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퇴직하면, 여행을 많이 갈 줄 알았어. 있는 게 시간일 테니까.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더군. 체력도 체력이지만,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 마음은 왜 이리 번거로운지. 그리고 점점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졌기 때문이겠지.
퇴직하면, 음악카페를 운영할 수 있을 줄 알았어. 평생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으니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군. 현상 유지하려면 술을 팔아야 하는데, 취기들이 올라 웅성거리는 분위기에서 술 한잔 마시지 못하는 내가 연주할 자신도 없고, 좋아하는 뮤지션을 초대하기도 뻘쭘해서, 인생엔 만약(If)란 없겠지만, 장사하는 일엔 젬병인 나는 그냥 우물쭈물하다가 세월만 보낸 셈이야.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 않는냐고? 말이 쉽지,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겠어?
* 세익스피어 이후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평가되기도 하는 버나드 쇼의 묘미문
"I knew if I stay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이 "저와 같이 뛰어난 용모의 여자와 당신처럼 뛰어난 자질의 남자가 결혼해 2세를 낳으면 휼륭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며 구혼의 편지를 보내오자, 버나드 쇼는 "나처럼 못생긴 용모에, 당신처럼 멍청한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지 않겠소?"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와 나
그는 세상에 할 말이 많다. 나는 세상에 별 할 말이 없다. 나는 그의 글들만 읽었을 뿐 한번도 독대해보았거나 어울려 커피를 같이 마셔본 적도 없다. 그렇다고 그를 간절히 만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가 처음부터 세상에 할 말이 많았는지, 언제부터 세상에 말을 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그가 한 말은 늘 옳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까지 세상에 옳은 말을 하도록 부추기지는 못했다. 이는 내가 옳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도 된다. 나는 한번도 그가 주장하는 옳은 일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正義라는 말은 내 체질에도 맞지도 않는다. 正義의 편에 서서 투쟁해본 적도 없다. 鬪爭이란 말을 나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번도 鬪士인 적도 없다. 종합격투기를 시청하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는 비교적 꼼수가 적은 경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正義라는 말 속에 꿈틀거리는 감상적 꼼수에 구역질이 나곤 한다. 不義의 실체를 보았을 때 격렬한 분노를 느꼈듯이.
나는 한 번도 不義의 편에 서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정의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불의의 편에 서는 거라면 별 할 말은 없다. 그는 죽어서도 세상에 할 말은 다 하고 있다. 나는 죽어도 세상에 별 할 말이 없다. 지금 세상에 대해 횡설수설하고 있지 않냐고? 그가 질타한다면 나는 별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