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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70s] 05
더미와 양자, 물질을 하고 있다. 두 사람, 한껏 숨을 참고 있다가 올라와서 푸우- 숨을 내쉰다. 부표를 잡고, 더미, 백합조개를 한웅큼 들고 흔들며.
더미: 엄마~ 나, 백합 무지 줏었다!
양자: 그깐 조개 몇마리 갖구. 이거 봐라~ (참소라를 보여준다)
더미: 으아! 참소라잖아! (조개를 얼른 망사리에 넣고 헤엄쳐 온다)
씬79 동, 바닷가
양자와 더미, 바다에서 망사리를 들고 걸어 나온다. 더미, 동영의 헬기가 머 리 위를 지나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무심히 본다.
양자와 더미, 벗어 놓은 옷을 걸친다.
양자, 망사리에서 참소라와 조개, 미역 등을 꺼내 함지에 넣는다.
더미: 진짜, 참소라 오랜만에 본다. 그지. 엄마?
양자: 거봐라. 원래 젊은 꼬등어가 늙은 꼬등어 못 당하구, 젊은 기러기가 늙은 기러기 못 당하는거야~
더미: (소라를 이리저리 들어보며) 근데 얘가 미쳤나~ 어떻게 우리 동네까지 왔 지?
양자: 우리 더미 시집 가라구 왔지. 우리 딸, 혼수 마련하라구.
더미: (참소라를 함지에 넣고) 나 뭍에 갈래.
양자: 너 미쳤냐?
더미: 보내줘. 응? 보내주라. 뭍에 안가본 사람은 나 밖에 없잖아. 혜자랑, 운희랑 다 뭍에서 공장 다니구, 학교 다니구 그러잖어. 나두 보내주라. 응?
양자: 이년이 또 헛바람이 들어서.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안된다 그랬지?
더미: (소라 함지에 집어 던지고) 좀 보내주라!
양자: 괜히 헛바람 들어서 팔자 망치지 말구. 양근이 한테 조용히 시집이나 가.
(함지를 들고 일어난다)
씬80 동, 양자 있는 곳
양자, 함지 끼고 돌아본다. 더미, 양자를 노려보며 씩씩- 거리고 있다.
더미: 뭍에 갈꺼야!
양자: 미친년.(흘기고) 오늘 건진거 양근이 아버지 갔다 주구, 값 제대루 쳐 받어.
더미: 몰라! 엄만, 엄마두 아냐!!
양자: 이년이! (더미쪽으로 뛰어가려다 서고, 돌아서서 걸어간다. 혼잣말) 이년아.. 넌, 이대루 암 것두 모르구 살어야 해.. 그래야 너 편쿠. 나 편쿠. 세상이 다 편한거야..
더미: 야아!! 너, 내 망사리 물어주구 가!! 조개랑, 미역이랑 물어주구 가!!
동영: ..(무슨 소린가 싶어서 본다)
더미: (씩씩- 거리며 동영에게 다가온다)
더미, 막상 다가와서는 쭈빗하는 심정과 호기심으로, 동영을 살피듯 빙빙 돈다.
더미: 아저씨..저기서 내렸죠? 아저씨한테두 책임이 있거든요. 내가, 쟤 땜에요
망사리 떨어뜨렸거든요. 백합이랑 디게 많이 땄거든요, 오늘.
동영: (가만히 웃으며 주변을 도는 더미의 시선을 따라, 몸을 천천히 돌리고)
어지럽게 왜 그래요. 할 말 있으면 서서 제대루 해요.
더미: (멈춰 서서) 아저씨,뭍에서 왔죠? 거기사람은 다 아저씨처럼 잘 생겼어 요?
더미, 활짝 웃으며 동영을 본다. 동영, 더미가 우스워서 하하- 폭소를 터트리는
모습에서
씬1 삽시도, 언덕 위
더미,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동영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탐색하고 있다.
그런 더미를 따라 같이 천천히 몸 돌리는 동영.
동영: 어지럽게 왜 그래요? 할 말 있으면 서서 제대루 해요.
더미: (멈춰 서서) 아저씨 뭍에서 왔죠? 거기 사람은 다 아저씨처럼 잘 생겼어요?
동영: 하하하- (웃는다)
더미: 왜 웃어요? 서울 사람들은 다 아저씨 같으냐니까요.
동영: 글쎄..건 말하기 그렇고. 망사리 값은 뭐죠?
더미: 아! 내 망사리! 헬리꼽터요! 걔 때문에 놀래서 떨어뜨렸거든요. 거기에요,
아까 건진 백합이랑 미역이랑 들었는데...
동영: 저런... 얼마면 돼요?
더미: (동영의 눈치보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천..오백원요.
동영: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내민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더미: ..놀란 건 아니지만..(우물쭈물 받는다)
동영: (웃으며 돌아선다)
더미, 돈 한 번 보고 동영의 뒷모습을 본다.
씬2 삽시도, 언덕 일각
씬1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아래로 해안이 펼쳐져 있다.
동영, 삽시도 군사지도를 펴놓고 둘러본다.
그새 옷을 갈아입은 더미, 동영을 보고 뛰어온다.
지도를 보고 있는 동영의 얼굴 위로 쑥- 내밀어지는 천 원짜리.
동영: (올려다본다) 뭐예요?
더미: 깎을 줄 알고 비싸게 불렀거든요. 그냥 오백원만 받을께요.
동영: 오~ 그러니까, 아가씨 나한테 바가질 씌웠단 얘기네?
더미: (민망한 듯 해죽 웃고, 돈을 내밀며) 자요.
동영: 그 정도 가지고 안 되겠는데요.
더미: (표정 싹 바뀌고) 오백원이면 무지무지 싸게 받은 거라구요!
동영: (웃고, 멀리 햇살에 반짝이는 해안을 본다) 아, 정말 그림 같다.
우리가 이 섬 다 돌아보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더미: 우리..요..?
씬3 삽시도, 해안 암반
더미, 동영을 안내하고 있다.
더미: 여긴 다 이런 돌이에요. 나 어렸을 때부터, 한 번두 지진 난 적은 없었구요.
동영: (걸음 옮기는데)
더미: 조심요! 살짝 물기 있는데 밟으믄요 머리 깨지는 수가 있어요.
(돌 위에 올라온 멍게를 보고) 얘두 올라왔네. (동영 보고)어제 바람이
좀 있었거든요. 바다가 뒤집어져서 오늘 조개두 많이 건졌는데. (멍게 집는다)
동영: (암반을 만져보고) 편마암인데... 여기 말고 화강암 지대는 없어요?
더미: (잘 모른다. 생뚱맞게) 저어쪽으루 가면.. 몽돌밭 있구.. 면삽지 동굴두 있구
멍게를 손질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연필 깎는 접이 칼 꺼낸다. 그때 주머니에서
딸려 나온 총알이 뚝, 떨어진다. 통통- 튀어 동영의 발아래에 멈춘다.
동영, 무심히 주워 더미를 주려다 보면 끝이 휘어진 총알이다.
동영: (이리 저리 본다) 7.62mm?
더미: ....?
동영: 흣..(갸웃) 33mm?
더미: 뭐라구요?
동영: 카빈 탄두같네요.
더미: 카빈...? 그게 뭐예요?
동영: (웃으며) 군인들 쓰는 총요. (내밀며) 어서 났어요?
더미: (동영의 손에서 가져오며) 몰라요. 그냥 옛날부터 갖구 놀던 거예요.
동영: 위험한 걸 가지고 놀았네..
더미: (멍게 손질하며, 힐끔 쳐다보고는) ...아저씨 뭐하는 사람이에요?
동영: 낚시하는 사람.
더미: 낚시 하는 사람이 어서, 고기 잘 잡히나만 알면 됐지.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요? ..간첩 아니에요?
동영: 하하하- 간첩이면?
더미: 신고해서 포상금 받을라구요. 그 돈 갖구 서울 가게요.
(동영에게 멍게를 내민다) 자요.
동영: 아냐. 먹어요. 난 됐어.
더미: 먹어 봐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자요~ (내민다)
동영: (받아먹는다)
더미: (꼭지 부분 입에 넣고 씹는)
동영: (먹고) 서울이 그렇게 좋아요?
더미: 아저씬 싫어요, 서울?
동영: 난 여기가 좋은데. 쳐다만 봐두 가슴이 뻥 뚫리잖아. 좋잖아요? 바다.
더미: 좋다 못해 환장하죠. (몸을 돌리며) 여기두 출렁출렁, 저기두 출렁출렁. 천 지 사방이 시퍼렇게 출렁출렁. 한 십년 여서 살아봐요. 물만 봐두 환장할 테니까.
동영: (미소 짓고 더미를 보다) 그럼 아가씨가 좋아하는 건 뭘까?
더미: (주머니에서 버스럭거리면서 광고조각을 꺼낸다) 아저씨 태을방직이라구 알 아요? 무지무지 큰 회산 거 같은데 들어봤어요? (내민다)
동영: (받아서 본다) 태을방직.. 여직공 모집?
더미: 거기 들어가는 게 내 소원이에요.
씬4 양자의 집, 툇마루
양자, 밥상을 놓고 툇마루에 앉아 있다. 밥상 위에 수북한 고봉밥 두 그릇
과 찌개, 김치 정도의 초라한 반찬이 놓여 있다.
양자: (사립 쪽을 보며) 때 지난지가 언젠데.. 기집애가 갑자기 서울
바람이 들어선... (포기김치를 손으로 쭉- 찢어 먹고, 손가락
빨면서 일어난다.)
양자, 둘러보면 툇마루 구석에 쓰레받기, 빗자루 옆에 묵은 신문들.
양자, 신문을 한 장 꺼내 밥상을 덮다보면 광고 하단이 오려나갔다.
양자: 아니, 이 기집애가 걸핏하면 이 꼴을 만드네. 뭔 쪼가리를 그렇게
오려 붙 이는지.
양자, 다시 밥상을 신문지로 덮으려는데 문득 들어오는 사진 한 장.
양자: !
양자,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벗겨내 본다. 틀림없이 신문에 준희의 사진이
실려 있다. 새하얀 뿔테 안경을 쓰고 웃고 있는... 준희...
양자, 털퍼덕 하는 느낌으로 툇마루에 앉아 신문을 읽는다.
(인서트) 신문기사
‘태을방직 고창회 회장의 이세 고준희양, 장봉실 여사 ??션쇼 무대에’
양자: 태을방직 고창회 회장의 무남독녀 고준희양, 장봉실 여사 ??션쇼 무대에
선다. 오사카 칠십 엑스포 한국관 쇼에 나갈 데자이너 선정을 위해 열리는
이번 ??션쇼에 고준희씨의 모델 데뷰가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양자, 신문 내려놓고 고개 떨구고 준희의 사진을 본다.
양자: 강희야... 엄마야.. (금새 눈물이 그렁해지고, 목이 멘다) 강희야..
씬5 반도호텔, 앞
호텔 입구에 두 개의 플랜카드가 내려져 있다.
(인서트) 플랜카드
‘오사카 엑스포 70, 한국 대표 디자이너 선발 십인 릴레이 패션쇼’
‘경축 이북 오도민 협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택시 한 대가 도착한다. 뒷좌석 문 열리고, 준희 내린다.
준희, 호텔을 들어가려다 문득 돌아서 나와 플랜카드를 올려다본다.
이북 오도민 협회 행사 플랜카드를 바라보는 준희.
씬6 반도호텔, 행사장 앞
‘이북오도민협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플랜카드가 붙어져 있는 리셉션 장.
간사와 몇몇 직원들, 책상 위에 명찰과 식순 적은 팸플릿을 정리하고 있다.
정신없이 바쁜지 간사(50대, 여: 나중에 양자를 기억하는 역할을 한다),
팸플릿을 몇 장 떨어뜨린다. 준희의 발 아래로 떨어지는 팸플릿.
준희, 지나가려다 발길을 멈추고 팸플릿을 주어본다.
(인서트)팸플릿
‘가족과 피눈물로 헤어진 離散의 아픔을 같이 하는 여러분들의 이북오도민
협회’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준희: ...(망설이다 무겁게 입을 뗀다) 사람도.. 찾아주나요?
간사: 예에? (돌아본다)
준희: 일사후퇴 때 헤어졌어요. (고개 젓고) 아뇨, 아뇨. 휴전회담 끝나고
다시 한번 만났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만이라두 알 수 있나요?
간사: (뭔 소린지 답답해서) 으응? 뭔 소리에요, 그게?
(최비서의 목소리) 아가씨. 준희 아가씨.
준희, 돌아보면 최비서가 오고 있다. 최비서 뒤로 대형 화환을 들고
들어오 는 직원1?2.
준희: 최비서님이 여긴 웬일이에요?
간사: 오셨어요? (최비서한테 인사한다)
최비서: 예. 간사님. 이거. (화환을 본다)
간사: 어머나~ 세상에. 아구 예뻐라. (직원들에게) 안에 다 두세요.
아니다. 일단 놔요. 의자 배칠 아직 다 안 해서.
준희: (화환에 달려 있는 리본을 본다. 태을방직 고창회, 라고 커다랗게
붓으로 쓰여 있다) 아빠가 보낸 거네..
최비서: 오도민 협회서, 회장님께 사리원 명예시장이 돼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셨는데, 이번에도 거절하셨거든요.
준희: 그래요.. 리허설 시간 다 됐다. (웃고) 가 볼께요.
나중에 회사에서 뵈요.
최비서: 예. 아가씨. 잘하세요.
준희: 고마워요. (하고 돌아서 간다)
준희의 얼굴 위로, 등 뒤로 들리는 두 사람의 대화.
(간사의 말) 아아..그러고 보니까 신문에서 봤네.
저 아가씨가 고회장님 따님이구나.
간사: (호기심) 근데 고회장님 댁에 누구 찾는 사람 있어요?
최비서: 예?
간사: 아니, 따님이 누구 사람을 찾으시는 거 같아서요. 전쟁 통에
잃어버린 식구가 있나 하구?
최비서: ..(준희가 강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아뇨..
준희: ..(얼굴이 굳은 채 또각또각 걷고 있다)
(최비서의 소리) 사모님은 일사후퇴 때 돌아가시고.. 회장님하고 아가씨 단
두 분뿐 이죠.
준희, 손에 든 팸플릿을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다.
씬7 패션쇼 리허설 무대, 탈의 공간
준희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히고 있다. 옷과 면사포, 장식품, 신발을 신겨주며
시중을 드는 앙상블 식구들. 장봉실, 옆에서 보고 있다. 차연, 준희의 신발을
신겨준다.
준희, 화려하고 아름답다.
장봉실, 와인글라스에 와인을 한 잔 따른다.
장봉실: 평소 걷는 것처럼 걸어. 너무 잘하려구 하지 말구.
(준희에게 내밀며) 마음이 몸을 따라와야지, 몸이 마음을 따라가면 다친다.
워킹이나 사람 사는 거 나 매한가지야.
준희: (와인 받고)..
차연: 떨지 말란 말씀이셔.
준희: 안 떨려요. 이제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떨어 본 일 없어요.
그게 뭐든 겁내 면서 사는 사람 아니에요, 나.
차연: (아니꼬운) 하긴..천하에 태을방직 프린세스가, 겁날 일이 뭐 있겠어요.
고회 장님 그늘 밑에서 무서운거 없이 살았겠지..
준희: (와인을 단숨에 들이킨다.)
씬8 양자의 집, 툇마루
양자, 준희가 나온 사진과 기사를 가위로 오리고 있다.
양자, 신문을 다 오리고 목이 마른지 가위를 놓는다.
양은 주전자를 들어 벌컥벌컥 물을 흘려가며 들이킨다(Dis)
씬9 서울 여인숙, 마당
(자막) 1953년 7월
양자, 양은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둘러 마시고 있다.
치마를 대충 걷어 올린 부엌데기 모습의 양자, 준희와 함께 이불 빨래
하느라 함지 속의 호청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양자, 손등으로 입 닦고 ‘캬아~시원하다’ 하며 준희의 입에 주전자
대어주면 준희도 마시고 따라서 ‘캬아~시원타’ 따라한다.
열심히 호청을 밟기 시작하는 두 사람.
툇마루에 놓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백설희의 ‘아메리카 챠이나 타운’을
양자와 준희, 신나게 따라 부른다.
씬10 여인숙 한 방
양자, 준희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여인숙에서 일하고 얻은 밥 한 그릇이다.
양자, 제법 간간한 생선 조림 토막을 손으로 뜯어 숟가락에 얹어 먹인다.
양자: 한 토막 훔쳐 온 보람 있네. 잘두 먹네, 지집애..
양자, 준희의 입에 벌겋게 묻은 양념을 자신의 치맛자락으로 쓱- 닦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희, 잽싸게 양자 치마꼬리를 잡는다.
양자: 아구, 이양자 팔자야. 나 도망 안가! 밥이나 먹어!
너 밥 다 먹기 전에 올꺼야.
씬11 이북오도민 협회 건물
이북오도민회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이산가족 찾기 접수 중’ 이라는
방이 붙어있다. 양자, 종이쪼가리를 들고 건물에서 나온다.
양자, 협회에서 얻은 고창회의 주소와 약도를 본다.
(인서트) 약도에 고창회 회장. 가회동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씬12 고창회의 저택, 대문 앞
(세월이 흘러도 계속 창회의 집으로 사용합니다)
양자, 쪽지와 번지수를 확인하며 기웃기웃 거린다. 양자, 문패를 발견한다.
양자: 어! 맞네. 고창회.. 가회동..12번지..(눈이 둥그레져서 둘러보고)
세상에..고사장 전쟁 통에 더 벌었구만. 아주 떼 부자가 됐네.
양자, 초인종을 찾다가 못 찾고 보면 문이 열려 있다.
씬13 창회의 집, 마당
가든파티가 준비되어 있다. 김홍석과 동영, 장봉실과 빈이 앉아 있다.
시중을 들고 있는 최비서와 몇몇 사람들.
창회,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창회: 통일이 된 건 아니지만 휴전협정도 잘 끝났고..저한테도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딸아이를 찾았습니다.
빈: 준희 찾았어요!!
동영: 아..저..씨
김홍석: 고사장.. 그게 무슨 말인가?
창회: (미소) 오신 분들 모두, 우리 준흴 찾는데 걱정해주고,
애써주신 분들이라 이 자릴 함께 해야겠다 싶어 모셨습니다.
(안쪽을 보고) 준희야.
사람들, 무슨 말인가 싶어 보면 안쪽에서 강희, 귀공녀처럼 옷을 차려입고
나온다. 동영과 빈, 강희를 보고 깜짝 놀란다. 동영, 놀라서 벌떡 튕기듯
일어난다.
동영: 너, 넌!! 그 때 준희하고 있던 얘지!
강희: ..(새침하게 눈 내리깔고 동영을 못 본 척 하는)
창회: 인사해야지.
강희: 안녕하세요? 고준희 입니다.
동영: !
빈: (벌떡 일어난다) 야! 너 왜 거짓말시켜!!
씬14 창회의 집, 안쪽 입구
양자, 쭈빗쭈빗 걸어 들어오다가 빈의 소리를 듣는다.
(빈의 소리) 너 준희 아니잖아!! 내가 준희도 못 알아볼까봐 그래!!
양자: ?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본다)
양자의 눈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성장한 강희가 보인다.
양자: !! (놀라서)강희야...(부르려다 그 옆에 창회를 보고 얼른 나무
뒤에 몸을 숨긴다)
양자의 시선으로 고창회와 강희가 보인다.
빈: 니가 무슨 준희냐니까!
강희: (야무지게) 나 준희 맞아. 고준희.
빈: 이게 진짜! (테이블을 넘어가 준희에게 주먹을 든다)
장봉실: 빈아!
창회: (동시에) 얘야! (빈을 잡는다)
강희: (눈도 깜짝 않고 빈을 본다)
창회: (사람들을 차례로 보며) 동영이하고..빈이 네가...장군님하고,
장여사가 어떤 준희를 기억하고 계시던 (강희의 어깨를 잡으며)
여기 이 아이가 내 딸 준흽니다.. 내겐 유일한 피붙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양자: ! (어지럽다. 휘청하다, 나무를 잡는다)
창회: 앞으로 언제, 어디서 이 아이를 만나셔도..이 아이는 이 고창회의
하나 밖에 없는 딸, 고준희라는 것만 알아주십시오..이 말씀을
드리려고 제가 오늘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빈: 그만해요! 쟤가 준희가 아닌 건 아저씨두 알구, 모두다 알잖아요!
왜! 자꾸 그래요. 아저씨가 뭐라 그래두,
저 기집앤 준희가 아니에요!
빈, 화가 나서 대문 쪽으로 몸 돌려 뛰쳐나간다.
장봉실: 빈! (일어난다, 창회에게 고개 숙여)
미안합니다. 빈! 빈아! (쫓아간다)
강희: ..(뛰어가는 빈의 뒷모습을 눈이 찢어져라 흘겨본다)
양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Dis)
씬15 창회의 집, 마당(동장소 시간경과/밤)
(소리)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린다.
양자, 나무 뒤에 숨은 채 퍼지르고 앉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창회의 말을 떠올린다.
(창회의 소리) 여기 이 아이가 내 딸 준흽니다..
여기 이 아이가 내 딸 준흽니다..
양자: 미쳤어, 미쳤어! 인간이 전쟁 중에 정신이 어떻게 살끔 간 거지!
아니, 왜 남에 딸을 지 딸이래! (벌떡 일어난다)
양자, 집을 돌아보면 불이 하나, 둘 꺼지고 캄캄한 집에 창 하나만 희미한
불빛이 새나오고 있다. 양자, 집 쪽으로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씬16 창회의 집, 준희의 방(밤)
정원의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온다.
강희, 예쁜 잠옷을 입고 잔다. 넓은 방에 없는 것 없이 다 갖춰져 있다.
피아노, 공주님이나 쓸 것 같은 넓은 침대에 레이스, 책상, 책장..장식장에
수많은 외국 인형들. 커다란 옷장.
양자, 강희를 내려다보고 있다.
양자: (침대 옆에 앉아 강희의 얼굴을 만져본다) 어디서..굶나..먹나..죽었나..
살었나..밤 낮 그 걱정만 했더니..(눈물이 핑- 돌다 주르륵 흘러내린다)
강희: ..으응..(잠결에 거칠거칠한 게 와 닿으니까 귀찮아서 손으로 젓는)
양자: 아구..내 딸..이러구 이러구 있으니까 공주가 따루 없네. 포동포동
살 오른 것 줌 봐..(딸의 볼을 만져보다) 강희야... 강희야..(흔들어 깨운다)
강희: 으응..
강희, 눈을 깜빡이며 깨어난다. 모든 것이 흐릿한데 문득 양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놀란, 강희 소리를 지른다.
강희: 으아아아!
양자: (놀라서 강희의 입을 막고) 엄마야! 엄마. 놀랄 거 없어.
엄마라니까. 놀래지 마. 알았지?
강희: (고개를 끄덕인다)
양자: (입 막은 손떼고, 불을 켠다)
강희: ..(양자를 뚫어져라 본다)
양자: (강희의 손을 잡는다) 우리..강희.. 잘 있었지?
강희: 귀신이야...? 내가...제사두 지내줬는데...엄마..귀신 돼서 온 거야?
나 보구 싶어서?
양자: 뭐어?
강희: 귀신이래두..좋아..엄마..너무 보구 싶었어..괜히 제사 지내줬다
후회했어..한번두 안 나타나서..
양자: (강희의 등을 철썩-때린다) 이년아. 이렇게 손이
뜨끈뜨근한 귀신 봤어!
강희: 엄마 살았구나!! 안 죽었구나!! 챠리오빠랑 정자
아줌마랑 거짓말 한거구나!
양자: 그래, 살았어.
강희: 엄마!!! 엄마!!! (양자의 목을 얼싸 안는다)
양자: 강희야..(강희를 꼭 안아준다)
씬17 창회의 서재(밤)
창회, 술을 혼자 마시다가 책상 위에 세워 놓은 액자를 본다.
액자에 자신과 강희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창회: 여보...이제..이 녀석이 우리 준희야.. (액자 보며)
이 아일..정말..준희처럼..아니 준희로 사랑해주고 싶어..
용서해요..여보..
창회, 눈물을 훔친다.
씬18 준희의 방(밤)
강희, 가져갈 짐을 꾸리고 있다. 침대 위에 인형을 던져 놓고 있고,
양자, 옷장의 옷들을 챙긴다. 옷들이 옷장 가득 걸려있다.
양자: 세상에. 하루 지나믄 하루만큼씩 크는 애 옷을
뭐 이렇게 사들였어. (강희를 보며) 그깐 시덥잖은 인형은
뭐하루 가져간다구 그래.
강희: 아빠가 사준거란 말야!
양자: 어구. 변죽두 좋네. 언제부터 고사장이 니 아빠냐? 폭탄 맞어
죽은 니 애비가 놀래 벌떡 일어나겄다. 니가 한강희지 진짜
고준흰 줄 알어! 얼른 챙겨!
강희: 헤~ (민망해서 웃고) 그냥 이 집 채 다 가져가믄 안 되까?
양자: 얼씨구..
강희: 그럼..내 방에 있는 것만 다 가져가믄 안 되까?
양자: 트럭 부르랴?
강희: 우리 그냥 여기서 살면 안돼? 나, 엄마 딸 강희두 하구..
아저씨 딸 준희두 하구..우리 다 같이 여기서 살믄 안돼?
양자: 이 기집애야 준희는,(하는데)
강희: 진짜 준희 죽었어. 너무너무 불쌍하게 죽었어.
양자: 아니 그게 아니구 준희는,(하면)
강희: 준희한텐 미안한데...나 준희, 강희 둘 다루 살구 싶어.
양자: 너, 이딴 게 그렇게 좋아!
(인형, 드레스를 차례로 집어 패대기치면서) 이런거. 이런 거.
사주니까 혹해선! 너, 돈이 그렇게 좋아?
강희: 좋아! 인형두 좋구! 옷두 좋아! 밥 안 굶어서 좋구!
부대에 도둑질하루 안가 서 너무 너무 좋아! 돈두.. 좋은데..
그것보다 더.. 아저씨가 좋아.
양자: ..(덜컹해서 본다)
강희: (눈물이 난다) 아저씨가 너무 불쌍해.. 내가..준희
되준다구..약속했단 말야..나까지..가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단 말야..
저번에두 강에 빠져 죽을라 그랬단 말야...엄마,
나...아저씨가..좋아.. (주먹으로 눈물을 닦는다)
양자: ..(본다)
강희: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런 거 갖구 가지 말구 그냥 가자.
아저씨가.. 나중에 보면.. 내가 도둑질해 간줄 알구
슬플 꺼니까..그냥 가.
양자: 그렇게...좋으니..고사장이..?
강희: ... 기다려. 아저씨한테 인사하구 올 테니까..(양자를 보며)
그냥 한번만 보구 갈라 그래..엄마랑 가면 이젠 다신 못 보잖아..
씬19 고창회의 서재 안/ 서재 밖(밤)
양자, 살짝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창회, 술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잠들어 있다.
강희, 창회의 몸에 얇은 담요 를 덮어주면서.
강희: 이게 뭐야.. 술 마시구 이불두 안 덮구. 감기 걸리겠다.
창회: ..
강희: 아빠...나 간다. 엄마랑 가요. 있지..
나 없어두요..죽지 말구 잘 사세요. 알았죠?
창회: ..
강희: ..(창회의 책상 위에 자신과 창회가 찍은
사진을 보며, 목을 끌어안는다) 나..준희가 되서가
아니구요..아빠 딸이 될 수 있어서 진짜..좋았어요.
사랑해요..아빠..
강희, 창회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떨군다.
양자: ..(착잡한 심정으로 문을 닫는다)
씬20 준희의 방(밤)
양자, 가만히 앉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다.
(인서트) 강희에게 억지로 진주알을 삼키게 하던 모습.
양자: 싫긴 왜 싫어!! 낼 아침에 똥구녘 한번만 찢어지믄 니 년
몇 년은 밥 굶을 걱정 없는데, 이깐 거 하날 왜 못 삼켜!!
트렁크를 던져 정자가 땅에 떨어져 죽던 모습.
경찰에게 끌려가던 모습.
교도소에서 출소 해, 남의 집 부엌에서 밥을 훔쳐 먹는 모습.
양자: ..
양자, 사이드 테이블을 보면 액자에 창회와 강희가 찍은 사진이 있다.
양자, 가만히 액자를 보다 사진을 꺼내본다.
문 열리고, 강희 들어온다.
강희: 엄마..가자. 인제.
양자: ..
강희: 아저씨한테.. 인사했어. 가, 그만..
양자: ..안...가..
강희: 안가? 왜? 아..통금 풀리믄 갈라구? 잘 됐다. 자구 가자. 엄마.
양자: (벌떡 일어난다) 넌 안가. 나만 가. (주머니에 사진을 넣는다)
강희: 응? 뭐라 그랬어, 엄마?
양자: 잘 살어. 고사장 좋은 사람이구, 너 잘해줄꺼라는 거 알어.
어디가지 말구, 고사장 옆에 딱 달라붙어서 잘 먹구 잘 살어.
엄마, 간다.
씬21 창회의 집, 마당(밤)
비가 쏟아진다. 강희, 잠옷 차림으로 양자를 따라가고 있다.
양자, 아직 다 리가 채 낳지 않아 절뚝거리며 도망간다.
강희: 엄마!! (옷을 잡는다)
양자: 따라 오지 말랬잖아!! 넌, 여기 사는 거구! 난 가는 거야!
강희: 왜 이래, 엄마...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그니깐.
.나 버리지 마..데려가..엄마.
양자: 이년아! 나 따라 가봤자! 니 똥구녘 찢어질 일 밖에 더 있어!
뭐, 먹구 어떻게 살꺼야! 너, 이년아 사흘만 지나믄 왜
데리구 왔냐구, 에미한테 허옇게 거품 물구 대들 꺼야!
강희: 안 그래.. 나, 진짜 안 그래..
양자: 입에 풀칠하는 게 그렇게 만만한지 알아! 사는 게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안그러긴 뭘 안 그래!
사흘만 굶어봐! 어느 인간이구, 굶는 지 애비, 에미
놔두구 지 입에 몰래 밥 쳐 넣는 게 사람이구!
그게 산다는 거야!
강희: 엄마 몰래 밥 안 먹으께..
양자: (강희의 뺨을 철썩- 때린다)
강희: !...
양자: 왜 이렇게 약하게 굴어! 기횔 잡았으믄 제대루 살아봐!
니 평생, 이렇게 팔 잘 필 일 다시 생길 것 같어!
강희: 엄마..
양자: (강희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내 제사까지 지냈다며!
그날 니 에미 죽었다구 생각해! 따라가 봤자,
전과자 딸년에 다리두 션찮아. 니 평생 쪼그라질 일 밖에 없어!
여기서 살어! 준희루 살라구 이년아!!
양자, 강희의 확- 떠다민다. 그 바람에 벌렁 나자빠지는 강희.
양자, 강희가 일어나려고 하면 ‘따라오지 마!!’ 소리 지르고 대문 쪽으로 간다.
씬22 창회의 집, 대문 앞(밤)
비 내리는. 양자, 절뚝거리며 도망친다. 대문 앞까지 따라 나온 강희,
‘엄마!! 엄마!!’ 애타게 부르지만, 양자 어둠 속에서 골목을 돌아 사라진다.
강희: 엄마... (눈물을 흘린다)
씬23 서울여인숙, 한 방 안(새벽)
방 안이 엉망으로 어지럽혀져 있다. 밥그릇이 오봉 채 엎어져 있고.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준희, 잠에서 깨어나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벽을 보고 앉아 들고 다니는
총알로 벽을 콩콩- 두드리고 있다.
문 열리고, 비에 쫄딱 젖어 온몸에 물이 흐르는 양자,
들어온다. 양자, 놀라서 방안을 본다.
양자: 아니! 이게 다 뭐야...
준희: ..(몸을 앞뒤로 흔들며 총알로 벽만 두드린다)
양자: 준희야!! (준희를 돌려 세운다)
준희: ... ...(눈물만 흘리는)
양자: (불쌍한) 금방 온다니까...자구 있지..이게 다 뭐야..왜 이랬어..
준희: 엄마...나...버리지..마.. 나..아파..버리지..마..
양자: 아구..불쌍한..년..어쩌다 니가..
(자신의 치맛자락으로 준희의 콧물을 닦아준다)
준희: 엄마... 엄마..
준희, 양자에게 매달린다. 양자, 그런 준희를 꼭- 안아준다(Dis)
씬24 삽시도로 가는 배 안(다른 날, 아침)
삽시도로 가는 배다.
양자, 준희와 함께 가고 있다. 멀리 섬을 보는 양자와 준희.
양자: 저기, 저기 보이는 섬이야. 내가 옛날에 물질하구 살 때.
잠깐 저기두 있은적 있거든. 이제 우리 둘이 저기서 사는 거야.
알았지?
준희: 응! 엄마~ 바다 좋아!
양자: ..(준희를 가만 보다 가만히 안는다)
준희: (좋아서 웃는다)
양자: 미안해.. .미안해.. 준희야.. 이제..내가 엄마야...
넌..이 이양자 인생에 덤이거든.. 나 죽지말라구 하늘에서
준 덤. 이제 엄마가 돌봐줄께.. 엄마가 평생.. 돌봐줄께..엄마하구..
행복하게 살자... 미안해..더미야..
양자, 준희를 숨이 막힐 듯이 꼭- 끌어안고. 준희,
간지러워서 키득키득 웃는다. (Dis)
씬25 양자의 집, 안방(저녁)
양자, 신문에 난 준희의 사진 오린 것을 방바닥에 놓고 앉았다.
사리원 방처럼, 시멘트블록을 빼내면 빈 공간에 깡통이 나온다. 깡통을 열면,
어린시 절 강희의 사진(창회의 집에서 집어온) 강희와 창회가 찍은 사진,
태을방직에 관한 기사들. 준희에 대해 난 신문기사들이 들어있다.
양자, 깡통 속의 사진을 꺼내 보고, 신문에 난 사진도 보고.
양자: (슬프지 않게) 아구, 다시 봐두 예뻐졌네~ 기집애.
처녀 티두 팍팍 나구. 부잣집 딸 티두 팍팍 나구.
강희야. 엄마가 태어나 젤 잘한 게 뭔 줄 아니?
널 여까지 안 끌구 들오구 고창회씨 옆에 둔 거야.
엄마한테 고맙지?
씬26 반도호텔, 패션쇼 리허설 무대 관객석(저녁)
리허설이 한창이다. 모델들, 옷을 선보이고 있다.
방육성 무대 아래서 몇몇 모델을 모아 놓고...
춤인지 워킹인지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까르르 웃는 모델들.
여러 의상이 지나가고, 드디어 준희의 웨딩드레스.
탱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장봉실, 활동적인 차림으로 무대 앞에 서서 자신의 작품을 살피고.
땀을 흘리는 방육성.. 조금 떨어져 있는 차연 앞으로 걸어와
엉덩이를 툭 친다. 방육성의 손을 탁 치고는 눈을 흘기며
팔짱을 꼬는 차연.
차연: (걸어나오는 준희를 보며) 쟨 역시 아니다,
증말. 뭔 보폭이 저리도 짧으까?
방육성: 기장이 짧으니까.
차연: 아니, 도대체 통통 뛰며 걸어서...
뭔 드레스를 표현한다구.
방육성: 왜? 좋은데. 쥬레스 삘이 빡- 오잖아.
차연: 저 정도 (입술을 비비 꼬며)
쥬레스 필이야, 내가 입어도 오지.
방육성: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안 올 거 같은데.
차연: 어머, 어머. 선생님!!
방육성: 화제성이 있잖아. 태을방직 딸 고준희.
차연: 화제루 치면야. 윤정희두 있구, 문희두 있구.
여사님 무대라 그럼 좋다구 맨 발루 뛰어 올 텐데.
왜 하필 쟤냐구요.
방육성: 차연아, 너 질투 하냐?
차연: 차연아, 차연아 줌 하지 마요! 나두 나이가 있구,
체면이 있죠.
방육성: 차 선생. 질투하시나요?
차연: (한숨) 우리 선생님 피날레 드레슨 항상 내 꺼였잖아요..
(꿈꾸듯) 그..박수..그 꽃다발..한번만 만나 달라구 오줌을
질금질금 지리던 장안의 남자들.. 오년만 내가 젊었어두..
방육성: (빤히 보더니) 진짜 니 얼굴 보고 있으니까... 오줌 마렵다.
차연: 뭐예요!!
장봉실: 조용히 좀 해라. 정신 사나워.
차연, 찔끔해서 입 다문다. 준희, 무대 끝에서 턴하면, 장봉실 손가락으로
소리 내 음악 끊으라는 신호 준다.
씬27 동, 무대(저녁)
음악, 끊기고. 장봉실, 무대로 뛰어 올라간다.
준희: 왜요, 여사님? 실수했나요, 저?
장봉실: 아니. 준희가 아니고. 나. 내가 실수했어.
방육성, 무대 옆으로 온다. 봉실, 준희의 면사포를 벗기고 방육성에게
지시 내린다.
장봉실: 헤어밴드나 크라운으로 바꾸세요. 키가 크지 않아서
상체로 시선을 줘야 해. 웨스트 올려서 전체적으로 길어 보이도록
해야겠어.
방육성: 이게 지금 딱 좋은 분할인데요.
장봉실: 마네킹이 입는 게 아니잖아. 사람한테 어울려야지.
걸어놓고 보기 좋은 의상은 옷이 아니죠.
방육성: ....
장봉실: 드레스두 다시 가요. (준희의 어깨라인을 확, 잡아 끌어내리면서)
가슴 상단부 여기까지 파구. (치마를 무릎 위로 핀 올려 꽂으면서)
기장은 이만큼 올려요. 밑단 레이스 다 뜯구. 장식 없이 가요.
임시루 손 볼 수 있죠, 지금?
방육성: ...(입 꼭 다문다)
장봉실: 뭐가 문제죠?
방육성: 웨딩이 웨딩다워야죠. 무슨 신부가 젖가슴에,
맨 종아리 훌렁 다 드러내구 레이스두, 장식두 없는
드레슬 입나요? 너무 파격적이면 사람들이 욕합니다, 여사님.
준희: 크게 갈챌 못 받을 바엔 비난이라도 받는 게 낳지 않나요?
미니스커트두, 판타롱두 다 그랬잖아요. 비난두 전략이구,
관심이죠. 안 그래요? 여사님.
장봉실: 글쎄.. 유행을 만들겠다거나. 억지로 시선을 끌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해본 일 없어서.
준희: 정말요? 옷두 상품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안 하실 수 있어요?
장봉실: 옷은 예술이지. 기능성이 추가 된 예술.
준희: 하하 (웃고) 여사님두 참. 옷이 어떻게 예술이 되나요?
예술가들이 들음 웃겠어요
긴장감 감도는데, 피에르 방, 들어오면서 소리친다.
피에르: 선생님들~ 밥 왔어요~~ 밥!! 밥 드시구 하세요~
방육성: 저기..여사님. 우리..칠호가..밥 가져왔는데요.
씬28 무대 뒤, 일각(저녁)
탈의를 하는 부분은 천으로 가려져 있고. 빈 공간에 밥이 마련되어 있다.
책상이 몇 개 놓여져 있고, 그 위에 밥이 담긴 들통이 놓여있다.
김치와 몇몇 반찬이 뷔페식으로 놓여 있다.
연경과 상희, 스텐 국그릇, 주걱, 수저 정리하고 있다. 피에르 방,
들통 챙 기고. 방육성과 차연 들어온다.
연경/상희: (합창하듯)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차연: 니들은 뭐야? 복장학원 비워 놓구 니들이 왜 와?
연경: 선생님들 시장하실까봐 왔죠~ 밥 배달부~
차연: 원생들이 건방지게, 틈만 나믄 이런 데나 기웃거리구.
(손가락 튕겨서 연경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긴다)
연경: 아야! 크으..(이마 문지르면서) 진지 떠 올릴까요? 선생님?
차연: 가 애들 밥 먹으루 나오라구해! 니들은 옷 정리나 하구!
연경과 상희, ‘네..’하고 돌아서 간다. 차연에게서 멀어지면.
연경: 아우. 저 여자, 진짜 변태야. 너무 너무 괴상해.
원장님은 어떻게 저렇게 괴상한 여잘 이십년씩 데리구 있나.
(몸서리를 친다)
상희: 들려, 앞에선 입두 벙긋 못하는 게. (흘기고)
씬29 무대 뒤, 탈의실(저녁)
연경: 언니들~ 삼십분 있다 다시 시작 한다구요. 얼른 얼른 밥 먹으래요!
모델들, 밥 먹으러 나간다. 준희, 웨딩드레스를 벗고 있다.
연경, 빗자루 들고, 상희,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의상, 옷걸이에
걸어 행거에 거는데...
준희: (슬핏 연경을 보더니) 거기, 나 옷 갈아입는 거 좀 도와줄래요.
연경: (비질을 멈추고) 전 그런 일 하는 사람이 아니구요...
데자이너거든요.
상희: (다가와 조그맣게) 야아..
준희: (웃는) 그래요? 실례. 하던 빗자루질 계속 하세요.
연경, 스팀 확 받는데... 피에를 방 다리미 들고 허겁지겁 들어온다.
피에르: 하연경 너 어제, 기숙사 똥 안 펐어?
연경: (피에르 확 째리는)
피에르: 너 죽었다 이제... 변소 당번할 때마다 사고치네.
빨리 나가봐. 차선생 완전히 뚜껑 열렸다.
준희: (피식 웃고는) 다리미 아저씨,
나 옷 갈아입는 거 좀 도와줄래요?
피에르: 저요?
준희: 응. 뒤에 단추 좀 열어줘요.
피에르: (좋아죽겠다) 옙!
다가가 단추를 푸는 피에르 방. 빗자루 확 던지고 나가는 하연경.
'연경아~'하면서 따라 나가는 상희.
피에르: 아가씨. 저는 다리미 아저씨가 아니고, 피에르 방이라구 하거든요.
뭐, 인물 차이가 쫌 납니다만 재단사 방육성 선생 조캅니다.
다음부터는 편하게 '피에르~~'하고 불러주세요.
씬30 동, 무대 뒤(저녁)
모델들, 국그릇에 밥 퍼서 그 위에 반찬 얹어 먹는다. 서서 먹는 모델.
머리손질하면서 핀 빼는 모델.
준희,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고 나와 테이블에 앉는다. 둥근 자개 찬합에
담긴 일 식 초밥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는.
방육성과 나란히 앉은 차연, 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밥 푹푹- 먹고 있다.
차연: (준희를 보고) 참내.. 회장이란 사람이 할일두 없네.. 지 딸 굶길까봐
도시락까지 챙겨 보내네.
방육성: 또 질투하시나?
차연: 아니꼬와서 밥이 안 넘어갈라 그래요. 암만 봐두 저 얼굴이
복 든 관상은 아닌데..
방육성: 차선생 너, 요즘 점 집 쫓아 다니냐?
차연: 쟤가 정말 재벌 집 딸 같아요? 사교계에 귀공녀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진짜 고회장 딸 아니란 말 있던데요? 모르세요?
방육성: 내가 남에 집 호적 파는 사람두 아니구, 걸 어떻게 알어. .
차연: 암만 봐두.. 고회장님 안 닮었어.. 여쭤 봐두 우리 선생님두,
빈이두 암말 안하구.
준희: (그 말을 들었다. 도시락 들고 일어나서 두 사람에게 걸어오는)
차연: 어머, 어머! 선생님, 어떡해요. 들었나 봐요.
방육성: 그러게 왜 쓸데없는 소릴 하나그래..먹던 밥이나 먹지..
차연, 고개 푹- 숙이고 밥 먹는 척. 준희, 웃으면서 앞에 선다. 준희,
도시락을 차연 앞에 놓는다.
준희: 초밥 좀 드세요.
차연: ..아.. 응...고..마워..요
준희: 그렇게 궁금하믄 호적등본 하나 뗘다 드려요?
차연: (어쩔 수 없이 머리 들고, 고개 흔든다) 안 궁금한데...요..
준희: 초밥 많이 드세요~ 맛있네요. (웃으며 돌아선다)
차연: (도시락 빈 데 보고) 기집애.. 맛있는 건 다 골라먹고..생색은..
씬31 반도호텔, 이북오도민 협회 창립 기념식장(저녁)
기념식이 끝났다. 아무도 없이 흐트러져 있는 홀.
회장에 붙어 있는 플랜카드는 떼지 않았다. 한쪽에 놓여 있는 아직 치우지
않은 고창회의 화환. 사람들이 예쁜 꽃을 뽑아가서 엉성하다.
준희, ‘경축, 이북 오도민 협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플랜카드를 보고 있다.
(양자의 소리) 엄만 잊어버려!
(인서트) 강희, 양자와 해후한 밤. 고창회의 저택, 마당에서 양자, 강희
의 어깨를 꽉- 잡고 이야기 한다.
양자: 내 제사까지 지냈다며! 그날 니 에미 죽었다구 생각해!
엄마, 따라가 봤자.
전과자 딸년에, 다리두 션찮아. 니 평생 쪼그라질 일 밖에 없어!
그냥 여기서 살어! 준희루 살라구 이년아!
준희, 화환을 본다.
준희: 그래 엄마가 나 버렸잖아. 나 엄마 잊었어. 그니까 내 앞에
오늘처럼 불쑥불쑥 나타나지마! 난 고준희야!
(고창회라고 쓰인 리본을 보는) 내 아버진 고창회. 내 어머닌 오영수.
난 태어날 때부터 고준희였어. 고.준.희.
씬32 삽시도 언덕(밤)
동영, 헬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본다.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다.
(인서트) 동영의 시계. 저녁 7시가 훨씬 넘었다.
더미, 헉헉- 거리며 언덕을 뛰어 올라온다.
더미: 아저씨 헬리꼽타 안 왔죠!
동영: 네.. 여기 혹시 기상대 있어요? 해안경비대나?
더미: 지서는 있는데..
씬33 삽시도, 지서 안(밤)
양근(순경), 못마땅한 표정으로 동영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옆에 더미.
양근: 나갔던 배들도 못 들오고 다 녹도에 묶인 판에 뭔 헬리꼽타...
더미: 잘 모르시니까 그런 거지!
양근: 모르고 알고 할게 뭐 있어. 기본이지. 장난이 아니잖아,
바람이. 초속 이십이 넘는구만.. (동영을 수상하게 보고)
근데..당신..뭐하는 사람입니까? 뭐 하길래 헬리꼽타를
부르고 말고 하나..요?
더미: 낚시 하는 사람.
양근: 야! 장난칠래 너!
동영: (웃고) 간첩은 아닙니다. (더미에게)
여기 잘만한 데 있나요?
더미: 있어요! 우리 집!!
씬34 동 지서, 앞(밤)
동영과 더미, 걸어 나온다. 양근, 뒤따라 나왔다.
양근: 너 미쳤냐! 어디 외간남잘 여자들만 있는 집으루 데려가!!
더미: 우리 엄마가 여자냐?
양근: 장모님이 그럼 남자냐! 여장분 건 맞지만, 사내는 아니잖아.
동영: 장모님..?
더미: 아니에요!
양근: 맞습니다! 우리 결혼합니다, 곧!
더미: 양근이 너!! 씨이!
더미, 양근이를 밀어 버린다. 무방비 상태로 있던 양근, 넘어진다.
양근: 아...기집애. 장모님 닮아서..그런가.. 맨날 물질을 해
그런가..힘이 장사라니깐.
야!! 한더미!! 니네 집에 내가 밤새 보초 설꺼야!!
씬35 양자의 집, 마당(밤)
동영과 더미, 들어온다.
동영: 초면에 이렇게 폐를 끼쳐도 될까?
더미: (선다) 대신 나중에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되요.
동영: 숙박료로 또 바가지만 안 씌우면... 들어주지, 뭐.
더미: 치이~ 하루 종일 아저씨 끌구 다니느라 조개 천원어치 건지는 거
보다 더 힘들었다구요. (흘기고, 방에다) 엄마!! 엄마!!
씬36 양자의 집, 안방(밤)
양자, 여태껏 깡통을 끌어안고 있다가 더미가 부르는 소리에 혼비백산해서
깡통을 집어넣는다. 시멘트블록을 끼워 넣고 감쪽같이 숨긴다.
씬37 양자의 집, 마당(밤)
양자, 문 열고 나오면서 더미에게 욕을 한다.
양자: 이 놈의 기집애! 밥두 안 먹구 하루 종일 어딜 싸다닌 거야!!
양자, 욕하다 보면 더미 뒤에 낯선 남자가 서 있다.
양자: 당신...뭐야?
더미: (어색하게 웃으며) 손님..
동영: 안녕하세요?
양자, 맨발로 한달음에 뛰어 내려와 더미를 때린다.
양자: 이게 이게 진짜 미쳤나!! 싸다니는 걸루 부족해서 남잘 달구와!
양근이 알믄 어쩔라구! 이 기집애가 제 정신이 아냐!
씬38 양자의 집, 더미의 방(밤)
양자, 저녁상을 봐 동영의 앞에 거칠게 놓는다. 상 위에, 달랑 밥 한 그릇 김치, 찌개 하나.
동영: 폐가 많습니다, 밤늦게.
양자: 밥 값, 방 값. 다 해 천오백원이에요.
동영: 아. 예. (지갑에서 돈 꺼내 준다) 이 집은, 뭐 부르면 천오백원이네요.
양자: ...(무슨 쉰소린가..?)
동영: (웃으며) 아닙니다. 암튼, 맛있게 먹겠습니다.
양자: (돈만 낚아챈다.)
동영 : 저 혹시 사리원에서 사신적 없으세요?
씬42 인천 혹은 서울이 가까운 서해안 바닷가(밤)
어두운 바다 속에서 스킨스쿠버 복장의 빈이 나온다.
빈, 손에 테이프로 꼭꼭- 밀봉한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빈, 등산용 칼로 봉지를 뜯으면 로렉스 금딱지 시계와 오메가,
기타 시계 들이 여나무개 들어있다.
빈, ‘흠..’ 물건을 확인하려는데, 달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5부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