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명, 취미(수영) 26-1, 댓글과 댓글
자정을 넘기고도 컴퓨터 앞을 떠나기 어렵습니다.
이제 마감까지 하루, 딱 하루 남았습니다.
2026년 정석명 씨 「개인별 지원 계획서」를 씁니다.
인사는 지난해 연말부터 나누었고, 과업마다 구상과 의논은 진작에 끝냈습니다.
당사자와 의논하고, 둘레 사람과 의논하고, 당사자와 둘레 사람이 의논하게 주선했습니다.
찾아보고 궁리하며 성심껏 나누었지만, 의논이 끝이 아니지요.
글로 옮기는 일이 남았습니다.
책상 위 여기저기 놓여 있는 책과 출판물 사이 「개인별 지원 계획서」가 있습니다.
2018년 입사하고서부터 해마다 한 권씩 늘어 작년 것까지 여덟 권이 되었습니다.
어떤 책은 해가 바뀌면 새것이 남고 지나간 것은 정리하는데, 이건 다릅니다.
연중에는 때마다 들추며 하얀 표지가 누렇게 때가 탈 만큼 살피며 참고하고,
해가 지나면 입주자의 지난 역사, 전임자의 일, 나의 경험을 좇아 다시 펼치며 활용합니다.
올해 정석명 씨 개인별 지원 계획 가운데 ‘취미’가 있습니다.
월평에서는 대개 과업을 구분하고, 활동처를 구별해 적습니다.
과업 뒤에 괄호를 붙이고 괄호 안에 어디에서 하는 일인지
‘거창마라톤클럽’, ‘딸기탐탐’ 따위의 이름을 밝혀 씁니다.
정석명 씨 취미로 생각하자면, ‘거창스포츠파크’나 ‘수영장’ 같은 단어가 들어갈 수 있겠고,
그렇게 하려다 좀 어색한 것 같아 ‘수영’을 붙였습니다.
‘2021년에 취미 활동처 다섯 곳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보인 정석명 씨의 반응을 보고
여느 사람의 취미 활동이 정석명 씨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취미 활동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놓을 수 없어
작년에 스크린골프장과 수영장에 가 보았다.’
지난해 전임자가 작성한 「개인별 지원 계획서」에 이런 문단이 있었습니다.
시간 내어 수영장 다니던 것을 알고 있어
수영이라는 결론보다 첫 문장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2021년, 취미 활동처, 다섯 곳’.
찾아보려고 우리 카페를 찾았습니다.
몇 차례 검색 끝에 글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
석명 씨가 어떻게 살면 좋을까?
10년, 20년 후에 석명 씨의 삶은 어떠할까?
기대와 희망, 꿈이 없다면 삶이라 하기 어렵다.
그저 생존이다.
석명 씨가 이런 이야기를 직접 해 준다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힘들다.
직원의 상념을 끄적여 보고 부모님의 의견도 듣고 싶다.
석명 씨는 시설이 아닌 시설 밖 공간에서 지낸다.
석명 씨를 알고 이해하는 이웃이 있어 관계하며 지낸다.
직장이 있어 때때로 일하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것 하며 지낸다.
어릴 적 다닌 성당을 다시 다닌다.
성당에서 만난 분들과 때때로 만난다.
정기적으로 하는 취미 활동이 있다.
석명 씨가 좋아하는 활동이고, 석명 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친척을 제외한 석명 씨의 둘레 사람이 열 명쯤 있다.
직원의 도움 없이 밥을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요리한다.
혼자 미용실, 마트, 목욕탕, 학원에 다닌다.
정신과 약물은 오래전에 끊었다.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여자 친구도 있다.
가족 생일, 명절, 기일 등 가족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관계한다.
이런 생각과 글이 직원에게는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2021년 7월 7일 수요일, 임우석 「정석명, 공부 21-2, 10년 후 석명 씨는?」 발췌
‘정기적으로 하는 취미 활동이 있다.’
이 한 줄 때문에 검색 결과에 포함되었나 봅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5년 전 글 아래 댓글을 달았습니다.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런 생각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는지,
글 가운데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응원을 느낀 건지 모르겠습니다.
돌아보건대 아마 모두였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2026년 한 해 사회사업을 준비하며 「개인별 지원 계획서」를 씁니다.
정석명 씨 ‘취미’ 과업을 쓰려다가 지난해 계획서를 보았어요.
‘2021년에 취미 활동처 다섯 곳을 방문했다.’를 읽고,
근거를 찾아 카페에 왔다가 이 글을 읽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소리 내어 읽다가 이내 멈추고 잠깐 울었어요.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려 애쓰다가,
‘자주성의 한계’ 같은 걸 떠올리다가,
‘당사자와 가족에게 몫을 돌려드리는 게 잘하는 일’이라는
『월평빌라 이야기』의 어느 문장을 떠올리다가 댓글을 씁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그러나 울게 해서 좋다고 고백하는 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는 일, 그래도 여전히 잘해 보고 싶은 일….
사회사업이 무엇일까, 사회사업가는 어떤 사람일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희망, 희망을 붙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눈 감았다 뜨니 지금이고, 한 번 더 눈 감았다 뜨면 이 글의 10년 후, 2031년일까요?
잘하고 싶어요. 잘해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은 임우석 선생님에게 씁니다. 정진호(직원) 26.02.22. 00:52
「개인별 지원 계획서」를 쓰는 시기군요.
댓글을 읽으니 정진호 선생님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밴드에 올라오는 글과 사진에서 정석명 씨를 잘 돕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을 봅니다.
힘들고 더디고 어려워도, 현실이 녹록잖아도,
사회사업답게 사회사업가답게 도우려는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생각날 때마다 기도할게요.
2026년이 선생님과 정석명 씨에게 축복 같은 한 해이길 빕니다. 임우석(직원) 26.02.22. 01:00
오가는 댓글 가운데 확신을 얻어 마침표를 찍습니다.
자정을 넘겼습니다.
작성하던 계획서 파일의 저장 버튼을 누릅니다.
계획이 실행으로, 실행이 기록으로 이어질 것을 떠올리며
이내 흡족한 마음이 되어 일어섰습니다.
2026년 2월 22일 일요일, 정진호
모두 다 정석명 씨를 잘 돕겠다는 마음이겠죠. 서로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아름
① 늦은 밤, 자정 넘은 밤, 같은 꿈을 꾸며, 꿈같은 시간을 보내는 두 사내의 댓글과 댓글이 점점이 별처럼 아름답습니다. 당신들의 2031년을 응원합니다. ② PS. 다만, 정석명 씨의 10년 뒤 삶에 대한 기대와 그 모습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게 있습니다. ‘① 시설 밖, ② 직원의 도움 없이, ③ 혼자, ④ 약물’.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며 바라는지 짐작합니다만, 위 4가지는 ① 현재의 모습과 삶을 부정하는 듯하고, ② 현재의 사회사업을 부정하는 듯하고, ③ 현재의 시설을 부정하는 듯하며, ④ 이들을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 같습니다. 10년 뒤 모습처럼 된다면야 좋겠지만, 그 모습은 우리(사회사업) 소관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월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