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 / 정한아
누굴까. 맨 처음 쇠를 구워보자고 생각한 사람은. 그는 시커멓고 땀으로 번들거리며 웃통을 벗고 있고 정교하고도 힘찬 손놀림으로 불과 냉수 사이를 오가며 아름다울 금속 물질을 단련시킨다. 그것은 값비싼 금이나 은이 아니라 강철이다. 이 차갑고 단단하고 정교할 사물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그는 뜨겁고 검게 빛나고 있다. 그의 눈빛은 신념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을 것이다. 싸구려 말로 천 냥 빚을 갚으려는 자들과 달리 딱딱한 침대에서 잠들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으리라.
- 시집 『울프 노트』 (문학과지성사, 2018)
* 정한아 시인 1975년 경남 울산 출생,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및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 2006년 『현대시』 등단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 『울프 노트』 구상문학상 수상 ******************************************************************************* 나는 대장장이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무를 다루는 이도 있고 흙을 다루는 이도 있지만 쇠를 다루는 이는 주변에 없다. 그래서인지 쇠를 다루는 일의 “정교하고도 힘찬 손놀림”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품고 있다. 오랜 시간 “불과 냉수 사이를 오가며” 쇠를 단련하고, 더불어 스스로를 단련한 사람이라면 범인과는 다른 혜안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꼭 필요한 금언을 하나쯤 알고 있을 거라는.
시인은 왜 하필 대장장이를 떠올렸을까. 최초의 대장장이를. 최초의 대장장이는 어째서 최초의 대장장이가 되기를 택했나, 시인은 궁금했을 것이다. 남들처럼 값비싼 금이나 은이 아니라 강철을 단련하기로 한 사람. 단 하나 자신의 신념을 위해 오롯이 몰두한 사람. 시인은 믿고 싶었을까. 딱딱한 침대에서 잠들지라도 그의 오늘은 뜨겁고 검게 빛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을까. 그러니 지금 이 집념의 방향을 향해 계속 나아가자고, 그래도 좋다고. 다른 누구보다 먼저, 쓰는 삶을 택한 자기 자신에게. -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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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내일입니다. 오늘 저녁은 거리의 불빛들과 그 아래 지나는 행인들의 표정이 환해지는 날입니다. ‘서양 나라에서 온’ 명절답게 오색 불빛들이 반짝이는 가운데 뿔이 길고 코가 빛나는 예쁜 사슴이 썰매를 끌고는 곧 허공을 달려 내려올 듯 도심의 거리는 화려할 겁니다.
오늘 같은 축제일에 웬 무뚝뚝한 시냐고요? 천만에요. 저 대장간의 풍경만큼 깊이와 지혜를 던지는 아름다운 풍경도 달리 없습니다. 불과 물 사이의 노동, 그리고 점점 낭랑해지는 망치 소리의 연금술! 시인은 저 대장장이를 예수에 견주어 그리진 않았겠으나 오늘은 예수의 모습으로 읽습니다. 저러한 당당한 삶이 그리운 세모입니다.
-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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