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 레이니어산
김성문
지구의 온난화로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만년설로 덮인 산지에서 눈(雪)이 점점 사라진다는 소식은 지구의 이상 기후 현상이다. 만년설뿐 아니라 북극과 남극 지방의 빙하도 점점 녹아 지형이 변하고 있다는 뉴스는 걱정을 앞세운다. 2023년 초가을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레이니어산(Rainier Mt.) 국립공원에 갈 기회가 있었다.
미국 서북부 캐스케이드산맥의 최고봉인 레이니어산은 해발 4,392m로 백두산 높이의 1.6배나 된다. 휴화산으로 영국의 탐험가 밴쿠버 중위가 발견했고, 그의 친구 영국 제독 피터 레이니어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워싱턴주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뻗은 캐스케이드산맥은 로키산맥 서쪽에서 위엄을 떨치고 있다.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약 2시간 정도 달리면 레이니어산 국립공원 입구 매표소에 도착한다. 자동차에 승차한 인원과 관계없이 자동차별로 입장료가 30불이다. 입구부터 울창한 산림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감미롭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간중간 간이 쉼터와 포토존에는 몇몇 사람들이 휴식을 즐긴다.
국립공원으로 가는 도중 마트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식품을 샀다. 마트는 한국과 별다름 없으나, 마트 바깥에 전시 판매하는 흰색, 노란색, 황토색의 호박이 이색적이다. 세로줄 무늬가 유독 아름다워 보인다. 옛날 내가 즐겨 먹었던 눈깔사탕의 세로줄 무늬를 연상하게 한다. 크기는 참외만 한 것과 수박 크기 정도로 다양하다. 과일값은 한국과 비슷하고 다른 물가는 조금 비싼 편이다.
간이 쉼터에 앉아 준비한 음식을 먹는 여유로움에 동료들과의 정이 한 켜 더 쌓인다. 잠시 쉼터 밑으로 바라보는 순간 광활한 큰 강이 시야를 채운다. 강폭은 넓으나 물이 흐르는 폭은 좁아 물이 많이 줄어들었음을 실감한다. 강물은 레이니어산 만년설이 녹은 물로 약간 뿌연 색깔이다. 강바닥에는 죽은 큰 나무들이 잎줄기를 떨쳐 버리고 떠내려와 몸통만 드러내어 자리를 잡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상류에서 굴러온 바위는 갈라지고 부서져 작은 바위와 잔돌로 꽉 찬 모습이 한국의 강 모습과 비슷하다.
동료 중 한 사람은 하트 모양의 돌을 수집한다고 정신없이 헤매다가 문제가 생겼다.
“어머나!”
여자 동료는 달아나고 벌들이 떼를 지어 달려들고 있었다. 강바닥에 누워 있는 큰 나무 밑에 있었던 벌집을 모르고 건드렸다.
“엎드리세요! 엎드리세요!”
나의 고함에 두 팔로 벌들을 쫓다가 그 자리에 엎드리는 순간, 벌들이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벌은 상승 비행의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엎드리면 응급 피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다행히도 두 군데 쏘이고 엎드리면서 넘어져 무릎과 얼굴에 찰과상을 약간 입었을 정도이다. 쏘인 곳이 더 이상 통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독성이 적은 일벌이었던 모양이다. 일벌이 살아 있음은 생태계가 유지됨을 알 수 있다. 자연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다시 출발하여 시야가 확 트이는 레이니어산 국립공원 주차장인 ‘파라다이스 방문자 센터’에 도착했다. 보이는 풍광은 천연색이다. 일년내내 만년설로 뒤덮인 거대한 레이니어산은 백색의 장엄한 모습으로 우뚝하다. 그 밑은 빽빽하게 군락을 이룬 진한 녹색의 침엽수가 레이니어산의 치맛자락처럼 둘러쳐져 있다. 센터 바로 앞에 자리잡은 야생화는 형형색색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태고의 신비스러운 광경처럼 보인다.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에 내 마음이 빼앗기는 기회는 오랜만이다. 휴식은 나에게 이런 기회도 준다.
방문자 센터에서 레이니어산 쪽으로 산책 코스가 있어 한참 동안 걸었다. 산책로 주위에 있는 나무와 야생화에 붙은 이름표는 공원 관리자의 친절함이 돋보인다. 내가 몰랐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침엽수가 츠가 메르텐시아나(Tsuga mertensiana)이다. 이 나무는 북미 서해안이 원산지로 키가 20m~40m까지 자라는 상록 침엽수이다. 자라면서 원통형으로 된다. 수령은 300~400년이나 된다니 레이니어산 만년설의 비밀을 간직하여 후손 나무에 전달된 듯하다. 폭설에 대처 능력이 강하고 다른 나무보다 얼음과 폭풍을 더 잘 견딘다고 한다.
훤히 보이는 레이니어산 꼭대기에 앉은 만년설이 군데군데 녹아 바위가 보인다. 같이 온 시애틀 동료는 여기 30여 년 전 이민해 올 때만 하더라도 레이니어산 전체가 눈 덮인 모습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속살을 보이니 지구 온난화 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지구의 온난화로 인하여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구 곳곳 이상 기후로 삶의 터전을 잃거나 목숨까지 위태로운 징후가 나타나니 걱정이 앞선다.
과거와는 속도가 다르게 지구의 기온이 빠르게 상승한다니 이대로의 속도라면 2100년도에는 빙하 전체가 녹을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앞으로 천 년은 괜찮다는 설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만약에 빙하가 모두 녹는다면 빙하 속에 들어 있던 미생물이 인류를 공격할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북극 산악지대에서 서식하는 순록이 2016년 온도 상승으로 죽었다. 순록에서 탄저균이 발견돼 순록에 접촉한 사람들이 고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지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류에게 경고를 하고 있구나를 생각할 때 지구의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 시급함을 느낀다.
지구의 온난화는 글로벌한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화석연료의 과다한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여 하나뿐인 지구가 싱싱하도록 나부터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때마침 내가 묵고 있는 시애틀에 비가 내린다. 아주 많이 내리고 있다. 레이니어산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지구 온난화가 지켜질 수 있기를 두 손 모은다.
‘파라다이스 방문자 센터’에서 바라본 레이니어산, 촬영 2023.9.21.(화)
첫댓글 만년설이 지구온난화로 빠르게 녹아내린다는 심각성을 누구나 심각하게 생각했으면 좋으련만. 많이 아쉽지요. 아무튼 멋진 여행에 박수를 보냅니다.
지구인 모두가 지구 온난화 정책에
적극 참여하여 하나뿐인 지구를
싱싱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몐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