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번 버스정류장
홍경나
우리 집에서 잠실역으로 가는 30번 버스정류장까지 길은
거의 같은 거리의 길이 두 갈래다
아파트 쪽문을 나와서 왼쪽으로 105동 106동 107동 바깥 담장을 끼고 걷다 얼마 전 카페로 개조한 파리바게트
뿌리염색 뽀글이 파마 전문 모던센스 미용실을 지나 웰빙 천원마켓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10미터쯤 내려가는
길과 쪽문을 나서자마자 횡단보도를 건너 바로 골목길 워석버석 담쟁이가 버짐처럼 번져있는 붉은 벽돌 신성빌라
서쪽 빛살이 들창을 섬처럼 지나는 가든빌라 항상 코끝에 돋보기를 걸고 있는 정 사장님네 반지하 유미세탁소 아
침마다 내려앉는 참이슬 같은 어제도 내일도 365일 전단세일중인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진로마트 쪽으로 쭉 30
미터를 더 걸어가는 다른 길이다
나는 30번 버스정류장에 갈 때
두 갈래 길을 번갈아 다닌다
짐짓 멀리가기 위해 길을 잃듯이
너무 멀리 와 버린 길 위에서 길을 잃듯이
또 길을 잃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잃어왔을까
어떤 자신도 못한 채
한번은 첫 번째 길로 한번은 두 번째 길로 다닌다
어떤 날은 급해서 첫 번째 길로 갔고
어떤 날은 느긋해서 첫 번째 길로 간다
어느 길이 지름길인지 몰라
어느 길이 에움길인지 몰라
나는 여기저기 보도블록들이 꺼져 있는 두 갈래 길을 다닌다
나는 혼자 두리번두리번 이쪽 길로도 다니고 저쪽 길로도 다닌다
홍경나
대구 출생. 2007년 《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초승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