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우사(尤史)이다.
1919년 1월 신한청년당은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해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다.[1] 김규식은 김순애와 재혼한지 보름만에 먼 길을 떠났다.
1945년 9월 7일 조선인민공화국의 외무부장에 선임되었다. [2] 1946년 2월 13일 비상국민회의(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비상정치회의 주비회 통합체)에서 최고정무위원직(총 28명)에 선출되었고 이어 1946년 2월 14일에는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 부의장에 선출되었다.[3]
1947년 12월 20일 민족자주연맹의 의장에 선임되었다. [4]
1948년 4월 21일 김규식 일행이 북한으로 갔고, 1948년 4월 30일 평양의 김두봉의 집에서 김구, 김일성, 김두봉과 함께 '4김 회동'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구와 김규식은 이승만의 단선·단정 반대를 주장하면서 김일성에게도 북한의 단독정부 건설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1948년 5월 5일 김구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5]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으며, 만포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두번째 부인 김순애도 독립운동가이다.
친일파 세위들과 그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대를 이어 부귀를 누리는데 독립운동가의 자손은 3D 노동판에 뛰어들어 결국 불타죽으면 그만이구나.
親日姦臣享富
其孫連榮萬代
鬪士苦難當代
其孫連貧後代
첫댓글 이번에 수백억에 사기쳐 팔고 모른척 한다죠...
역시 훌륭한 대한민국...과거 문제로 일본을 욕할 십원어치의 자격조차 없어 보이누만요.
씁쓸하네요..
저렇게 독립운동가 후손들까지 내친다면 나중에 애국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대한민국국민이 과연 있게 될까?...친일파 사람들은 잘사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