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규-모더니티에 관하여
-분야: 어문 > 수필 > 중수필/평론
-저작자: 고석규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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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비평가 페이터는 저서 「프라토니즘」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헤라크리토스의 만물유전설 같은 것은 한 시대에 그 신기한 것으로 경악을 이루지만 그 근원에 있어선 어딘지 자연적이며 미완적인 정신자체의 본질이 존재하여 언제나 인간을 거기로 끌었던 것이다."
페이터는 헤라크리토스의 만물유전설이 본질적 정신과의 등차를 범한 것으로 믿는 것이며 어디까지나 "신기한 것으로의 경악" 이 비영구적 현상임을 지적한 것이다.
물론 프라토니즘과 모더니티는 상당한 거리지만 우리 주변에 있어서 모더니티의 인식이 어떤 헤라크리토스적 착오에서 남용되고 있지 않는지에 대하여 의구하는 일면 나는 거기에 나대로의 한 시론을 가하고 싶었던 것이다.
도대체 20년 전에 우리나라를 풍미한 소위 모더니즘의 모토는 시에 있어서의 「의미적 수립」이었다.
「과거의 시」와 「새로운 시」를 분별하여 이에 형태적 비평을 가하였던 대표자 김기림은 부정적 과거와 대립하는 긍정적 현대에서 모든 시는 과학적 기만에 체계에 일층 집중되는 것으로 말하였다.
그의 논집 『시의 이해』는 기계문명의 입장과 동등한 것이며 특히 현대적 경악을 전달함으로써 가장 효용 있는 것이라 하였다.
경악의 전달! 그것은 바로 현대적 도시에 발생하는 모든 속력적 사건성을 시에 리듬화하는 일이였다. 그것이 과거의 낭만자연적인 리리시즘을 압도한 소위 모더니티라고 불리워진 것이었다. 1933년 기림은 "모더니티 이콜 「엑쓰타시」" 라는 말을 썼다. 그가 말한 「엑쓰타시」의 발전체인 현대시는 「시간적 공간적 동존」과 미래적 비약을 위한 이마아쥬를 새로히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의 모더니티적 시험을 그는 운동시에서 시작하여 관심적인 청치시에 유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와같은 시의 모더니티적 사건성이 세계적 사건성으로 번지기 전에 시대적 사건성으로 기울어진 것은 우리나라의 경향파가 격증(激增)한 객관성도 있었으나 기림 자신이 처음의 실험적 방법을 중지한 사실이나 소설가 이상이 자기비극을 극복할 수 없이 희생된 사실은 결국 모더니즘 자체내부에 하나의 분열적 약속이 어쩔 수 없었다는 본능을 드러내는 것이라 본다.
어쨌던 모더니티 이콜 「엑쓰타시」라는 어마어마한 수식을 남긴 김기림이야말로 오늘날 점출(點出)되는 소위 모더니즘의 모든 착오를 책임져야 할 무시할 수 없는 장본인인 것이다.
20년 전보다 풍부한 외래어 전문어의 나열로써 모더니티 이콜 「엑쓰타시」의 과민을 버릴 수 없는 그들이 범한 것 중의 하나로서 리리시즘의 분리와 이에 대한 배격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기림적 반추로써 가장 보수적이며 어디까지나 안티 모더니티한 것이 리리시즘이란 속단에 더욱 과감한듯하다.
이러한 속단에 대비하여 천상병씨는 「패배를 규환하는 일군」이란 단문 속에서 모더니티에 불가결한 전통성의 회복을 강경히 주장한 바 있었는데 그 후 「현대시의 경위」에서 김차영 씨는 리리시즘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전통성" 으로 이해하고 그것은 휴매니티와 분렬되는 것으로 논평하고 있다.
물론 나는 천씨가 충분치 못한 점을 매우 유감하는 것이나 그렇다고 김씨의 소위 전통시(?)라는 범주적 개념을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잠깐 모더니티와 전통성의 문제를 제쳐놓고라도 모더니티가 리리시즘을 배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조건과 병행하여 먼저 리리시즘이 안티 모더니티란 그 사실의 여부를 우리는 검토해야 될 것으로 본다.
김씨는 씨가 규정한 전통적 리리시즘이 가장 비지성적이란 것과 현대적 이미지나 쇼, 과다포마쇼에 결핍한 관념생산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하였는데 이와 같은 해석방법을 20년 전의 과거적 리리시즘과 20년 후의 리리시즘을 동일시 하여버린 극히 등차적 맹점에서 유도된 것으로 알려진다. 적어도 나는 김씨와는 엄청난 나의 견해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김씨는 이러한 동양적 근원에 의한 소위 전통적 리리시즘이 어디 개인적 범주에서 탈피하였는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사실 시의 모더니티란 엘리어트가 지적한 바 「개성으로 부터의 도피」인 것이며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것으로 알려졌고 여하한 종류의 시라도 이것을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엘리어트는 「시적 경험」에 내포되는 역사의식을 무엇보다도 강조하였으며 「개성의 멸시」로써만이 시에 총체적인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라 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엘리어트는 가장 지성적인 전통주의자인데 그에게 있어서 전통이란 한 마디로 모든 역사와 조류 속에서 발견되는 불멸적 결합 또는 가장 세계적인 질서를 지칭한 것이라 본다. 엘리어트의 모더니티란 어디까지나 「과거적 현재」에 의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전통과 모더니티는 가장 유기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우리는 기림적 선동이 지난 뒤 사실 뚜렷한 시의 전개나 변혁적 사실을 괄목할 수는 없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시의 무서운 전통기였다는 것을 새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에스프리 느우보의 가장 전형이었던 지용과 인간적 극복에 시종한 서정주, 유치환 제씨와 동양적 반문으로 나타난 청록파 시인들은 사실 이 기간을 대표한 것이였다. 나는 이들 시인에게서 발견되는 존재적 구속과 또는 조응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도피적 정관적 리리시즘에서 반발적 적극적 리리시즘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통적 노력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약을 위주로 하는 소위 모더니스트들이 생각하는 바 이 시간적 공간을 우리는 오히려 부정할 수 있는 것이며 우리 시사의 두드러진 명맥을 여기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와 같은 노력적 기간을 치른 리리시즘의 현재는 어떠한가.
2년 전에 청록파의 한 사람인 조지훈씨는 「시의 전기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시의 무의미한 질식을 경계하면서 "세계적 인식은 생명의 종합성" 이라고 피력한 일이 있다.
氏에 있어서 생명의 종합성이란 그대로 詩[시]에 있어서 모더니티 이콜 존재라는 말로서 바꾸어질 수 있는 것이라 보아진다.
우리는 김춘수의 근작 「隣人」과 김구용씨의 「산재」 「오늘」과 같은 작품에서 이러한 향기를 강하게 맡을 수가 있었다. 사실 모든 시인들이 이 전기적 모색으로 나가고 있다는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인즉 그것은 가장 긍정적인 출발이며 리리시즘의 구경적(究竟的) 실천이 제반 폴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기에 노출케 한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또 원시적인 태동과 전일적 사상으로 시의 총체적인 기능을 더욱 확충한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볼 때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서구에 있어서 공동으로 제기된 휴매니티의 회복이니 옹호니 하는데 있어서 시가 레지스땅쓰나 사회적 앙가아쥬로 또는 종교적 통일로 대개 전기되었음을 우리들은 여거라지 면에서 용인할 수가 있었다.
간단히 살필진데 엘류알, 쯔아라, 아라공 등의 경향화와 엘리어트, 싯드웰, 레인 등의 종교적 배경은 모두 세계적 질서를 인식하는 그들의 이유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에즈라·파운드는 그의 시론인 『How to Read』에서 시의 논리적 미를 Logopoeia라는 말로써 적었는데 이것은 시의 종국적 단계이며 모든 시가 여기에 크로오즈엎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엘리어트의 『황무지』에 있어서 「풍요한 제사」라는 그 종교적 내면과 파운드의 「詩章」Canto에 나타난 이미지즘의 통일에 있어서 그들의 무의식적 부분이 오히려 강한 의식적 전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의식적 전체는 조씨가 지적한 세계성의 인식 또는 생명성의 종합으로써 형성화된 것이라 하겠다.
지금 우리는 가장 현대적인 시의 흐름이 어떤 위기적 분렬적 습성을 털고 본연적이며 질서적인 수립으로 나가고 있음을 극히 주목할 수 있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에 있어서 식민지 풍경이니 오후적 전망이니 하던 20년 전에 에스프리를 극복하기 위하여 일어나는 신사실파니 신즉물주의니 하는 것이 모두 해체적 효과에 예리한 반항을 시도하는 그 단적인 표시일 것이다.
이와 같은 표시는 그만큼 모더니티의 인식을 개변하는 것이며 엑쓰타시적 사치에서 떠나 전체적이며 세계적이며 생명적이며 존재적인 것으로 전기된 필연성을 약속하는 것이 된다.
오늘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적인 것에 대하여 경례(敬禮) 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전의식을 호소한다면 시는 실존적 인간을 모더니티에 더 강경히 충전시킬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의 극한적 신앙으로 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또한 점령하는 것이 될 것이다.
고로 모더니티란 자아를 버릴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아적 연소와 아울러 무의식적 현실을 의식적 현실로 귀환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20년 전의 도피적 리리시즘에서 부분적으로 각성치 못하였거나 그것을 잘못 알면서 오히려 엑쓰타시적 경악으로 질주하는 사이비 모더니티가 있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여기에 예리한 격론을 가하여야 할 것이니 하물며 그것이 전통에 대한 맹목적 반박과 리리시즘의 분리를 그 규약으로 성립시킨다면 이와 같은 등차는 극히 유해로운 것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말초적 언어의 타락을 본질적 언어의 건강으로 회복하는 노력만으로도 모더니티는 가장 내면적 수립에서 존재와 일치한 것이다. 따라서 모더니티는 종합적 의식을 통한 표현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내 시론을 보충하기 위하여 여기에 가장 전형적인 현대시 두 편을 들기로 하겠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壕)안에는
아얘 들어오시덜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중략)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려움을 풀 수는 없었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이제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 때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털어시리라
(박남수, 「꽃씨를 받으신다」)
이 시는 가장 완전히 개성에서 도피한 리리시즘에 의하여 있다. 여기엔 어떠한 테포르마숑도 제거되고 있으나 그것이 더 진실한 테포르마숑일런지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시인은 20년전 아닌 현대에 살면서 현대를 읊고 노래한 따름이다. 이 시인은 현대주의자가 아닌 것이며 그저 현대인인 것이다.
여기엔 경악의 전달이라곤 전혀 찾아 낼 수가 없다. 이 시엔 공간과 시간이 얼마든지 동존하여 있는 것이다. 아브슐드의 고뇌인 전쟁과 그러한 전쟁에도 꽃씨를 받고 계시는 할머니의 강렬한 휴매니티, 지구가 깨어져도 꽃씨를 털으시라는 미래적 긍정을 우리는 한마디로 안티 모더니티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호(壕)밖으로 머리를 들어도
총알이 오지 않는다.
JET와
엎드러지는 것
이 있었다.
의자와
RILKE…… 또
협주곡 BRANDENBURG와…
이동한 탱크 중대의 리앙 일등병이 깡통에 끓인 것이 겉을 「파라휜」으로 싼 야전투용 커 ― 피였다. 그는 자랐다는 「후로리다」의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강아지와 비슷한 모습의 여인을 말하였다.
곤충채집과 그리고 무엇도
못했던 것 같다…… 여름 방학기 장마였다.
구름과 구름 주변에
JET가 없는
구름 뿐이다.
머리를 호 밖으로 들어도
총알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머리가 있는 壕[호]
(전봉건, 「그렇게 머리가 있는 壕」)
시 「철조망」과 같이 이 시인은 전쟁의 현대적 무한공백에 완전한 이마아쥬와 다양한 「인간」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한 아마아쥬는 전혀 무의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위에 다른 현실을 정비하고 싶은 가장 리리칼한 비약인 것이다.
소위 모더니즘을 「용기적 유형」으로 비방하는 이 시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인간적 투기와 저항이 그의 모더니티를 완전케 하였으며 여백의 전개가 가장 차원적인 것을 여하한 사람도 부인치 못할 것이다. 의식의 흐름에 대한 난해적 의무를 이 시인은 보기 좋게 초월한 것이다.
오늘날 이마지이즘을 과장하면서도 「백록담」 첫 구절보다 못한 미시성에 감금되었거나 감성과 지성을 끝까지 배반된 것으로 착각하며 현실과 초현실의 대립만을 아직껏 고집하는 모든 과민적 현대주의자들은 Logopoeia의 구경적 목적을 새로히 밝힐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계제에서 우리들 전면에 작용하는 현대를 전의식하며 전표현함으로써 모더니티는 엑쓰타시적 경악을 얼마든지 극복할 것이다. 20년 전의 「의미적 수립」이 「존재적 수립」으로 전기되는 오늘 모든 철학사는 헤라크리토스에 저항하는 프라토니즘의 개가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 아닌가.
《1954》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