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왕의 침실을 지밀이라고 불렀으며 지밀은 궁중에서 가장 지엄하고 중요하여 말 한마디 새나가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왕의 침전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침실은 지밀(至密)이라고도 불렸다.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 의하면 ‘지밀’이란 궁중에서 가장 지엄하고 중요하여 말 한마디 새나가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특이한 사실은 이런 지밀에서 왕은 왕비와 더불어 생활한 것이 아니라 혼자 생활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유교의 왕도정치이념 때문이었다.
과거 군주제가 존재하던 시절 우리나라의 왕이나 중국의 황제들은 최고 권력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인 식욕과 색욕 그리고 권력욕을 무한히 행사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좋은 궁궐에서 살며 산해진미의 진수성찬을 즐기고 수많은 후궁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유학자들은 왕이나 황제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개인의 불행을 넘어 나라의 불행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왕이나 황제의 원초적인 욕망이란 곧 그들의 사생활 그 중에서도 밤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이에 따라 왕이나 황제의 침전 즉 침실 생활에 관련된 여러 가지 유교이론과 훈계가 나타났다. 조선시대의 경우 왕의 침실 생활에 관한 기본적인 입장은 정도전에 의해 확립되었다.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설계자로서 건국이념, 국가노선, 국가 제도 등을 확립한 인물이었다. 그는 태조 이성계의 명령을 받아 경복궁 각 건물의 이름을 지을 때, 침전의 이름을 강녕전(康寧殿)이라고 하였다. 강녕전이라는 이름에는 왕의 사생활, 그 중에서도 밤 생활에 대한 유교적 훈계가 들어 있었다.
고종 대에 중건된 경복궁의 침전 강녕전 모습, 1897년의 [진찬의궤(進饌儀軌).
정도전에 의하면 강녕이란 5복 중의 하나로서,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하여 덕을 닦아 황극(皇極)을 세우면 몸과 마음이 강녕해지는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나라와 천하가 강녕해지는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결국 정도전이 경복궁의 침전을 강녕전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황극’이라는 말에 압축되어 있었다.
정도전이 언급한 황극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태극과 같은 뜻이었다. 동양철학의 태극이란 우주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근본을 의미했다. 음과 양 또는 상하좌우로 나뉘기 이전의 근원이 태극이고 황극이었다. 즉 식욕, 색욕, 권력욕 등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발생하기 이전의 중용 상태가 황극이었다. 황극은 중용 상태이므로 좌도 없고 우도 없으며 위아래도 없었다. 온갖 분열과 대립이 파생되기 이전, 온갖 욕망이 들끓어 오르기 이전의 중용이 황극이며 태극이었다. 요컨대 정도전이 경복궁의 침전을 강녕전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왕이 밤에 조용히 황극을 닦으며 식욕, 색욕, 권력욕 등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잠재워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해야 왕은 하늘이 내리는 오복을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왕의 밤 생활이 식욕, 색욕, 권력욕으로 휩쓸릴 경우 오복이 아니라 천벌이 내린다는 경고도 숨어 있었다.
정도전은 침전의 위치와 공간 구조도 황극을 기준으로 하였다. 즉 경복궁의 침전 강녕전을 정중앙에 위치시켰던 것이다. 강녕전 전면에 사정전과 근정전, 후면에 후원 그리고 좌측에 연생전, 우측에 경성전 등을 둔 것이다. 강녕전 후면 지역에는 세종대에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이 세워졌고, 이로서 강녕전은 더 확실하게 경복궁의 정중앙이 되었다. 이처럼 경복궁의 정중앙에 침전을 배치한 이유는 침전이 바로 지상의 황극임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 우주의 황극이 음양과 상하좌우로 분열되기 이전의 근원이듯이, 지상의 황극인 왕의 침전도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도출되었다. 즉 왕의 침전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왕은 궁궐의 정중앙에 위치한 침전에서 홀로 거처하며 하늘의 황극을 닦아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실제로 조선시대 왕의 침전은 왕비와 함께 쓰는 것이 아니라 왕 혼자만 쓰는 공간이었다.
1 | 2 |
1 경복궁의 침전 강녕전의 배치도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
왕의 침실은 궁궐에서의 위치뿐 아니라 침전의 공간 구성 자체도 황극을 상징하였다. 왕의 침전은 좌우의 온돌방과 중앙의 대청으로 구성되었는데, 좌우의 온돌방이 바로 침실이었다. 이 침실은 기본적으로 우물 정(井)자 형태였는데, 우물 정 자가 황극과 관련이 있었다. 즉 우물 정 자는 ‘井’의 형태로서 중앙의 방 하나와 이를 둘러싼 8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다. 중앙의 방은 황극이며 주변 8개의 방은 8괘를 상징하였다. 당연히 왕이 잠을 자는 방은 황극을 상징하는 중앙의 방이었다.
이 같은 침실 즉 지밀의 구조 및 이념은 경복궁의 강녕전만이 아니라 창덕궁의 대조전, 덕수궁의 함녕전 등 다른 궁궐의 지밀에서도 동일하였다. 이처럼 조선의 왕은 지밀에서 홀로 황극을 닦고 그것을 편전과 정전에서 정치적으로 구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다.
- 글
- 신명호 | 부경대학교 교수
-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및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역임, 현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조선왕비실록], [조선공주실록], [한국사를 읽는 12k지 코드] 등을 집필하였다.
발행2013.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