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깁니다...그래도 시간 아깝지 않으실겁니다...
사회의 냉대가 온몸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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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생이 7월 6일 반포동 한신 아파트에서 아침 6시 30분
에 투신 자살했습니다.
며칠동안 전 정신없이 보냈고 실감이 나질않아 눈물도 나
지 않았습니다. 그냥 동생을 편안히 보내고 싶을 따름이었
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동생이 며칠동안 당했던 모멸감과
수치를 오늘에야 조금 알게되고나서 이렇게 대통령님과 이
하 모든 국민들께 이사회의 역겨운 현실을 알리고자 이렇
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모방송국에서 20년을 PD로 근무하시다가 80
년 언론인 해직때 억울하게 해고되시어 뇌출혈과 위궤양으
로 저희가 어렸을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희는
엄마,이모,저,동생 이렇게 네사람이 서로를 의지하며 그렇
게 살았습니다. 제 동생이 간호대학에 들어가고 간호사 자
격증을 따자 엄마와 이모, 저희는 제 동생이 자랑스러울 따
름이었습니다. 제 동생은 간호사 일을 정말 하고 싶어했습
니다. 대학때 간호실습을 나갔다오면 항상 무슨일이 있었
고 환자들 돌보는 일이 얼마나 보람있는지 재잘대곤 했습니
다. 그런 얘기를 들을때 전 자기일을좋아하는 동생이 부럽
기까지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동생은 6개월동안 컴퓨터를
배우고 자격증을 2개땄습니다. 컴퓨터가 꼭 필요하다는 엄
마의 말씀과 마침 고용촉진이라는 국가에서 무료로 배울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때문입니다. 자신감을 가진 동생은 그
후 취업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 보았지만 경력이 없어
번번히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입을 모집하는 병원에
선 졸업과 동시에 모집을 하기 때문에 6개월을 보낸 동생
은 자연히 취업과는 멀어졌습니다.
(긴 얘기지만 꼭 필요한 얘기기에 씁니다. 끝까지 읽어주세
요!)
저희 외할아버지가 육군 대위로 전사하신 관계로 저희는 군
경유가족으로 원호대상자입니다. 이모는 시집도 가지 않으
시고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우릴 엄마와 같이 키워주셨기
에 제 동생이 집에서 있자 안타까운 마음에 보훈청에 가서
취직자리를 부탁하셨고 국가보훈대상자격으로 취직신청서
를 냈고 2001년 년초에 강남 성모병원에 취업통보를 공문서
로 보냈다고 보훈청에서 연락이 왔고 동생과 저희 가족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달동안 기다
리라고만 했었고 기다리다 초조해진 이모는 강남성모병원
에 언제쯤이면 될까하는 전화를 했고 기다리라는 말을 듣
고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저와 얘기하던 제 동생이 핸드폰 벨
소리를 듣고 방으로 뛰어들어가던 모습이말입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고 좋아라 방안을 뛰어다니던
모습이 말입니다. 출근하기 전에 얼굴이나 보자고 했답니
다.
6월 25일 제 동생은 가지고 있던 옷 중에 가장 이쁘고 깔끔
한 옷으로 단장하고 온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고 "언니
야, 갔다 올께."하고는 병원구경가자고 따라나선 엄마와 이
모를 대동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뒤 왠지 모
를 불안감에 저는 엄마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근데 엄마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집에가서 얘기하자고 하셨고 저는 엄마
가 오기까지 1시간 동안 초조하게 집에 있었습니다. 계단
을 올라오는 소리에 얼른 문을 열자 지쳐 올라오던 제 동생
이 저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와 이모는 한숨을 쉬며
계단을 올라오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랬습니다.
동생과 엄마, 이모는 병원에 도착해서 동생은 간호부실로
올라가고 엄마는 잔디밭에서 너무 좋아 병원구경을 하시고
이모는 동생을 따라 간호부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좀 있
다 엄마와 함께 있었답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동생이 간호부실에 들어가자 간호사 한명이 좀 기다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제 동생은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
간호사가 하는 말이
"그렇게 멍청하게 앉아있지말고 책이나 좀 보지 그래~"하
며 제 동생에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세상사람들~ 생각을 해
보세요. 취직이 되서 상관을 면접하러 간 사람이 앉아서 책
볼 여유가 어디 있으며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고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간호부장수녀와 간호사한명이 제 동
생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곤 우린 공채생만 받는데 국가에
서 강제로 하라고 해서 하긴하지만 이런예가 없었다고 했답
니다. 제 동생은 그냥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고 하네요. 간
호부장수녀가 묻더랍니다. 어느과로 가고 싶냐구요. 제 동
생은 내과로 가고 싶다고 했고 그러자 간호부장수녀가 너
는 내과로 가기 힘들다. 널 응급실로 보낼텐데 거길가면 상
처를 많이 받을테고 그러니 지금이라도 관두고 니가 배우
던 컴퓨터나 딴일을 하는게 어때라고 했답니다. 3년동안 간
호대학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공부하고 간호사 자격증까지
딴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립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종이라는
수녀라는 사람이 말입니다. 그옆에 있던 간호사는 얘기하
는 내내 제 동생을 아래위로 주눅들게 훑어봐서 제동생은
그냥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답니다. 제 동생은 그저 열심
히 해 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허탈하게 간호부실에서 나와
서 엄마와 이모가 기다리는 잔디밭으로 나왔습니다. 제동생
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간호부실에서 간호부장수녀가 하도 안와서 엄마랑 이모랑
많이 기다렸을텐데..." 그런 말을 듣고도 이런말을 하는 그
런 동생이었습니다.
제 동생이 그러더군요. "엄마랑 이모랑 잔디밭에서 좋아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동생얼굴을 보고 엄마가 동생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동생은 엄마한테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얘기를 했고 엄마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그길로
동생을 데리고 보훈청으로 가셨습니다. 엄마가 담당하시는
분께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어찌해야 좋을지 얘기를 했더니
얼마전에도 모병원에 간호사를 취직시켰는데 어찌나 구박
을 하던지 간호사가 호소를 해서 보훈청에서 혼을 내 줬으
니 너도외할아버지의 목숨값으로 간것이나 다름없으니 자부
심을 가지고 일하라는 말에 동생과 엄마, 이모는 그렇게 집
으로 오신 것입니다. 제 동생은 이말을 마치며 가지고 온
간호사복과 두꺼운책 세권을 꺼내들었습니다. 7월 2일부터
출근이라는 동생이 오자마자 두꺼운 책에서 눈을 떼지 않길
래 제가 물었더니 간호부장수녀가 그책을 주며 두고보겠다
고 했답니다. 그래서 물어보면 대답잘할꺼라며 내내 그렇
게 그주일을 책과 씨름하며 보냈습니다. 이후 7월 2일 출근
후, 집에오면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던 혈압
계와는 다른 작은 혈압계를 주면서 할머니 혈압을 재라고
하더랍니다. 학교다닐때 실습때 혈압잘잰다고 칭찬까지 받
았던 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배우던 혈압계와도 다르고 응
급실이라 너무나 시끄러워 소리를 놓치고 말았답니다. 그랬
더니 응급실 수간호사가 하는 말이 "너한테는 아주 기초적
인 것도 못맡기겠다." 며 자기가 혈압계를 뺏아들며 한번
에 성공을 시키면서 하는 말이
"내 손은 신의 손이야."
하더랍니다. 허허~ 제 동생이 허탈하게 웃더군요.
제 동생이 두 손을 모으고 종종 걸음으로 수간호사를 쫓아
다니면서 이것저것 메모해가며 배우는데 너무 빨라 알아들
을수 없어 한번만 더 설명해달라고하자, 수간호사가 하는
말이 "난 두번 설명안해." 하더랍니다.
또 저희집에서 강남성모병원까지 버스를 두번 타야 하는데
갈아타는 버스를 놓쳐서 기다리다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도
착했는데 "전철을 타지 왜 버스를 탔느냐"며 소리를 지르더
랍니다. 그리고 인수인계시간에 맞춘다는게 조금 늦었던 모
양입니다. 그러자 "내가 쟤 때문에 미쳐~"하더랍니다. 동생
이 저한테는 여기까지얘기하더군요. 얘기를 하는 내내 제동
생의 눈에선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고 이 못난 언니는 그저
눈물을 닦아줄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동생은 올해24살입니
다. 훌륭한 간호사가 되겠다는 포부도 있었고 간호사라는
자부심과 긍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동생은 며칠동안
응급실에 있는 많은 환자와 가족들,그리고 한창 감수성이
민감한 시기에 또래 의사들과 간호사들 앞에서 모멸감과 심
한 수치심에 힘겨워했습니다. 그 병원에서 있었던 4일간이
제 동생의 인생에서 아마 가장 괴로웠던 순간임을 저는 확
신합니다. 제 동생이 저희 가족에게 그러더군요. 거긴 지옥
이라고요. 7월5일날 5시 50분에 제 동생이 집에 왔습니다.
그렇게 간호사일을 좋아하던 제 동생이 엄마에게 그러더군
요. 거기만 아니면 자기는 뭐든지 하겠다구요. 그리곤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군요. 첫날 퇴근하고와서 책부터펴며 하는
말이 자지도 말고 공부하라고 했다고 곧이곧대로 늦게까지
책만 파고 들던애가 그날은 내가 말을 해도 대답도 없이 그
저 멍하니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전 죽을때까지 그 모습
을 못잊을 겁니다. 멋모르는 저는 그저 몇달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고 제동생은 그랬습니다.
"언니, 나 거기 다시 가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어."
그리고 7월6일, 아침에 일어나니 제동생은 출근하고 저는
막 일어나 있었습니다.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가 전화
를 받으셨습니다.
"뭐라구요? 아파트에서 떨어졌다구요? 죽었어요? 죽었냐구
요? 사망했다구요?"
그뒤부터 저희집은 지금까지 지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TV에
서 사람 죽는 걸 많이봤지만 죽음앞에서 면역이라는건 없었
습니다. 그저 슬픔뿐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걸아십니
까?
전화를 받고 택시를 타고 바로 서초경찰서로 엄마와 함께
갔습니다. 동생이 하도힘들어해서 이모는 동생을 따라갔었
고요. 동생은 죽었다는데 이모한테서도 연락이 없었습니
다. 택시를 타고 가는 그 길이 어찌나 길던지... 제동생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습니다. 실감이 나질 않더군요. 도착해
서 엄마와 제가 형사님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제 동생
의 보라색 가방을 받고 강남 수병원에 있는 동생의 시신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은빛 냉장고에서 시
트를 걷을때 속으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제발 내 동생이
아니길. 아니길. 아니길. 주님... 제발... 아니길... 아파
트에서 떨어진 제 동생은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머리를 묶은
채로 그렇게 그 차가운 냉장고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순
간 저한테 신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섬겼는데 주님
은 저희에게 언제나 가혹하셨습니다.
경황이 없어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할지 어찌해야 좋을 몰
라 엄마는 교회에 연락을 하셨고 바로 목사님과 전도사님
이 오셔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희는 강남성모병원직원들을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문상오
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녁때가 다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더
군요. 저녁때 엄마와 이모와 함께 강남성모병원으로 갔습니
다. 응급실밖에서 엄마와 저는 멍하니, 이모는 제 동생의
보라색가방을 누가가져갈새라 어깨에 메고 기다리고 또 기
다려도 아무도 우리를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그순간 분
노한 엄마의 오열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동생에 죽음이 그
곳에선 지나가는 개미목숨보다 더 하잘것없는 것이었습니
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내딸을 살려내라고 하자 보안요
원이라는 사람은 응급실 문부터 닫으며 사람들이 들을새라
응급실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순간 우리들은 더러
운 세균덩이였습니다. 한참을 그러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제야 안에서 응급실에 있는 다른 수간호사가 와서는 자기
는 아무것도 들은바가 없고 간호부장수녀와 수간호사는 설
악산으로 연수를 갔다는 것입니다. 7월6일 6시에 제동생이
집을 나섰고 6시 30분에 투신했다고 서초경찰서로 연락이
들어왔고 7시30분에 저희가 연락을 받고 진술서를 쓰고 기
다렸는데... 그날 간호사가 진술서를 쓰고 바로설악산을 갔
다는 말이 됩니다. 서초경찰서에 그랬답니다. 자기는 잘하
라고 한거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기르던 개가 죽어도 가슴
이 아픈 법인데 하물며 사람이 자기들 때문에 괴로워하다
죽었다는데 문상을 와서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기는커녕
설악산으로 연수를 떠났답니다. 그 어떤 연수가 사람죽은
것보다 중요하답니까... 저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
다. 연락할 경황이 없어 장례식장엔 가까운 친척몇명이 전
부였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오늘은 오겠지.. 자
기들이 사람이라면 오겠지... 멍하니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
니다. 지금까지 관이 나가질 못했습니다. 삼일장을 못치뤄
줬습니다. 엄마가슴에도 이모가슴에도 또 제 가슴에도 한
이 쌓였습니다.
7월9일 의료부장신부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해서 갔습니다.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주위말에 파월군인으로 고엽제를 앓
고 계신 외삼촌과 친척아주머니와 함께 다섯명이서 갔습니
다. 근데 의료부장은 없고 간호부장수녀,수간호사,면접날
내동생을훑어보며 주눅들게했던 간호사,노무과장이 앉아 있
었습니다. 엄마는 바닥에 주저앉으셨고 이모는 울기만 했습
니다. 외삼촌과 친척아주머니는 분노에 차서 화도 내고 욕
도 해보았지만 그사람들은 가만히 우리 눈치만 살피며 욕
을 한마디하면 눈을 부라리며 어디서 그런말을 하냐며 되
려 호통을 쳤습니다. 간호부장수녀와 수간호사는 도의적인
책임은커녕 사과의 말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앉아서 입꾹다
물고 혹시라고 자기한테 불이익이 오면 어쩌나 몸사리기에
바빴고 저는 그런 모습이 너무도 가증스러웠습니다. 수녀님
들과 간호사님들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하지만 이
런 몇몇 사람들로 인해 수녀님들과 간호사님들의 위상이 추
락하는것같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녀가 거짓말
까지 하더군요.
간호부장수녀말을 들어보자는 노무과장의 말에 우리는 진정
을 하고 말을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보려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울정도로 교양을 위장한채 자기변명을 늘어놓
았습니다. 자기는 응급실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랬다
는 뭐그런 내용을 구구절절이 늘어놓더군요. 제가 물었습니
다.
"제 동생이 다른 과에 가고 싶단 소리는 하지 않던가요."
"아니요, 그런 얘기는 없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제 동생은 어느과에 가고 싶냐는 간호
부장수녀의 말에 내과에 가고 싶다는 말이 생각나 수녀의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나 알아보고자 얘기를 했더니 아무
렇지도 않게 주의 종이라는 성직자의 입에서 거짓말이,그것
도 자기 빠져나갈 구실을 위해 거짓말이 술술 흘러나오더군
요. 제가 그랬습니다.
"수녀님이 거짓말도 하시는군요."
"제 동생이 내과에 가고 싶다고 말한거 제가 다 압니다."
그랬더니 놀란 얼굴로 침착을 가장하려 애쓰는 얼굴에서 저
는 뭐라 말할수 없는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그때가 저희가 들어간지 30분쯤 흘렀을 때입니다. 서초 경
찰서에서 나왔다며 형사가 한 분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업
무방해라며 일어나라더군요.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알
고 오셨냐고. 그랬더니 자기는 원래 강남성모병원에 자주
온다더군요. 우연히 들렀다가 알았다더군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얘기라 물었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강남성모병원에서
불러서 온게 아니냐고... 그랬더니 갑자기 하늘 운운하자
순간 머뭇거리더니 큰소리로 자기는 우리를 도와주러 왔다
더군요. 그러면서 자기가 밖에 와 있던 경찰차까지 돌려보
냈다더군요. 유가족이 주위의 냉대로 투신자살한 일로 그것
도 자기들이 불러서 대화하고자 갔다가 사과도 없으니 감정
이 격해져 몇마디 내뱉은말을 빌미로 바로 경찰을 불러 업
무방해라고 한 것입니다. 그순간 느꼈습니다. 법은 결코 약
자의 편이 아니라고요. 서초경찰서에서 강남성모병원까지
얼마나 걸리는 지는 모르지만 30분동안 우린 철저히 농락당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형사라고 소개한 그 사람은
문상을 안 와서 우리가 격해져 있다고, 삼일장도 못치뤘다
는 말에 일에는 순서가 있다며 이런다고 될일이 아니라며
힘없이 엎어져 있는 엄마를 거칠게 일어나게 했습니다. 우
리가족은 며칠간 장례식장에서 정신없이 있다온터라 행색
이 말이 아니었고 그것이 우리 가족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
습니다. 그 순간 며칠동안 멍하니 지내오던 제가 정신이 번
쩍 들더군요. 엄마는 넋이 나가서 내 딸 살려내란 소리만
하고 계셨고 이모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고 외삼촌은 조카딸
을 잃은 분노로 욕설몇마디에 형사에게 잡혀갈 상황이었습
니다. 저 밖에 없었습니다. 이 못난 언니가 억울하게 죽은
동생가는 길에 해줄수 있는건 약한자에게 너무나도 무참한
그 거만한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일밖엔 없었습니다. 순
간 언론계에 계시던 아빠 생각이 났고 저는 순간 아빠 얘기
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아빠가 모방송국에 20
년을 지냈다고, 법이 더이상 우리편이 아니니 언론에 호소
하겠다고. 그순간 그 거만하던사람들이 돌변하기 시작했습
니다. 처음엔 우리에게 욱박을 지르던 노무과장이란 사람
은 아빠친구분들에게 연락하고 기자들을 만나겠단말에 제
손까지 잡았습니다. 허허허~ 희한한 세상입니다. 형사라는
사람이 외삼촌을 불러냈습니다. 저는 더이상 이사람들과는
말할수 없으리란 생각에 쓰러지다시피한 엄마를 부축해 병
원의자에 앉혔습니다. 우리가 나올때 자신이 신의 손을 가
졌다는 수간호사가 그러더군요. "저는 드릴 말씀 없어요"
하늘이 두렵지 않을까요...
외삼촌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 한 수녀님이 저 안에 계시
다고 하셔서 들어갔더니 왼 구석방에서 외삼촌이 나오셨습
니다. 형사가 업무방해 운운하며 외삼촌에게협박조로 겁을
준 것입니다.더 웃기는 게 뭔 줄 아십니까? 그동안 얼씬도
하지않던 사람들이 언론 얘기로 제가 으름장을 놓고 장례식
장에 오고 바로 노무과장과 함께 4명이서 문상이랍시고 와
서는 저희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문상을 오려면 간호부장
과 수간호사가 와야하는거 아닙니까.그 두 사람은 끝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문상을 와서 인정을 하면 배
상 책임땜에 안올거라더군요. 참 재밌는 세상이지요.저희
엄마는 카톨릭 재단이라 제 동생을 믿고 보냈는데 그 결과
는 제 동생의 주검뿐입니다. 저희집에서 키우던 개를 좋아
했고 저랑 얘기하기를 좋아했고 한없이 착했던 제 동생이
지금도 강남수병원 영안실에 누워있습니다. 그 겁많던 제
동생을 그 높은 12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게 한 그 사람들
은 너무도 당당합니다. 저희가 여기서 물러난다면 이런 일
이 또 없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러분! 제동생
이 편안히 눈감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저는 아무힘
이 없습니다. 여려분께 이렇게 호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동생이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시는 분은 아시
는 사이트나 동호회게시판에 이 글을 복사하여 올려주십시
오.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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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방
Re:강남성모병원진짜 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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