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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36) 넘치는 혈기가 부른 손책의 죽음 <하편>
손책이 우길 노인을 보고 꾸짖는다.
"너 같은 미친놈이 감히 어디라고 사도(邪道:속임수)로써 민심을 현혹하느냐!"
그러자 우길 노인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한다.
"빈도(貧道)가 세인의 행복을 도와 주려고 애쓰는 것이 무엇이 나쁘오? 내가 백성들을 도와주기는 했을지언정, 그들을 해치려한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민심을 현혹하였다고 하시오?"
"아가리 닥쳐라! 네가 남의 것을 취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먹고 살았으며 어떻게 입고 살았단 말이냐? ... 누구, 저놈의 목을 벨 자가 없느냐?"
손책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우길 노인의 목을 베려고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장소가 한걸음 나서며 간한다.
"저 어른은 강동에서 살아오기를 수십 년에 아무런 죄도 범한 일이 없으신데, 이제 저 어른을 참하오면
민심이 크게 요동칠 것이옵니다."
"무어라? 저런 요인(妖人)을 죽이기로 개새끼 하나 죽이는 것만도 못한데 뭐가 두렵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 손으로 죽일 테니, 오늘은 옥에 가두어라!"
연석에서 이런 소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모두들 흥이 깨져버려, 원소의 사자도 역관(驛館)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손책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아들을 후당으로 불러 말한다.
"내 듣건데. 네가 우길 선인을 옥에 가두었다고 하는구나. 그 사람은 백성들의 병을 많이 고쳐주어 누구에게나 경앙(敬仰)을 받고 있는 터이니, 그 어른을 해쳐서는 안 된다."
손책이 대답한다.
"그놈이 요술로 민심을 현혹하는데, 어찌 그런 놈을 없애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어리석은 자들의 우매한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제가 좋도록 처리하겠습니다."
손책은 부중으로 나오자, 곧 우길 노인을 끌어내오라고 명하였다.
그런데, 우길 노인이 끌려나오는 것을 보니, 그는 칼을 쓰고 있지 않았다.
옥리들이 그를 존경하는 까닭에 칼을 씌우지 않았던 것이다.
손책은 크게 화를 내며 전옥(典獄)의 목을 베어버리고,옥리(獄吏)들은 모두 곤장을 쳐서 크게 벌하고
우길 노인은 칼을 씌워 다시 옥에 가두게 하였다.
그러자, 장소이하 수십 명의 중요 수하들이 우길 노인을 구출하고자 손책에게 진정서를 올렸다.
손책은 진정서를 보고 그들을 불러 크게 꾸짖는다.
"그대들은 사서(史書)를 읽었을 터인데 역사의 교훈도 모르는가?
그 옛날 장진(張津)이란 사람은 교주 태수(交州 太守)로 있으면서 한조(漢朝)의 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항상 사교(邪敎)만을 믿어, 매양 붉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거문고나 타면서 분향(焚香)이나 올리는 것을 주된 일로 삼았다.
그러면서 군사를 일으키면 무슨 묘술이나 있는 것처럼 떠들어 댔기에 일시는 도사(道士)라는 추앙까지 받아왔다.
나중에는 남방 이족(夷族)들이 쳐들어 오는 바람에 어이없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또 비근한 예로서, 백성들을 현혹시킨 장각의 황건적 난동이 진압된 것도 불과 수 년전의 일이 아니던가?
요컨데 전국이 요동칠 때에는 우길이나 장각과 같은 족속이 백성들을 현혹시키가 십상이므로, 만백성의 평안과 국가의 해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자는 마땅히 죽여 없애야 한다!"
손책의 결심은 확고부동하였다.
그리하여 아무도 감히 손책의 뜻을 거스리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여범(呂範)이 분연히 나서며 말한다.
"그러면 우길 노인의 도력(道力)을 한번 시험해 보고 난 뒤 죽이면 어떻겠습니까? 그 어른은 기풍도우(祈風禱雨:비와 바람을 부름)하는 법을 안다 하옵는데, 지금 날이 몹시 가무오니 그에게 비를 빌라하시어 정말 비가 오거든 용서하도록 해 주시옵소서."
"음!....그렇다면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하자."
손책은 즉시 우길 노인을 불러내어, 비를 오게 하라고 명하였다.
거리의 광장에서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낼 제단을 쌓고, 소를 잡고 말을 잡아 제물을 마련하고 우길 노인이 제단 앞에 경건히 나섰다.
이 광경을 구경하려고 모여든 사람이 여러 천 명이 넘었다.
우길 노인은 그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내가 감우(甘雨)를 빌어 만백성을 구하더라도, 필경 나의 죽음만은 면하지 못할 것이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그를 동정하며 말한다.
"만약 비만 오게 하시면 주공께서 반드시 잘못을 뉘우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길 노인은 고개를 흔든다.
"이미 죽음에 직면한 나의 명수(命數)는 피할 도리가 없음을 어떡하오."
이때 손책이 제단 앞에 나타나며 명을 내린다.
"만일 오시(午時:11시 ~ 13시)까지 비를 못 내리게 하면 이 자를 제단 앞에서 불태워 죽이라."
우길 노인은 아무 말도 못 들은 사람처럼 눈을 무겁게 감고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두 손을 뻣고 입으론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노인의 치렁치렁한 백설같은 머리 위에는 햇볕이 뜨겁게 내리쪼이고 있었다.
제단 위에 향로에서는 연기가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시간은 시시각각 흘러서 오시가 되어 늙은 관속이 종루(鐘樓)에 올라가 오시를 알리는 종을 때린다.
수천 군중들은 그 소리를 듣자 모두들 가슴을 졸였다.
"비를 내리게 한다구? 보라! 어디 비가 오느냐? 그러니, 도사니 신선이니 하는 소리가 모두 멀쩡한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이냐!? 다시는 아무 말 말고 저 늙은이를 불살라 죽이라!"
손책이 성루(城樓)에서 제단을 굽어보며 명을 내렸다.
형리들이 제단 앞으로 몰려와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린다.
그리고 우길 노인을 그 위에 올라서게 하고 불을 지른다.
불길이 일어나자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였다. 불은 붉은 혀를 널름거리며 점점 거세게 타올랐고, 검은 연기는 사방으로 퍼져 하늘을 덮었다.
우길 노인은 그래도 장작더미 위에 표연히 서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금 전까지도 햇볕이 쨍쨍하던 하늘에 별안간 검은 구름이 뒤덮기 시작하더니, 우길 노인의 몸에 불길이 닿을 무렵이 되자 난데없이 뇌성벽력이 때리며 비가 억수로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타오르던 불길이 억수로 퍼붓는 비에 젖어 순식간에 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도 비는 계속되어 삽시간에 개천이 메어질 정도로 물이 넘쳐 흘렀다.?
광장에 나와 있던 수천 관중들은 하늘의 조화에 깜짝 놀라며, 세차게 내리는 비를 피하느라고 아우성이 일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아니하고 억수로 퍼붓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두 손을 모아 하늘과 우길 노인을 향해 계속하여 연실 허리를 굽혔다.
그로부터 잠시후의 일이었다.
비에 젖으며 장작더미 위에 서 있던 우길 노인이 하늘을 향해 뭐라고 큰 소리를 외치자, 방금 전까지 사납게 퍼붓던 비가 신기하게도 금방 그쳐버리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또 다시 햇빛이 비친다.
이에 군중들은 크게 감탄하는 소리를 지르며, 제각기 우길 노인이 올라서 있는 장작더미 앞으로 달려와 경건한 배례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합장 배례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모르고 젖은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 사람은 남녀,노소, 관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었다.
손책은 그 모양을 보고 더욱 불같이 화를 냈다.
"비가 오고 날이 개는 것은 대자연의 필연적인 현상일 뿐, 요술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요사스런 늙은이가 공교롭게도 때를 만나 비가 내렸다 하기로 뭐가 대단하단 말이냐! 요사스런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놈은 반역자와 다름이 없을진대 저런 늙은이는 마땅히 죽여야 한다! "
손책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보검을 뽑아들고 우길 노인을 죽여 없애라는 추상같은 명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도 그 명을 거행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손책은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쓸개빠진 것들아! 저 늙은이를 네놈들이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죽여버리마!"
손책은 이렇게 외침과 동시에 장작더미 위로 번개같이 뛰어 올라가 우길 노인의 목을 후려갈겼다.
마침내 우길 노인은 손책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야 말았다.
만조 백관과 수천 군중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 가운데 가슴이 서늘해 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이날 밤의 일이었다.
한밤중에 난데없는 비바람이 눈을 뜰 수 없도록 시작되더니 밤새껏 계속되었다.
날이 밝아올 무렵에 비바람이 그치자, 시체를 지키던 군사가 제단 앞 장작더미 위에 그대로 내버려 둔 우길 노인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그 사실을 손책에게 급히 보고하였다.
"이 얼빠진 자식아! 시체가 도망을 가다니, 말이 되는 소리냐!"
손책이 화를 내며 그 군사를 죽여 버리려는데 홀연 어디선가 난데없는 사람 하나가 가까이 다가온다.
손책이 불현듯 눈을 들어 쳐다보니, 그는 다른 사람 아닌 우길 노인이 아닌가?
손책은 크게 놀라며, 시체를 지키던 군사를 베려고 꺼낸 칼로 우길 노인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검을 휘두를 새도 없이 손책은 검을 쥔 채로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숙직을 하던 군사들이 급히 달려와 그를 안으로 들여다 눕히고 의원을 불러 응급치료를 하게 하였다.
손책은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야 간신히 깨어났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광채가 없었다.
"이 요술쟁이 같은 늙은이가 어디로 갔다는 말이냐!"
그는 깨어난 뒤에 시도 때도 없이 얼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일쑤였다.
늙은 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고 한숨으로 탄식한다.
"네가 거룩하신 신선을 죽이더니 기어코 이런 화를 당하는구나! 이제부터라도 목욕재계하고 제단으로 나아가 참회의 기도를 올려라!"
그러자 손책은 냉소를 하며 고개를 흔든다.
"어머니! 제가 어려서부터 부친을 따라다니며 싸움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으나 화를 입은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제 백성들을 현혹하는 그 요사스러운 늙은이를 죽여 나라의 화근을 없앴는데, 화를 입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노모는 아들 손책의 무모함을 나무라며 말했다.
"우길 노인은 보통 요술쟁이가 아니고 틀림없는 신선이시다. 네가 무사하려면 아무래도 기도를 드려야 한다."
"나는 이곳 오나라의 절대 군주입니다. 나를 해칠 자가 누구라고 기도를 드린단 말입니까?"
손책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아니하므로, 노모는 할 수없이 자신이 아들을 대신하여 그날부터 칠일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도의 효과는 아무것도 없어서, 손책의 방에는 밤만 깊으면 음풍(陰風)이 일면서, 나중에는 우길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보이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마다 손책은 머리맡에 검을 뽑아들고 발광하는 소리를 지르고 죽이려 하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이같이 괴상한 일이 밤마다 계속되는 바람에, 손책은 나날이 수척해 가고 있었다.
노모가 아들의 병석에 다가와 앉으며 다시금 애원한다.
"책아! 내가 너를 위해 제(齊)를 올리도록 준비했으니, 네가 옥청관(玉淸館)에 나가 부처님께 한번만이라도 참배를 해다오. 네가 한번만이라도 진심으로 참배한다면 다시는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니..."
"아버님의 제삿날도 아닌데, 내가 무슨 일로 부처께 참배를 합니까?"
"이 늙은 에미의 부탁을 그렇게나 매정하게 거절한단 말이냐? 나를 에미로 안다면 제발 한번만 다녀와 다오."
이렇게 늙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애걸하는 바람에 손책은 마지 못해 며칠 후에 가마를 타고 옥청관에 나갔다.
옥청관 관장(館長)이 손책을 친히 맞아, 부처님께 분향 재배하기를 청한다.
손책이 분향만 하고 재배를 아니하니, 향로에서 타오르던 연기가 공중으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한 덩어리로 뭉치더니 그 연기 위에 우길 노인이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이 우련히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손책이 기겁하고 놀라며 검을 뽑아 던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수행원 하나가 검에 찔려 고꾸라졌을 뿐, 우길 노인은 여전히 연기 위에 초연히 앉아 있었다.
이에 손책이 비명을 울리며 전각을 뛰쳐나오려니까, 이번에는 우길 노인이 전문(殿門)앞에 우뚝 버티고 서서 눈을 부릅떠 보인다.
손책은 기가질려서 좌우를 돌아보며 외쳤다.
"저 요귀(妖鬼)가 너희들은 보이지도 않느냐! 어서 저 요귀를 죽여라!"
그러나 요귀를 보았다는 부하도 없고, 모두가 자신의 주공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고개만을 갸웃할 뿐이었다.
"이놈들아! 저 요귀가 보이지 않는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손책은 혼자 그렇게 외치며 다시 검을 뽑아 던지니, 애매한 부하 하나가 그 검에 찔려 고꾸라질 뿐이었다.
부하들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손책의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은 며칠 전에 우길 노인을 불태워 죽이려고 장작더미에 불을 질렀던 사람이었다.
"이 옥청관이라는 전각은 도깨비집이다! 이런 전각은 당장 헐어버려야 한다!"
손책은 오백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옥청관을 당장 헐어버리게 하였다.
인부들이 지붕위에 올라가 옥청관의 기와를 들어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손책의 눈에는 지붕위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손책을 노려보는 우길 노인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 보였다.
"저놈이 또 저기에 있구나! 여봐라! 숫제 옥청관 전각을 불로 태워 버려라!"
인부들이 옥청관에 불을 질러 화염이 하늘로 치솟는데, 그 화광 속에도 우길 노인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손책은 견디다 못해 도망이라도 치듯이 부중으로 허겁지겁 돌아왔다.
그는 부중으로 돌아와서도 우길 노인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떠올라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이제는 손책의 거동이 자기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밤만 되면 우길 노인의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보여서 손책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밤마다 사방에 불을 밝히고 군사 오백 명을 풀어 부중을 엄중히 지키게 하라!"
손책은 하도 불안해서 그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제아무리 불빛을 대낮같이 밝게 하고 군사로써 부중을 지키게 하여도 우길 노인의 모습은 밤마다 허공에 떠올라 보였다.
손책은 그때마다 괴상한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손책은 어느날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초최해진 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이렇게도 야위었단 말인가?"
손책은 이렇게 한탄하며 다시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별안간,
"으악!"
하고 비단폭을 찢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손책을 노려보는 우길 노인의 모습이 거울 속에서도 나타나 보였디 때문이었다.
대신들이 크게 놀라 화타의 제자를 급히 불러왔다.
그러나 이제는 손책의 상처가 모두 덧나, 명의의 힘으로도 그의 몸을 더이상 고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나도 죽음을 면할 수가 없겠다!"
손책도 자신의 명수(命數)가 다 됬음을 깨닫고 한탄해 마지 않으며, 장소를 비롯한 측근들과 아우 손권(孫權)을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이때, 나는 삼강(三江)의 험요(險要)를 차지하여 능히 대사(大事)를 도모할 만 하더니, 이것도 천운인지 대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게 되었소. 그대들은 나의 사후에 부디 권(權)이를 잘 도와, 나의 유업을 완성시켜 주시오."
손책은 인수(印綬)를 가져오라 하여, 아우 손권에게 내주며,
"권아! 내가 너에게 이르니, 군사를 일으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사를 이끄는 데는 네가 나만 못하다. 그러나 어진 일을 하여 나라를 잘 보존하는 점에 있어서는 내가 감히 너를 따르지는 못하리라. 그러므로 너는 부디 돌아가신 부친이 창업하시던 때의 간난을 항상 염두에 두고 스스로 도모하는 바가 있게 하라!"
이렇듯 간곡히 뒷일을 부탁하니, 손권은 눈물을 흘리면서 인수를 받는다.
손권이 다시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말한다.
"어머님! 이 불효한 자식은 더는 살지 못하겠기에, 인수를 아우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하시듯이 아우에게도 조석으로 훈계 해주셔서, 부친과 제가 쓰던 사람들에게 소홀함이 없도록 편달해 주소서."
어머니가 울면서 말한다.
"네 아우가 어려서 어찌 큰 일을 감당하겠냐, 그러니 어서 네가 일어나야지...."
"그것은 어머니께서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권(權)이는 저보다도 열 배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린 탓으로 경험이 적어, 앞으로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거든, 내사(內事)는 장소에게 묻게 하시고, 외사(外事)는 주유(周瑜)에게 물어보게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 아우들을 불러 놓고,
"너희들은 이제부터 권이를 우리집의 어른으로 알고, 어머님의 지시를 순종하며 화목하게 살아가거라. 가명(家名)을 더럽히거나 형제간의 의리를 배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지하에서도 용서치 아니하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내 교(喬)부인에게 당부한다.
"여보! 당신과 백년해로를 못하고 죽게 되어 정말 미안하오. 당신은 부디 어머니께 내가 다 못한 효도까지 하면서 일가친척을 잘 거느려 주기 바라오. 그리고 일간 처제가 오거든 동서(同壻)인 주유(周瑜)에게 내 아우를 잘 받들어서 큰일을 도모하라고 내가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주오."
손책은 골고루 돌아가며 유언을 남기더니, 마침내 눈을 감고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이때 손책의 나이는 한참 혈기에 넘치는 스물여섯이었고, 인수를 물려 받아 오(吳)나라의 새로운 주인공이 된 손권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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