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이 춤추기 시작했다＜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캔디]

어둠 속에서 웅크렸던 눈먼 이들이 이제 빛 속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원작 <타오르는 어둠속에서>는 현대 스페인 극작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Antonio Buero Vallejo (1916~2000)’ 가 1946년 스페인 내란에서 공화 정부군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7년간의 옥살이 끝에 출옥해 처음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가 우연한 기회에 맹인 학교에 다니는 동생을 둔 친구를 만나며 탄생하게 된 이 작품은 ‘실명(失明)’의 상징적 의미를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를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의 모든 작품의 기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연화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최근 이 작품은 국내에서 몇 차례 공연되며 원작의 충실한 해석에만 그쳤다는 아쉬움을 남겼으나, 유수미 연출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보다 신선하고 특별한 공연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간 시각 장애인들이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무채색의 사람들로 그려졌다면, 이 작품에서 시각 장애인들은 스스로의 색깔을 지니고 있는 살아있는 개체가 되어 숨을 쉬기 시작한다.
전작 <도시녀의 칠거지악>에서 탁월한 신체 움직임의 향연을 보여줬던, 유수미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 장점을 극대화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스스로의 움직임을 지팡이에 의존하는 정형화된 시각 장애인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은 그 앞에서 모두 깨트려질 것이다.

배우들의 몸짓은 시각 장애인들의 시선과 목소리가 담긴 그들의 언어 기호가 된다. 인물들의 목소리와 생각은 움직임 속에서 더욱 빛을 얻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경계는 무대와 영상을 넘나들며 박진감 넘치게 전개될 것이다.

[시놉시스]

선천적 맹인들이 모여 사는 기숙사식 학교.
이 학교의 맹인학생들은 맹인인 교장 돈 파블로의 지휘 아래, 학교가 마치 이 세상의 전부인양 자신들이 장애인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편안하고 자신감에 찬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학교로 이그나시오라는 학생이 오면서부터 잔잔한 낙원에는 변화의 광풍이 일기 시작한다.
우울하고 비관적인 이그나시오는 지팡이 버리기를 거부하며 스스로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행복해하는 친구들과 대치점에 서게 된다. 이 때문에 학교의 모범생이자 학교의 교육목표인 ‘철의 정신’을 대표하는 카를로스와 이그나시오의 갈등은 본격적으로 그 서막을 올리게 된다.
이그나시오는 ‘즐거움에 중독돼 있는’ 학교의 생활에 저항하며 ‘빛을 보기’를 갈망한다. 편안함과 행복감에 젖어있던 학생들은 처음에는 그와 반대편에 서며 적개심을 표출한다. 그러나 차츰 모든 학생들이 그의 의견에 설득되며 그를 따르기에 이른다. 카를로스는 학생들뿐 아니라, 그의 연인 후아나마저 이그나시오에게 빠져들자 점차 불안감에 젖어 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그나시오의 시신이 발견되며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학교에는 공방이 벌어진다.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앞을 보는 돈 파블로의 부인만이 단 한 명의 목격자일 뿐,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든다.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그들이 보지 못했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그 엄청난 진실은 관객들 앞에서 베일을 벗어 보일 것이다.

[기획의도]

하나. 삶을 관통하는 ‘진실성에 대한 메시지’

2011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두 눈에는 담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화려하게 빛나는 거리의 네온사인, 수많은 미디어들의 범람 속에서 우리의 시선이 머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분주하게 지나가는 발걸음 속에서 느린 발걸음으로 주저하는 이들은 소외된다. 조금이라도 다르고, 특별한 걸음을 걷는 이들은 우리와 다른 이들로 분류되고, 규정된다. 때문에 서로를 비추는 사랑의 눈길은 어긋나며 사실을 비추는 진실의 눈은 때로 그 진실성을 잃게 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눈을 감고, 꺼져가는 빛 속에서 타오르는 어둠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는가?’

두 눈을 감는 순간, 세상은 빛을 잃고 적막의 어둠 속에 뒤덮인다. 우리는 눈을 감고, 뜨는 것에 익숙하기에 그 사실 그 자체에 큰 무게를 두지 않으나 이 작품은 시각을 잃음으로써 그들이 마주하는 진실이 얼마만큼 크고 중대한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잃은 시력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불편하고, 어두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그 동안 빛이라는 장막에 쌓여있던 수많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회피하고 외면하고 싶던 진실은 그 안에서 역설적이게도 활활 불타오른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 두 눈을 감는다는 일차적인 의미를 벗어나 시선을 지배하는 세상으로부터 온전히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눈이 아닌, 마음의 눈을 꿰뚫는 진실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노크할 것이다.

둘. 움직임으로 잠들어있던 이들의 내면을 깨우다!

유수미 연출이 그녀의 작품 <도시녀의 칠거지악>을 통해 이미 뛰어난 배우들의 집단 신체 연기를 이끌어내며 호평을 받은 바 있듯이 이 작품 또한 배우들의 집단 신체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간 시각 장애인을 다룬 대다수의 작품들이 ‘말’과 ‘언어’라는 도구로 그들의 의견을 전달하는데 치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그러한 편견을 깨트리는 작업이 중심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긴 대사는 해체되고, 축소된 대사는 움직임으로 치환된다.
이는 작품을 통해 별다른 움직임 없이 어둠 속에 웅크려 있거나, 지팡이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닫는 시각 장애인들에 대한 사실적이고 단편적인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다채로운 색채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면모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기 때문이다.
‘움직임’은 그간 시각 장애인들에 대한 이해에 어려움을 겪거나 곡해된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관객들에게 있어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줄 것이며 다채로운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더욱 상징적으로 압축되고 함축된 메시지를 읽어볼 수 있다.

셋. 실감나는 연기, 관객들의 감성에 여운과 잔향을 남기다!

지난 9월15일 일어난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에 전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충만한 빛이 사라지는 순간, 어둠은 사람들의 말과 움직임까지 통째로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빛이 사라진다는 것’ 은 결코 단순한 명제가 아니었다. 이는 모두에게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완전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빛’과 ‘보이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알고 살아왔던 이들에게 ‘어둠’은 결코 가까이 닿고 싶은 세계가 아닐뿐더러 쉽게 닿을 수 있는 세계도 아니다. 때문에 어둠이라는 단어는 늘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을 뜻하는 대표적인 메타포였으며 그들을 비추는 어두운 그림자로 형상화됐다.
이 작품이 지닌 깊은 상징성과 뜨거운 메시지에 배우들은 작품 출연을 망설임 없이 결정했으나, 이들은 지금까지 그 스스로가 품어왔던 시각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허울을 벗고 좀 더 그들을 가까이에서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배우들과 스텝들은 보다 사실적인 묘사와 내밀한 이해와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어둠 속의 대화’ 전을 찾았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눈을 닫고, 그 시각을 제외한 감각으로 만 특별한 체험을 하는 이 전시회를 체험했으며 많은 시각 장애인들을 만나 직접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를 통해 연기에 대해 보다 진지한 접근은 가능해졌다.

수많은 연구와 체험을 통해 얻어진 진정성 있는 사실적 연기는 이 겨울 관객들의 감성에 진한 여운과 잔향을 남길 것이다. 어둠 속에 내리는 눈이 더욱 아름답듯이, 어두운 세계를 밝게 비추는 그들의 연기는 올 연말 관객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연출 소개]

	연출: 유수미 ‘신선한 발상’과 ‘독창적인 무대언어’를 창출하며 국내 여성연출가로서 돋보이는 행보를 걸어온 유수미 연출 작품 활동: <홀연했던 사나이><도시녀의 칠거지악><도화원청춘기><벚꽃동산> 수상 내역: <도시녀의 칠거지악>-제6회 밀양연극제 젊은 연출가상, 작품상, 음악상 수상
	[카를로스 역] 윤 길 [출 연 작] <백치 백지><논쟁><세자매><느림><TV동화 행복한 세상><콘보이쇼-아톰><코러스라인><컨텍트><올댓째즈><시카고><웨스트사이드스토리><미스사이공><아이다><토요일밤의 열기> 그 외 다수
	[이그나시오 역] 최 영 열 [출 연 작] <장마비><인생은 아름다워><철수, 영희><로미오 & 줄리엣 Grunge><메밀꽃 필 무렵><비이><광인일기><관촌수필, 옹점이를 찾습니다><죄와벌>
	[후아나 역] 구 시 연 [출 연 작] <백치백지><아미시프로젝트><도시녀의 칠거지악><두 메데아><나비햄릿><벚꽃동산><세 자매><TV동화 행복한 세상><느림><트로이의 여인들><짬뽕> 그 외 다수
	[돈 파블로 역] 양 승 한 [출 연 작] <동방의 햄릿><무간국 이야기><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페드라><S고원으로부터><아버지를 죽여라2><저승><사랑은 해피엔딩>
	[도냐 페피타 역] 이 혜 연 [출 연 작] <유리가면 Episode2 -잊혀진 광야><유리가면 Episode4-두사람의 왕녀><TV동화 행복한 세상><그놈, 그년을 만나다><도시녀의 칠거지악><세 자매><벚꽃동산> 외 다수
	[미겔린 역] 이 승 구 [출 연 작] <홀연했던 사나이><닥터 지바고><오구-죽음의 형식><산너머 개똥아><뮤지컬-락햄릿><가극-눈 나리는 밤><구명시식><오셀로><셰익스피어 인 햄릿><그때, 그 크리스마스의 추억><사고-그래도 가능한 이야기> 외 다수
	[엘리사 역] 권 미 나 [출 연 작] <길 떠나는 가족><논쟁><백치 백지>
	[로리타 역] 한 혜 진 [출 연 작] <TV동화 행복한 세상><그놈 그년를 만나다><벚꽃동산><도시녀의 칠거지악><도화원 청춘기><백치 백지>
	[에스페란사 역] 주 보 라 [출 연 작] <산불><69, 플럭서스><메디아><멕베스><도시녀의 칠거지악><백치 백지>
	[페드로 역] 권 승 록 [출 연 작] <저 사람 무우당 같다><백치 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