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소리만 듣고 우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이것일까, 저것일까 또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뿐만이 아닙니다. 위험일까, 도움일까 아니면 기다릴까, 그냥 지나갈까 등등. 소리를 들으면 그야말로 오만가지 사물이나 사건들이 머릿속을 헤집습니다. 반면 소리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의 장면을 보게 되면 생각은 매우 한정됩니다. 보인 그것에 생각이 매이게 됩니다. 크게 확장되기 어려워집니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 공포는 장면보다 소리로 인하여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영상보다 괴이한 소리가 더 무서움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음향효과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도 합니다.
무서운 장면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웬만한 공포영화보다도 더 무섭기도 합니다. 일단 시작 순간부터 아주 기묘한 배경음악이 귀를 자극합니다. 그것도 아무런 화면도 보이지 않고 약 1분 정도 영화관을 채웁니다. 상영하는 가운데 몇 번 그렇게 등장합니다. 그다지 듣기 좋은 음악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그냥 소리일 뿐입니다. 결코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고 아름다운 음악은 더욱 아닙니다. 귀청이 찢어질듯하기도 합니다. 마치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거슬리는 소리입니다. 이게 재미있거나 흥분시키는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극적인 장면은 없습니다.
아주 평범한 한 가정의 일상이 전개됩니다. 하기야 평범하지는 않습니다. 당시로 봐서도 꽤 부유한 집안의 모습이기는 합니다. 말끔한 2층 저택에 큰 정원이 있습니다. 가운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조그만 수영장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그 주변에 안락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휴식하고 서로 담소합니다. 그야말로 매우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집안은 깨끗하게 청소되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인들이 여러 명 있어서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용소장의 뒤치다꺼리나 안주인의 지시를 따르거나 여러 가지 일을 나누어 하고 있습니다. 나이든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벽돌담 하나로 이쪽과 저쪽은 말 그대로 천국과 지옥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전혀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담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그쪽의 흔적이 종종 넘어옵니다. 그것은 그쪽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소지품이 모아져서 이쪽으로 건너오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가족과 친지들이 물건들을 뒤적거리며 자기 맘에 드는 것들을 챙깁니다. 그쪽 사람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와서 처리되었는지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다급했고 살아남기를 바라고 있었고 생존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이쪽 사람들에게는 이야깃거리요 조롱거리가 됩니다. 여자들이 물건을 나누며 좋아하고 시시덕거립니다.
눈을 들어보면 담 넘어 집들 굴뚝에서 연기가 끊임없이 오르고 있습니다. 한밤중에는 굴뚝 위로 불꽃까지도 훤하게 보입니다. 그러니 밤낮이 없습니다. 하루 24시간 타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 타고 있겠습니까? 때로 사람의 비명소리도 들립니다. 아우성이 들립니다. 날카로운 명령이 들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총성도 들려옵니다. 짐작합니다. 즉결처분하였구나. 그 장면은 없어도 눈에 선합니다. 애처롭기도 하고 처참하기도 할 것입니다. 보다 효과적으로, 보다 많은 수를, 보다 빨리 처리하기 위해 시설물을 어떻게 확장하고 보완할지 업체에게 의뢰합니다. 그 업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소장 직을 유지합니다. 상부로부터 유능하다 인정받은 것이지요.
너 같은 건 남편에게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재로 만들 수 있어. 하기야 담 저쪽에 있지 않는 것만도 행운이고 복(?)입니다. 그쪽에 있었다면 어느 시간 진작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힌 것입니다. 담당자의 눈에 쓸 만하다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장 사택의 하인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곱상한 여자라면 추가 봉사까지 감당합니다. 사람으로 생각하겠습니까? 그냥 노리개일 뿐입니다. 시답잖으면 다음 날 재로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안주인이 알게 되면 곧장 그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다행(?)히 남자가 그것을 잘 숨기지요. 하기야 자신의 안전을 위한 일일 뿐입니다. 소위 자기 가정의 평화 말입니다.
인간의 세상이 얼마나 요상합니까? 겨우 담, 하나 사이인데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다니 말입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해하여 화장하는 능력을 발휘함으로 그는 유능한 소장이 됩니다. 어찌 보면 그냥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뿐입니다. 크게 보면 국가의 정책이며 그는 철저히 순복하는 공직자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권한 아래서 목숨을 잃었는지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모르겠습니다. 그 덕에 남부럽지 않은 호의호식을 하며 살았습니다. 자기 인생의 가치를 생각해보았을까요? 나중에 기록을 보니 이 사람도 전범으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죄를 깨달았을까 모르겠습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좋은날되세요
감사합니다. 운영자님도 복된 주말을 빕니다. ^)^
@신나라제이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