욤 키푸르(히브리어: יום כיפור)는 유대교의 속죄일이며,
히브리력으로는 7월 10일, 그레고리력에서는 9월 또는 10월에 속한다.
구약성서 레위기 23:27-29에 근거하는데,
여기에 따르면 이 속죄일 하루 동안 어떤 일도 하지 못하며, 단식(물과 음료도 금지)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에서 1년 1번 분향하였다.
출이집트 당시 유대인들이 범죄 때문에 모세가 첫 번째 받았던 십계명을 깨뜨려 버리고,
자복과 회개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된 이스라엘 민족들을 위해서,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오던 날에서 유래되었다.
욤키푸르 전쟁, 라마단 전쟁, 10월 전쟁(מלחמת יום הכיפורים, Milẖemet Yom HaKipurim,
or מלחמת יום כיפור, Milẖemet Yom Kipur; حرب أكتوبر, Ḥarb ʾUktōbar, or حرب تشرين, Ḥarb Tišrīn),
또는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1973년 10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이집트와 시리아 가 주축이 된 치른 전쟁이다.
전투는 대부분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사나이 반도와 골란고원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수에즈 운하도 다시 이집트의 통제권에 두기를 원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확신하지 못했지만,
아랍군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격멸하려고 계획하지는 않았다.
전쟁은 1973년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 점령지에
기습적인 합동공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의 휴일인 욤키 푸르이자
이슬람의 신성한 기간인 라마단이 동시에 있었던 달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휴전선을 넘어 각각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향해 진격했다.
미국과 소련은 전쟁 기간 동안 그들의 동맹국에 대량으로 물자를 보급했고,
이로 인해 이 전쟁은 두 핵보유 강대국의 대결 수준에 이르렀다.
이집트의 바드로 작전 이 성공적으로 개시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집트군은 휴전선을 건너 시나이반도를 향해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진격했다.
3일 후 이스라엘은 병력 대부분을 동원해
이집트군의 공세를 정지시킴으로써 교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리아군은 이집트의 공세에 발맞추어 골란고원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고,
초기에 이스라엘 점령지를 위협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3일 후 이스라엘군은 시리아군을 휴전선 지역까지 몰아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4일 간 시리아 종심부를 향해 반격을 가했다.
이스라엘 포병이 다마스쿠스 외곽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그의 주요 동맹과의 통합을 우려했다.
그는 시나이반도에 위치한 2개의 전략적 고지를 점령하면
전후 협상에서 그의 위치가 강화될 것이라 여겼고,
이에 따라 이집트군에게 공세를 지속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이집트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이스라엘군은 다시 반격을 개시해 수에즈 운하에 주둔한 이집트군을 격퇴시켰고,
수에즈와 이스마일리아에서 격전을 벌였다.
1주 간의 격전으로 인해 양측은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
10월 22일, 유엔의 중재안이 발표되었고, 양측은 서로 중재안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10월 24일, 이스라엘군은 거점을 강화해 이집트 제3군과 수에즈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소련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게 되었고,
제2차 휴전안이 10월 25일 발표되어 욤키푸르 전쟁은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