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52)
흥행사 마택조
영악한 택조 열세살 나이에
밑천 안 드는 사업에 눈뜨니
열세살 마택조는 덩치는 쪼그마하지만 꾀가 졸졸 흐르는 데다 말이 청산유수다. 택조는 버들 주막 주위를 맴도는 들병이 아지매와 아삼륙이다. 아지매는 한 옆구리에는 돌돌 만 돗자리를 끼고 다른 손에는 술 한 호리병을 들고 고쟁이 속주머니엔 절어 빠진 멸치 몇마리와 놋잔 하나가 장사 밑천의 전부다. 명색은 잔술 파는 아지매지만 실은 사람 눈을 피해 산속이나 상엿집에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후다닥 남정네의 걱정거리를 풀어준다. 해우를 한 손님은 콜콜콜 호리병에서 따라준 술 한잔을 마시고 어흠어흠 헛기침을 하며 떠나는 것이다.
남정네 손님이 해웃값을 주고 떠나면 숨어 있던 택조가 나타난다. 들병이는 해웃값의 4할을 떼어 택조에게 건넨다. 택조가 남정네를 유인해왔기 때문이다. “아저씨, 양귀비하고 잠깐 놀다 가세요. 인생 뭐 별거 있습니까, 젊었을 때 힘을 쓰는 게 후회 없는 인생이라고요.” 불콰하게 취해서 주막을 나서는 남정네가 “하, 요놈 봐라. 나한테 인생 강의를 하네”라고 말한다.
둘은 공생관계다. 택조는 어려서부터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오가는 돈이 밑천 들어가지 않는 알돈이라는 걸 터득했다. 여름밤 서당 학동들에게 냇가의 처녀들 멱 감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버들가지 자리를 팔고 동네 머슴들에게 유 진사네 새 며느리가 우물가에서 멱 감는 걸 보여주고 엽전을 받는다.
하오나 이런 것들은 꾸준한 장사가 될 수 없다. 여름 한철 장사라 할까, 처서가 오기 전에 일년 장사가 문을 닫는 것이다. 택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릎을 쳤다. 들병이 아지매를 발가벗겨 관람료를 받자는 것이다.
산속에 구덩이를 다섯자·일곱자 직방형으로 깊이 세자로 둘이서 파는 데 닷새가 걸렸다. 이 집 저 집 뒤꼍 처마 밑에 쌓아둔 짚단을 훔쳐 와 한자 깊이로 깔고 나니 번듯한 방이 되었다. 한 면에 아궁이를 파내고 저잣거리 남의 집 굴뚝을 훔쳐 와 아궁이와 연결했다. 여기저기 집 짓는 곳, 집수리하는 곳을 봐뒀다가 밤에 목재를 몰래 가져와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리기도 했다. 훔친 거적때기로 초벌 지붕을 덮고 솔가지로 두툼하게 얹고 나니 너끈한 방 한칸이 생긴 것이다.
감격에 겨워 들병이 아지매는 택조를 안고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들병이 아지매가 이빨을 갈며 나루터 주막 주모에게 악담을 퍼부어댔다. “그년이 같은 화류계 출신이면서 뭐 잘났다고 사람을 아주 발톱의 때처럼 여겼지. 이제 네년 집에 가는가 봐라.”
사실 주모에게 설움받은 걸 쌓으면 집 하나가 올라갈 법하다. 밤이 되면 호사가들이 산으로 올라와 이 솔 지붕 주위에 둘러앉는다. 선비들도 장사꾼도 머슴도 올라온다. 택조가 손을 벌리면 엽전 몇닢씩 내놓는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지만 산속 깜깜한 움막집 주위는 남정네의 침 삼키는 소리뿐. 소쩍소쩍 소쩍새 울음소리가 밤의 적막을 깬다.
이윽고 솔가지 움막집 안에 탁탁 부싯돌 소리가 나더니 촛불이 켜졌다. 움막집을 둘러싼 남정네들은 솔가지 사이로 움막 안을 들여다본다. 아지매가 저고리를 벗고 천천히 치마끈을 풀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엎드리면 고쟁이 사이가 살짝 드러난다. 관객들은 자지러진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선비가 택조의 부축을 받으며 산으로 올라왔다. 선비는 솔가지 움막 속으로 들어가고 택조는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든다. 숲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기어나와 움막 주위에 자리를 잡았다. 택조가 손을 내밀자 엽전 몇닢을 놓았다.
“오늘 밤 관람료는 좀 비쌉니다.” 평소보다 네 갑절 더 받았다. 솔잎 지붕에 머리통을 처박고 마른침을 삼키던 관람객들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벌거벗은 선비가 촛불을 끄려 하자 “선비님의 용안을 봐야 소첩이 춘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요.” 선비는 더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강산이 두번이나 바뀌었다. 어둠이 내리자 한강 백사장에 차양막 궁궐이 쳐지고 여기저기 횃불이 사방을 대낮처럼 밝히고 징소리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들고 권번 기생들은 단체로 와 깔깔거린다.
조선 최고 명창 이날치 한마당이 열리는 날이다. 출입구에는 어깨가 떡 벌어진 젊은이들이 입장권을 받고 입구 옆 작은 차양막에서는 조선 최고의 마당대인이 명창 이날치와 고수 영감님과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 마당을 기획하고 판을 벌인 주인은 삼십대 중반 중후한 남자 마택조 대인이다.
첫댓글 원조
엔터테인먼트
사업 이었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