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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 시집 『내 바람의 조각들도』(두엄, 2019)
■ 표4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불면의 밤을 밝히던 '김영조 혼자 시인'이 마침내 만인의 시인으로 거듭남을 축하해 마지 않는다.
물질문명의 혜택으로 인간의 삶이 윤택해진 반면에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니러니컬하다.
'국민소득 삼만 달러 풍요로운 복지농촌 마당엔 아기 옷 널릴 일 없고, 골목엔 노모 차만 이따금 오갈 뿐인' 오늘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아버지'가 '쓰시던 청화백자 요강', '할아버지'의 '종이 안경통', '골목을 적시던 저녁밥 짓는 여기', '아이 부르던 엄마들의 목소리', '식구들 둥근 상에 모이는', '버려진 것들'을 김영조 시인은 한 가지 한 가지씩 정성스레 주워 모은다.
'비닐'과 '플라스틱 조각들'로 죽어가는 고래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장,「다잉 메시지」!
뒤돌아볼 줄 모르고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무한 질주하는 현대인들에게 김영조 시인은 진정한 행복의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김춘복(소설가, 한국작가회의 고문)
밀양에 피는 감꽃 같은 시인을 전라도에서 지내는 '왈짜'풍의 내가 오명가명 도타워졌던 세월이 어언 십수 년이 흘렀다. "긴가민가" "설마설마" 더러는 "쑥부쟁이"처럼 아프며 "혼자 시인"이 되려 했던 세월을 그도 나도 이렇게 주구장창 걸어왔던 셈이다. 행간에는 생태의 문제, 문명의 이기, 그러나 그의 관심은 여전히 균형과 분수를 기리는 "푸른 잎들로 반짝이는" 세계로 향하는 미덕이 김영조의 시집에는 올곧게 간직되어 있었다. "쓰레기가 아니라 시래기"를 비추고자 하는 시인의 불빛이 오래도록 멀리까지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윤천(시인)
■ 차례
1부_ 시래기를 다듬으며
시인/ 다잉 메시지/ KM-53/ 석화의 말/ 가을꽃이 사는 법/ 선/ 분수/ 시래기를 다듬으며/ 그녀의 자리/ 박물관에서/ 풀에 베이다/ 긴 기다림/ 상운암에서/ 인생/ 병이란 것이/ 단풍은 곧 낙엽이 되고/ 슈퍼우먼
2부_ 혼자 마시기
고가 헐기. 1/ 고가 헐기. 2/ 고가 헐기. 3/ 고가 헐기. 4/ 고가 헐기. 5/ 고가 헐기. 6 /한밭 일기/ 우포늪으로/ 평촌/ 개망초꽃이 피었습니다/ 혼자 마시기/ 다림질/ 입추와 처서 사이/ 주머니 털기/ 늘 사랑이란/ 들국화
3부_내 바람의 조각들도
마음 바꿔 먹으면/ 봄꽃/ 윳놀이/ 구절초/ 참꽃/ 아버지의 길/ 코끼리의 집/ 연 / 민달팽이/ 남천. 1/ 남천. 2/ 소만/ 벚꽃/ 돼지국밥/ 표충사 가는 길/ 다시 쇠점골
4부_ 아직도 남은 내일을 위해
추원재/ 상고대/ 바드리/ 찔레꽃으로 살다가/ 해천의 꿈/ 가을 숲길/ 변명/ 동창회/ P의 처세술/ 과꽃을 만나다/ 낙엽/ 혜산서원 차나무/ 당귀를 사면서/ 고향살이/ 다시 보고 싶은 것들
해설
오랜 정성으로 지은 집_ 이응인(시인)
■ 시집 속의 시 한 편
마누라는 긴가민가 한다
자식들은 설마설마
친구들은 네까짓 게 하는 눈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흔들리며
쑥부쟁이처럼 아픈
이 밤도 잠 못 들며 펜을 드는
그래,
나는 혼자 시인이다
―「시인」 전문
■ 시인의 말
어릴 적 이웃에서 누에를 많이 쳤다.
실오라기처럼 작은 것들이 뽕잎을 먹는 모습이
참 신기해 보였다.
누에는 다섯 번의 잠을 자고 다섯 번의 탈피를 한다.
한번 탈피할 때마다 성장하고 그 끝에
비로소 명주실로 고치를 만든다.
진정한 자신의 집을 얻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겠다.
시집 한 권 얻는데 너무 긴 첫잠의 시간이 흘렀다.
누에의 일생에 비할 바 아니지만 불임의 세월 끝 난산이라
혼자서 이런저런 의미를 두어본다.
첫잠은 비록 길었지만 누에가 비단을 뽑듯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또 세월을 견뎌야지.
첫 탈피의 흥분을 함께 가시는 모든 분들과 나누고 싶다.
■ 김영조
경남 밀양 출생. 2018년『시에』로 등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