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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 심양 (Shen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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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中國 안산- 사랑방 스크랩 추천 → 분단의 과거를 넘어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글쓴이: 한국안산시청 최경호팀장)
개발구(開發區) 추천 0 조회 170 06.12.04 13:2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분단의 과거를 넘어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햇빛에 반사되는 물비늘로 눈이 시렸다.
▲ 임진강과 한강 合一지역
© 20061120 우리안산

함경남도 용포리 부터 256km를 쉼없이 흘러 온 임진강 물줄기가 꿈틀거리며 한강과 合一하여 한반도 분단의 아픈 과거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기원하며 서해로 도도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강의 폭은 3.2km 되는 넓은 곳도 있으나 460m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곳도 있다. 가장 폭이 좁고 물살이 세지 않은 임진강을 헤엄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다가 남한 군인에게 사살되는 아픔을 이야기한‘낙동강’이라는 책이 뇌리를 스쳤다.
그랬다. 임진강은 우리 한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채로 우리들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말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 북쪽 개풍군 지역
© 20061120 우리안산

자유로를 통해 여러 산을 찾기도 하고 임진각까지 걸어가면서 보았던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한 켠 저쪽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 고요에 빠졌다.
몇 해 전, ‘한강의 과거는 우리의 미래이다’ 라며 이곳에서 평화 배 띄우기 행사를 하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이곳은 그렇게 우리의 바람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아스라한 기억을 떠올리려는 실향민과 북쪽을 알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북쪽의 주거 실태와 영농모습 등 우리의 또 다른 곳의 생활상을 알리고 있다.


▲ .
© 20061120 우리안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현실 앞에 가슴이 미어졌다.
중국관광객들이 신기한 눈으로 이것저것을 두리번거리며 쉴 새 없이 떠들어 머리를 어지러웠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온다던 일기예보를 비웃듯이 민족운동가 고당 조만식 선생 동상이 햇살을 환하게 받으며 우뚝 서 있다.

기행의 두 번째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통일촌이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동안 출입 절차를 거친 후 허기진 배를 채우려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갔다. 옛날 임금님께 진상하였다는 장단콩! 한국전쟁 후 공중에서 지뢰를 살포하여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한 그곳을 농민들은 지뢰를 파헤쳐내고 콩을 심고 거두었다. 그들은 단지 농작물을 가꾸고 거둔 것이 아니라 새싹을 키우고 희망을 일구어 낸 것이다. 콩 음식은 부드러웠다.


혈기왕성한 목소리로 앞에 펼쳐진 개성공단, 개성시내 그리고 비무장지대(DMZ)를 설명하는 병사의 설명을 귀에 맡기고 눈은 그곳을 가슴 속에 새기려는 듯이 내리 꽂았다.
▲ 대성동 휘날이는 태극기
© 20061120 우리안산

대성동 마을 높이 솟아 펄럭이는 태극기보다 58m 더 높이 솟아있는 인공기가 비교하라는 듯이 불과 850m 떨어진 북쪽 기정동에서 날리고 있다. 그랬다. 남쪽에서 전시한 북쪽의 옷들이 후줄근하듯이 북측에서는 그들의 사상이 남측보다 우위에 있다고 나라의 상징을 더 높이 세운 것이다.

민족이 외세에 의해 갈라지고 싸우고 분단된 지 반세기가 넘었다. 국기가 태극기와 인공기로 나뉘었듯이 나라꽃이 무궁화와 목란으로 나뉘었고 아이스크림과 계란찜을 얼음 보숭이라 하고 닭알 두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2년 전,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하얗게 빛이 바랜 채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나무 기둥을 보았었다. 이곳에도 언뜻 보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의해 설치된 155마일 휴전선에는 200m 마다 1,292개 나무 기둥이 남과 북을 가르고 있다. 98년 故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은 평화 통일의 희망을 담은 소 1,001 마리를 몰고 둘로 나뉜 한반도를 이어 육로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2000년 6월 15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며 대한민국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은 선언하였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에 개성 8km라는 교통표지판이 낮 설지 않게 서 있다. 개성에는 파주 8km라는 표지판이 서 있을까. 우리 민족의 또 다른 한쪽에도 가을 정취가 물씬 묻어났다.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움직이는 북한 주민들이 보였다.


▲ 도라산 전망대 건물
© 20061120 우리안산

몇년 전만해도 이곳 도라산 전망대는 적으로부터 몇 km 후방에 있고... 이렇게 병사들의 설명이 있었는데 남북관계가 많이 진전되었다.”라며 기행해설사는 즐거워하였다. 전망대 건물에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 이라는 표어가 현재를 함축하였다.
제대가 언제냐는 내 물음에 “30일 남았습니다.” 라고 하는 병사의 어깨를 두들이며 “부모님들께서 대견해 하실 것이다.”라며 현재를 사는 우리들을 서로 격려하였다. 그곳에는 사진을 촬영할 장소가 노란 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군부대 보안 때문이리라. 위반하여 사진을 찍으면 사진기를 뺏긴다고 하여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옆에 미군들과 그 친구녀석들은 제재를 받지 않아 우리 일행은 애 궂은 우리 측 병사들에게 항의를 하였다. 한반도 현실이라며 자조적인 한숨과 함께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는 이 드넓은 곳에 독수리 두 마리가 비행하고 있다. 녀석들은 발목이 잘릴 걱정도 없고 목숨을 잃을 위험도 없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날고 있다.


▲ 도라산 역
© 20061120 우리안산

전망대에서 버스로 5분여 거리에 도라산역이 있었다.
2002년 개통된 경의선의 역은 서울역에서 1시간 조금 더 소요된다고 했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그렇게 써 있었다.
그랬다. 이곳으로부터 남쪽으로 56km를 가면 남측의 수도 서울이고 북쪽으로 205km을 가면 북측의 수도 평양이다.
▲ .
© 20061120 우리안산

한 켠에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한반도의 중심인 이곳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9,000km의 유라시아 횡단철도 열차가 달리기를 희망하는 솟대가 날리고 있다.

우리 민족의 또 다른 곳을 지나 천 수백년 전 광개토대왕이 휘몰아 질주하였던 중국대륙과 설원의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뻗어나가는 우리 한민족의 늠름한 모습이 현실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 자유의 다리에 서서
© 20061120 우리안산

서울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손을 흔들며 도착한 곳은 임진각이다.
3년 전, ‘깨끗한 공무원, 깨끗한 공직사회’ 라는 슬로건을 가슴에 담고 땅끝 마을 해남에서부터 16일 동안 걸어 이곳에 왔던 기억이 또렷하다. 나는 망배단 앞에 서서 가슴이 벅차 한동안 나를 쳐다보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동지들만을 쳐다보았다. 통일을 염원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며 자유의 다리 끝에 매달아 놓았던 깃발은 3년이라는 시간이 흔적을 없앴지만 내 가슴속에 뇌리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고스란히 많은 시간들이 나의 역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북쪽이 핵무기를 발사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남쪽에 사는 성인들에게 묻는 설문에 놀랍게도 “43%가 미국이다.” 라고 답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북쪽이 핵무기 발사를 실험한 것은 생존권을 보호하려는 자위권 발동이라는 대화도 나누었다.

자유의 다리에 서서 ‘임진강’을 노래 부르는 우리를 사람들이 밝게 웃으며 쳐다본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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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2.05 12:09

    첫댓글 그 비싼 돈들여 핵 만들지 말고 일단은 백성들 먹는거나 잘먹게 하지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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