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섬의 텐트 휴가
글/김덕길
1943년 청평댐이 생기면서 물이 빠지고 그 곳에 섬이 생겼다.
보통은 섬 이름을 지을 때 섬의 모양을 보고 짓는다. 뱀 모양의 사량도가 그렇고 여우처럼 생긴 섬 호도가 그렇다.
자라섬은 당연히 자라처럼 생긴 섬이려니 했는데, 사실은 자라모양의 언덕에서 바라보이는 섬이란다. 남이섬에서 800m밖에 떨어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은 남이섬만 기억한다.
나 역시 남이섬은 자주 갔지만 자라섬은 처음이다.
어느 날, 아파트 재활용 코너에 텐트 가방이 버려져있다. 경비원에게 묻는다.
“이 물건 가져가도 될까요?”
“주인이 쓰지 않는다고 하니 가져가세요.”
오토바이 세계 일주를 할 때다. 모로코를 여행할 때 신세를 진 집이 있었다. 창문도 없는 낡은 방이었지만, 텐트를 치고 밖에서 자기엔 신변의 위협을 느껴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 집에서 신세를 졌다. 여행을 마칠 때 나는 텐트를 그에게 선물했다.
텐트가 없어 아쉽던 차에 텐트가 생겼으니 새로 산 텐트는 아니지만 기분이 좋다.
아내에게 말한다.
“텐트도 생겼는데 우리 휴가 갑시다.”
“며칠요?”1박 2일“
“아니 남들은 다 펜션이다 콘도다 그렇게들 가는데 무슨 텐트를 치고 자요? 우리가 젊은 애들도 아니고.....”
“텐트가 생겼는데 왜 쓸데없이 돈을 낭비해? 텐트를 치고 자야 젊을 때 텐트치고 자던 추억도 떠올리고 기분이 좋잖아. 하하.”
아내의 표정이 시큰둥하다. 준비해야 할 품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나는 일주일 동안 캠핑장을 검색한다. 이미 휴양림은 한 달 전에 예약이 종료된 곳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기에는 휴가가 너무 짧다.
용문산 휴양림 캠핑장을 예약했는데 차에서 멀어 리어카에 짐을 싣고 언덕을 올라야 한다고 해서 포기한다. 한참 검색하다가 드디어 자라섬 캠핑장을 발견한다.
카라반 숙박은 4인실 12만원, 카라반 사이트는 25,000원, 일반 사이트는 15,000원이다. 우리는 일반 사이트를 예약한다. 대부분 캠핑장은 일반 사이트 3만 원을 받는데 이곳은 싼 편이다. 평상만 있고 전기는 제외란다.
토요일이라 차가 밀려 우리는 세시간만에 자라섬에 도착한다.
평상에 텐트를 친다. 전 텐트 주인이 두 번 정도 텐트를 친 듯하다. 거의 새것 같다.
바로 옆에는 두 가족이 같이 휴가를 와서 대형 텐트를 치고 논다.
대부분 텐트는 널따란 그늘 막을 치고 갖가지 캠핑 용품을 자랑하듯 펼쳐놓는다.
우리의 텐트는 그에 비하면 소박하다. 그러나 초라하지는 않다. 초라함은 내가 정말 살기 힘들어 돈이 없을 때 초라한 것이지 일부러 옛 텐트의 추억을 생각하며 캠핑을 하는 것이니 초라함과는 무관하다.
사실 휴가 때 캠핑을 해도 이런 캠핑장은 이용한 적이 없다. 땡볕에 텐트를 쳐야 하기 때문에 조용한 계곡을 선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젊은 분위기도 느껴보고 싶었고 다른 분들의 사는 모습이랑 그들의 캠핑 모습도 보고 싶었다.
인근 마트에는 손님이 물밀 듯 들어온다.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막상 캠핑장에 와 보니 젊은이들은 많지 않고 어린아이들을 둔 가족들이 대부분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젊은이들은 펜션을 이용한단다. 먹고 마시고 씻기엔 펜션이 최고라 그렇다고 대학생인 아들이 말해준다.
우리가 젊을 때는 텐트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했고 즐겁고 신났는데 이제는 세상이 너무 변했다.
삼겹살을 굽고 밥을 짓고 참치찌개를 끓이고 맥주 한잔을 마신다. 샤워실의 물은 시원하다 못해 차갑다. 멀리 지하철이 고가위로 지나간다. 구름에 숨은 태양은 가끔 얼굴을 드러낼 뿐 강렬한 빛을 뿜어내지 않아 좋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나선다.
포도터널이 인상적이다. 터널에 포도나무를 식재해서 터널 안이 포도 넝쿨로 가득 찬다.
널찍한 다목적 운동장은 잔디가 깔려 녹색으로 눈이 시원하다. 카라반 캠프촌은 매우 넓다. 삼삼오오 모여 맛있는 요리와 함께 즐거운 휴가를 보내는 이웃들의 모습은 한가롭고 정겹다.
수상건물이 있는 곳은 밤이 되자 네온으로 휘황찬란하다. 게임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호프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보트도 탈 수 있고 근처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다.
어두운 포도나무 터널 안에서 토끼를 만났는데 도망가지 않는다. 그냥 사진만 찍고 걷는다.
아내는 꼭 봐야할 드라마가 있다며 차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포도를 씻어 먹으며 밤 깊은 자라 섬에서의 휴식을 취한다. 바닥이 딱딱해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 사실은 비를 기다렸다. 텐트에 두둑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그리웠다.
이튿날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한다. 자라섬의 구석구석 까지 뛰다가 걷는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은 강물에 수초가 넘실거린다. 이른 아침인데 노점의 커피 트럭은 벌써 장사 준비를 한다. 빨리 밥 먹고 텐트를 걷어서 다른 곳에 구경을 가자고 했더니 아내가 그러려면 뭐 하러 이 많은 짐을 다 싸 들고 와서 텐트를 쳤냐고 핀잔을 준다.
휴가는 말 그대로 휴식인데, 나는 왜 멍 하니 쉬는 시간이 아까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름 즐거운 휴가다. 어쩌면 아내와 함께하는 텐트 휴가는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마음은 지금 자꾸 캠핑카로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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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워온 텐트. 예쁘지? 6인용 버팔로텐트.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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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친 텐트 보면 불안해 보이지만 즐겁다. 재미있는 구상이잖아. 슬슬 캠핑카가 생각나네.
차에 숙박 시설을 갖추고 평소엔 자가용으로 다니고 좋은 곳에서 멈추고 자고 먹고 놀고 현대판 김삿갓은 캠핑카로 다님 좋을 거야
오토바이로 말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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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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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으면 배도 타고 수영도 하고 즐기거리는 많은데 밤에 가서 난 구경만 하고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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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다 예쁘더라. 이 근방에 영화 아이리스 찍은 건물이 있는데 난 건성으로 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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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 캠핑장은 넓어서 좋아. 차가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어서 좋고. 아마 예약이 가능할거야 어린 아이들 데리고 오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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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펠 세트가 다 있는 줄 알고 그냥 왔다가 밥그릇 국그릇 없어서 ㅎㅎ 그래도 넘 맛있더라. 삼겹살 내가 굽고 찌개와 밥은 아내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