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더링 하이츠’는 선한 의도가 빗나가는 비극적 아이러니와 반대로 악한 의도가 좌절되는 반비극적인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계획된 복수는 애정 때문에 좌절된다.
○미완의 사랑 비극적 복수
리버풀에 볼일을 보러 갔던 언쇼는 아이들에게 약속했던 선물 대신 외투에 싸인 더러운 집시 아이를 가족들에게 내놓는다.워더링 하이츠의 가족을 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이 책의 주인공은 이렇게 등장한다.그에게는 히스클리프라는 이름이 주어지는데,영국의 황야에 무성하게 피어나는 히스와 클리프(절벽)의 합성어인 그의 이름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영국 북부의 황량하고도 거친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며,그의 기질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언쇼가 죽은 뒤 주인집 아들 힌들리의 멸시와 박해 속에서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성격으로 성장한다.그에게 유일한 희망과 위안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와 기질적으로 유사한 주인집 딸 캐서린과의 운명적 사랑이었다.캐서린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의 폭풍우 같은 몸부림,굴복할 줄 모르는 강인함과 꾸밈없는 장난기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힌들리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함께 황무지로 달아나서 야만인들처럼 종일 쏘다니고 나면 그들에게는 채찍질이나 금식 같은 벌이 기다렸지만 그들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캐서린이 이러한 운명적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웃 부잣집 드러쉬크로스 그레인지의 얌전한 미남 도련님 에드가 린튼을 결혼상대자로 택하자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를 떠난다. 3년후 그는 신사의 모습으로 돌아와 17년에 걸친 복수를 시작한다.히스클리프의 검은 눈이 어두워질 때는 폭풍 전에 검은 구름이 모여들 듯,그의 광포한 성격이 그 위세를 떨칠 때는 살을 에는 북풍이 언덕 위를 몰아치는 듯한 혹독함을 보인다.히스클리프라는 사랑과 복수의 폭풍이 불고 간 자리에는 여러 인명이 꽃처럼 스러져 간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목표대로 워더링 하이츠와 드러쉬크로스 그레인지를 모두 자기 소유로 삼고,힌들리의 아들인 헤어튼과 캐서린의 딸 캐서린 2세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은 히스클리프는 그들 사이에 싹트는 사랑을 보고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에 무산되는 무상함을 느낀다.자선심에서 시작된 언쇼가와 히스클리프의 인연은 사랑의 좌절이 복수로 왜곡되는 과정을 거쳐 다시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다.
○애증은 자연변화와 닮아
에밀리 브론테는 빅토리아시대 초기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시대인들을 끊임없이 사로잡았던 도덕적 세계관을 초월한 모습을 보여준다.‘워더링 하이츠’는 오히려 선과 악은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정체성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상황의 일시적 조합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범주라는 현대적 사고를 예견한다.비바람을 몰고오는 거친 자연이 봄날에는 화사한 햇빛과 미풍과 소생의 축복을 가져오듯 인생과 선악과 애증의 추이를 브론테는 유사한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못 이룬 사랑이 남긴 시련의 폭풍은 가혹하고 잔인한 것이었으나 그 결과는 소생의 봄을 약속하는 자비로운 것이다.폭풍 속에서 살아남은 캐서린과 헤어튼은 린튼가의 온화하나 유약한 기질과,언쇼가의 강인하나 절제를 모르는 기질의 단점을 제련하여 강인한 기질과 인내심,생명력을 지닌 새로운 세대로서 못 다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지상에서 이룰 수 있는 주인공들로 태어난다.
○증오의 계획 사랑에 좌절
아이러니는 문학의 주요한 자산이다.인간이 계획하고 의도한 바와 끊임없이 빗나가기만 하는 운명의 아이러니는 위대한 비극문학의 핵심이다.한국인들이 깊이 사랑하는 토머스 하디 문학의 정수도 바로 이 비극적 아이러니다.비극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자신 안에 자신이 찾고 있던 타자인 죄인을 발견한 외디퍼스의 경우다.‘워더링 하이츠’는 그와 정 반대되는 반비극성을 드러낸다.타자였던 히스클리프가 워더링 하이츠와 드러쉬크로스 그레인지의 주인이 된 후,안간힘을 다하여 타자화하려 했던 헤어튼과 캐서린 2세는 결국 자신과 캐서린의 분신에 불과함이 판명된다.정체성이라는 것이 개인이라는 벽을 넘어 산포되어 있음을 발견한 히스클리프에게 증오와 복수는 무의미한 작업이 되고 만다.
증오의 계획은 사랑으로 좌절된다는 이 낙관적 아이러니를 에밀리 브론테는 젊고 미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보가 없는 폭포와 같은 필치로 써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