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제가 독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독빠가 되었는지... 원...
어서어서 프랑스로 가야 되는데 말입니다. 정말 이 가문 끝나면 프랑스로 직행할 것입니다.
말로만... 될까요..?
이번에 소개해 드릴 가문은 예고대로 호엔쫄레른 가문 입니다.
아주 인기가 좋더군요. 아마도 독일제국을 이룬 명문 가문이라 그렇겠죠.
이른바 명품 가문... 어딜가나 명품... 명품... 명품...
쫄레른 백작의 문장입니다.
아주 강렬한 문장... 그리고 단순한 문장...
가문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그래... 모 아니면 도다!!!
가문의 이름은 뷔템베르크의 헤잉겐(Hechingen) 부근에 세웠진 Hohenzollern Castle에서 유래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유래와 동일합니다.
즉 우리 집은 호엔쫄레른 성... 그래서 나는 호엔쫄레른 성에 사는 프리드리히...
그래서 내 이름은 프리드리히 폰 호엔쫄레른...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귀족에게 가문이란... ㅎㅎㅎ
역사서에선 11세기인 1061년에 처음으로 이 가문의 시조로 보이는 인물 이름이 거론됩니다.
그의 이름은 부르크하르트 1세(Burkhard I)...
그는 쫄레른 백작(Count of Zollern)으로 추정됨과 동시에 가문의 시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짜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냥 추정일 뿐...
부르크하르트 1세의 아들로 보이는 프리드리히 1세는 실질적인 시조입니다. 이 사람부터 족보가 이어지거든요.
그는 황제 하인리히 5세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슈바벤 지방의 강력한 백작 중 한 명으로 명성이 자자했죠.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2세는 로타르를 황제로 추대하는 1등 공신이 되었고 벨프 가문과 맞짱을 뜨기도 합니다. 상당히 공격적인 백작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3세는 가문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혼을 단행합니다. 즉 결혼을 통해 처음으로 타 지역에 가문의 새로운 영지를 확보해 나가게 됩니다.
아마 게임이 시작되면 호엔쫄레른 가문이 이런 식으로 등장합니다.
슈바벤 지방에 쫄레른 남작령의 남작... 플레이어가 백작령 주지 않으면 평생 남작으로 남았다가 단절되더군요.
크킹1에선 프리드리히 1세가 홀로 나와서 놉니다. 호숫가의 백작님으로...
프리드리히 3세는 소피아(Sophia of Raabs, died 1218)라는 귀족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뉘른베르크 도시백작(Burgrave of Nuremberg)이었던 콘라드 2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4대에 걸쳐 세습 도시백작으로 내려오다가 남자 후계자가 없자 결국 사위에게 작위와 영토를 넘기게 됩니다. 역서 세습 도시백작이 뭘까요...? 무척 생소한데 저번에 바벤베르크 가문을 소개하면서 변경백을... 비텔스바흐 가문을 소개하면서 팔라티네백작을 소개해드렸던 것으로 압니다. 이번엔 도시백작이군요. 흠...
독일어로 도시백작은 Burggraf 즉 부르크그라프... 부르크(도시)+그라프(백작)...
말 그대로 입니다. 한문으로 쓰면 城市라고 표현됩니다.
뉘른베르크는 아주 유명한 상공업도시입니다. 지금도... 과거에도...
원래 도시백작은 선출직이었으나 어느 새인가... 세습직으로 변경되었는데 프리드리히 3세의 장인 콘라드 2세도 4대째 세습 도시백작이었는데 딸만 있어서 사위에게 영지를 넘긴 것입니다. 아무튼 아주 돈이 되는 영지였죠.
돈... 상공업 하면 척이죠...
프리드리히 3세는 호엔쫄레른 가문 출신으로는 최초의 뉘른베르크 도시백작(프리드리히 1세라 호칭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와 소피아 두 사람 사이에는 2남 1녀가 태어났는데 콘라드와 프리드리히는 양친이 죽자 영구히 영지를 나누기로 합의를 봅니다.
결국 형 콘라드가 뉘른베르크를 갖고 동생 프리드리히가 쫄레른을 갖기로 최종 합의에 도달합니다. 이에 호엔쫄레른 가문 역사상 최초로 분가가 이루어집니다.
이 분가는 상당히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데 천 년 동안 각기 가문을 이루어서 한 번도 합쳐지지 않습니다. 아직도 그 후손들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천 년간 아들을 낳았다는 겁니다. 단절되지 않고... 뻐꾸기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역사에선 콘라드의 후손들을 시니어 라인으로 프랑코니아 분가(Franconian branch of the House of Hohenzollern)라고 부르고 프리드리히의 후손들을 주니어 라인으로 슈바벤 분가(Swabian branch of the House of Hohenzollern)라 부릅니다. 그런데...
실은 아직도 역사학자들은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의견 조정이 안된 듯 합니다. 그러나 근래 논문에선 콘라드가 형인 것으로 인정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콘라드를 형으로 봅니다. 왜냐면... 뉘른베르크가 쫄레른에 비해 엄청나게 발달된 영지거든요. 분명 장남이 가문의 상속분 중 좋은 것을 상속받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이렇게 추정되는 것입니다.
이 두 라인은 천 년을 보내면서 엄청 다르게 성장해 나갑니다. 천 년 동안 단절이 되지 않은 것도 신기하지만... 아이러니지만 영지의 위치 때문에 두 가문은 발전 속도에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결론적이지만... 뉘른베르크의 위치가 쫄레른의 위치보단 변경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성장할 기회가 더 많았습니다. 그 이상은 가문 소개 후 사견 형식으로 말씀드리죠.
게임상에서의 족보인데... 지금부터 설명드리는 건 뉘른베르크로 나간 프랑코니아 라인입니다.
1337년 시나리오에서 스타팅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뉘른베르크 백작 요한 2세던데요.
연장자 우선의 원칙에 따라... 장남 콘라드의 후손인 프랑코니아 라인부터 소개합니다.
11세기부터 시작된 이 가문은 현재까지 후손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비결들이 숨어있겠죠. 한번 영주는 영원한 영주...
콘라드 1세(Conrad I, Burgrave of Nuremberg, 1186-1261)는 외조부의 이름을 물려받았고 라이닝겐 백작의 딸과 결혼해서 후계자 프리드리히 3세를 얻습니다. 별 탈 없이 쭉 후손들이 영지를 물려받았고 콘라드의 현손 프리드리히 5세가 상당히 획기적인 결혼을 하면서 가문의 중흥에 기여하게 됩니다.
프리드리히 5세는 마이센 변경백 프리드리히 2세의 딸 엘리자베스(Elisabeth of Meissen)와 결혼해서 2남 6녀를 얻습니다. 그런데 아내 엘리자베스는 베틴 가문(House of Wettin) 출신으로 족보를 까면 남편보다 훨씬 찬란한 조상들을 두고 있었죠. 그녀의 고조모인 콘스탄스는 바벤베르크 가문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드 6세와 비잔틴 앙겔로스 가문 출신의 테오도라 사이에 태어난 딸이었죠. 증조모 마가레트는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2세의 딸이었고 어머니 마틸다는 신롬황제 루트비히 4세의 딸이었습니다. 호엔쫄레른 가문 역사상 최초 황제의 혈통을 가지고 들어온 여성이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뉘른베르크 백작의 문장입니다.
흑백의 문장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이해 되었을 터이고...
장녀 엘리자베스는 독일 왕 루페르트의 왕비가 되었고 차녀 비어트릭스는 오스트리아 공작 알프레히트 3세와 결혼합니다. 이 차녀의 결혼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꼼수가 숨겨져 있었는데 오스트리아 바벤베르크 가문과의 혈연을 위해 그녀를 데려갔다고 합니다. 즉 힘으로 합스부르크가 강탈하다시피 했지만 엄연히 우리도 바벤베르크의 자손이라는 걸 내세우고 싶어 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계산이 깔려있었죠. 이 결혼에서 알프레히트 4세가 출생했고 손자 알프레히트 5세는 보헤미아, 헝가리 왕관을 획득합니다. 이상은 합스부르크 가문 편을 참조하세요.
5번째 자식이자 장남인 요한이 도시백작 작위를 상속받습니다만 두 살 아래 동생 프리드리히가 자기 몫을 떼어달라고 찡찡 거리는 통에 결국 형제는 영지를 분할합니다. 요한은 쿨름바흐(Kulmbach) 지역을 가지고 프리드리히는 안스바흐(Ansbach) 지역을 가져갑니다. 훗날 요한이 딸만 남기고 죽어서 결국 영지는 다시 통합됩니다만... 한 번 분할은 지속적인 분할을 가져옵니다. 여기서 쿨름바흐는 도시 뉘른베르크의 북동쪽에 위치했고 안스바흐는 남서쪽에 위치합니다. 기억 잘 해 두세요... 계속 분할하거든요. 진짜 균분 상속이 미워요...
차남이었던 프리드리히는 일찍부터 출세에 관심을 가집니다. 원래 차남은 후계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제 밥그릇을 찾아야겠죠. 그래서 신롬제국의 황제이자 헝가리왕인 시기스문트에게 충성을 바칩니다. 당시 시기스문트를 골 때리게 만든 건 흥미롭게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알프레히트 5세와 그의 아들 레디슬라우였죠. 프리드리히의 누나인 비어트릭스의 손자와 증손자들이었죠. 이러한 인척관계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는 황제에게 충성... 황제 선거 때부터 맹목에 가까운 이 충성심에 감복한 황제는 충실한 호엔쫄레른에게 충성의 댓가를 줍니다. 그래 이거나 먹어라...
1415년 프리드리히는 호엔쫄레른 RKANSD 역사상 최초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Elector of Brandenburg)가 됩니다. 선제후... 황제를 선출하는 자격을 가진 최고위 귀족이었죠. 조카손자 때려눕힌 보람이 있네요. 그의 아내는 바이에른 분가 출신의 엘리자베스(그녀의 어머니는 막달레나 비스콘티 였습니다. 그 유명한 이탈리아의 비스콘티 가문 출신이었음)로 4남 6녀 총 10명의 자녀를 낳아주는 통에... 영지는 균분상속에 따라 쪼개집니다.
브란덴부르크 변경후작의 문장입니다. 드뎌 독수리가 등장...
프리드리히 1세는 총 4개의 공식 작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브란덴부르크를 하사 받을 때 후작 작위와 함께 선제후 작위를 받았습니다.
1. 브란덴부르크 선제후(Elector of Brandenburg), 여기엔 기존의 작위인 뉘른베르크 도시백(Burgrave of Nuremberg)이 포함됩니다.
2. 브란덴부르크 변경후작(Margrave of Brandenburg)
3.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후작(Margrave of Brandenburg-Kulmbach)
4.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후작(Margrave of Brandenburg-Ansbach)
자 아들 네 명인데 작위도 네 개... 여기서 선제후는 선출직...
장남 요한이 아버지의 유언상 후계자였습니다만... 차남 프리드리히는 주변 귀족들을 규합하여 자신이 선제후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결국 아버지가 죽자 마자 네 아들은 다툽니다. 내 것을 달라... 가장 좋은 지역이었던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는 장남 요한이 선제후 지위는 차남 프리드리히가 갖고 나쁜 지역인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는 셋째 알프레히트가 가집니다. 문제는 막내 뚱보 프리드리히였는데 자기 몫을 달라고 칭칭... 결국 알트마크 지방을 가지고 독립 백작이 됩니다.
결국 아버지가 평생을 애써서 만들어 놓은 영토를 아들들이 나눠먹기식... 게임에서 흔히 보는 분열... 다 이런 식이죠.
그런데 흥미롭지만 역사는 묘하게 흘러갑니다. 영지가 척박한 셋째 알프레히트(Albrecht III, 1414 – 1486)를 빼고는 뒤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해 모조리 남계 단절됩니다. 딸만 낳은 형제들은 영지가 도로 가문으로 돌아가죠. 알프레히트는 형제 중 가장 오래 살았고 2번의 결혼을 통해 19명의 자녀를 얻습니다. 다 성장한 건 아닙니다... 너무 겁내지 마시길...
알프레히트는 형제들의 영지도 회수해서 통합하지만 자신도 자식이 너무 많아서 다시 나누어줘야 할 형편이 되죠. 이래서 분할 상속은 무섭습니다. 모았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았다가 흩어지고... 호엔쫄레른 가문 정리하다가 머리 터질 뻔... 무슨 분가가 이리 많은지...
알프레히트는 영지를 세 조각으로 나눕니다.
Margrave of Brandenburg와 Elector of Brandenburg의 경우 장남 요한에게 물려줍니다.
그리고 꿀땅인 Margrave of Brandenburg-Kulmbach는 셋째 시기문트에게...
차남 프리드리히에겐 척박했던 Margrave of Brandenburg-Ansbach를 줍니다만... 새롭게 개발하여 신도시로 탈바꿈하던 Bayreuth 지방을 더해서 줍니다. 안스바흐는 토지 상태가 좀 안 좋지... 그러니 신개념의 도시를 하나 더 얹혀주지... 뭐 이런 식이죠.
이리하여 1398년 세 분가가 이루어지면... 어느 한 쪽에서 남계가 단절되면 다음 친족에게 넘어가는 치킨게임이 시작됩니다. 아들 못 낳으면 게임은 끝이야... 끝...
분가들이 지닌 작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장남 Elector of Brandenburg와 Margrave of Brandenburg
차남 Margraves of Brandenburg-Ansbach (1398–1791)
삼남 Margraves of Brandenburg-Kulmbach (1398–1604)
나중에 Margraves of Brandenburg-Bayreuth (1604–1791) 대표 작위명 변경
이야기는 당연 장남이자 종가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가계로 연결됩니다. 분가들은... 영~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 호엔쫄레른 분가들은 저네들끼리 결혼해서 사촌이자 부부이고 육촌, 팔톤 넘어가도 또 부부... 혈족간 잦은 결혼으로 인해 영지가 이리저리요리조리... 이동을 합니다. 물론 남계로 넘어갑니다. 무조건... 최후의 승자는 역시... 종가였습니다.
1415년 프리드리히 1세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된 이래...
아들 알프레히트 3세, 손자 요한, 증손자 요아킴 1세, 현손자 요아킴 2세...
그냥 장남으로 쭉 상속되어 갑니다. 쭉...
그런데 분가인 Margraves of Brandenburg-Ansbach 프리드리히 1세에게는 17명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자식들이 있었는데 아내는 폴란드 공주 소피아(아버지는 폴란드왕 카시미르 4세였고 어머니는 합스부르크의 엘리자베스)였습니다. 영지는 척박히기로 유명한 안스바흐였는데 입은 많고... 그래... 기사단이나 주교로 보내버리자... 장남 아닌 자식들은 이렇게 처리되었습니다.
17명 중 8번째인 아들 알프레히트(1490 – 1568)는 수도사가 되었고 1510년 Grand Master of the Teutonic Knights 즉 튜더 기사단의 단장이 됩니다. 그런데...
그는 가톨릭에서 루터파로 과감히 개종을 단행합니다. 난 혼자 못 살아... 독신이 뭐야...
그리하여 튜더기사단 따윈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 스스로 프러시아의 공작이 됩니다.
그래... 난 세속적인 것이 좋아... 비록 장남이 아니라서 기사단에 들어 왔지만...
스스로 Duke of Prussia 작위를 생성해서 자칭합니다. 난 프러시아 공작이라고...
기왕 영주가 되었으니 덴마크 공주 데려다 장가도 들고 자식도 얻습니다만... 가톨릭 신의 노여움인지 뭔지... 태어나는 아들들이 2살을 못 넘기는군요. 젠장...
다시 새 장가를 들어서 아들을 고대합니다. 아들아들아들... 78세로 장수했던 그는 1553년에 비로소 후계자 알프레히트 프리드리히를 얻습니다. 내 나이 63세구나~ 오래 살아야지...
내 아들이 아청공작이 되는 건 안돼~~~
2대 프러시아 공작이 된 알프레히트 프리드리히(Albrecht Friedrich, 1553-1618)는 저 멀리 네덜란드에서 부인을 데리고 옵니다. 내 마눌님은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외손녀라구... 아내 마리는 7명의 자식을 낳지만 두 아들은 한 해를 못 넘기고 요절합니다. 이게 뭐냐... 신은 나를 버리시는가... 왜 아들을 안주냐고... 겨우 프러시아를 획득했는데 줄 후계자가 없어!!!
정말... 신앙을 바꾸면서 아버지가 창설한 공작령을 딴 넘에게 줄 수 없었던 알프레히트 프리드리히는 촌수가 증손뻘이었던 요한 시기스문트(Johann Sigismund, 1572-1619), 즉 종가집 Elector of Brandenburg 의 상속자에게 장녀 안나를 시집보냅니다. 그래 내 일족이 계속 지니는 것이 좋아~ 딴 넘 좋은 일 못시켜...
프러시아를 확보했을 이 무렵부터 프랑코니아 라인의 호엔쫄레른 가문 영주들은 일제히 신교도로 개종합니다. 가톨릭보단 군주 잘난 척 할 수 있는 신교가 더 좋아... 루터파로 개종했다가 다시 칼뱅파로 옮겨 탑니다. 칼뱅파는 더 신교적 이었죠. 그래서 통혼권도 신교도 왕족들만으로 한정됩니다. 합스부르크나 비텔스바흐는 안녕~~~
요한 시기스문트는 진짜 운 좋은 사나이였습니다. 호엔쫄레른 가문에서 결혼 대박을 터뜨린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는 요아킴 2세의 증손자이자 종가의 상속자였습니다. 아내 안나가 프러시아 공작령을 들고 왔는데... 더 대박인건 안나의 외숙부 Duke of Jülich-Cleves-Berg이었던 요한 빌헬름이 자식을 남기지 못해 재산 몽땅 조카 안나에게 넘긴 것입니다. 호엔쫄레른의 종가 계열은 17세기 초 프러시아뿐만 아니라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 쪽에도 영지를 확보하게 됩니다. 이때 호엔쫄레른 가문에 넘어온 작위는 Duke of Cleves, Count of Mark, Count of Ravensburg였는데 영구히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상속 작위에 포함되게 됩니다.
한번 내 손아귀에 들어오면 남 주는 거 없다... 호엔쫄레른 가문의 원칙!!!
아들 게오르그 빌헬름을 거쳐 손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에 이르면 “the Great Elector”라는 칭호를 획득합니다. 말 그대로 대선제후...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는 1701년 작위를 업그레이드 합니다. 이젠 왕이다. 왕... 초대 프로이센 왕에 등극합니다. 새로운 작위 창설...
그는 대단한 수완가였는데 자신의 영지 주변에 대가 끊기는 영주의 후계자를 자처하여 그 영지를 사들이거나 인척임을 빌미로 작위 상속자로 스스로를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거부당하기도 하지만... 강력한 파워만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죠... 인정 안 해? 그럼 한판 뜰래...???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란예 공 윌리엄 3세가 후손 없이 죽자 자신이 빌럼 침묵공의 외증손자 임을 빌미로 스스로 오란예 공작이 되죠... 물론 거부당하지만... 나사우 가문이 이 소릴 듣고 무지 싫어합니다. 뭐... 니가 네덜란드를 날로 먹겠다고...?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 1657-1713)는 1701년 프로이센 왕이 되면서 브란덴부르크와 영지를 동군연합 형태로 재편합니다. 개인 작위간의 연합이라고 해야 하나... 프로이센은 원래 폴란드왕국 데쥬레에 속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폴란드 영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 니 잘났다... 프리드리히... 폴란드왕의 전언 중에서...
프로이센 왕 문장... 어쩐지 독수리가 또 나와...
그는 두 번 결혼했는데 첫 아내는 헨리에타로 고종사촌 간이었는데 황제 레오폴드 1세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 반대를 뚫고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합니다. 완전 아내랑 러버 띄우고 잘 살았는데 불과 4년 만에 아내 요절... 딸 하나 남기고 죽었는데 그 딸도 시집가자마자 25세로 요절... 사랑의 결실은 없구나...
그는 다시 재혼을 했는데 그녀 이름은 하노버 선제후의 딸인 소피아 벨프... 오빠가 바로 1714년 독일인으로 영국 왕이 되었던 조지 1세였죠. 이 결혼을 시작으로 호엔쫄레른 가문은 자주자주 영국 왕실과 혼인합니다.
소피아가 16세가 되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프랑스로 여행 보내면서... 이왕이면 루이 14세의 황태자 루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말 합니다. 즉... 너 프랑스 왕비나 되어라...
그러나 루이 14세는 바이에른 공녀를 며느리로 택하죠. 소피아는 결혼 시도 실패 후 고향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로 귀향했는데... 마침 첫 아내를 잃고 새 장가를 들어야 하는 프리드리히의 눈에 들죠. 딱 좋네... 신교도인데다가 선제후의 딸이니...
두 사람이 결혼할 당시 호엔쫄레른 가문은 아직 선제후이었는데... 결혼 후 17년 만에 왕국이 창설되면서 그녀는 왕비가 됩니다. 그녀 어머니 소원대로 왕비로... 프랑스는 아니지만 훗날 더 위대한 제국의 할머니가 되었으니 저승에서 엄청 좋아했겠죠.
프리드리히 1세와 소피아 사이에는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차남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뒤를 이어 즉위합니다. 장남은 한 해도 못살고 요절... 외아들이라 심장 쫄깃 했겠죠...
이 바닥에선 아들 없으면 게임 끝이라고... 어떻게 주워 모은 영토인데... 남 줄 수 없지...
프리드리히 1세는 당시 ‘용병왕’이라 불렸습니다. 그의 손자 프리드리히 대왕이 할배를 평하길... 용병 하나는 정말 최고였다... 선제후에서 왕이 되었는 이유는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2대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Friedrich Wilhelm I, 1688-1740)는 프로이센의 기초를 닦은 군주로 우리나라 역사로 치자면 ‘태종’과 같은 존재였죠. 왕국의 중앙집권화를 추구했고 세금제도, 병역제도를 크게 개선시켰고 중산층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우게 됩니다. 물론 귀족 자제들은 무조건 군대로 직행... 흥미로운 건 국민들에게 초등교육을 의무로 시켰다고 합니다. 원래 피지배자는 무식한 게 지배자입장에선 통치하기가 편리한데... 반대로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군주... 참으로 특이합니다.
또한 전염병으로 초토화된 프로이센 땅에 대규모 이민을 장려했죠. 그 덕분에 독일인이 폴란드 영토에 대거 이주하면서... 2차 대전의 불씨를 당기죠. 단치히라고... 이 도시는 독일인이 발전시켰습니다. 요렇게 이주한 독일인들이...
그는 정말 태종과 비슷한 삶을 살았죠. 태종이 아내 원경왕후랑 처갓집 문제로 다투었는데 여기서도 처가인 영국이랑 아주 살벌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의 아내는 소피아... 영국왕 조지 1세의 딸이며 조지 2세의 누이였습니다. 즉... 외사촌이랑 결혼했습니다. 어머니 오빠의 딸이랑 결혼... 그런데 왕은 아내를 무지 싫어했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마도 영국 왕실 가족들이 porphyria라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어서... 유전병 공포? 아무튼 마누라를 구타까지도 한 왕 덕분에... 자식들이랑 엄청 사이가 안 좋았죠. 참... 자식은 총 14명을 낳았는데 어른이 된 자식은 아들 네 명과 딸 다섯 명이었습니다.
특히 후계자 프리드리히(Frederick II ‘the Great’, 1712-1786)랑은 완전 상극... 그는 어머니랑은 엄청 잘 지냈다고 합니다. 마마보이...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오빠 조지 2세의 딸들 중 똑똑한 수재라고 소문만 아멜리아를 프리드리히의 신부감으로 생각했고 결혼을 추진했는데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은 대노했죠. 그 집안 이상한 유전병 있는데... 시러~ 정말 시러...
대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가문에서 며느리 감을 데려와서 아들에게 강요합니다. 내가 선택한 여자랑 결혼하라고~ 그 외사촌은 절대 안됨... 아무리 수재라고 해도 안됨...
프리드리히는 소시적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영국으로 망명할 것을 꿈꾼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절친 하나를 데리고 영국행 배를 타고 떠나려고 할 때... 반항기 아들이 도망치는 꼴을 못 본 아버지는 체포명령 발동... 둘을 잡아들였고 왕자의 탈주를 도운 친구 넘을 프리드리히 눈 앞에서 처형시켜버립니다. 아들은 차마 못 죽이고 대신 아들의 절친만 죽임... 참 그 절친 이름은 한스(Hans Hermann von Katte)라고 합니다.
프리드리히는 절친 죽고 바로 아버지 명령에 의해 강제로 결혼해야 했습니다. 실은 사촌 아멜리아가 더 좋은데... 그녀는 소문난 수재 여성인데다 아주 뛰어난 작가였다는 소문이... 그 영국 공주랑 결혼했다면 프리드리히의 자손이 계승했을 터이지만...
강제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했던 그는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소심한 복수... 1년에 딱 한 번 아내를 만났다는 전설 아닌 현실이... 그러니 자식이 생길 일 없겠죠. 서로 원수 보듯이 하고 살아갔으니... 자발적 고자? 아버지가 죽자 즉시 자발적 독신주의자를 선언 했다는... 부자 싸움에 한 여인만 평생 개고생... 불쌍한 그녀였습니다.
2대와 3대 왕의 반목 속에서 프로이센 왕국은 팽창을 거듭합니다. 둘 다 정치적으로 뛰어난 군주였다는 점은 부인 못하죠. 다만 성격 차이가 너무나도 컷다는 사실... 불행했던 개인사의 한 일면이었습니다. 역사엔 아들 프리드리히가 대왕으로 남았고 소위 계몽군주로 독일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 건 사실일 껍니다. 세계사 시간에 등장할 정도의 인물이어니... 우리나라의 세종과 같은 역할을 해 냅니다. 뛰어난 명군으로 남죠.
프리드리히 2세 대왕이 죽을 무렵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입니다.
영지를 잘도 주워 모으는 중... 특히 실레지엔은 무력을 통해 획득했습니다.
클레이브와 마르크는 결혼을 통해 넘겨받았죠. 실로 대단한 확장력...
프리드리히 2세 대왕의 후계자는 바로 밑 동생 아우구스트 빌헬름(1722-1758)의 장남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였습니다. 형님이 70세 넘게 장수한 터라... 동생이 먼저 죽고 조카가 후계자가 됩니다. 동생 아우구스트는 형이 자식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차기 후계자로 인정받았지만 워낙 군사적 재능이 부족하자... 형님이 엄청 동생을 책망합니다. 너 멍청이냐... 군대 하나 지휘도 못해... 너 진짜 바보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동생님은 결국 뇌종양으로 사망신고를 냅니다. 아... 너무 뛰어난 부형 아래 에선 평범남은 살기 힘들어...
아우구스트는 형수랑 친척인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공녀와 결혼해서 1남 3녀를 남겼고 외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왕위를 이어 받습니다.
상당히 로맨티스트라고 해야 할지 아님 바람둥이라 할지... 상당히 이중적인 성격인 듯 한 인물이었죠.
백부인 대왕을 이어 즉위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Friedrich Wilhelm II, 1744-1797)는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전통 신교도 주의 부활을 꿈꾸었고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같은 건축 활동을 장려했으며 예술활동을 크게 장려합니다. 군국주의는 시러... 그건 할배나 백부나 하지 난 문화적인 화려함을 사랑하지...
그는 두 명의 왕족 출신 아내에게서 정당한 후계자를 얻은 후... 열심히 바람을 날리며 살아갑니다. 아주 야심적인 여성들인 줄리와 소피... 모두 프러시아 하급귀족 여인들로 왕에게 귀천상혼 결혼을 얻어낼 정도의 잔머리 잘 굴렸죠. 왕은 정식 왕비가 있음에도 애첩들 사이에서 희희낙락... 자발적 고자이신 백부가 알았다면 머리통을 팍... 할배가 알았다면 어쩌면 눈 앞에서 처형...? 아무튼 소위 ‘삶의 길’을 충실히 누렸다는 말 밖에는 남는게 없네요...
두 번째 아내 헤센-다름슈타트 공녀에게서 얻은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Friedrich Wilhelm III, 1770-1840)는 어릴 적부터 수줍음 잘 타고 우울증에 시달린 소년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의 바람기에 질렸다고... 성장해서는 아버지랑 반대로 아주 경건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상당히 정치적으로 유능했는데 그의 치세는 나폴레옹 전쟁 말기였고 새로운 세계질서가 재편되던 시기였습니다. 변화기 때 정말 유능한 군주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라는 망하죠. 운 좋게도 그는 성실하고 유능한 인간이었습니다. 진짜 운 좋은 프로이센...
그는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녀였던 루이스랑 결혼했는데 두 사람은 아주 러브러브한 사이로 발전합니니다. 왕 자신이 검소한데다가 아내랑 사이가 너무 좋았고 또한 서민적인 성격 탓에 국민들 인기가 그야말로 짱... 수 많은 정부를 두고 수 많은 서자를 얻었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죠. 사랑하는 사이인 터라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도 10명이나 태어납니다. 딱 5남 5녀... 진짜... 이 가문 대 이어가는 걸 보면 신기신기... 천 년 간 끊이없이 생산...
장남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1795-1861)가 이어받았는데 그는 왕좌를 낭만적으로 생각했고 정치적으로는 너무나도 보수적이었으며 시민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아주 무능한 군주로 찍힙니다. 그의 치세는 그야말로 민족 단위의 근대 민족국가가 태동하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변화를 무조건 No라고 외칩니다. 변화는 시러... 난 낭만적 전제군주... 그저 베를린을 아름다운 건물로 도배하고 주변 국가들이 식민지 쟁탈에 혈안이 되었음에도 혼자서 왕놀이 하면서 21년간 잘 놉니다. 그야말로 혼자서...
결국 자식도 남기지 않고 뇌졸중으로 사망에 이르지만 독일의 통일을 늦춘 장본인으로 낙인 찍힙니다. 그래 니 잘났다...
빌헬름 1세가 왕국을 통치할 무렵 호엔쫄레른 가문의 영토...
붉은 색이 프로이센 공작령입니다.
북부 독일의 절반을 혼자서 독식하고 있네요. 이래서 황제가 되는겨...
그의 후계자는 동생 빌헬름 1세(Wilhelm I, 1797-1888)로 오랜 산 덕분에 영광을 맛보죠. 차남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군대에 가야 했습니다. 프로이센의 전통 중에 왕자는 거의 10살이 되면 군대로 직행... 군사적 능력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과거 프리드리히 대왕은 6세 때 군대에 들어갔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이 가문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군대...입니다.
그 자신은 워털루 전투에 참전해서 나폴레옹 전쟁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근대적 시민 사회의 여파를 몸소 체험하죠. 그래... 프랑스 혁명의 여파는 결국 기존의 체제를 서서히 변화시키는 구나... 빌헬름은 독일 통일에 있어서 합스부르크 가문이나 자신의 형이 가진 사고가 역사적 관점으로 볼 때...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전쟁을 통해 체험했기 때문에 사고를 달리합니다. 민족국가의 창설... 결국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상당히 늦은 나이었던 30세에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녀 엘리사와 결혼합니다. 형님 왕이 자손이 없을 기미를 보이자... 후계문제로 인해 의무적인 결혼에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1남 1녀를 얻는데 외아들이 훗날 2대 황제가 된 프리드리히 3세입니다. 딸 루이즈는 바덴 공작에게 시집갑니다. 사위였던 프리드리히는 황제의 사위가 되는 덕분에 일약 대공작으로 승진하고요. 흥미로운 건 빌헬름의 두 자녀는 각자 부부 사이가 소문날 정도로 좋았다고 합니다. 당시 왕족들 사이에선 드물게... 아마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남긴 전통일는지... 아내 하나면 다 되는데 무슨 정부여... 아내가 낳은 자식이 항상 농구부를 만들고도 남지... 이게 호엔쫄레른의 전통이라고...
특히 딸 루이즈 공주는 남편이랑 잉꼬부부로 통해서 바덴 국민들에게 엄청난 인기였다고 합니다. 그녀가 무척 검소한 여인이라서... 당시 국민들은 소위 ‘세금 먹는 하마’를 엄청 싫어했죠. 마침 시집오신 황녀가 엄청 검소해... 기존 왕궁이 답답하다고 조그마한 별장으로 도망가서 가족끼리 조용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흐뭇... 했겠습니까...? 또한 결혼 몇 주 만에 바로 임신... 후계자 문제도 바로 해결... 아무튼 대단한 공주님이었다고...
아들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1831-1888)는 백부의 무자식으로 인해 태어나자 마자 추정 계승자로 인정받아서 결혼 또한 아주 정략적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장녀 빅토리아(Victoria of Saxe-Coburg and Gotha, 1840-1901)를 황후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독일제국이 마침 출현도 했고... 1851년 빅토리아와 프리드리히는 런던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른바 간보기... 여왕이 얼마나 장녀 시집 보낼거라 작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장래 사윗감을 데려다가... 두 사람 나이 차가 9세인 터라 20세 왕자와 11세 공주가 만나는 겁니다. 어어어이.. 이거 경찰 불러야 되는 거 아냐...?
1857년 두 사람의 결혼이 발표되자 런던의 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신이시여 신랑 신부 두 사람을 보호하소서... 두 나라의 동맹을 위해...” 그냥 정략 결혼이었다 이겁니다. 둘이 사랑해서가 아니고... 두 강대국이 동맹을 맺어야 세계가 종용할 것 같으니...
문제는 당시 재상인 비스마르크였습니다. 이 노회한 재상은 빅토리아의 사고를 무척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독일식 전제주의와 영국식 민주주의가 베를린 궁정에서 충돌하고 있었죠. 빅토리아는 대단한 의회민주주의 신봉자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정치적 감각도 뛰어났고 다음 세계의 흐름도 전망하였고... 결혼 후 바로 아들 빌헬름을 낳았는데 두 젊은 부부는 자식을 비스마르크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독일식 교육을 시킨다고 데리고 가버렸다는...
다양한 태클에도 실로 두 부부 사이는 엄청 좋았으며 프리드리히는 곧 영국빠가 됩니다. 마눌님이 좋으면 다 좋아... 처갓집 말뚝에도 절하지... 그러니 전형적인 독일인 비스마르크랑 삐걱될 수 밖에... 없었겠죠.
독일제국의 문장... 역시 프로이센 문장이 빠지면 안되죠.
프리드리히는 장수한 아버지 덕분에 단 99일만 황제 노릇을 합니다. 즉위 당시부터 귓병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었죠. 그 추측대로 곧 사망에 이르지만... 남겨진 아내 영국 공주 빅토리아는 혈통상 완전한 독일인이었음에도 민주주주의 사고방식과 궁에서 굽히지 않고 영어 사용으로 인해 완전 베를린 궁전 내 에서 찍혀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남편이 57세 나이로 병들어 죽자 13년간 검은색 애도의 복장을 착용하면서 여생을 살아갑니다.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딸... 자녀는 4남 4녀였습니다.
장남ㅇ었던 빌헬름 2세(1859-1941)... 참으로 광대와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천 년을 이어 온 가문을 통째로 말아먹은 인물... 수염 하나로 웃기게 길러서 자칭 카이저 수염... 오늘날 태어났다면 배우나 하면 딱이었을 인물... 태어날 때 산파가 자못 실수해서 아기의 왼팔을 심하게 잡아당기는 통에 평생 불편한 장애를 겪게 됩니다. 그의 평생 트라우마가 바로 왼팔이었는데... 왼팔을 잘 사용하지 못해서 성격이 삐뚤해 졌다는 소문이... 확실히 군사적 기질이 우선시되는 프로이센 왕실 분위기에서 이른바 장애인은 살아가기 힘들었겠죠... 뭐...
1889년 채용한 독일제국의 문장입니다. 누구 닮아서 엄청 화려하게 만들었군요.
그의 조바심은 결국 1차 세계대전을 초래합니다. 유럽의 패권 쟁탈전... 사촌들과 격렬히 싸우지만 승리의 여신은 빌헬름을 버립니다. 그는 1918년 모든 작위를 잃고 네덜란드로 망명을 떠납니다. 패배자는 모든 걸 포기해야 되었죠. 그의 오판으로 독일은 1945년까지 방황하게 됩니다. 지금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두 번의 전쟁으로 독일은 교훈을 얻죠. 그래 그냥 장사나 잘해서 잘 먹고 잘 살자...
현재 여성 수상님이 집권 중인데... 정말 대단한 철혈 여인입니다.
여기까지가 호엔쫄레른 가문 중 프랑코니아 라인의 역사입니다.
뉘른베르크 도시백작 콘라드로부터 독일황제 빌헬름 까지...
무려 천 년을 지속해 옵니다. 아직도 후손들은 다수 살아가고 있습니다.
끝까지 살아남는 저 저력... 정말 대단하네요. 그저 대단하다고...
프랑코니아 라인(Franconian branch)의 특징은
1. 결혼은 반드시 우리들끼리 한다. 절대 영지를 남에게 주지 말자.
2. 군사력은 모든 것의 원천... 무조건 아들 낳으면 군대로 GO...
3. 신교를 신봉하여 가톨릭 국가를 압박한다. 그리하여 영토 확장...
4. 결혼해서 얻은 영지는 무조건 종가 작위로 편입... 절대 나누어주는 건 없다.
그리하여 독일의 절반을 획득합니다. 대단한 가문이라는 말 밖에...
영지 모으는 수준 타 독일 가문들은 배워야합니다... 진짜로...
프랑코 라인이 지녔던 대표 작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잔잔한 영지의 작위는 대부분 대표 작위에 포함시켜 장남에게 넘겨주는 방식을 택해 영지 분할을 최소화했습니다.
백작급 이하 작위는 가능하면 대표 작위에 넣어 소멸시켰죠.
Burgrave of Nuremberg
Margrave of Brandenburg
Duke of Prussia
Prince of Neuchâtel,
Margrave of Brandenburg-Kulmbach-Bayreuth
Margrave of Brandenburg-Ansbach
King of Prussia
German Emperor
프랑코니아 라인의 역사가 너무 길어서...
슈바벤 라인은 별도의 장을 만들어 소개하겠습니다. 이 집안도 천 년... 정말...
게임 유저들에게 널리 알려진 호엔쫄레른 가문하면 바로 프랑코니아 라인입니다.
프러시아 왕과 독일 황제가 이 라인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장남 계열입니다. 아주 가문 유지를 잘한 케이스...
어찌 보면 합스부르크 가문보다 더 대단하다는... 사견입니다.
다시 뵙겠습니다. 장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 유로파에 브란덴부르크가 호엔쫄레른 가문 소유죠... 실력이 딸려서 유로파는 영...
떳다!
글이 재밋어서 웹툰 연재 기다리는 마냥 이 글도 기달려지더군여
이 글 쓰면서 웹툰 작가의 노고를 알게되었습니다. 단... 전 생계유지도 아닌데... 말입니다.
근대사와 현대사에 엄청난 자취를 남긴 가문이지요. ㅎㅎ
독일육군님의 장문의 글 솜씨 보고싶은데요. 독일육군... 설마 롬멜...? 탱크...? 궁금...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의 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이였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옛 경험상... 쉽게 쓰는 글을 지향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째 턱돌이만큼 영향력이 있던가문인데 국내에선 그리 유명하지 않죠. 합스부르크는 알아도 호엔촐레른은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그런가요? 호엔쫄레른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나요? 그게 더 신기...
@shyisna 네 프로이센은 알아도 그곳 왕조를 모르는 사람은 꾀 됩니다.
이 가문도 대가문으로 남다른 매력이 있네요 ㄷㄷ 카페가 대대손손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고, 합스부르크가 한방 결혼을 보여준다면 호엔쫄레른은 거의 왕의 귀환의 느낌이...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왕의 귀환이라... 한방의 결혼 보다는... 수성하는 능력이 최고인 집안입니다. 장남 가계가 단절을 안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정말... 꼭 한 번 만들어주세요. 막장 드라마가 꽃피우는... 프로이센... 이 집안은 연애 센스가 부족해요. 군대마니아들인지라...
삭제된 댓글 입니다.
황제 아무나 하나요? 영토 확보가 그만큼 충족되니... 독일연방 50% 먹어야 작위 창설 가능합니다.
아 웬지 크킹에서 호엔촐레른을 해봐야할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재미있는 연대기 부탁드립니다. 이왕이면 정벅 정벅 정벅... 진정한 정벅군주를...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 도전해보세요. 동쪽엔 신천지가...
연대기 쓰면 무조건 무력트레잇 달고 항상 지휘해야댈 듯하네요. ㅋㅋ
프로이센이라면 정말 무력 달고 다녀야... 기본적이죠. 용감이나 인내심 정도는...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정보네요..
예... 감사합니다.
ck는 해본적이 없고 eu만 하면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안스바흐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왜 같은가문인지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알게 됐네요.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