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과 순경 아저씨
최 효 섭
경은 도화지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읍니다. 그것은 지난번에 동물원에서 구경하고 온 기린을 그리는 것입니다.
먼저 기린의 머리를 그리기 시작했읍니다. 머리를 다 그리고 나니까 그것만으로 도화지에 가득 찼읍니다. 경은 화첩에 있는 도화지를 다 이어서 기린의 긴목과 몸, 그리고 다리를 그렸읍니다. 그림이 커지니까 크레용도 많이 들었읍니다. 기린의 몸은 노란 바탕에 검은 점들 뿐입니다. 그래서 노란색과 검은 색이 모자랐기 때문에 오빠의 크레용까지 써야 했읍니다.
“경아, 학교에 갈 때 길 조심해라. 차들이 완전히 멈추거든 건너가야 해요.”
안방에서 어머니가 재봉틀을 멈추시고 불쑥 소리를 질렀읍니다. 그 뒤를 이어
서 아버지의 음성도 들렸읍니다.
“오늘 일어났다는 사고가 신문에도 났구나. 교통 순경까지 차에 치었으니 안심할 수가 있어야지. 정말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
경의 머릿속에 친절한 순경 아저씨의 모습이 영화처럼 떠올랐읍니다. 학교 앞
건널목에서 아침마다 교통 정리를 하시는 순경 아저씨 말입니다. 언제나 아이들을 보면 웃으십니다. 웃을 때면 작은 눈이 아주 없어집니다. 얼굴에 주먹코가 붙어 아주 복스러운 돼지처럼 생겼지만 아이들은 모두 이 순경 아저씨를 좋아했읍니다.
오늘 아침 바로 등교 시간에 그 순경 아지씨가 차에 치었다는 소문이 학교 전체에 알려졌옵니 다.
―--― 병원에 실려갔다는데 돌아가신 것이 아닐까?
경도 몹시 궁금하고 또 슬퍼졌읍니다.
바로 이때입니다. 도화지 속의 기린의 눈알이 두리번거리고 굴렸읍니다. 그리고 입이 움직이더니 말을 시작했욥니다.
“경아, 학교에 가는 길을 가르쳐주어. 내가 교통 정리를 할테니까.”
정말 놀랐읍니다. 기린이 사람의 말을 한다는 것, 더군다나 아프리카의 기린이 한국 말을 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읍니다. 기린은 몸이 큰 것뿐이지 무척 아름답고 그 얼굴은 아주 순하고 귀엽기 때문에 경도 동무가 될 수 있었읍니다.
“좋아, 학교로 가자. 그렇지만 이 방에서 나가는 것이 어렵겠는 걸.”
“창문을 떼면 나갈 수 있을 거야.”
기린이 창문 한 쪽을 입으로 물어주어 어렵잖게 뗄 수가 있었읍니다. 기린이 창문으로 나가는 것은 큰 피아노를 창문으로 넣는 것보다 더 힘이 들었읍니다.
그렇지만 기린은 재치 있게 몸을 굽혀가며 창문 밖으로 빠져나갔읍니다.
아름다운 기린과 함께 거리에 나가려면 거기에 어울려야 합니다. 경은 머리를
빗고 엄마의 크림으로 말쑥하게 화장까지 했읍니다. 그리고 기린의 색깔과 어울리도록 노란 스웨터에 검은 치마를 입었읍니다.
어느새 바깥은 아침이었읍니다. 학교에 가던 많은 아이들이 소리지르고 떠들어대며 기린과 경의 뒤를 따랐읍니다. 아이들뿐이 아닙니다. 어른과 노인들까지도 신이 나서 기린과 경의 뒤를 따랐읍니다.
“순경 아저씨의 소식은 아직 모르니?”
기린도 걱정이 되논지 경에게 속삭였읍니다.
“아직 몰라. 그렇지만 그렇게 좋은 아저씨니까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부탁해
놓았어.”
“하느님 이란 분이 너하고 친하니?”
“응, 그이도 아버지래. 그러니까 큰 아버지나 마찬가지야:”
“그럼 네 부탁은 들어주시겠구나.”
이런 이야기를 기린과 나누는 사이에 드디어 학교 앞 건널목에 도착했읍니다.
순경 아저씨는? 하고 둘리 보았지만 그 웃는 둥근 얼굴은 보이지 않았읍니다. 경의 마음은 어두웠읍니다.
“자, 교통 정리를 시작하자.”
기린이 힘차게 거리로 나섰읍니다. 언제 준비했는지 기린의 입에는 호각까지 물려 있었읍니다. 기린은 길을 건느려는 아이들과 자동차의 물결을 살피더니 호각을 삐리릭 불며 긴목을 척 밑으로 내렸읍니다. 자동차들은 일제히 서고 신난 아이들이 덩실거리며 길을 건넜읍니다.
기린이 이토록 훌륭한 교통 순경이 될 줄은 경도 생각지 못했읍니다. 기린의 긴 목이 철도의 건널목에 서 있는 교통 차단기의 구실을 한 겁니다. 더군다나 색깔이 노란 바탕에 검은 무늬이기 때문에 운전사라면 누구나 그것이 〈우선 멈춤〉의 색깔이라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기린의 호각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커서 그 소리는 학교의 벨소리만 했읍니다.
경도 신이 나고 자랑스러웠읍니다. 그래서 기린 곁으로 달려나아가 함께 교통정리를 했읍니다.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길을 건넜다가 공연히 다시 돌아오기도 했읍니다.교장 선생님도 길을 건너시며 모자를 흔들었습니다 담임인 최 선생님은 잠깐 멈춰서서 기린에게 공손히 인사까지 하고 지나가셨습니다. 신문 기자들은 사진을 찍고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영화 촬영을 했읍니다.
그러나 잠깐 뒤에 이런 일보다 훨씬 기쁜 일이 생겼읍니다. 경찰 백차가 도착
했읍니다. 거기에는 모두가 걱정하던 주먹코 순경 아저씨가 타고 계셨던 것입니다.
“만세! 주먹코 만세!”
아이들이 환성을 올렸욥니다. 순경 아저씨는 어린이 대표로 경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읍니다.
“고맙다. 너희들이 걱정해 준 덕분으로 나는 무사했어.”
백차에서 금테두리 모자를 쓴 경찰서장이 내렸읍니다. 서장은 기린의 목에 큰 화환을 걸쳐 주셨읍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읍니다.
“착한 기린에게 상품을 주겠읍니다. 이에 상품의 종류늑 당근이 백 개, 배추 백 포기, 대구 능금 알 그리고 우유 한 드럼입니다.”
박수가 울렸읍니다. 신이 난 기린이 호각을 빽 불었읍니다. 호각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어느 새 기린은 도화지 속에 다시 들어가 있었읍니다.
“내일 또 교통 정리를 하려면 푹 쉬어야 할 거야.”
하며 경은 방실 웃었읍니다.
기린도 한 눈을 지그시 감고 싱긋 웃는 것 같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