리지 않고 네거리의 과일가게를 둘러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다 샀어요? 뭐 살 것도 없네.
얄팍한 비닐봉지를 들고 가자고 하는 유 목사에게 던진 성애스님의 말이다.
-시장 볼일만 볼일이오?
유 목사는 비닐봉지를 트렁크에 넣겠다고 트렁크를 열자 성애스님이 부처님께 올릴 물건에 비린내가 밴다고 하며 뒷좌석에 실으라고 한다. 유 목사가 힐끗 돌아보고는 뒷문을 열고 비닐봉지를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차를 몰아 번잡한 시장을 빠져나와 읍사무소 옆의 능금조합 앞에 차를 세웠다.
-여기도 볼일이 있어요?
유 목사는 대답하지 않고 시동을 끄고 키를 뽑아서 안으로 들어간다. 성애스님은 현금지급기를 보자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조합 앞의 현금지급기의 부스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바랑을 열어 계좌번호가 적힌 수첩을 꺼내든다. 깜빡할 뻔했다. 대구에 있는 독거노인요양원으로 매달 얼마를 보내는 것을 깜빡했다. 차를 타면서 뭔가 찜찜했는데 바로 그것이었다. 그걸 보내고 송금 영수증을 뽑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볕이 제법 따사로워졌다.
차 안이 따사로워 그런지 졸음이 온다. 성애스님이 하품을 하며 앉아 있으니 유 목사가 조합 문을 열고 나와서 바로 옆에 붙은 농자재센터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뭘 사려는 모양이다. 성애스님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후딱 차 문을 열고 소리친다.
-목사님!
유 목사가 대답하지 않고 돌아본다.
-열매 솎을 때 쓰는 가위! 그거 좋은 걸로 하나 사세요. 비싼 걸로요.
작년에는 유 목사의 과수원에서 이틀 일을 해주었다. 열매를 솎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남정네보다는 손이 재바른 여자가 훨씬 빠르다. 밀짚모자를 쓰고 이틀을 했는데 가위가 시원찮아 손가락 두 개에 물집이 잡혔었다. 열매솎기는 제 때 해야 되는데 인부가 없을뿐더러 신곡리에는 모두가 노인이라 사다리를 탈 수가 없다. 그 때가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시기인데 놓치면 농사를 망친다. 그것도 아무 여자나 하는 게 아니라 기술이 있어야 한다. 어느 걸 남기고 어느 걸 솎아야하는지 그걸 배운다고 목사에게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엄청 들었다.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올해는 지청구를 듣지 않고 기어이 작년에 익힌 기술을 보여주어야 할 일이다.
유 목사가 무슨 뜻인지 알고 씩 웃어 보이고는 농자재센터로 들어갔다.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에 인색한 사람이라고 성애스님은 생각한다.
얼마 걸리지 않아서 유목사가 종이박스를 두 개 포개서 안고 나온다. 얼른 보기에도 제법 무거워 보인다. 성애스님이 냉큼 내려서 차 뒷문을 열어주었다. 무엇인가 물어보니 유황이란다.
-벌써 유황을 뿌릴 때가 되었나?
-볼일 끝났지요? 지난번처럼 한참 가다가 차 돌리자고 하지 말고 꼼꼼히 챙겨요.
유 목사가 운전석에 앉아 안전띠를 매면서 다짐을 받느라고 한 말이었다. 이제 출발이다.
-남의 걱정은 마시고 약국에 안 들리세요?
-난데없이 약국은 왜요?
-게으르고 칠칠맞은 사람이나 걸리는 당뇨, 그거에 좋다는 약은 사야죠.
-아 그거, 구지인가 뭔가 뽕나무뿌리 달인 물을 매일 공복에 먹었더니 많이 좋아졌어요. 그걸 마시고 나면 왜 그렇게 헛구역질이 나는지. 고약한 손때가 묻은 냄새 때문에 그런가 보지요.
-내 손에 냄새가 나요? 그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고, 좋아졌다니 다행이네요.
하나님의 은총이지요. 무슨 말씀,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거지요. 하나님의 은총이라니까. 부처님의 가피가........ 그만 합시다. 또 내린다고 할라.
성애스님이 져 주는 척 말을 마쳤다. 고약한 성질머리에 더 하다가는 또 내린다고 난리를 부리지 싶다. 성애스님은 생각한다. 이렇게 타투지만 종교의 본질은 같다. 모든 종교에서는 욕심을 버리라고 한다. 정작 욕심을 모두 버리면 종교의 존재나 의미마저도 희미해진다는 말을 승가대학에서 큰스님에게 들었다. 정말로 욕심을 버리면 목사나 비구니나 다 같이 사라질 것이다. 성질머리 고약한 유 목사가 종교가 달라서 서로 견원지간 같지만 없어서는 안 될 이웃이라고 생각한다. 유 목사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며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한다. 성애스님이 쪽지를 꺼내 다시 본다. 빠진 게 없나 확인하는 차원이다. 약국에 들르지 않아도 된다니 볼일은 다 본 셈이다.
읍내를 빠져나와 고개를 넘으니 사차선 도로가 한산하다. 유 목사는 속력을 좀 높였다. 안락한 차 성능이 그만이다. 밟으면 밟는 대로 나간다. 이런 차를 시주를 받다니 유 목사는 그 옛날 교회에 신자들이 득실거릴 때가 아련히 그립다.
-아, 좀 천천히 갑시다.
도로가 한산해서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유 목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거, 운전하는데 말 좀 시키지 마소.
고개를 넘어서면 마을이 있다. 도로에 천천히, 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마을 골목에서 놀던 검둥개와 흰 개가 무슨 일인지 갑자기 싸움이 붙어 흰 개가 왕하며 달려들자 검둥개가 화들짝 놀라 도로로 튀어나온다. 유 목사는 도로로 튀어나오는 검둥개를 보고 놀라 핸들을 돌리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성애스님은 안전띠는 매었지만 몸이 앞으로 휘청했다.
깨갱.
차는 섰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검둥개가 앞 범퍼에 살짝 부딪혔는지 깨갱거리면서 한쪽 뒷다리를 쳐들고 절뚝거리며 도로를 건너가 언덕 아래로 사라진다.
-아이고, 그 놈의 개가 난데없이, 하나님의 은총이 있었구먼.
-부처님의 가피겠죠. 좀 천천히 갑시다.
부처님의 가피는 무슨, 하나님의 은총이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부처님의 가피라니까요. 부처는 무슨 하나님이지. 부처라니까, 하나님이라니까. 이 아줌마가 확 내려버릴라.
유 목사 입에서 못 할 말이 나오고 말았다. 성애스님을 보고 홧김에 아줌마라고 한 것이다.
-아줌마라니, 내릴 테면 내리소! 누가 차 못 끌고 갈까봐.
유 목사가 차를 갓길로 붙인다. 주차브레이크를 채우고 난폭하게 안전띠를 푼다. 성애스님은 알고 있다. 목사가 내린다는 것을. 하지만 눈도 깜짝 않는다. 유 목사는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고 어물전에서 산 비닐봉지를 꺼내든다.
-왜, 그것만 꺼내요? 유황 박스도 가져가시지.
-그건 버릴 겁니다. 가다가 버리든지 마음대로 하소.
유 목사가 비닐봉지를 들고 휘적휘적 걸어가자 성애스님이 내려 운전석으로 옮겨 앉는다. 그리고는 유 목사가 보란 듯이 급하게 출발해서 쏜살같이 유 목사를 추월한다, 조금만 가면 다리다. 그리고 도로가 이 차선으로 좁아진다. 유 목사가 보니 왕초보가 너무 빨리 달린다. 차는 일 차선으로 가다가 기우뚱하더니 이 차선으로 옮겨가고 또 일 차선으로 들어가는데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이 넓은 도로에서 갈지자 운전을 하다니, 보는 것이 아슬아슬하다.
왕초보가 저러다 대형사고 내지. 운전하는 것을 보니 유 목사가 오줌을 지릴 정도다.
초보운전 좋아하네, 내가 행자시절에 지리산에서 봉고차를 끌고 감자, 고구마를 싣고 얼마나 산비탈을 다녔는데. 성애스님은 유 목사가 자신이 운전하는 차를 본다는 걸 알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가 지그재그로 운전을 해서 다리를 건넌다.
유 목사는 성애스님의 차가 보이지 않자 더 불안해졌다. 저러다가 정말 사고 내는 게 아닌가?
다리를 건너자 도로가 좁아졌다. 신곡리까지는 이십 리 길이 넘는다. 그렇다고 버스가 올 시간도 아니다. 성애스님은 이차 선 도로에 들어서서 속도를 줄이고 차가 없는 사이에 좁은 도로에서 한 방에 익숙하게 유턴을 한다. 그리고는 다시 다리를 건너간다. 유 목사가 도로 갓길로 마주 걸어오는 게 보였다. 유 목사를 지나쳐 다시 유턴을 한다.
성애스님은 조수석 창문을 내린다. 유 목사는 보지도 않고 고개를 외로 꼬고 걷고 있다.
-거, 길가는 목사님!
유 목사는 대답하지 않고 걷고 있다. 성애스님은 유 목사의 보폭에 맞추어 천천히 차를 몰며 다시 부른다.
-목사님! 신곡리가 어디로 가는지 좀 가르쳐주세요.
역시 대답이 없다. 성애스님은 화해무드로 조성한다.
-좋아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합시다. 하나님의 은총!
그러거나 말거나 유 목사는 들은 척도 않고 고개를 외로 꼬고 걷는다. 늘 하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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