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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이사야 12:1-6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O7yxRmFpCT0
어느 목사님이 영성훈련에 참석하셨답니다. 스텝들이 천사처럼 대접을 해주었고, 잠자리와 식사도 너무 좋았습니다. 프로그램 중에 침묵훈련이었습니다. 한 마디도 하면 안 됩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과 대화도 못합니다. 그 목사님은 침묵하면서 나름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기상 한 후에 목사님은 세면장으로 갔습니다. 세면장은 많은 사람들도 붐볐기 때문에 불편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도 모르게 “다 좋은데 세면장이 안 좋구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한 후에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침묵 훈련을 하고 자신이 가장 먼저 한 말이 불평이었기 때문입니다. 불평은 우리가 훈련하지 않아도 쉽게 할 수 있지만 감사는 쉽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먼저 마음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 훈련이 필요합니다.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감사거리를 찾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입을 열어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지난 1년 간 필요를 공급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거제로 하는 감사를 나눴습니다. 광야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곡식을 추수한 후에 떡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거제로 드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은 구원에 대한 감사를 나눕니다. 우리의 육체의 필요도 감사하지만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사의 제목입니다.
본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본문 앞부분을 봐야 합니다. 이사야 9,10장에 보면 유대인들의 교만과 완악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십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와 몽둥이로 사용하셔서 경건하지 못한 이스라엘을 치게 하십니다. 그리고서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사용된 앗수르도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앗수르가 심판을 받은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앞에서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분수에 지나치게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판받아 온 세상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 10:21을 봅니다.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멸망한 이스라엘이 회복 되는데 모든 사람이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 남은 자만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성경 66권을 관통하는 몇 가지 맥이 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사상이 ‘남은 자 사상’입니다. 남은 자란 하나님의 구원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불순종과 범죄로 인해 구원이 단절될 위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모든 심판으로부터 보호하여 남겨두신 소수의 의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남은 자입니다.
사 6:13을 보겠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유대인들이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1/10만 남는데, 그들마저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루터기가 남는 것처럼 거룩한 씨가 남을 것인데 그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소수의 의인들을 통해 당신의 구원역사를 계속 진행시키시며, 마침내 완성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약을 관통하는 남은 자 사상을 통해서 신약시대의 참 이스라엘인 신자들의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구원 받는 사람들이 절대 많지 않습니다. 이사야 6장의 말씀처럼 1/10이 남지만 그들도 베임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루터기가 남을 것입니다.
이사야 11장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개 된다는 말씀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인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으로 시작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님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할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사 11:10입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을 예언합니다. 여기서 만민의 기치는 사람들을 소집할 목적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게 만든 깃발입니다. 열방의 남은 자들이 만민의 기치로 서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올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떠나므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막대기와 몽둥이 같은 이방인들을 통해서 멸망을 당하여 온 세상에 흩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인하여 다시 구원을 받고 남은 자들이 돌아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만민의 기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은 육적인 구원을 받았다면 신약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만민의 기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적인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 12장은 구원 받은 자들의 감사 찬송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사야 12장을 통해서 구원에 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구원을 감사하라
1,2을 보십시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1절에서는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2절에서는 구원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씀합니다.
1) 죄에서의 구원을 감사하라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죄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므로 인하여 온갖 저주가 발생했습니다. 저주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과 단절입니다.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신데 생명의 근원과 단절 되므로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를 해결해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엡 1:7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속량 받았습니다. 여기서 속량이라는 단어는 노예들이 자유를 얻거나 죄수들이 석방되기 위하여 돈을 지불하는 속전(贖錢)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속전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꿈에 천국에 갔는데, 천사가 큰 책 세 권을 보여 주더랍니다. “자! 보아라.” 첫 번째 책을 펴니, 새까만 글씨가 빽빽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네 행동으로 지은 죄다.” 두 번째 책을 펴니 깨알 같은 글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너무 작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네가 말로 지은 죄다.” 세 번째 책은 앞의 두 권보다 더 두꺼웠는데, 글씨가 너무 작아 책이 아예 새까맣게 보였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네 생각, 네 마음으로 지은 죄다.” 천사의 말을 들은 그는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엄청난 죄 때문에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천사가 말했습니다. “이 많은 죄가 예수님의 보배 피로 깨끗하게 되었느니라.” 할렐루야!
미 7:18,19입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십니다. 발로 밟는 것은 부수기 위해서입니다. 부순다는 것은 이제 끝낸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물건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쓸 것은 발로 밟지 않습니다. 이제 그 물건은 주인과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2) 멸망에서의 구원을 감사하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멸망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요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멸망을 피부에 와 닿게 말하면 지옥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에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영생을 피부에 와 닿게 말하면 천국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에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관한 진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이나 지옥과 상관없이 고상하게 종교생활을 하는데, 그건 고상한 것이 아니라 미련한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입니다. 사람은 죽음 후에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판을 이기고 천국에 가고 어떤 사람은 심판을 이기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천국과 지옥은 한 번 결정 되면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한 번 결정은 영원한 결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합니다. 절대로 지옥 가면 안 됩니다.
미국의 어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입니다. 네 명의 아들이 평생 믿음으로 살던 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작별의 키스를 요청했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아들에게는 차례로 “엄마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다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에게는 “엄마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다오”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막내아들이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형들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하시고, 저에게는 굿바이 키스를 해달라고 하시는 거죠?”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너희 형들은 예수님을 믿으니 머지않아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나와 영원한 이별이란다. 엄마는 너에게 여러 번 간곡히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했지만 너는 거절하지 않았니! 그러니까 너는 천국에서 만날 수 없기에 굿바이 키스를 하는 거야.” 어머니의 말이 막내아들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결국 그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에서 구원 받습니다. 지옥 갈 사람이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3) 생활의 구원을 감사하라
저와 여러분은 삶 속에서 당하는 어려움 중에서 나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영혼만 구원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도 고치셨고, 다리는 저는 사람들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사람들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죽어서 천국 가는 구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의 구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눅 4:18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초림의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일을 요약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시고,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하시고,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책을 덮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시고,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하시고,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시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은혜는 죽어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누리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생활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 구원의 역사는 개인에게는 물론이고 가정과 사회에도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반드시 개인도 잘 되고, 가정도 잘 됩니다. 그리고 국가도 발전합니다. 과정 중에 고난은 있지만 고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여러분 이재오 전의원 아시지요? 이분은 이명박전대통령이 대통령 되는데 일등공신이었습니다. 그는 이대통령이 당선되도록 후원하면 자기가 국회의원 되는 것은 따놓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문국현 전의원한테 졌습니다. 그때 ‘아, 인생이 이런 거구나. 교만하면 안 되는 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의원임기가 끝난 후에 미국에 갔습니다. 미국에서 연구를 마치고 이왕에 쉬는 것 세계를 한 번 돌자 해서 세계 일주를 했습니다. 그분이 온 세계를 다니면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 불에 도달한 이후 10년 동안 정체되어 있었는데, 3만 불로 올라가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그분이 느낀 것은 국가 청렴도의 문제이더랍니다. 깨끗한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국가의 지도자부터 부패한 나라는 아무리 자원이 많아도 소용없고,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지 못하더랍니다. 공무원들이 돈 받고 건축허가 내주고, 건축업자들이 하청업자들한테 일을 주면서 돈 받고, 그래서 재료가 모자라고 그래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입니다. 이런 뒷거래가 없이 깨끗한 나라, 청렴지수가 높은 나라는 국민소득이 3-4만 불이 넘더랍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는 한 결 같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국가랍니다. 그래서 이재오의원은 우리나라도 앞으로 선진국이 되려면 예수님 잘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복을 받고,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 행복하고,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가 부강할까요? 하나님이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에게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의 문제에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 구원을 누리라
3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넘쳐날 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는 물이 구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목이 마른데 옆에 우물이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물물을 길어먹어야죠. 목마름이 해갈 될 때가지 물을 벌컥벌컥 마셔야죠. 여러분이 배가 고픈데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음식을 맛있게 만족하도록 먹어야죠. 고픈 배를 움켜쥐고 밥상 앞에서 침만 삼키고 있으면 바보죠. 차려진 밥상을 누려야죠. 구원도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침만 삼킬 것이 아니라 누려야 합니다. 구원은 어떻게 누릴까요?
1) 기도로 누리라
우리는 기도로 두 가지를 누립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누립니다. 기도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교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하는 것이라고 말하던데요. 맞는 말이지만 50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에게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에게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기도하는 당사자를 위한 시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위한 시간입니다.
세상에는 필요한 것도 많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기도의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로 생활의 구원을 누린 한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다가 친구의 사업 보증을 섰다가 잘못되어 망했습니다. 처음에는 낙심하여 하루하루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안 하던 새벽기도도 매일 하고, 저녁마다 부르짖었습니다. 그걸 본 사람들이 “저 가정이 다시 일어난다면, 진짜 하나님은 살아계신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걸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기도하다가 감동이 와서 집을 개조해서 인형가게를 만들었습니다. 2평도 안 되는 작고 초라한 가게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자아이들이 몰려오고, 다른 동네 아이들까지 몰려왔습니다.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굉장히 못생긴 배추머리 인형을 많이 샀습니다. 그때까지 인형 하면 머리 길고 피부가 곱고 늘씬하고 옷을 잘 차려입고 뾰족 구두를 신은 백설공주 타입의 인형을 생각했는데, 그러한 기준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입니다. 결국 망했던 그 집은 배추 머리 인형의 총판권 덕분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저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섰다. 아마도 배추머리 인형이 유행한 것은 저 집사님의 기도 때문인 것 같다”라는 말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기도로 생활의 구원을 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2) 성령으로 누리라
3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는 말씀은 성령충만을 말합니다. 요 4:14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는데, 그 생수는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납니다. 요 7:38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주님이 주시는 생수의 강은 우리가 주님을 믿음을 때 우리의 배에서 흘러납니다. 그런데 이 생수의 강은 바로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요 7:39입니다. “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충만하면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는 것입니다.
제 스승 목사님이 은혜 받기 직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의도치 않게 교인들과 함께 기도원에 가시셨습니다. 기도원 안에서 사람들이 찬송하고 기도하는데, 거부감이 생겨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굉장히 촌스럽게 생긴 여자 분이 애기를 업고 나오더니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들어와 봐유! 먹지 않아도 배불러유!” 그 여인은 성령의 술에 취한 것입니다. 그분은 땅을 딛고 살지만 천국을 경험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롬 14:17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으로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늘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3) 맡김으로 누리라
눅 4:18에 보면 주님의 초림의 사역 중에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사역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으로 인한 자유를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눌린다는 말은 인생의 짐 때문에 고통당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1:28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염려입니다. 염려는 마음의 가시입니다. 마음에 가시가 있으니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답답합니다.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어깨에 1kg짜리 아령을 얻고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1kg이니까 별 것 아닐 것 같지요. 잠시 있는 것은 괜찮지만 계속해서 메고 다니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20kg 쌀 포대만한 짐을 지고 살고 어떤 사람은 80kg 쌀 포대만한 짐을 지고 삽니다. 그러니 인생이 눌리고 지치고 무기력해지고 생기가 없는 것입니다.
벧전 5:7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6.25 직후에 한 미군 운전병이 트럭을 운전하고 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짐을 이고 가더랍니다. 운전병은 그 할머니를 도와주고 싶어서 트럭을 세우고 할머니를 태웠습니다. 운전병이 한참 가다가 룸미러로 보니 할머니가 트럭 뒤에 서서 머리에 짐을 이고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차를 세우고 할머니에게 “할머니 짐을 차에 내리시고 편하게 가세요.”라고 말하니 할머니가 “내가 탄 것만도 미안한데 어떻게 짐까지 내려놓아요.”라고 하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천국 열차에 탔습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의 짐도, 경제적인 짐도, 사람의 짐도, 무슨 짐이 되었든 모든 짐을 주님에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주님이 가장 좋은 결과를 주십니다. 우리가 볼 때 문제가 큰 것 같아도 주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주님에게 맡기셔야 합니다. 그래야 쉼을 얻게 되고 구원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구원을 선포하라
4-6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4절에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만국 중에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이 하신 극히 아름다운 일들을 온 땅에 알게 하라고 하십니다. 6절에서는 크신 하나님을 소리 높여 부르라고 하십니다. 정리하면 구원 받은 사람은 구원을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누구에게 선포해야 할까요?
1) 자신에게 선포하라
한 사람이 귀신이 들려 발작을 하곤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그를 찾아가서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라고 하루에 300번씩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대로 선포했더니 곧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그 사람은 선포를 통해서 자기의 믿음이 세워졌고 그 믿음으로 귀신이 떠난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눌림이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을 자신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대로 눌림으로부터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가난에 눌리고 있다면 부요함의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고후 8:9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선포하시면 부요함의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선포를 들으시고, 선포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대로 환경을 바꾸시기 시작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질병이 있다면 주님이 주시는 건강을 선포하세요.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시므로 나는 나음을 입었다. 나는 질병과 상관없다.” 함께 해보세요.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시므로 나는 나음을 입었다. 나는 질병과 상관없다.”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다면 주님이 문제로부터 승리하게 하신다고 선포하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신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말씀을 선포해서 자신의 믿음을 세우는 것입니다.
2) 마귀에게 선포하라
김홍도목사님께서 살아계실 때 무당 귀신에 집혔던 여자가 무당 되기 싫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가 교회에 나오려고 하면 귀신들이 둘러서서 교회에 못 가게 가로막는 것이 눈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통성기도를 해도 귀신이 안 나가고, 안수기도를 받아도 안 나가더랍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감동대로 그 여자 분에게 선포를 하게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나는 마귀를 이겼다”, “나는 예수님 피로 죄 사함 받았다” 목사님이 처음에는 따라하라고 했더니, 입을 꼭 다물고 안 따라하고, 반대로 “나는 마귀의 딸이다.”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잘 달래서 따라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귀신이 “에이, 나가야 되겠다. 나가야 되겠다.”라고 말하더니 그날 밤에 귀신이 그 자매에게서 나갔습니다.
약 4:7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우리가 마귀는 대적하면 마귀는 우리를 피합니다. 우리가 대적하지 않으니 마귀가 우리를 누르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은 첫째,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한다. 예수님의 피로 마귀를 대적한다. 마귀야! 떠나라. 가난을 가지고 떠나라, 근심을 가지고 떠나라. 병을 가지고 떠나라” 이런 식으로 대적하면 귀신들은 떠납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귀신은 힘을 잃고 떠나갑니다.
3) 잃어버린 영혼에게 선포하라
레이젤이라는 소녀가 성폭행 당하고 임신을 했습니다. 그는 신앙 양심상 낙태할 수 없어 딸을 낳아 입양시켰습니다. 그리고 후에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26년이 지난 어느 날, 여러 경로를 통해 생모 소재를 파악한 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딸은 자신이 성폭행 당한 불행한 아이로 태어난 것을 양부모로부터 전해 들었답니다. 딸은 생모인 레이젤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훌륭한 양부모를 만났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딸을 낳았어요.” 그러나 레이젤 목사님은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2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딸이 울면서 이런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태시키지 않은 것을 감사해요. 사실은 제가 믿는 예수님을 어머니도 꼭 영접해서 구원받으시라고 전화를 드렸어요.” 딸은 자기를 낳은 생모가 목사인 줄도 모르고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 딸은 어머니가 혹시 예수님을 믿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해서 복음을 선포하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시대와 같은 때를 살고 있습니다. 그때는 세상이 물로 멸망했는데, 이제는 불로 멸망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확한 멸망의 때는 모르지만 모든 사람은 개인의 종말 앞에 서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하나님에게는 잃어버린 영혼입니다. 그들은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돌아옵니다. 전도가 미련해보여도 하나님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먼저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옥에 간다면 어떤 사랑도 헛된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한다면 전도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가지 않고 천국 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전도보다 큰 사랑은 없습니다.
오늘은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1. 구원을 감사하라
1) 죄에서의 구원을 감사하라
2) 멸망에서의 구원을 감사하라
3) 생활의 구원을 감사하라
2. 구원을 누리라
1) 기도로 누리라
2) 성령으로 누리라
3) 맡김으로 누리라
3. 구원을 선포하라
1) 자신에게 선포하라
2) 마귀에게 선포하라
3) 잃어버린 영혼에게 선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