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 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 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시 해석 (문태준 시인)
시 [참깨를 털면서]는 김준태 시인의 데뷔작이다. 밭에서 할머니와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가 참깨를 털고 있다. 할머니는 깻단을 슬슬 막대기질하지만, "나"는 산 그늘이 내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조바심을 낸다. 명령하듯 깻단을 한 번 내리치면 복종하듯 솨아솨아 쏟아지는 깨알들이 기막히게 신기하고 신이 난다. 그예 모가지까지 털다가 꾸중을 듣는다. 목숨 가진 것에 대한 조금의 외경도 포용도 없이 무턱대고 털어 대는 쾌감에 정신없으니 왜 혼나지 않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서, 인간의 본직을 잘 잊고 사는 나도 참깨 농사뿐만 아니라 사람 농사까지 원융圓融하게 지어 온 그 할머니로부터 꺼끌꺼끌한 사투리로 꾸중을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