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가문 -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가문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읽고 그대로 순종하여 복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이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을 연구하는 ‘조나단 연구센터’가 세워져 있다.
그 연구센터에서 그의 후손들 1400명을 조사 연구한 결과 엄청난 인재들이 나왔음이 확인 되었다.
14명의 대학총장(학장)
100명 이상의 목회자(신학자, 선교사)
100명 이상의 법관과 판사
60명 이상의 의사
70명 이상의 작가와 언론인
65명의 교수
3명의 상원의원
1명의 부통령
25명의 군고급 간부가 각각 배출되었다.
한 사람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해서 그의 후손들이 이토록 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이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일컬어
“청교도가 알프스 산, 루터와 칼빈이 히말라야 산이라면 조나단 에드위즈는 에베르스트 산과 같다”
에드워즈는 1703.10.5일 코네티컷 주의 이스트 윈즈에서 회중교회 목사인 디모데 에드위즈의 11명의 자녀 가운데 5번째로 태어난 외동아들이었다.
독실한 청교도 집안, 매일 성경묵상, 기도하는 분위기, 훈련시간의 소중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능력을 개발 해야 함을 교육받으며 자랐다.
6세에 라틴어를 배웠고
13세에 예일대학 입학시는 성경을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능통하게 읽었다.
18세에 예일대학과 대학원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
20세에 예일 대학 교수가 되었다.
23세에 목사안수. 24년간 노스햄프튼 교회 섬겼다.
48세에 인디언 선교사로 자신을 헌신했고
55세에 프린스턴 大學 총장에 임명되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위대한 철학자, 사상가, 논리학자, 작가, 위대한 청교도 목회자, 명설교가, 복음전도자, 위대한 천재였다.
그의 설교를 통해 5만명 이상이 복음을 영접했고
150개 이상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경건과 섬김의 현장교육 속에 성장했다.
1727.7.28. 사라 피어폰드와 결혼해서
30년간 결혼생활에 또 11名의 자녀를 낳았다.
아내를 특별히 사랑했다.
아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모든 일을 관두고 우선했다.
아내와 함께 날마다 1시간 이상 기도했다.
모든 일을 아내와 함께 했다.
자녀들의 영혼과 신앙 성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미국 최고의 명문 가문이 되었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을 연구하는 ‘조나단 연구센터’가 세워지기도 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내 '조나단 연구센터'가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열 살 이전부터 자신의 신앙과 영혼의 구원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하루에 다섯 번씩 개인적 기도 시간을 가졌고, 친구들과 오두막을 만들어 기도와 말씀 읽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한때 신앙의 회의를 느낀 시기도 있었다.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갑자기 신앙에 회의를 느껴 믿음은 식고 영혼도 메말라 삶의 기쁨도 사라졌다.
성경 읽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그의 모든 관심이 세상으로 향하게 되었고 세상적인 가치관과 성공, 명예, 인기들이 그의 관심을 끈 것이다.
세상에 대한 목마름, 갈증, 방황이 심화되다가 그러다 늑막옆으로 죽음직전까지 갔다. 그 순간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질까 불안에 떨기도 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다시 성경을 펼치게 되었고
성경을 읽는 중에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를 변화시킨 말씀은 딤전 1:17절,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을 읽는중에 하나님의 강한 임재를 경험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그 이후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드리기로 결단하며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나 자신은 아무런 권리도 없는 사람처럼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전부이십니다 하나님께만 나의 행복이 있습니다.”
이런 고백을 한 에드워즈는 70가지의 결심을 했고, 죽을때까지 변함없이 지키며 살았다.
내용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을 철저히 아는 일에 전심전력 힘썻고
교리와 변론서적을 통해서 더욱 확신을 가졌다.
믿음과 신앙을 위해 다른 책들도 열심히 읽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면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말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해서 염려하지 말라”(마 6:31.34)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나라를 구하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는 목회시 12시간이상 매일 성경을 연구했고 그의 설교는 2시간 이상 지속되기도 했다. 그는 고함치며 설교하지 않았고 조용한 어투로 말씀 중심의 설교를 했다.
1734년 어느 겨울날 그의 교구에서 300명이 회심하는 사건이 있었고, 노스햄트른 주민 전체가 회심하는 놀라운 사건도 있었다.
이 부흥운동은 뉴햄프스 주의 여러 마을 시골까지 확산되었다. 이같은 미국의 기독교 부흥운동이 5년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이 미국의 ‘대각성운동’의 시발점이었다. 5만명 이상이 회심했다.
1758년 뉴리지 대학(지금의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직에 취임했다.
취임 5주년에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후손들 1400여명은 여전히 에드워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라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14명의 대학총장(학장)
100명 이상의 목회자(신학자, 선교사)
100명 이상의 법관과 판사
60명 이상의 의사
70명 이상의 작가와 언론인
65명의 교수
3명의 상원의원
1명의 부통령
25명의 군고급 간부가 각각 배출되었다.
한 사람의 성경사랑이 그의 가문을 변화 시켰고 미국의 각성과 대부흥을 일으켰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5~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