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하나님이다
출애굽기 20:1-3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사순절 셋째 주일이다. 겨울에서 봄이 오는 과정이 더디다. 겨울과 봄이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다. 자연 현상만 그런가? 우리 사회의 평화든, 내 마음의 봄을 기다리는 일은 늘 그런 지난한 과정을 겪는 것 같다.
오늘은 3.1절 105주년 독립선언 기념일이다. 마침 가족예배를 드리니, 교회학교와 함께 만세삼창을 하려고 한다. 찬양에서 독립군가를 부르려는 마음도 들었다. 예배 시간에 부르려니 마땅한 곡을 찾을 수 없었다.
1919년 3월 1일은 우리나라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같은 해 1911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태어났는데,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 정체를 민주공화제로 하였다. 1948년 7월에 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이를 계승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독립정신과 헌법정신을 잘 지켜야 한다. 우리 민족에게는 십계명처럼 소중하다.
그런데 100년에 불과한 역사인데도, 왜곡하려고 드는 세력이 있다. 역사가 거꾸로 가기도 한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까? 역사를 잊은 백성은 미래가 없다. 우리 자신의 현주소를 알아야, 오늘의 시대정신을 깨달을 수 있다.
우체국 집배원이 문자를 보냈다. 교회 우편함에 등기우편을 두고 간다는 메시지다. 겉봉에 ‘색동교회 남선교회 귀중’이라고 쓰여있던 모양이다. “색동교회는 맞는데, 그런데 남선교회는 어디인가요?
우리는 내 신앙의 현주소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현주소도 명심해야 한다. 과연 무엇이고, 어디인가?
1)
본문은 십계명이다. 이것은 언약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이다. 중요한 선언이 담겨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
이 선언은 역사적인 출애굽 사건의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며, 하나님이야말로 해방하신 구원자이심을 분명히 천명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성경에 있는 모든 율법 조문들보다 앞선 헌법 전문(前文)과 같고, 광야에서 선포된 자유민의 독립선언문과 같다.
하나님의 구원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인 계명을 지켜야 한다. 그동안 인간의 욕망에 따라 살았다면, 이젠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치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켰으니, 너희는 자기 자신은 물론 남을 짐승처럼 부려서도, 비인간적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고 하신다. 심지어 자연까지도 돌보며 어울려 살라고 하신다.
열 가지 계명은 도덕적이고, 윤리적 당위성만 기록한 딱딱한 금령인가? 사람들은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벌 받는다는 강압적이고 부정적인 금지투성이의 어려운 법으로 이해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 신앙과 인간 사랑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애초에 율법의 배경에는 사람에 대한 따듯한 이해가 담겨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람을 종교적으로 대하신다. 그 본질은 선하심이요, 자비이다.
십계명은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수평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에 평화로운 삶이 계속되도록 하기 위한 선물이다. 억압받는 약자들을 보호하고 해방함으로써 정의와 사랑이 함께 깃들인 공동체를 이루려는 뜻을 갖고 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에서 자유인으로 정착한 사람들이 지켜야할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자유인으로 가는 길을 제시한 청사진을 보여준다.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8).
이렇듯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특권과 신뢰를 갖고 살아가도록 인도한다.
2)
십계명은 열 가지로 구성되었다. 왜 그럴까? 사람들에게 열 손가락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손가락을 꼽으면서 가르쳤다. 쉽게 기억하도록 열 마디의 간단한 말로 하나님의 계시를 요약하고 있다.
열 가지 중에서 처음 네 가지는 하나님과 관계에 대하여, 나머지 여섯 가지는 사람과 관계에 대하여 규정한다. 이를 딱 두 가지로 요약한 것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요약한 율법의 본질은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이를 받아 교회에 가르쳤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
열 가지 중에서 가장 으뜸 계명은 무엇인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
다른 아홉 가지 계명은 이 첫째 계명 ‘하나님 사랑’에 달려있다. 너희는 일상의 삶에서, 평생토록 사는 동안 네 하나님을 기억하고, 네 하나님을 예배하며, 네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라!
제1계명은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배타적인 요구를 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만이 참 신이요, 해방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신격화든 노예화든 배격하고 있다. 십계명은 형상을 통한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거룩한 이름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도 금지한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해서는 안된다. 정치적 목적으로, 자기 이념을 합리화하기 위해 수단화하는 것은 범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망령되이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자기 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일동포이다. 그들은 나라 잃고,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사람들이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러니 독립된 나라, 발전한 나라 대한민국은 얼마나 그리운 모국인가?
재일동포들은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하자, 그때 돈으로 100억 엔의 성금을 모아서 기증했다. 그때 당시 해외에 사는 동포사회 중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재일동포였다.
올림픽공원에 있는 경기장, 올림픽파크텔, 올림픽회관 신축 비용, 미사리 조정경기장과 장충체육관의 보수 비용으로 집행됐다. 서울의 소형아파트 값이 2천만 원 하던 시절에, 541억 원을 헌금한 것이었다.
지독한 차별 아래 힘들게 사는 자신들이 쪽팔리는 건 견딜 수 있어도 조국이 국제무대에서 부끄러우면 안 된다는 결기였다.
그 가운데 서갑호란 분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52년 한국공사관이 월세를 못내 쫓겨날 처지라는 소식을 듣고 구 덴마크 공사관 관저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10년간 무상 임대 후 1962년 8월 15일, 광복절 선물로 한국 정부에 기증하였다. 그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일본대사관이다.
재일동포로서 대한민국 국민이란 자부심과 패기가 대단하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도 그만한 자부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3)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란 자부심이 점점 오르라 들고 있다. 한국 역사의 시대변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을 바라보는 교회 밖의 시선이 크게 달라졌다. 이러한 변천과정은 오늘 진실한 그리스도인 됨을 돌아보게 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과연 그리스도인은 다르다’라는 말을 들었다.
해방 이후에는 ‘설마 그리스도인이 그런 나쁜 짓을 해?’로 바뀌었다.
전쟁 와중에는 ‘예수 믿는 거나 안 믿는 거나 다를 것이 없군’으로 달라졌다.
그런데 이후부터는 ‘예수 믿는 놈들이 한술 더 떠!’라고 한다.
140년 전, 처음 이 땅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왔을 때, 그저 서양에서 들어온 남의 나라 종교일 뿐이었다. 눈이 파란 선교사들의 종교이고, 믿는 사람도 지극히 소수였기에 존재감이 부족하였다.
그게 초기 그리스도교의 현주소였다. 그런데 3.1 독립선언 이후 달라졌다.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교회가 앞장섰고, 누구보다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걸고 참여하였다.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지도자 중 절반이 그리스도인이었다.
그 결과 교회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종교가 아닌 바로 우리의 종교가 되었다. 비로소 민족의 신앙이 되었다. 그것은 3.1 운동의 위대한 신앙의 열매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남대문 상동감리교회에 다니며, 엡웟청년회 활동을 한 감리교인이었다. 본래는 동학 접주였다. 갑오농민전쟁이 실패한 후 교회로 들어왔다.
그리고 3.1 독립선언 이후 상해로 탈출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다. 김구는 독립운동 1세대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많이 배우지 못하였고, 신분도 낮았다. 처음 임시정부 설립 당시에는 쟁쟁한 양반과 유학생들이 주도하였다.
백범은 내무총장이던 도산 안창호에게 자신은 임시정부의 문지기로 일하겠다고 청원하였다. 도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김구에게 경무국장 임명장을 주었다. 문지기는 문지기이지만 경찰청장과 같은 직위였다.
초대 임시정부의 문지기에 불과하던 백범 김구 선생은 10년 후에 임시정부의 주석(主席)이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쟁쟁한 해외 명망가들이 모두 떠나갔기 때문이다.
생활고 끝에, 이념의 갈등으로, 미국이나 쏘련으로 떠나 가버렸다. 정말 갈 곳이 없던 김구는 홀로 남아 해방 때까지 임시정부 살림을 꾸렸다. 문지기가 미래 국가라는 독립정부의 멍에를 멘 것이다.
그런 신실한 문지기는 하나님 나라를 책임진다.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고, 자기 민족을 섬기려는 마음을 보시고 그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
십계명은 해방의 법이다. 자유의 법이다. 생명의 법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그 자유는 계명을 사랑할 자유요, 더 큰 자유를 누릴 자유다. 바로 성숙한 사람의 자유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사랑할 자유를 주셨다. 바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그 자유, 자기 민족과 백성을 사랑할 자유이다. 우리는 그런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내 삶을 지배하시길 바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