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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 안녕하세요.
729기 조율래라고 합니다. 2사단 군악대에서 94년~96년 동안 기타/심벌로 근무했습니다.
다른 걸 검색하다가 뜻밖에도 우연히 아래 페이지를 보게 되어, 그 당시를 회상해보았습니다.
역대 해병대 군악대장 및 군악대원 기수별 명단
https://cafe.daum.net/rokmcbandob/OFG5/5
무려 25년전이고, 지금까지 다시 돌이켜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도,
이 정도까지 기억이 되살아 난 걸 보니, 짧았던 26개월의 임팩트가 무척 강했었나 봅니다.
위 링크한 페이지에 글 쓰려면 정회원이 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카페 가입해보니 준회원이고, 준회원이 글 쓸 수 있는 게시판은 여기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신세대 해병이 되어 봅니다.
서봉석 선임님께서 잘 정리해 위 링크 페이지에 올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글이 좀 길어진 듯 한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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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4 ~ 1996. 5
해병대 2사단 군악대
군악대장: 중사 서장원 → 중사 배경남
하사관: 하사 강현호(클라리넷)
군악대 방위병: 최승혁
병685기 박근덕(트럼펫)
병689기 박정기(알토색소폰)
병691기 엄기석(클라리넷?)
병693기 이상현(트롬본)
병696기 신경현(알토색소폰)
병697기 이호룡(클라리넷)
병701기 박지혁(기타/심벌)
병703기 문중탁(알토색소폰), 강경훈(클라리넷)
병705기 이영탁(튜바)
병707기 유장묵(클라리넷/포병대대에서 전입)
병709기 유현구(세트드럼/스네어/사령부에서 전입)
병711기 김지한(테너색소폰), 김명우(테너색소폰/사령부에서 전입), 김광선(플룻/사령부에서 전입)
병713기 백경종(알토색소폰)
병715기 배영식(베이스기타/대고)
병717기 장찬용(알토색소폰)
병721기 정승율(튜바), 손원호(수자폰)
병722기 안현진(건반/스네어), 이정훈(베이스기타/대고/사령부에서 전입)
병724기 정진선(트럼펫/포병대대에서 전입)
병725기 조은석(알토색소폰/사령부전입)
병729기 조율래(기타/심벌)
병731기 박원우(알토색소폰), 황병주(알토색소폰)
병733기 김지호(세트드럼/스네어)
병735기 김지호(혼), 배준표(수자폰)
병737기 조성윤(클라리넷)
병739기 이원량(트럼펫), 곽영민(스네어), 김민교(클라리넷)
병741기 배정섭(트롬본)
병743기 최시천(트롬본)
병745기 안관희(트럼펫/보병대대에서 전입)
병747기 김 권(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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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729기이고, 94년 3월 5일 입대해 96년 5월 6일에 제대했으니, 26개월 복무한 세대입니다.
- 제가 막내였을 때 1수 선임이 685기였으니 저와 44기 차이인데, 제가 1수였을 때 막내가 747기였으니 18기 차이 밖에 안 납니다. 왜냐하면, 복무기간 단축때문입니다.
소속 부대마다 신병 전입 유무가 다르니 기수가 꼬일 수 있어서 이게 일정한 간격으로 유지되는 건 아니지만, 44기와 18기는 심하게 벌어져 있기 때문에, 기수 꼬임 보다는 복무기간 단축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30개월부터 26개월까지, 그후 24개월을 거쳐 18개월까지 지속적으로 복무기간이 줄어들다보니, 1수와 막내 사이의 기수 간격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 같습니다.
복무기간 변천사: https://namu.wiki/w/%EB%B3%B5%EB%AC%B4%EB%8B%A8%EC%B6%95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030317/4/BBSMSTR_000000010026/view.do
https://muchkorea.tistory.com/1063
- 방위병 최승혁은, 제가 실무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근무하고 있었고, 어떤 악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기억이 안 납니다.
- 제대할 때 전역교육대에서 2~3일 정도를 지내는데, 제가 제대할 때 해병대 상근 1기와 같이 전역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090714/1/BBSMSTR_000000010296/view.do
- 93년 11월 무렵 대방동 해군본부에서 해병대 신체검사 1차를 받았는데, 군악병으로 지원한 인원은 해병대임에도 행정상 소속은 해군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파트별 인원부족으로, 1사단 군악대, 사령부 군악대, 2사단 각 예하대에서 인원을 차출해 전입시키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위에 '전입'으로 표기했습니다.
- 명단을 정리해놓고 돌아보니, 제가 실무에 도착했을 때 군악대 인원이 저까지 총 17명 이었네요. 내무실 3개+군악대장실 1개였구요. 1개 소대 편제에도 못 미치는 인원으로 어떻게 군악대가 돌아갈 수 있었던 건지 참 놀라울 따름입니다.
- 당시 2사단 본부의 병력 편제는 '본부 중대'였고, 중대장은 소령이었습니다. 중대장님 이름은 기억 안 나네요. (사단직할대인 전차, 상장, 수색이 모두 중대급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단 예하대의 거의 모든 행사에 군악대가 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심만 있다면 이런 편제를 꽤 알 수 있습니다.)
본부 중대는 4개 소대급 편제였는데, ①본청 출입 행정병들 ②사단 간부용 수송반 ③2사단 유일의 화학지원대(제독차량 운용) ④군악대 였습니다.
이들 중, 24시간 교대근무해야 하는 행정병과 거의 매일 야간운행하는 수송반을 제외하면, 가용병력이 군악대와 화지대 뿐이라서, 군악대는 공관(사단장, 부사단장, 포병연대장) 경계근무를 섰고, 화지대는 사단본부 경계선 초소 근무를 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야간 1직이 17~21시였던 기억이 나니, 아마도 4시간 근무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군악대와 화지대는 영내 온갖 작업도 도맡아 했습니다. 제초, 제설, 영내 미화, 본청 쇼핑(Soaping), 헬기장 보수, 윤형 철책선 보수, 진지 보수, 폐타이어 작업, 간부식당 작업, 보급창고 정리 지원, 소각장 작업, 산 옮기기(?), 기타 등등 작업의 추억이 많습니다. 공관근무의 절정은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행사를 나가더라도 공관은 지켜야 하니 주간 말뚝 근무를 종종 서야 한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야간근무시 2명 모두 졸다가 사단장님, 부사단장님이 들어오시는 걸 놓치는 경우입니다. 선임은 초소 안에서 벽에 기대어 졸고, 후임은 좌경계총 상태로 정확하게 서 있긴 한데, 조느라고 받들어총을 안 하는 겁니다. 저도 일이병 때 3번 정도 사고(=찐빠)를 냈던 것 같은데, 그 때마다 사모님이 다시 나오셔서 오히려 간식을 주고 가셨습니다. 하지만 선임과 저는 어떻게 조용히 넘어간다 해도 운전병이 보았기 때문에, 결국 다음 날 군악대 선임들도 모두 알게 되고, 한 딱가리로 이어지는 거죠. 만약 중대장이 알았다면 군기교육대 가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초병들이 졸다 걸린 거 본부 중대장에게 말하지 말라고, 사모님이 남편에게 강하게 얘기하셨겠죠. 지휘관 배우자의 마인드에 대해서도 정말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게, 공관초소라면 본부중대 당직실과 연결된 유선전화 혹은 무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는 그런 게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공관에는 공관병이 있었고, 전화가 여럿 있을테니 그닥 문제는 아니었을 테고, 또 공관이 사단 영내의 꽤 깊숙한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왠만한 비상 사태에도 그닥 문제가 생길만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하여간 초소에도 그게 당연히 있었어야 할 것 같은데, 하긴 뭐 90년대는 여전히 무대뽀 스타일의 한국군이었고, 해병대는 예산도 빠듯했으니...)
사단 정문 경계근무는 헌병대가 했는데, 본부 중대 뒷편 하사관 BOQ 건물에 헌병이 4명 정도 파견나와 있었습니다.
링 차고, 정복입는 병과의 고충을 알기에, 제가 병장이 된 후 가끔 헌병들에게 놀러갔었습니다.
전우회 등 민간행사 다녀올 때 음식도 약간 싸가지고 오는데(아무리 사양해도 막 챙겨주십니다.) 그 음식은 주로 화지대, 헌병대, 주계병 선후임들과 나눠먹었습니다. 행정병과 수송반은 잘 먹고 다녀서 그런지, 별로 관심 없어 하더라구요. 행사나갈 때 버스를 타는데, 버스 운전병(어느 때는 병, 어느 때는 하사)은 한 켠에서 자기 먹을 것 챙겨 먹더라구요.
- 이병은 공관경계근무를 못 나간다고 들었지만, 인원이 17명 밖에 안 되니, 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근무를 나가야 했고, 그래서 전투복과 철모의 계급장을 일병으로 바꿔 달고(=마이가리) 근무 나갔습니다. 이 때 당시 향도병이던 693기 이상현 선임에게 고마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해병대는 안경을 쓰면 안 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저는 안경 대신 콘택트 렌즈를 사용했었고, 훈단에서도 그 때문에 마음 고생, 몸 고생이 무척 많았습니다. 야간에 DI 모르게 렌즈 세척해서 사용하기.
(시력이 안 좋은데, 2번의 신체검사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는지는 사연이 많아서 패쓰~)
하여간, 근무에 투입되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이병이 밤에 몰래 렌즈를 세척하다가 결국 걸렸고,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얼마 후, 이상현 선임이 저를 부르더니, 조만간 나가게 될 근무 중 야간근무에는 안경을 써도 된다고 허락해주었습니다. 아마도 군악대 병장들이 먼저 의견 모아서, 대장님에게 건의했고, 대장님은 중대장의 허락을 받은 거였겠죠. 그 때 많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병장이 된 후에도 내무실에서는 안경을 사용했지만, 행사나갈 때는 렌즈를 사용했습니다.
육해공, 해병대를 막론하고, 전투병과에게는 안경/렌즈 착용이 작전수행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 '나안시력'이 중요한 항목이지만, 비전투병과에게는 제한을 풀어주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729기 강현호는(박현호 였는지 강현호 였는지 기억이 애매), 저와 함께 병 729기 군악대로 대방동 해군본부에서 신체검사 받았지만 떨어진 후 하사관으로 다시 지원해서 결국 입대했고, 2사단 군악대로 첫 발령 받았다가 이후에 사령부 군악대로 전출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이병 후반부 무렵 어느 날 하사 계급장 달고 2사단 군악대로 와서 서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 군악대 인원끼리만 사용하는 특유의 경례법이 있었습니다. '필승' 대신 '수고하십니다'를 줄인 '수합'이라고 경례했습니다. 군악대 이외의 사람 특히 중대장에게 들키지 말라고 해서 조심조심 사용했는데, 하여간 상병 무렵부터 점점 사용 안 하게 되었고, 결국 제가 제대하기 전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 2사단에 도착했을 때는 서장원 중사님이 대장이었는데, 제가 일병 초반 무렵 배경남 중사님이 새로 오셨습니다. 서중사님은 병에서 하사관으로 기레까이한 케이스였고, 전역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중사님 오신 후, 공관근무 나갈 때, 행사 이외에 전투복을 입어야 할 때, 링을 항상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배중사님 오신 후, 악기 신품/중고품을 몇 개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건반, 기타 앰프(Peavey), 베이스기타 앰프(Peavey), 세트드럼 일부 부속(아마도 Ride, Crash 심벌), 트럼펫 뮤트기, 소프라노 색소폰.
(그런데, 적어놓고 보니, 캄보가 연회행사할 때 사용할만한 악기들이네요? 배중사님이 소프라노 색소폰을 직접 불어주신 경우도 꽤 있었던 것 같구요. 그러고 보니 그 무렵 연회행사를 꽤 많이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여간 앰프 브랜드를 기억하다니...)
- 제가 상병 때, 국군의 날 행사 참여를 위해 2사단 군악대에서도 절반 정도의 인원을 뽑아 약 1개월 정도 파견보냈었는데, 캄보는 딱히 필요없어서 모두 남았고, 절반의 인원으로도 사단 행사, 공관경계근무, 작업은 여전히 계속 했습니다. 배중사님도 함께 가셨기 때문에, 그 동안은 강현호 하사가 지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1994년 첫 입대한 기수인 725기부터 포항 훈단에서, 전투복 상하의와 실잠바(야전상의)까지 전부, 국군통합전투복인 우드랜드패턴(개구리 복)으로 지급받았는데, 2사단 군악대에 725기 이후 기수로 처음 온 것이 저(729기) 였습니다. 제 맞선임이 722기 였거든요. 그래서 내무실 도착 후 땅개가 해병대 왔다고 무척 놀림받았습니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 하면, 제가 일병 무렵 전입온 724기, 725기 선임을 통해서 입니다.
93년 마지막 입대 기수인 724기까지는 국방색단색실잠바, 94년 첫 입대 기수인 725기부터는 우드랜드실잠바.
- 739기는 보기 드물게 3명이 한번에 실무에 온 경우여서 기억이 꽤 납니다.
3명 모두 무척 성실했었고, 나름 생각이 깊었던 후임들이었습니다. 민자군복의 마지막 세대와 함께 생활한 개구리 복 시대의 초반 기수로서, 아마 그 이후 기수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을 겁니다.
- 제가 제대할 때 막내였던 747기 김 권의 악기가 기억나질 않습니다. 얼굴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데, 애정이 부족했나 봐요. 미안해요.
(이 글 처음 올렸을 때는, 739기 김민교, 747기 김 권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았다가, 글 올리고 하룻밤 지나는 동안 마치 기적처럼 기억이 돌아와서 글 수정했습니다.)
- 그리고, 제가 제대한 이후 캄보는 상황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브라스는 1종류의 악기를 2명 정도가 연주하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땜빵이 되는데, 캄보의 건반/기타/베이스기타는 티오가 딱 한 명 씩이었고, 하루 이틀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베이스기타는 때려서라도 가르치면 간단한 리듬은 넣을 수 있지만, 기타는 그와는 꽤 다릅니다. 하여간, 722기 선임 제대할 때까지도 건반 후임자를 받지 못 했기 때문에 제가 제대할 때 까지 캄보에서 기타의 역할이 무척 커졌었고, 결국 저도 기타 후임자를 받지 못 한 채 제대했기 때문에, 캄보는 드럼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1사단, 사령부, 각 예하대에서 어떻게든 인원을 찾아내어 전입시켰겠지만, 참... 그 시절의 해병대 군악대는 사람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오디션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브라스 인원의 입대과정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 하지만, 합주가 가능한 정도의 실력이면 입대시켰던 것 같고, 나머지는 빡센 연습을 통해서.
그러다 보니, 제가 근무하던 시절의 인원 대부분은 고등학교 밴드부(=고적대) 출신 고졸이었고, 대학생도 드물었으니,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음대생은 모두 사령부로.
지금은, 해병대의 이미지가 엄청나게 좋아진 덕분에, 군악대에 지원하려는 음대생이 넘쳐나는 시대라서, 입대자의 실력은 물론이고, 숫자도 모자라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참 다행입니다.
사실, 저도 오디션 없이 직행으로 군악대에 들어온 케이스입니다. 2사단 군악대에서 근무했던 645기 선임이 제 과의 89학번 선배였거든요. 제가 1학년 때 2학년으로 복학한 그 형과 1년 동안 학교 밴드를 재미있게 했었는데(저는 고1 때 클래식기타로 시작해 일렉트릭기타까지 취미밴드를 어느 정도 했습니다.), 그 형의 권유로 해병대 군악대에 지원하게 되었는데, 시력이 나빠 떨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대방동 해군본부에서 신체검사 1차 받을 때 당시 사령부 군악대장님이셨던 박흥선 상사님이 직접 오셔서 신검 탈락을 막아 주셨습니다. 그 형이 근무하던 때의 2사단 군악대장이 박상사님이셨는데, 제대 후에도 서로 연락을 하고 지냈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까지 도와주셨던 이유를 실무에 와서 알게 되었는데, 기타 선임이 701기 였고 후임자 찾는 게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701기→729기.
제대할 무렵의 저는, 한편으로는 군대울타리를 벗어난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캄보가 어떤 상황인지 빤히 알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89학번 그 형 처럼, 병장을 달고 난 이후와 제대 후 초반까지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적당한 기타 후임을 찾아내고 싶었으나 못 찾았고,
학교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대장님과의 연락도 점점 뜸해져서...
- 제대한지 25년이나 지났고, 이런 걸 회상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도 기억하는 제 자신이 놀랍지만, 워낙 오래 전이라서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해병대 구타가 심하다고 하며, 특히 군기와 내무생활이 빡쎈 군악대라고 하지만, 심하게 구타 당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적지 않은 얼차려와 구타가 있었지만, 그 때문에 군생활 못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고, 위에 정리한 선임들 이름을 회상해보면, 악습을 대물림 안 하려 노력한 선임들이 더 많았습니다. 또한 적지 않은 얼차려와 구타가 있었더라도, 악기를 연주할 때는 다시 예술을 하는 사람들로 돌아왔기 때문에, 나름 즐거운 기억도 많은 것 같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 파견 때문에 인원이 반으로 줄었지만, 캄보는 그대로 남았는데, 건반 722기 선임과 기타인 저는 이 때가 기회였습니다. 내무생활에서는 좀 엄한 편이었지만, 연주할 때는 둘이 죽이 잘 맞았거든요. 대장님과 선임들 눈치 보느라 하고 싶어도 못 했던 것들 이 때 원없이 연주했습니다. 남아있던 가장 선임병 설득해서 합주하는 것 녹음도 했었구요. 1995년도의 군악대에서 연습하는 것 녹음이라니... 그 테잎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 저도 악습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노력하긴 했지만, 대외행사부서인 군악대로서의 규율과 군기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얼차려는 줬었습니다. 구타는 제 기억으로는 안 했던 것 같은데, 후임들은 어떻게 기억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은 후임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습니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하고 철딱서니 없는 남자들이 모여 있다보니, 사고의 수준이 고만고만 했을 겁니다. 나이 50이 되니 이제서야 그런 게 보입니다.
어쩌다보니, 나이가 꽤 많은 상태로 입대하게 되어(서중사님 가실 무렵에 얘기하다 알게 되었는데, 동갑이었습니다.), 상병 오장 부터는 동생들 꼼꼼히 챙기는 형 역할을 잘 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 했던 것 같아서 지금도 후회가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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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리고 3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우연히 한명의 선임이 더 기억 났습니다.
691기 엄기석 선임입니다.
강원도 사람이었던 것 같고, 얼굴이 약간 갸름하고 붉었던 것 같고, 엄할 땐 엄했는데 그후에 조용히 다독여주던 좋은 사람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악기 기억이 애매합니다. 클라리넷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습니다. 죄송해요.
그리고, 박정기 선임과의 기수가 약간 헤깔립니다.
애매한 기억1이 맞는 건 갖긴 한데, 정확하지 않습니다. 죄송해요.
애매한 기억1: 병689기 박정기, 병691기 엄기석
애매한 기억2: 병689기 엄기석, 병691기 박정기
그러면, 제가 실무에 도착했을 때 군악대 인원이 저까지 총 18명 이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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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배님 환영합니다
그리고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정회원으로 등업되셨습니다
저는 군악동우회 사무국장 340기
김인성 입니다
자주찿아주십시요~^&^
조율래님 대단히 수고많으셨습니다. 이런것이 바로 해병대사랑이고 군악대 사랑이고 전우들 사랑입니다.
책에는 등재를 할 수 없지만 책의 내용을 곧 이 카페에 올리고 거기에 등재하겠습니다. 대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