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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려대학교역우회 원문보기 글쓴이: 권영관
젊은 시절 사업 좀 해 보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이 나라 저 나라 무척 돌아다녔으나 정작 유럽은 처음이라 내심 긴장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카타르 항공에 몸을 실었다. 더욱이 제대로 된 패키지여행은 사실상 처음인지라 약간의 긴장감도 거짓은 아닐 터.
명색이 7순을 기념하여 여행경비 전액을 부담한 아들 녀석의 기특한 마음을 즐기는 심정도 전혀 기분 나쁜 마음일 수는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 나이에(?) 10박 12일의 패키지여행이 생각처럼 쉬울 것이란 생각은 처음부터 안 했지만 막상 해 보니 버스이동이 하루에 5-6시간은 예사이고 도보로 하는 관광도 3-4시간은 보통이라 나름 체력을 은근히 자신했던 나도 좀 힘들었다. 게다가 떠나기 직전에 불쑥 불청객으로 찾아 온 후두염은 여행 전 후 나를 무척 힘들게 만들었다. 사실 아침 5시-6시 기상에 7시 8시면 버스이동이 시작되는 일정이라 말은 안했지만 강행군에 대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다른 일행이 있어 성질을 꾹꾹 참고 생글생글 미소를 짓는 것도 힘든 일 중 하나였다.
각설하고 일정에 대한 나름의 느낌을 정리 해 보기로 한다.
날로 쇠퇴해 가는 기억력을 보완한다는 의미를 보태면 괜찮을 듯싶다.
제1일 (2014년 9월 7일) 독일 뮌헨공항에서 체코로
9월7일 01시20분 비행기라 전날 밤 22시20분까지 인천공항으로 모이란다.
10분전쯤 도착하니 우리(집사람 포함)가 꼴찌다. 일행은 모두 10명으로 조촐하다. 나이를 보니 나보다 5-6살 쯤 더 먹어 보이는 사람 내외와 10년쯤 어려 보이는 3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던 사람이 45년생이란다. 생일이 10월이라 내가 4달 형이 되어 제일 연장자가 되어 버렸다. 나머지는 금년 환갑이란다. 젊은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카타르 도하경유 독일뮌헨 도착이라 도하에서 2시간 50분 쯤 기다렸다가 환승하는 항공편이었다. 덕분에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알아주는 도하공항을 구경하는 가외의 소득도 누렸다. 중동의 금융 중심지이며 경유 하는 비행기가 많기로도 손꼽힌다는 도하공항 아닌가!
도하 현지시간 05시25분 도착하니 우리시간으로 11시25분 시차가 6시간이다. 그 곳에서 08시15분 출발하여13시25분 뮌헨 도착이라니 도하와는 또 한 시간 시차 우리와는 7시간의 간격이 생긴 셈이다. 서울이면 밤중인데 여기는 한낮이다. 뮌헨 도착 후부터는 본격적인 버스이동의 시작이다.
< 도하 공항에 전시된 고급차 옆에서 (모델은 나의 내자) >
뮌헨에서 출입국 수속마치고 체코에서 맥주로 유명하다는 플젠(Plsen)으로 옮겨 저녁 식사 후 호텔 체크 인 했는데 와! 음식이 엄청 짜다. 얘기인 즉슨 옛날에는 소금이 귀해 금보다 값이 더 나갔는데 부를 과시하기 위해 소금을 많이 쓴 것이 그 유래란다. 한적한 시골이다. 우리 모텔정도 같은데 명색은 3성 호텔이다. 잠자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으나 침대가 너무 좁다.
이동시간은 약 3시간 인데 가는 도중에 본 독일의 농촌이 너무 부럽다. 여행기간 내내 가져 본 느낌이지만 거의 구릉지대로 되어 있어 농지로 활용할 땅이 너무 넓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중국의 산동반도를 본 느낌과는 아주 달랐다. 또 하나 국경이라기에는 너무 싱거운 국경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독일과 체코의 눈에 보이는 농가풍경은 왜 이리 다를까?
< 독일 농촌의 원경 이런 구릉지대가 계속된다. >
국부랄까 국력이 농촌의 풍경을 이렇게 다르게 보여준다는 사실에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 어릴 때의 모습이 오버 랩된다.
< 체코에서 먹은 음식 (감자로 만들었다) >
제2일 (9월8일) 체코에서 하루
호텔에서 조식 후 맥주공장으로 견학을 갔는데 원래 이곳의 맥주가 그 유명한 미국의 Budweiser란 상표로 맥주가 생산되는 곳이란다. 지금도 같은 이름의 맥주도 판매중이라 미국에서 상표를 도용한 셈인데 소송전도 있었으나 서로 양보하여 잘 해결되었다고 한다. 후두염 약을 먹는 처지라 조금 맛만 본 정도로 마셔 보았는데 유럽에서 제일이라는 평에 손색이 없는 맛이었다. 상품명은 Pilsner Urquell 뒷말은 영어로 Original이란다. 나중에 다른 도시에서 보니 다른 맥주의 거의 두 배 정도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이 곳 맥주공장 방문을 마치고 다음으로 체코의 유명한 휴양지 가운데 한 곳인 온천도시 까를로비 바리로 이동(약2시간 소요)하여 그 곳에서 제일 크다는 호텔 식당에서 점심 식사한 후 시내 자유 관광. 온천수도 마시고 아름다운 도시 곳곳을 유유자적 거닐며 자유 관광을 만끽. 드보르 작 동상 앞에서 사진 한 장 찰칵도 하고. 바리라는 말은 체코어로 온천이라는 뜻이란다. 불과 얼마 안 되는 독일과 체코간의 거리인데 도로며 집모양이 차이가 난다. 이것이 부자나라와의 차이인가 싶다. 체코도 제법 잘 사는 나라인데도.
< 맥주공장 정문 앞에서 >
< 까를로비 바리 시내 모습 >
< 드보르 작 동상앞에서 >
다음 행선지인 파리 로마와 함께 유럽 3대 관광도시라는 프라하로 이동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경상도 말로 억수로 퍼 붓는기라. 시내관광을 위해 걷는데 옷이 다 젖고 신발에도 물이들어 와 양말도 젖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내관광을 강행했다. 비가 오는 데도 시내에는 관광객이 넘쳐 난다. 노천카페는 노가 난다. 우리는 가지고 간 우산을 받쳐
< 호텔에서 본 골프 연습장 >
들고 유명하다는 성당 광장 모두 돌아보고 세계3대 야경 중 하나라는 프라하 야경투어도 마쳤다. 다행히 도중에 비가 중간 중간 멈추어 투어에 큰 지장은 없었던 것 같다. 유명하다는 카를교, 바츨라프 광장, 틴 교회당 등 모두 보았으니까. 다음 날 또 본단다.
호텔은 4성이라는 Olympik Hotel, 저녁은 돼지고기에 감자요리인데 저녁먹기 전에 Shopping도 했다. 호텔 옆에 골프연습장이 있다.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곳이란다.
제3일 (9월9일) 체코
프라하의 두 번째 관광은 프라하 성부터 시작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삼성의 선전간판만 보인다. 그래서 이름도 삼성 로라고 한단다. 프라하 항공은 대한한공이 샀고 따라서 프라하공항의 주식도 일정지분을 대한항공이 보유했을 것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현존하는 중세양식의 성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 프라하성 안에는 커다란 비타 성당이 있었고 바로 옆에 대통령 집무건물과 연회장이 검소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우리 청와대와는 너무 다른 모습에 약간은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곳에서 대통령궁 경비원의 교대식도 보고 비타 성당의 장엄한 내부도 두루 돌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교대식을 보려고 운집한 관광객을 상대로 연주하는 악사들의 모습도 보았는 바 특히 대통령궁 정문에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 약간은 인상적이었다
프라하 성의 관광을 마친 후 우리는 비로 인해 어제 충분히 보지 못한 시가지 관광을 위해 자리를 옮겨 화약 성 및 저장고, 천문 시계, 시 청사 등을 두루 돌아보고 명품 상가 등에서 눈요기도 하고 아이 쇼핑도 하며 산책을 즐겼다.
특히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 타종을 보았는데 이를 보려고 기다리는 관광객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다x . 그 옆 광장에는 보헤미안들의 전통음악과 판토마임을 연기하는 사람등 각종 돈 벌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중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사람들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아직도 우리의 옛날 전차에 해당하는 트램이 유럽 여러 도시에 있었다. 우리도 탑승의 기회를 가져 보았다. 점심식사는 현지식이었는데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감자전 스테이크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 같다.
< 공중부양하는 모습(왼쪽) > < 거리의 악사 보헤미안들(오른쪽) >
오후에는 백탑의 도시 프라하 근교의 “높은 곳에 있는 성”이라는 의미를 가진 프라하 최초의 정착지며 리브세 공주의 설화가 있는 비셰흐라드의 성당(성 베드로와 바울성당)을 보고 드보르작, 스메타나, 무하, 네루다 등 체코가 자랑하는 유명인사들이 안치된 묘지등을 관광.
프라하에서 이틀을 보냈다.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로 도시전체가 관광객으로 붐비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서울과 비교하니 안타깝기도 했다.
프라하 관광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체코 제2의 도시 부르노로 이동하여 호텔에서 저녁 식사 후 휴식.
제4일(9월10일) 체코 및 폴란드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 유명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로 향했다. 현지어로는 오시비엥침이라는데 나치가 자기들 편하게 부른 이름이 아우슈비츠란다. 이 도시에서 점심을 먹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유태인들의 지옥과 같은 처형장이었던 수용소로 이동하였다. 우리가 본 시설은 전체의 극히 일부이며 이 곳을 관광 및 교육용으로 사용 중 이란다. 많은 관람객들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에 치를 떨고 있었으나 왜놈들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올 수가 없겠지. 자신들이 저지른 우리 민족에게 가했던 만행을 이 곳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까.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아니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보며 우리의 독립기념관과 서대문 형무소 나아가 제암리 교회 등을 떠 올린 것은 바단 나만이 아니었던 듯 설명하는 가이드와 우리 일행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 졌다.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곳들도 보고 가스 처형실 바로 옆에 있는 장교숙소도 보았다. 정신이상자들이 아니었다면 가스 살포 후 20분가량 지나야 죽는다는데 그 비명소리에 잠이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라 없는 사람들의 슬픈 역사를 그냥 외면하기 힘들었다. 이런 고통을 겪었던 유태인들이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하는 짓들을 보면 참 자기들이 겪었던 일들에 전혀 느낌이 없는 인간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자들에 연간 5천만불을 배상금으로 지불하고 있다는 독일을 보면 힘 있는 자들이 펼치는 국제정치의 한 단면을 유태인의 예가 극명히 보여 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반면에 일본이 보여주는 작태는 너무 대조적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국제정치는 힘이 첫째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 아우슈비츠 입구 (왼쪽) > < 관리동 겸 장교숙소 (오른쪽) >
이후 폴란드 제2의 도시이며 학문과 대학의 도시라는 크라코프(영어 발음은 크라카우란다)관광을 하였다. 전원도시라 해도 좋을 정도로 온통 숲속에 파묻혀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다른 도시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주택가에도 참 숲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인구밀도가 우리의 4분의 1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평지가 많은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곳에서는 중앙광장과 중앙시장을 돌아보았는데 이 곳이 원산지라는 보드카를 골목상가 이곳저곳 샅샅이 뒤져 한 병 샀다. 이곳 사람들은 비싸서 잘 안 마신다는데 값이 아주 비싸지는 않았다. 자작나무 문양이 무척 마음에 든다. 다른 의견도 있지만 냉동고에 보관하는 것이 좋은 보관법이라 배웠다. 더 고급이라는 쇼팽은 보통 가게에서는 살 수가 없단다.
바벨 성을 외관만 보았는데 바벨탑과 혼동한 나의 무식이 들어나고 말았다. 여기서는 다뉴브강을 이용한 조운이 무척 발달되었다는데 내륙에 있는 SK 케미칼의 화물은 이 강을 이용해 운송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바벨성 근처인 이 곳에는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였다는 집이 있어 그 집 앞에서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 도시에는 우리 교민이 27명 살고 있단다. 대학도시답게 인구의 3분지 일이 상주인구가 아니라고 한다.
제5일(9월11일) 폴란드 및 항가리
다음은 유네스코 자연 및 문화유산인 폴란드의 그 유명한 소금광산 투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세계 12대 관광지라는 소금광산이 있는 비엘리츠카로 이동하였다. 엄청난 인파를 예상하여 아침 일찍 서둘렀으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기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현물로 급여를 지급했고 세습광부도 인정해 주었다니 당시로서는 파격적 대우였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자신들의 종교의식을 위하여 광부들이 직접 조각한 조각상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인물들 조각상도 있었다. 인력으로는 1.5톤에 달하는 암염조각을 운반하기가 어려우니 말의 힘을 빌렸는데 말들은 보통 광산 내에서 태어 나 일생을 마친다고 한다. 도르레 역할도 하고 엘리베이터역할까지 많은 역할을 도맡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가장 돋보인 것은 엄청난 크기의 예배당이었다. 불과 세 명이 한 일이라니 믿어지지 않는 대단한 역사였다. 여기에는 고 요한 바오로2세의 조각상도 있었는데 이 작품은 또 다른 한 사람이 한 일인데 곧 이 사람의 부조상도 만들어 전시할 예정이란다. 여기서는 촬영 권을 구입한 사람만 사진촬영이 가능해 사진이 하나도 없다. 돈이 아까워 촬영 권을 안 샀으니까.
소금광산 투어를 마치고 슬로바키아를 거쳐서 다뉴브강의 진주 항가리의 부다페스트로 이동하였다. 먼 여정이라 슬로바키아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부다페스트로 버스이동한 후 야간 유람선을 타는 스케쥴이어서 삼개국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재미난 경험을 하였다. 아침밥은 호텔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슬로바키아의 반스카 비스테리카라는 곳에서 현지식으로 먹고 저녁은 부다페스트에서 해결하는 것이었다. 가장 기대되는 여정인 부다페스트 투어다
< 슬로바키아의 야외식당. 여기서 현지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
부다페스트에 오는 내내 추적추적 계속 비가 내리는 바람에 기대하던 다뉴브 야간 유람선투어가 무산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했으나 다행히 유람선 투어 중에는 보슬비 정도로 그쳐서 오히려 운치있는 여정이 되었다. 유람선 투어의 백미는 국회의사당과 왕성 그리고 어부의 요새 및 성 이슈테반 대성당 등에 비치는 환상적 조명을 감상하는 일이었다. 와인 한 잔을 곁들여 약 한 시간에 걸쳐 강의 상 하류를 왕복하는 동안에 다리를 비추는 빛과 건물등에 설치된 조명의 아름다움은 진짜로 너무 멋졌다. 그 중 압권은 국회의사당이었다. 의사당이 이토록 멋진 것은 국제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품을 7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성한 것뿐만 아니라 이 나라가 내각책임제인 탓에 더욱 각별히 신경을 쓴 결과가 아닌 가 추측해 본다. 흉물이라는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이 뇌리를 스쳤다. Hotel은 Holiday Inn으로 모처럼 4성 호텔에 묵었다.
< 헝가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국회의사당의 야경 >
제6일 (9월12일) 항가리에서 크로아티아로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제 야간 유람선관광에 그쳐서 미처 못 본 풍경을 감상하는 코스로 오늘의 관광을 시작하려는데 반갑지 않은 비는 계속 세차게 뿌리고 있다. 우선 부다(구 시가지)지역에 있는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 아름다운 시내를 조망하며 자유의 여신상을 관광 후 부다페스트 유일의 터널을 지나 부다왕궁으로 자리를 옮겼다. 왕실 성당인 마차시 교회를 본 다음 대통령궁으로 옮기는 도중 베토벤이 잠시 살았다는 장소를 지나 경비병의 싱거운 자리 옮김을 본 후 1804년(MDCCCVI)에 세웠다는 대통령 집무실을 구경하였다. 흥미로웠던 것은 대통령궁 안에서 와인 축제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궁 앞에서는 지금도 유물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예산부족으로 작업진도가 늦어지고 있다 한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세차니다리를 건너 성 이슈테판 대성당을 감상한 후 영웅광장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이 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이 번 여행 중 처음으로 한식당으로 가 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모처럼의 우리 음식이라 먹기는 먹었지만 너무 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내가 가장 가 보고픈 도시는 프라하와 더불어 부다페스트였는데 너무 짧은 기간에 주마간산 격으로 돌아보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으나 패키지여행인 걸 어쩌랴.
< 그 유명하다는 세차느 다리. 이렇게 비가 뿌렸다. >
이제부터 또 장거리 버스이동을 통해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가야만 한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제법 큰 호수가 있었는데 이름은 잊었지만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이 모여들 만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는 모처럼 맑은 날씨를 보이더니 자그레브에 도착하자 또 비가 추적거리기 시작한다. 오후 5시 반이나 되어 도착한 자그레브인데 성 마르코 교회를 돌아보는 도중 일행 중 한 명(나와 갑장)이 여권을 잃었다고 사색이 된다. 다행히 버스에 두고 내려 한숨을 돌렸으나 이 번 여행 중 있었던 가장 큰 해프닝이었다.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네오고딕 양식의 높이를 서로 달리하는 두 개의 화려한 첨탑을 비롯해 시장의 풍경을 즐기며 반 첼라치크 광장에서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발길을 돌려 자그레브 관광도 마쳤다.
제7일(9월13일)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의 첫 출발도 역시 버스여행이었다. 자그레브에서 물의 마을 라스토케와 유네스코 자연유산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하였는데 예년과 달리 비가 많이 와 갈 수 있을는지 가더라도 과연 관광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전언이다. 일단 가 보는 걸로 결론이 나 가기는 가는데 아직도 비가 오락가락 불안하기 짝이없다. 가는 도중 완전히 물에 잠긴 마을이 보이고 길도 일방통행으로 교차통행하고 여기저기 경찰과 의용소방대가 나와 다니고 관광하기가 민망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쩌랴 피해 입은 주민에게는 미안타만 비싼 돈 주고 온 길인데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가야지 않겠나? 평소 사방에서 내려오는 물길의 중간에 위치해 아름다운 마을로 유명해 져서 마을 입장료라는 특이한 제도까지 만들었다는 라스도케(Rastoke)는 어마어마한 물소리와 함께 물이 마을로 넘쳐 들어오려 하여 소방대가 모래주머니로 막느라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그렇거나 말거나 우리는 사진에는 알맞은 물 뿜는 모습을 열심히 사진기에 담아내기 바빴다. 물레방아도 있고 어쭙잖은 박물관이라는 것도 만들었지만 풍경 말고는 별 볼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를 생각하니 약간 시샘이 난다.
< 세찬 비로 인해 물에 에워싸인 라스토케 마을 >
< 크로아티아 국립공원인 플리트비체 호수에서 부부가 >
점심은 이 곳 특산이라는 송어구이로 때우고(사실 송어는 포획금지란다) 다음 목적지인 크로아티아 국립공원 중 으뜸이라는 플리트비체로 향했다. 원래의 호수 가까이로 난 길은 홍수로 인하여 못 가고 산중턱에 난 길로 돌았으나 호수와 폭포는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 공원은 수많은 폭포로 연결된 코츠약 호수등 16개 호수로 구성되었다는데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데 이곳저곳에서 뿜어내는 물줄기가 그냥 다 폭포다. 여기에서는 일본 관광객도 제법 볼 수 있었느데 얘들도(나이 지긋한 할마이들) 제법 시끄럽고 무례한 짓도 하기에 한 번 꾸짖었더니 쓰미마셍 하더라. 다음 행선지인 푸지네로 약 세 시간 거리의 버스 이동 끝에 호텔에 들었는데 이곳 호텔은 완전 전원풍으로 시설은 그저 그렇지만 베드도 제법 크고 깨끗하니 좋았다. 식사 후 마을을 잠시 거닐었는데 상쾌한 공기와 시골에 어울리지 않게 밤늦게 까지 쿵작거리는 밴드소리도 정겹게 느껴졌다.
제8일(9월14일)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로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로 넘어 가 카르스트동굴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포스토이나동굴을 보는 것을 슬로베니아의 첫 투어로 삼았는데 사람이 엄청 많다고 아침부터 서둘렀으나 10시쯤 도착해 보니 벌써 인파가 상당하다. 가는 도중 보이는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니 다음 여행은 이런 패키지가 아니라 자유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동그라미 문제가 있지만.
동굴구경은 꼬마열차를 타고 시작되는데 꼬마라고는 하지만 최대로 동시에 600명을 태울 수 있다니 이름이 좀 그렇다. 어쨌든 동굴 내부는 서늘했고 종유석의 내용과 규모는 상당했다. 그래서 복장은 가을 날씨에 맞는 복장을 하라는 사전 정보를 들어 예비로 가져 간 셔츠를 입었다. 우리나라 동굴에 비해 규모와 내용면에서 한 수 위였다. 관광객 하나하나의 사진을 출구앞에 전시해 놓고 판매하는 것이 좀 특이해 나도 집사람 것과 같이 두 장을 샀다.
이제 다음 행선지인 슬로베니아의 블레드로 이동이다.
블레드는 절벽 위의 고성과 호수 및 호수 속에 있는 섬 관광이 메인이다. 우선 플레트나 보트를(무슨 뜻인 모르겠다)타고 블레드 섬으로 가서 성모승천교회에 있는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이 선물했다는 종을 세 번 울리고(소원을 빌라는데 못 빌었다) 조그마한 섬이니 한 바퀴 쭉 돌아보았다. 성당도 물론 들어 가 보았는데 유럽 여행이라는 게 기독교 특히 오래 된 성당의 외관과 내부에 있는 성화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는 것이 중요 포인트인데 따로 관심을 갖지 않는 한 구분이 너무 어렵다. 섬 중간 중간에는 호수에 살고 있는 어류나 패류의 사진을 전시해 놓았는데 특이하게 생긴 물고기도 볼 수 있었다.
섬 관광을 마친 우리는 버스에 탑승하고 100미터 절벽 위에 있는 고성 바로 밑까지 올라 가 고성을 둘러보았다. 한국인 관광객을 곳곳에서 여러 차례 볼 수 있었으나 여기서는 유난히 더 많은 우리 말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이 고성은 교황이 주교에게 하사한 것이라는데 유물전시장도 있고 미이라도 전시되 있었다. 고성은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역시 더 멋있다는 사실을 이 번에도 느낄 수 있었다. 이 곳 블레드에서는 중국식 점심을 먹어 보았다. 숙소는 완전 시골이라 소똥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일행의 설명에 의하면 방목으로 소를 키워 배합사료를 덜 먹여 냄새가 별로 안 나는 셈이란다.
제9일(9월15일) 슬로베니아에서 오스트리아로
그동안 국경을 지나면서 죽 느낀 바이지만 주택의 외관만 보아도 대충 그 나라의 소득수준을 느낄 수 있었다. 슬로베니아도 수준급 생활을 하는 나라이지만 오스트리아에 들어서니 약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알프스 풍의 전원과 목축을 하는 집들이 문자 그대로 그림과 같이 아름다웠다.
그동안 다른 나라에서는 이웃집 나들이 하듯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었는데 아직 쉥겐조약에 가입이 안 되어선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입국 시 약간의 불편을 주었다. 버스에서 하차하여 일일이 여권을 보여주고 입국 스탬프를 찍는 번거로움이 남아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할슈타트에 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가이드는 운전기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았는데 우리를 태워 준 운전기사는 주로 중국관광객을 상대하던 사람이라 관광 패턴이 다른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우리와 같이 이동거리가 길지 않고 Shopping위주란다. 어쨌든 예상보다 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은 짤쯔감머구트의 진주라는 할슈타트를 보았는데 호수가 제법 컸으나 진주라고 칭찬하기에는 그냥 그랬다. 특히 유럽의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으나 이 곳에서도 화장실에서 유로 50센트를 받는 것이 몹시 기분 나빴다. 고소득 선진국이라면서 좀 이상했다. 문화차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 할슈타트에 있는 호수 >
이 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지였던 짤쯔감머구트로 가서 장크트볼프강 호수를 보았는바 원래는 이 곳에서 유람선 관광이 선택 관광이었으나 시간관계상 이를 생략하고 마을을 둘러보고 점심만 먹고 떠났다. 이 곳은 각종 스포츠의 낙원이라 하는데 스키, 보트, 패러글라아딩등 다양한 운동을 즐길 수 있단다. 여기서는 여러 명의 여고생들이 발랄한 모습으로 거리를 오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교복을 입고 활보하는 학생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상큼한 기분이 들었다. 이 곳에서는 소들의 방목을 개시하는 때나 우리에 넣는 때를 기념하는 축제를 여는 풍습이 있고 그런 때는 학생들도 참여하는 일이 있어 그런 사유가 아닌가 하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짤쯔는 영어로 salt라 나름 부유한 동네란다. 아! 참! 여기는 악성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살던 집이 있는데 집 외부에 사진이 있고 그녀가 살던 집이라는 설명문도 있었다
< 짤쯔감머그트의 장크트볼프강 호수가 있는 마을의 우체국. 너무 예쁘다. >
다음 행선지는 천재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인 짤쯔부르크다. 모차르트로 먹고 산다는 고장 그러나 사운드 오브 뮤직 또한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악 한 시간 걸려 짤쯔부르크에 도착한 우리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미라벨 정원을 돌아보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자유 관광도 하면서 동상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도 찍었다. 여기서 볼프강 유람선을 타는 선택 관광을 못한 대신 호엔짤쯔부르크 성을 오르는 오래 된 에레베이타를 타는 것으로선택 관광을 대체키로 하였다. 고성을 가는 도중 강을 건너기 전 유명한 베르린 필의 지휘자 카라얀의 생가도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지며 주변 경관도 돌아보았다 성에 도착하여 에레베이터를 타는데 KBS로고가 붙은 촬영장비를 가진 젊은이들이 내가 탄 칸에 타는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물어 보니 “내일도 칸타빌레”란 미니 시리즈 촬영 팀이란다. 주원과 심은경이 곧 합류한단다. 고성에서 오스트리아의 유명하다는 인형극에 대한 전시물과 박물관 및 고성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시가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내려왔다. 모차르트의 생가와 구시가지의 재래 시장등 오지리의 풍물을 두루 돌아본 후 또 한 번 중식으로 저녁을 먹은 후 호텔로 이동 휴식을 취했다.
< 고성에서 내려다 본 짤츠부르크 시가지 >
제10일(9월16일) 오스트리아
이 번 행선지는 와인재배지로 유명하며 아름다운 바하우지역인 뒤른슈타인이다. Wachau란 지역 명으로서 수도인 Wien을 둘러 싼 지역인데 뒤른슈타인은 영국의 사자왕 리챠드1세가 1년간 감금되어 있던 성이 있는 고장이다. 유명한 곳인지 조그마한 마을에 5성 호텔이 있고 4성도 두 곳이나 있다니 놀라웠다. 1박 요금이 5성의 경우 디럭스는 최고 유로213이니 한화로는290,000정도로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으나 조그만 마을에 다뉴브강의 제법 큰 유람선 선착장이 있을 정도로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지나 온 어느 나라 보다 물가가 비싸다는 것이 확 느껴지는 오스트리아지만 우리일행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기념품 구입을 하는 것을 보니 품질이 좋아 보이는 모양이다. 마을이 크지는 않았으나 알차보였다.
이제 이 번 여행의 마지막 방점을 찍을 비엔나가 다음 차례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이라 할 모든 유명음악가가 거쳐 간 도시 비엔나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대에 마음이 설레인다. 빛좋은 개살구가 아니기를 빌면서 입성했다. 점심은 도시락 형태의 한일 혼합 밥이다. 불고기에 엉터리 깍두기, 숙주나물 볶음에 short rice 이쯤이면 혼합 아닌가? 여기서 점심 식사 전 현지 가이드가 합류했는데 만난 가이드 중 최악이어서 비엔나의 꿈은 반쯤 날아갔다. 이제사 얘기하는데 현지 가이드(한국인)가 프라하, 폴란드, 부다페스트에 있었고 현지인 가이드가 플리트비체, 자그레브, 짤쯔부르크 등에서 우리를 도왔다.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별궁이라는 쉔부른 궁전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기대에 못 미쳤고 정원도 그저 그런 정도라 생각한다. 다만 보리수라나 하는 가로수 길은 괜찮아 보였다. 궁전 내부의 호화롭다는 장식들도 별로 고급취향은 아닌 듯하고 중국을 동경해 중국풍으로 돈만 잔뜩 들인 방이라는 곳도 내가 보기는 별로 였다. 한 마디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대표적인 곳이었다. 슈테판성당은 정말 장엄했다. 그러나 여태 본 성당들에 비해 뛰어 나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성당 옆에 있는 예수상 중 고뇌하는 예수상이 인상적이었다. 거리에 있는 상점들이 간판에 자기들 취급상품을 조각으로 표시해 걸어놓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것은 비단 빈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시립공원은 좋았다. 다른 도시와 달리 공원 내에 trink wasser라고 쓰인 음수대를 설치한 것은 보기 좋았다. 비엔나에서는 모차르트 보다 슈트라우스 부자가 더 유명하고 인기도 좋은 것 같았다. 슈트라우스2세의 금빛 동상이 시립공원에 서 있는 모습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었다. 시내는 그대로 하나의 박물관을 방불할 정도로 고색창연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물들이 즐비해 보기 좋았다. 저녁 식사는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전통 음식이라는 “호이리게”를 먹었는데 무척 짜다는 말과는 달리 먹을 만 했고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 사진들이 즐비했다.
이 번 여행의 마지막 호텔 숙박지인 “HO"LDRICHSMU"HLE” 횔드리히스 뮐레 라는 곳에서 막 판 한 잔을 했다. 와인 한 병과 생맥주 세 개에 불과하지만 뜻깊은 쫑 파티였다.
제11(9월17일) 오스트리아에서 슬로바키아 그리고 부다페스트 공항
호텔에서 조식 후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나폴레온 전쟁 당시 파괴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원된 브라티슬라바 성을 조망하고 도시의 관문이었던 미카엘의 문과 51M의 청동지붕 탑을 둘러보았다. 자유시간을 1시간 받아 바로크식 구 시청사등을 관광 하였는데 이곳에서도 화장실이 화근이 되어 바가지를 쓰는 해프닝이 있었다. 여기 도착하자마자 보인 기아의 입간판은 우리를 즐겁게 하였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시원표에 각 도시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데 서울 8,138km라는 보기 드문 표지판을 보았던 것이다. 이제는 부다페스트 공항을 거쳐 도하에서 갈아 탄 후 서울로 갈 일만 남았다. 부다페스트로 가서 한식이란 이름이 붙은 비빔밥을 먹고 비행기 타러 가자.
< 이 번 여행의 몇 안 되는 단체사진 (영웅광장에서) >
제12일(9월18일) 헝가리에서 서울로
부다페스트 17시05분 발 QR210 - 도 하 23시20분 착
도 하 01시15분 발 QR858 - 인천 국제공항 16시20분 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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