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썸머
망창
1.
따스한 바람이 어느새 비구름을 몰고와 한여름으로 접어드는 장마의 끝 무렵 아이는 태어났다.
민환아,
아이에게는 점지된 이름이 있었다. O환 먼저 태어난 이 집안의 아들들은 종환, 지환, 석환 등 이었는데, 집안의 돌림자라고 해서 그 이름을 받아들기에는 영 내키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몇번이고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역시 착하고 달라붙지 않았다. 촌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이의 엄마는 몇 날 며칠을 고심 끝에 동네에 유명하다는 철학관을 찾았다. “이 아이는 불기운이 많아서 이름을 이렇게 지으면 큰일나요”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받아 적은 뒤 두꺼운 책을 한참 뒤적인 철학관 아저씨가 단번에 뱉은 말이었다. 이름 한자 부수획에 화가 아닌 수가 들어가야한다며 내어놓은 이름 화창할 창(暢)에 깊을 준(浚) 창준, 아이는 불의 기운을 식혀줄 물의 기운을 담은 창준이 되었다.
철학관 아저씨가 용한 탓이었을까, 몸에 유독 열이 많은 탓이었을까. 하필 태어난 다음 해는 얼마전까지 최악의 폭염 기록으로 24년동안 장기 집권했던 94년 이었다. 갓난아이는 무더운 날이면 피부 발진과 아토피로 자주 칭얼거렸고 엄마의 정성어린 부채질덕에 힘겨운 여름을 났다.
아이는 유독 여름 나기를 힘들어했다. 여름방학에는 수영장에 곧잘 다녔고, 매년 여름에는 강원도의 산속으로 가는 계곡 캠핑을 유독 기다렸다.
타고난 운명 탓이었는지, 물려받은 체질 탓이었는지 몰랐지만, 더위 혹은 여름은 늘 순탄치 않았다.
2.
“여기 날씨가 원래 이렇지는 않거든, 기후가 바뀌어서 요새 꽤 덥다.”
이곳은 기후변화로 날씨가 더 덥다고 했다. 아 이토록 상쾌한 여름날이라니. 한국의 짜증 가득한 여름을 온 몸으로 겪고 난 뒤 맑은 하늘과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 느끼려던 찰나였다. 어쩐지 배부른 소리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였다. 이곳은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30도를 쉬이 넘지 않는 기온. 맑디맑은 하늘아래 선선한 바람이 금세 불어오는 곳. 캐나다의 서부. 벤쿠버의 여름이었다.
캐나다로 향하게 된 것은 친구가 보낸 사진 한 장이었다. 그가 이곳에서 공부한 뒤에는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은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빙하가 녹아 짙푸른 에메랄드색의 물로 강을 이루어 흐르고 곧게 자란 전나무 숲이 드넓게 펼쳐진 뒤로 우두커니 설산이 찍힌 풍경. 로키 산맥이라고 했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이곳에 가기로 결심했다.
서부에서의 여름방학을 마치고 복학하는 친구의 짐과 1달간의 여행할 배낭 그리고 캠핑 장비를 조그만 4인 승용차에 가득 싣고 떠났다.
도심에서 1박 2일을 달려 도착한 로키산맥은 힘차게 솟아 끝없이 이어져 있었는데 그 크기와 규모가 이 정도는 되어야 산맥이지 라고 보여주는 압도적인 풍광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알프스가 있는 동네와 비슷해 여름에 꽤 놀러 오기도 한다고 했다.
산속 나무로 각자의 캠핑 영역으로 구분 지어놓은 찾아가서 짐을 풀었다. 정착한 우리의 하루 일과는 별달리 할 것이 없었다. 예컨대 낮에는 주로 주변에 산에 트레킹코스를 골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운타운에 다녀오는 정도였다. 저녁에는 밤하늘아래 불을 피워놓고 밥을 해먹으며 이야기하다가 잠을 잤다. 주변사람들은 10시만 되어도 불을 끄고고 잠에 들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용히 자연을 즐겼다.
산속은 도시와 완전히 달라 패딩을 입고 침낭을 덮어야 온기와 함께 조금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춥고 불편했지만 매일 숙면을 취했다.
단순했지만 만족스러운 생활이 며칠 이어지면서 로키에서 여름을 보내는 이들을 보며 문득 이곳의 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곰들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여름을 나기위해 숲속으로 들어와서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자연을 즐기고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그러했다.
실제로 야생 베리가 열리는 여름은 곰을 가장 조심해야 하는 계절이기도 했는데, 베리를 먹으로 온 곰과 여름을 즐기러 온 사람간의 충돌이 잦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늘 스프레이를 챙겨서 다녀야 했다. 늘 곰을 주시하고 위험에 대비해야 했지만 나도 곰처럼 여름을 보낸다는 생각이 어쩐지 재미있기도 했다.
로키에서 캠핑은 이런 더위 없는 여름이면 4계절 여름이여도 괜찮을거 같았다. 운명인지 체질인지 하여튼 열이 많은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날씨였다.
그러나 단지 날씨만 좋은게 전부는 아니었다. 곰들이 그토록 탐내던 이곳의 베리는 또 어떠한가. 고향에서는 킬로에 몇만원을 육박하는 바람에 쉬이 구경도 못한 비싼 베리가 말도 안되는 가격이었다. 저렴하게 사온 베리를 선선한 바람과 먹고 있노라면. 아 정말이지 태초에 곰이 마늘만 먹으라는 일생일대의 순간에서 지척에 베리가 가득한 여름철의 북미였다면 인간이 되지 못하였노라 상상도 해보았다.
로키의 자연에서는 비록 하는일이 얼마 되지 않았으나 시간은 금방내 지나갔다. 인생에서 손꼽을만한 나의 피서였고 말그대로 시원한 여름이었다. 이곳이 차를 타고 올 수 있는 거리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3.
그러나 시원한 여름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겠다는 불안감은 여행 동안 이따금씩 찾아왔다.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던 벤쿠버의 기후변화의 조짐처럼 로키도 기후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로키의 기후변화는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아이스필드, 로키산맥 가운데 빙하를 직접 밟아보고 걸을수 있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1880년대부터 빙하가 있던 위치부터 매년 얼마만큼 뒤로 가고 있는지 년도별 표지석을 세워두었다. 빙하는 자꾸자꾸 녹아뒤로 가고 있었고 녹는 속도도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둘러보고 나오니 1880년대의 빙하는 차로도 2분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다.
자꾸만 그 장면이 밟혀서 친구와 저녁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사람들이 왜 이렇게 작은변화에도 민감한지 알 거 같아"
“응, 당연한거지 매년 여름에 찾아오던 자연이 달라지는것을 보는 건 엄청난 위기감이지.”
고작 2~3도 올랐을 뿐인데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던것이 이해가 갔다. 생전 필요 없던 에어컨이 필요해지고 매년 오던곳에 눈이 녹는 일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닐수 있었다.
캠핑장에는 다양한 이민자들이 있었다. 백인만 있을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과연 이민자의 나라답게 이들도 이좋은 로키의 썸머를 즐기러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흥미롭게도 캐나다의 다른 모든곳은 조용하고 한적한데 비해 캠핑장에는 모든 예약이 다 차 있었다.
뒤로 향해가는 동토층, 녹아가는 얼음들을 보고 난 뒤여서 그런지 자꾸만 생각이 꼬리를 물어 걱정을 만들었다. 이들이 저마다 하나씩 캐러반을 갖게 된다면. 빠른 경제성장 덕에 이들이 누린 호사스러운 취미가 모든사람에게 돌아간다면, 더 많은 이민자가 캐러반을 갖고 그걸 끌기위해 높은 CC의 차를 몰아야 한다면. 그리고 저마다의 나라로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으로 돌아가 캐러반을 끌게 된다면, 당장 한국만 해도 캠핑의 유행으로 하나둘 캐러반이 생겨나는데…
그렇다고 지구상의 많은 국가의 경제 수준이 올라가고 저들이 그랬고 우리가 그랬던것처럼 문명과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건 막을 수 없을 것이고 흐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변하게 될까?
눈과 얼음이 자꾸 녹아 내년 내후년 그다음해에는 눈 덮힌 산이 아닌 검회색의 라임스톤으로 이루어진 산을 보게 된다면 그리고 이 장대한 산림 어딘가에서 열심히 베리를 따먹으며 겨울을 준비하던 곰들은 자꾸만 위로 위로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올라가겠구나
너무나 아름다웠던 로키의 썸머을 뒤로하고 가장 시원해서 완벽했던 나의 여름은 한편의 걱정과 함께 마무리했다. 우리는 그토록 시원하고 상쾌한 로키의 여름을 언제까지 예찬 할수 있을까? 안녕 나의 뷰티풀 썸머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