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변혜지＜2021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감상 홍정식)

[시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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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변혜지<2021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감상 홍정식)

언더독/변혜지<2021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감상 홍정식)


이 세계를 네가 구했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폐허가 된 도시에 둘러
싸여서,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눈을 빼앗길 만한 장면이어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울리는 음악을 마련하였다.

화관(花棺) 속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내가 누워있었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행렬
로 거리가 잠시 가득 찼다.​

나는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나. 나의 궁금증이 이 세계와 무관하였다.

연인이 내게 입을 맞추며 엄숙하게 사랑을 맹세하였고,

잠들었던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는 영문 모를 격정에 휩
싸였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내가 꿈속의 나를 향해 소리치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격정이 나와 무관하였고, 화관에 누운 내가 나
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비로소 이 꿈의 구성방식을 알 것 같았고,​

나는 이 세계에 두고 나가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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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를 네가 구했어.

대단한 영웅이 탄생했습니다. 세상을 구한 영웅 말이죠.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폐허가 된 도시에 둘러
싸여서,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사람들이 나를 칭송합니다. 영웅의 탄생을 축하하죠. 하지만 꿈입니다.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사실은 별로 그렇게 썩 내키는 아름다움은 아니군요.

눈을 빼앗길 만한 장면이어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울리는 음악을 마련하였다.

그래도 너무 아름다워서 노래도 배경으로 깝니다.

화관(花棺) 속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내가 누워있었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행렬
로 거리가 잠시 가득 찼다.

꽃으로 만든 관 속에 죽은 내가 있고, 세상은 모두 나를 추모하는군요.

나는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나. 나의 궁금증이 이 세계와 무관하였다.

그런데 아직도 의아합니다. 내가 어떻게 세상을 구한 영웅이 되었는지 말이죠.

연인이 내게 입을 맞추며 엄숙하게 사랑을 맹세하였고,
아, 나의 연인입니다. 그가 죽은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입을 맞춰요​

잠들었던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는 영문 모를 격정에 휩
싸였다.

처음만 보고 잠들었던 관객이 영문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듯 나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내가 꿈속의 나를 향해 소리치자
저 곳은 나의 자리가 아니야 하고 소리치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나를 칭송하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봅니다. 네가 희생자여야 해.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 법이야, 하고 말이죠.

나는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격정이 나와 무관하였고, 화관에 누운 내가 나
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관을 벗어나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어요. 내가 희생자가 될 수 없으니까요. 나의 자아가 나를 응원하는군요.
잘 하고 있어! 라고 말이죠.

비로소 이 꿈의 구성방식을 알 것 같았고,​

나는 이 세계에 두고 나가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그래요, 드디어 나는 세상의 구성방식을 알았어요. 약자에게 덮어씌우는 희망고문 말이죠.

언더독은 약자를 응원하는 말입니다. 네가 영웅이야, 네가 세상을 구했어! 라며 응원하는 척 합니다. 애인도 다가와서 사랑을 고백하고 세상도 나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대합니다. 다만 내가 약자일 경우이죠.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노력해, 끊임없는 응원을 보내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으라고 합니다. 누군가는 떨어져야 누군가는 올라가죠.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면 세상은 용서하지 못합니다. 가만히 그 곳에 머무르길 원하죠. 나약하게 말이죠. 하지만 용기를 내서 벗어나려고 해요. 그게 세상의 구성방식이라고 해도 말이죠. 세상의 모든 이류와 삼류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저도 끝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하류입니다. 한 번 벗어나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