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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3) 심령이 가난한 자
구약이 종결되고 신약시대의 문이 열리기까지의 400년 동안의 침묵의 기간에는 천사의 현현이나, 여호와를 대변하는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택받은 백성들이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시작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의 사역이후 계속되었던 침묵을 깨뜨렸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땅에서의 여러 가지 활동과 귀한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마태복음 5, 6, 7장을 산상보훈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산상보훈을 "그리스도의 전교훈의 대요약", 2절 입을 열어 가라사대 =이 말은 예수님께서 오랫동안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말씀하셨으나 이제는 자신이 집적 입을 열어 자유스럽게 권세 있는 자와 같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수백 개의 보석으로 꾸며진 왕관", "하나님나라의 대헌장"이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민족지도자 간디는 비록 크리스챤은 아니었지만 그의 평생에 산상보훈을 애독하였고 생활철학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또한 역사를 움직인 많은 사상가들이나 지도자들이 이 산상보훈의 교훈에 매료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산상보훈 가운데서도 핵심은 8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산에 올라가셔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 축복받는 비결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①심령이가란한자. ②애통하는자 ③온우한자④의에주리고목마른자 ⑤긍휼히여기는자 ⑥마음이청결한자 ⑦화평케하는자 ⑧의를위하여박해를받는자. 복이있나니
오늘우리는 8복중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란는 복이있다는 말씀을통하여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1.가난한 마음
눅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3절"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자기스스로 의롭다고 여기지 않는 자를 말한다. 즉 영적 가난을 자각하게 된 자 들이다. 또한 이러한 바는 자신의 칭의 를 위하여그리스도의 공로만을 의지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성화를 위해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를 의존할 수 있는 자이다. 그들에게는 천국을 소유할 특권이 주어진다. 왜냐하면 은혜의 왕국은 심령이 가란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만이 ‘가란한 자의모임’이라 시74:19주의 맷비들기의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마시며 주의 가난한자자의 목숨을 영영히잊지마소서. 이라 블리우는 그리스도 교회의 일완이 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심령이 가난하다고 말할 때 그 가난은 (헬)'프토코스'인데 이 말에는 [겸손한 마음,] [의지하는 마음,] [비어있는 마음,] [구하는 마음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가난한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물질적으로 부유해지면 교만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가난은 스스로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영적인 가난입니다.
영적으로 부한 사람은 "자기 의에 도취된 사람"입니다.
눅18장 9-12절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스스로 잘 믿는 것처럼 착각하여 기도할 때 성전 가운데 들어가서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옵기는 나는 토색도 아니하고 불의한 일은 한 적도 없고 기도도 하며 십일조도 바쳤습니다. 저는 저 세리들과 같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가난한 자 즉 세리는 "오! 하나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18:13)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며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를 외면하시고, 세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어거스틴(St, Auguatine)은 크리스챤의 가장 큰 덕목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어느 제자가 그러면 겸손의 반대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교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시교만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엔드류 머레이는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이미 겸손을 잃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진실로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에 말씀하시길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잠15:33)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3:3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가난한 마음은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구하는 마음입니다.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마음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1-32절까지를 보면 탕자가 재산이 있고, 건강할 때는 먼 나라에 가서 자기 마음대로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재산을 다 날리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써 아비의 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의지하는 마음, 필요로 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게 되면 무엇을 구하려는 강력한 소원을 품고 살아갑니다. 가령 끼니가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먹을 것만 있었으면"밥이라도 실컷 먹어봤으면"하고 소원합니다. 또 집 없이 셋방으로 전전하시는 분은 "오두막이라도 내 집 하나 있었으면"하고 강렬하게 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면 또 다른 욕망이 생기지만 가난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단순화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가난하게 되면 영의 양식 곧 진리의 말씀을, 영의 안식처인 하나님의 나라를 강하게 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적갈구가 있습니다.] 진리와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요8:32진리를 알찌니진리가너희를 자우케하리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 의지하고 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2. 복 있는 사람
“복”(헬)에쉐르:(히)마카리오스)=성경은 모범적인 경건한 사람에게 축복을 선포 할 때“복”있는 자다. 또는 복 있을 찌어다라고 복을 선포하는 말씀으로 산상설교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8복을 말할 때에 나오는 복이라는 말은 (히)마카리오스인데 여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복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나 속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성경의 기자들은 '복되신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 이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딤전1:11절에서 바울은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딤전6:15절에서는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행복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서만 인간은 참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죄인이 십자가 앞에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행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복이라는 말에는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 행복은 소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 드리는 것에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 드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소유의 철학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리 소유하여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헌신의 철학에서 행복한 삶을 찾는 사람은 가장 작은 것을 드리고도 말할 수 없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드리는 것을 배우는 순간부터 인간은 놀랍게도 자유를 경험합니다. 예배의 정신은 바로 드림의 정신입니다. 행복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데 있습니다.
(셋째로, 복이라는 말에는 다른 사람의 생애 속에 '기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복이란 말은 "누군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좋은 이야기를 해준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상에 대하여
롬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복수와 원한의 감정은 복수 당하는 자와 복수하는 자 모두를 파멸시킵니다. 용서만이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를 다같이 축복합니다.
행복은 이웃을 축복하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행복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애 속에 무엇인가를 기여하는 데서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용서할수 없는 사람을 용서 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때 마음의 천국은 이루워 지는것입니다.
3.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본문3절에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천국을 사모합니다.
10-12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크리스챤들은 천국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국을 소유하려면 심령이 가난해야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삶에 천국이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서 있는 곳에 여러분 생활속에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의 삶을 마친 후에는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저 천국에 올라가 영생복락을 누리시기를 소망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가난한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이러한 천국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천국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서 날마다 이루어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자만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시온성교우 여러분! 가난한 심령을 가지십시오.
그리 할 때 천국이 여러분들의 것이 될 줄 믿으시기를 주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마 5 : 1 - 12
구약이 종결되고 신약시대의 문이 열리기까지의 400년 동안의 침묵의 기간에는 천사의 현현이나, 여호와를 대변하는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택받은 백성들이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시작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의 사역이후 계속되었던 침묵을 깨뜨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구약 성경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셔서 3년반 공생애 기간동안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됨을 가르치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6장에서 7장까지를 산상수훈 또는 산상보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산상보훈을 대하는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숭고하고도 심오한 교훈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산상보훈을 가리켜 '수백의 보석으로 꾸며진 왕관'이라고 하기도 하고, '산상보훈은 그리스도의 전 교훈의 요약이다'
'이는 세계 문학계에 있어 최고의 강화였다' '이는 인간 윤리의 최고봉이다'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모든 종교의 서곡'이라고 하며 또 어떤 이는 '산상보훈은 천국의 대헌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8복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 8복은 어떤 특수한 사람들을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런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 8복은 태어나면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은 우리 신앙의 계단과 같습니다.
우리가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 갈 때에 높은 곳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우리들의 신앙의 성장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 이 4가지 복은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나를 다듬어 나가는, 나의 수양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5번째 복 - 긍휼히 여기는 자는, 6번째 복 - 마음이 청결한 자는
이제 자신에게서 남에게 눈을 돌립니다. 내가 은혜 받고, 내가 복 받고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눈을 다른 사람에게 돌립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7번째 복인 "화평케 하는 자"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 세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신앙의 초보적인 단계에서는 내가 예수 믿고, 내가 복 받고, 내가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면 내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어떻게 세워 나갈 것인가?
어떻게 세상 속에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인가를 생각하며 주님을 위하여 땀을 흘리고, 주님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수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나 물질이나 명예나 성공에서 자기의 행복을 구하기 위해 그들의 인생을 투자하지만 거기에는 진정한 행복이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결코 세상 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세상의 모든 것을 수단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목적 삼는 거룩한 행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에 집착되어 있지만 성도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3절을 통해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들을 때 천국 시민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1. 심령의 가난은 영적인 가난입니다.
여기 '심령은' '영'으로 또는 '마음'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심령'을 빼고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착취를 당하는 식민지 백성으로서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선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저들이 고대하는 메시야는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통치에서 자유와 독립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시각으로 예수님을 보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난에서 부요를 줄 수 있는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에게 먹이시는 기적을 베풀자 왕으로 추대하려는 모습들로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 번째 복이 물질적 가난에 대한 것이었다면 성도들은 먹지 못해 굶주리는 기아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물질적 가난이 축복이라면 전쟁이나 자연 재해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돕는 것은 곧 반 기독교적인 행위라고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물질적 가난에 국한되었다면 교회는 어떤 구제도 행할 의무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3절은 결코 물질적 가난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땅의 것을 찾는 어리석은 삶보다도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삶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2. 심령의 가난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은 타고난 어떤 행위의 열매는 아닙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된 자들 속에서 역사하신 성령의 영적 은혜입니다.죄로 얼룩진 자기 모습,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형벌 앞에 서 있는 자기 모습을 보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달고 죄를 고백 할 수 있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영적으로 파산된 상태에 있음을 아는 자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 타락하고 부패했음을 들여다보는 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이상을 보게 되었는데 영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뵈옵고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본 모든 죄인의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베드로도 주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마는 고기를 잡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 두배에 가득 채우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롬7;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뵙게 되면 자신이 내세운 정결함, 거룩함, 의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죄악으로 가득찬 자신을 보면서 사10;5 그때에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을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34편 18절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부정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3. 심령의 가난은 겸손입니다.
심령의 가난이란 마음의 겸손성을 가리킵니다.
자신은 무가치한 존재로 생각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심령의 가난은 교만과 반대되는 표현입니다. 교만이야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대적하게 하는 고질적인 죄악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기 위해 바로 앞에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고 요구하자 애굽 왕 바로가 "여호와가 누구관데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노라"(출5:2)고 함으로 그의 교만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지만 교만한 자는 대적하십니다(벧전5:5, 약4:6)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은 할 수 없는 죄인인 줄 알고 하나님만이 나의 구주시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이시라는 것을 믿는 겸손한 자는 복된 자입니다.
(우리의 고백 속에 언제나 '주여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주님 없이는 감사도, 기쁨도, 감격도 없습니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겨 주소서, 라는 겸손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은 부족하고 할 수 없다는 겸손한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엡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4. 심령의 가난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가난하기에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하기에 주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34편 6절에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5편 10절에서도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모습은 돌같이 딱딱한 마음입니까. 내마음은 돌덩리같이굳은마음이여서 누구도 들어 올수 없습니다. 내심령이 먼저 열려야합니다 옛 사람은 세상만을 의지하게 하였지만 이제는 성령으로 거듭난되야 될줄 믿습니다. 마음의 문이 열려야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모든 환난에서 건져 주시는 분, 우리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져 주시는 분이 계시기에 그 분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늘의 기업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새 생명을 얻은 자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매일 인생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자는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기에 자기 십자가를 질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하나님 없는 시대마다 혼란이었고 멸망뿐이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만 의지할 때입니다.
지금예수님께서 여러분 문앞에서 문을두드리고 계십니다. 밖에는 손잡이가 없기 때문에 내가 문을 열지 안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 청년을 보십시오.
자기의 재물에 부요함을 느낀 이 청년은 마음이 가난해 질 수 없어서 슬픈 기색을 하고 주님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이 세상 재물을 의지하는 불쌍한 자였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국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심령의 가난은 영적인 가난으로 자신이 철저히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고백하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 하나님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요, 능력이요, 구원이요, 소망이 되심을 아는 사람만이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베푸신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천국을 소유하며 사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2025.03.02.
시온성 주일강단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