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심을 표현한 시조 |
제목 |
시조 및 지은이 |
해설 |
이 몸이 죽고 죽어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려고 추진하고 있을 때 고려 충신인 포은의 마음을 떠보려고 이방원이 '하여가'를 그에게 보냈으나, 정몽주는 화답가로서 이 '단심가'를 지어 읊었다. |
정몽주(1337∼1392)-고려 말기 문신·학자. |
삭풍은 나무 끝에 |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에라 |
북풍이 나뭇가지를 울리고 흰눈이 온 천지를 뒤덮은 겨울 달 밝은 황량한 밤에, 변경을 지키며 오랑캐를 노려보고 있는 용맹한 장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김종서(1390∼1453)-조선 초기 문신.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삼도 수군 통제사로 총지휘 본영이었던 한산도의 수루에 올라 앉아서, 왜적의 침입으로 인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읊은 작품이다. |
이순신(1545∼1598)-조선 중기 무신. |
이 몸이 죽어 가서 |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
문종의 고명을 받은 충신으로, 수양 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정변에 대하여 비분강개하여 사육신으로서 단종 복위에 힘쓰고 있을 무렵에 우의적으로 읊은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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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1418∼1456)-조선 초기 문신. |
녹이상제 살찌게 먹여 |
녹이상제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씻겨 타고 용천설악 들게 갈아 둘러메고 장부의 위국충절을 세워 볼까 하노라 |
'호기가'라고도 불리는 노래인데, 녹이와 상제 같은 준마를 살찌게 먹여 시냇물에 깨끗이 씻기어 타고, 용천과 설악 같은 좋은 검을 잘 들게 갈아서 대장부의 나라 위한 충절을 세워 보자는 것이다. 무인의 씩씩한 기상과 불타는 충성심이 직설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
최영(1316∼1388)-고려시대 무신·재상. |
까마귀 눈비 맞아 |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듯 검노매라 야광 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고칠 줄이 이시랴 |
왕의 위치에 있는 세조를 흉칙스러운 '까마귀'에다 비유하는 동시에 자기가 목숨을 바쳐 옹호하려는 단종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정통성을 지닌 떳떳한 임금임을, 밤에도 암흑 속에서도 빛나는 '야광명월'에 비유한 용기와 재치가 비범하다. |
박팽년(1417~1456)조선 초기 문신. |
가노라 삼각산아 |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
병자호란 당시 예조판서였던 작가가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하였으므로 척화신으로 몰려 청나라 심양에 봉림대군, 소현세자와 같이 볼모로 잡혀간다. 이 시조는 그때 읊은 노래인데 '충의가'라 불린다. |
김상헌(1570∼1652)-조선 중기 문신. |
내 마음 베어내어 |
내 마음 베어내어 저 달을 맹글고저 구만리 장천에 번 듯이 걸려 있어 고운님 계신 곳에 가 비치어나 보리라 |
임진왜란을 전후한 당시의 조정과 나라의 몰골이 얼마나 어수선하고 어지러웠기에 송강에게 이러한 시상을 낳게 한 것일까. 고운 님은 물론 선조 임금을 가리키는 것이고보면, 이로써 임금에 대한 송강의 우국충절을 역력히 알 수 있다. |
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
철령 높은 봉에 |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삼아 띄어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
지은이가 광해군 5년에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갈 때, 철령 고개를 넘으면서 그 원통한 심정을 읊은 것이다. |
이항복(1556∼1618)-조선 중기 문신. |
천만리 머나먼 길에 |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아이다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어 밤길 예놋다 |
폐위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될 때 의금부도사로서 호송하였다. 이 시조는 그 때의 울적한 심정을 읊은 것이다. |
왕방연(?∼?)-조선 초기 문신. |
효도를 표현한 시조 |
제목 |
시조 및 지은이 |
해설 |
반중 조홍감이 |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
옛날 중국 오나라 육적이 6세 때에 원술의 집에서 접대로 내놓은 유자 세 개를 슬그머니 품안에 숨겼다가 발각된 후, 어머니에게 갔다 드리고 싶어 그랬다는 '육적 회귤'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이의 지극한 효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
박인로(1561∼1642)-조선 중기의 문인. |
왕상의 잉어 잡고 |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를 증자같이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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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명한 효자인, 왕상, 맹종, 노래자, 증자 못지 않게 나도 그들처럼 효도를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효는 모든 덕의 근본이기에 훌륭한 성현들은 모두 효자였다는 사실을 유념해야겠다. |
박인로(1561∼1642)-조선 중기의 문인. |
세월이 여류하니 |
세월이 여류하니 백발이 절로 난다 뽑고 또 뽑아 젊고자 하는 뜻은 북당에 친재하시니 그를 두려워함이라 |
자식된 몸으로 어버이에게 늙어 보인다는 것은 어버이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니, 일종의 불효가 아닐 수 없다. 옛사람의 지극한 효성을 볼 수 있다. |
김진태(?~?)-조선 중기 문신. |
어버이 살아실제 |
어버이 살아실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
부모님이 나를 낳으시고 정성스레 길러 주셨으니, 끝없는 은혜를 언제 어느 곳에 모두 갚아야 할까를 노래하면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하여야 한다는 효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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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
이고 진 저 늙은이 |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
경로 사상을 일깨워주기 위한 노래로 초중장에서는 짐을 이고 진 노인의 힘겨운 모습을 나타내었고, 종장은 그러한 늙음에 대한 연민으로 노인을 공경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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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
어버이 날 낳으셔 |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저 길러 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
어버이 날 낳으셔 어떻게든 어진 사람되라고 고이고이 길러 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어찌 내가 사람다운 사람될까보냐? 이 지극한 은혜 어이 다 갚을꼬? |
낭원군(1640~1699)-선조 손자 인흥군 영의 자. |
뉘라서 가마귀를 |
뉘라서 가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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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인 까마귀도 효도를 행하는데 사람 가운데에는 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많다 |
박효관(1781-1880)-조선 고종 때 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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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흔 길고 길고 |
뫼흔 길고 길고 물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 많고 하고 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느니 |
산은 끝없이 길게길게 이어져 있고, 물은 멀리 굽이굽이 이어져 있구나. 부모님 그리운 뜻은 많기도 많다. 어디서 처량한 외기러기는 울어울어 나의 마음을 구슬프게 하는가? |
윤선도(1587∼1671)-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
어버이 그릴 줄을 |
어버이 그릴 줄을 처엄부터 알아마는 님군 향한 뜻은 하날이 삼겨시니 진실로 님군을 잊으면 귀 불효인가 여기노라 |
어버이 그리워할 줄을 처음부터 알았지마는, 임금 향한 뜻은 하늘이 만드셨으니, 진실로 임금을 잊으면 그것이 불효인가 하노라. |
윤선도(1587∼1671)-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
설워라 설워라 해도 |
설워라 설워라 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 풀 우군 오늘 이 '살' 붙어 있단 말가. 빈 말로 설은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소. |
부모님이 돌아가심에 서러워 눈물을 흘려도 아들은 어머니와 한 몸이 될 수 없는 법, 그래서 어머니 누워 계시는 무덤 앞에 와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살아 생전 효도하지 못한 자책의 눈물이다. |
정인보(1892∼1950?)-한학자·국학자. |
교훈을 표현한 시조 |
제목 |
시조 및 지은이 |
해설 |
가마귀 검다 하고 |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
조선 건국의 개국 공신이며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직의 작품으로 새 왕조에 가담하여 두 왕조를 섬기게 된 자신의 자기 합리화와 정당성을 노래했다 |
이직(1362∼1431)-고려 말 조선 초 문신. |
풍파에 놀란 사공 |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웨라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리라 |
사공과 마부를 문,무 관직에 비유하여 심한 당파 싸움 때문에 직책 완수가 힘드니, 벼슬을 버리고 차라리 초야에 묻혀 살리라는 숨은 뜻을 풍자적으로 표현하였다. |
장만(1566∼1629)-조선 중기 문신. |
공명을 즐겨 마라 |
공명을 즐겨 마라 영욕이 반이로다 부귀를 탐치 마라 위기를 밟느니라 우리는 일신이 한가커니 두려운 일 없에라 |
부귀와 공명을 탐하지 않는 홀가분하고 편안한 무욕의 경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
김삼현(?∼?)-조선시대의 시인. |
옥에 흙이 묻어 |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이 있을 것이니 흙인 듯이 있거라 |
초야에 묻혀 있는 인재도 언젠가는 알 사람이 있고 햇볕 볼 날이 있을 것이니, 구태여 나서려 할 것이 무엇이랴. 흙 속에 묻혔어도 옥은 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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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1668∼1715)-조선 중기 화가. |
태산이 높다하되 |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스스로 꾸준히 노력하면 필경에는 성공을 거두고야 만다는 교훈을, 높고 큰 태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여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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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언(1517∼1584)-조선 중기 문신·서예가. |
마을 사람들아 |
마을 사람들아 올흔 일 하쟈스라. 사람이 되여 나셔 올치 옷 못하면 마소를 갓곳갈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을 하자구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지 못하면, 말과 소에게 갓이나 고깔을 씌어 놓고, 밥을 먹이는 것과 다를게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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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
잘 가노라 닷지 말며 |
잘 가노라 닷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말라 브데 긋지 말고 촌음을 앗겻슬아 가다가 중지 곳 하면 안이 간만 못한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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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간다고 달리지 말며 못 간다고 쉬지 마라 부디 그치지 말고 시간을 아껴쓰라. 가다가 중지를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 |
김천택(?∼?)-조선 영조 때의 시조작가·음악가. |
동창이 밝았느냐 |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
동쪽의 창이 밝아 있느냐, 종달새가 높이 떠 울며 지저귀는구나. 소를 먹이는 아이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느냐? 고개 너머 밭이랑을 언제 다 갈려고 늦잠을 자고 있는 것이냐? |
남구만(1629∼1711)-조선시대의 문신·서예가. |
가마귀 싸우는 골에 |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가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됴히 씨슨 몸을 더러일가 하노라. |
까마귀와 백로의 대조로 소인과 군자를 비유하고 있으며, 끝까지 군자로서의 삶을 지켜가려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나쁜 무리에 어울리지 말라는 경계가이다 |
정몽주 어머니 |
벼슬을 저마다 하면 |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하리 뉘 이시며 의원이 병고치면 북망산이 져려 하랴 아히야 잔 가득 부어라 내 뜻대로 하리라. |
사람마다 입신출세를 한다면 나라의 중요한 농사는 누가 지을 것이며, 의원이 병을 다 고친다 해도 죽는 사람이 늘어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는 깊은 속뜻을 질문으로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다. |
김창업(1658∼1721)-조선시대 문인·화가. |
자연을 표현한 시조 |
제목 |
시조 및 지은이 |
해설 |
농암에 올라 보니 |
농암에 올라 보니 노안이 유명이로다 인사이 변한들 산천이야 가실까 암전의 모수모구이 어제 본듯 하여라 |
지은이가 벼슬을 그만 둔 70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그리던 산수를 보고 감회에 젖어 지은 이른바 '농암가'라는 것이다. |
이정보(1693∼1766)-조선 후기 문신·시조작가. |
꽃 피면 달 생각하고 |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 하네 언제나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하려노 |
4미는 꽃,술,달,벗을 가리키며 그것들이 고루 갖추어졌다해서 '사미구'라 하였다. |
이정보(1693∼1766)-조선 후기 문신·시조작가. |
산가에 봄이 오니 |
산가에 봄이 오니 자연히 일이 하다 앞 내에 살도 매며 울 밑에 외씨도 삐고 내일은 구름 걷거든 약을 캐러 가리라 |
봄을 맞는 농가의 생동하는 모습이 즐겁기만 하다. 지극히 한국적인 옛농촌의 풍경이 너무나 목가적이다. |
이정보(1693∼1766)-조선 후기 문신·시조작가. |
우는 것이 뻐꾸기냐 |
우는 것이 뻐꾸기냐 푸른 것이 버들숲가 어촌 두어 집이 냇속에 들락 나락 말가한 기픈 소에 온갖 고기 뛰노난다 |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고산이 만년에 고향 해남 보길도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지은 40수의 연시조인데 춘사,하사,추사,동사 각 10수로 이루어졌다. 각각은 한폭의 산수화 바로 그것이다. |
윤선도(1587∼1671)-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
청산도 절로절로 |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
자연 속에서 살고 늙는,모든 것을 대자연에 내맡긴 옛풍류객의 생활태도는 엄숙하면서도 집착이라는 것이 없어서 더욱 좋다. 얼핏보기에는 말장난을 부린 것 같지만 운율을 잘 음미하면 엄숙미가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김인후(1510∼1560)-조선 중기 문인·서예가. |
강산 좋은 경을 |
강산 좋은 경을 힘센 이 다툴 양이면 내 힘과 내 분으로 어이하여 얻을소냐 진실로 금할 이 없을새 나도 두고 노니노라 |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권력이나 금력 따위에 초연하면서 오로지 자연 속에서 인생을 즐기는 옛선비의 생활 태도가 재치있는 표현으로 잘 그려져 있다. |
김천택(?∼?)-조선 영조 때의 시조작가·음악가. |
뫼는 높으나 높고 |
뫼는 높으나 높고 물은 기나 길다 높은 뫼 긴 물에 갈길도 그지없다 님 그려 젖은 소매는 어느 적에 마를꼬 |
강호를 벗삼고 산수를 즐기던 지은이의 생활이지만 때로 고독이 따르고 그 감정이 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경우의 님은 임금으로 확대 해석하여도 무방하다. |
허강(1520∼1592)-조선 중기 학자. |
강호에 봄이 드니 |
강호에 봄이 드니 이몸이 일이 하다 나는 그물 깁고 아희는 밭을 가니 뒷뫼에 엄 기는 약은 언제 캐려 하나니 |
봄철의 전원생활의 목가적인 풍모를 잘 보여주는 시조이다. |
황희(1363∼1452)-조선 초기 문신. |
산촌에 눈이 오니 |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에라 시비를 여지 마라 날 차즈리 뉘 이시리 밤중만 일편명월이 긔 벗인가 하노라 |
외로운 산길마저 눈 속에 파묻혀 버린 산마을, 찾아올 사람이 없어 사립문마저 닫아 버린 산방, 고요의 극치요 한 폭의 동양화 그것이다. |
신흠(1566∼1628)-조선 중기 문신. |
어리고 성긴 가지 |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촉 잡고 가까이 할 제 암향조차 부동터라 |
안민영은 '영매가'로 유명하다. 우아한 풍치와 높은 절개를 보여주는 매화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매화찬이다. |
안민영(?∼?)조선 고종 때 가객. |
생활 자세를 표현한 시조 |
제목 |
시조 및 지은이 |
해설 |
초암이 적막한데 |
초암이 적막한데 벗 업시 혼자 안자 평조한 닙에 백운이 절로 존다. 언의 뉘 이 죠흔 뜻을 알 리 잇다 하리오. |
세속을 떠나 조용한 초가에 홀로 묻혀 거문고를 연주하고 풍류를 즐기는 그윽함이 잘 나타난 시조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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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장(1690 - ?) 조선 숙종 때의 문인·가인. |
산촌에 눈이 오니 |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혔에라 시비를 여지 마라 날 차즈리 뉘 이시리 밤중만 일편명월이 긔 벗인가 하노라
|
외로운 산길마저 눈 속에 파묻혀 버린 산마을, 찾아올 사람이 없어 사립문마저 닫아 버린 산방, 고요의 극치요 한 폭의 동양화 그것이다. |
성혼(1535∼1598)-조선 중기 성리학자. |
매아미 맵다 울고 |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네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
속새를 떠난 듯 세속적인 고락을 초월하고 얽매인 데 없이 유유히 소박한 삶을 즐기려는 옛사람의 담담한 생활 철학이 돋보이는 느낌이다. |
이정신(?∼?)-조선 후기 가객 |
벼슬을 저마다 하면 |
벼슬을 저마다 하면 농부할 이 뉘 있으며 의원이 병고치면 북망산이 저러하랴 아이야 잔가득 부어라 내뜻대로 하히하 |
명문 가정의 법도에 얽매인 생활을 박차고 자유로이 살아보려는 몸부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옛봉건 사회에도 개성의 자유는 어쩔 수가 없었다. |
김창업(1658∼1721)-조선시대 문인·화가. |
보리밥 풋나물을 |
보리밥 풋나물을 알마추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 슬카지 노니노라 그남은 여남은 일이야 부럴 줄이 있시랴 |
벼슬에도 별로 뜻이 없고 강호에 숨어서 자연을 벗삼고 안빈낙도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
윤선도(1587∼1671)-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
이화에 월백하고 |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봄밤의 애상적이면서 낭만적인 분위기가 잘 나타난 작품이다. |
이조년(1269∼1343)-고려 말기 문신. |
재너머 성궐롱 집에 |
재너머 성궐롱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타고 아이야 네 궐롱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
도도하면서도 넘치는 흥, 호통을 치는 작가의 호방스러운 모습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
정철(1536∼1593)-조선 중기 문신·학자·시인. |
짚방석 내지 마라 |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달 돋아 온다 아이야 박주 산챌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
산촌의 풍류 생활과 안빈낙도하는 옛선비들의 여유만만한 생활 태도가 도통한 경지를 이루고 있다. |
한호(1543∼1605)-조선중기 서예가. |
추강에 밤이 드니 |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
말 그대로는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그 의미는 오히려 긍정적이며 여유있는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풍성함이 엿보인다. 한마디로 무욕의 경지다. |
월산대군(1454∼1488)-조선 전기 종실. |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는다 아이야 시절이 좋을 손 옷이 젖다 관계하랴 |
농촌 생활의 즐거움이 생동한다. 명랑, 경쾌하기 이를 데 없는 주옥 같은 가작이다. 특히 종장의 감칠맛 나는 구절이 훌륭하다 |
이재(1657∼1730)-조선 중기 학자. |
사랑을 표현한 시조 |
제목 |
시조 및 지은이 |
해설 |
꿈에 다니는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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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곧 날 양이면 님의 집 창 밖이 석로라도 닳으련마는 꿈길이 자취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
얼마나 다녔으면 돌길이 다 닳을까. 그렇게도 님을 찾았건만 그것이 꿈이라 눈에 띄는 흔적이 없으니 님께서 내 마음을 알아 주실까 하는 안타까움이 나타나 있다. |
이명한(1595∼1645)-조선 중기 문신·시인. |
님 그린 상사몽이 |
님 그린 상사몽이 실솔의 넋이 되어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
애절한 마음이 귀뚜라미의 넋이 되어 님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
박효관(?~?)-조선 고종 때 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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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헤오시매 |
님이 헤오시매 나는 전혀 믿었더니 날 사랑하던 정을 뉘손대 옮기신고 처음에 믜시던 것이면 이대도록 설오랴 |
남녀 사이의 애정관계를 읊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지은이의 처지로 보아 정치적인 환경에서 받은 충격을 노래한 것으로 봄이 바람직할 것이다. |
송시열(1607∼1689)-조선 중기 문신·학자. |
마음이 어린 후이니 |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난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
자신에게 글을 배우려 오던 황진이를 생각하며 지은 시조이다. 학문밖에 모르는 서화담도 황진이의 여성적인 매력에 흔들렸으나 깨끗한 애정으로 승화시킨 점이 화담의 인격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
서경덕(1489∼1546)-조선 초기 학자. |
뫼는 높으나 높고 |
뫼는 높으나 높고 물은 기나 길다 높은 뫼 긴 물에 갈길도 그지없다 님 그려 젖은 소매는 어느 적에 마를꼬 |
강호를 벗삼고 산수를 즐기던 지은이의 생활이지만 때로 고독이 따르고 그 감정이 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경우의 님은 임금으로 확대 해석하여도 무방하다. |
허강(1520∼1592)-조선 중기 학자. |
청초 우거진 골에 |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
황진이가 살아 있을 적에 교분이 있던 지은이가 평안 도사로 부임하는 길에 풀숲에 덮여 있는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면서 읊은 시조라고 한다. 인생무상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
임제(1549∼1587)-조선 중기 문신·시인. |
청춘에 곱던 양자 |
청춘에 곱던 양자 님으로야 다 늙거다 이제 님이 보면 날인 줄 알으실까 아모나 내 형용 그려다가 님의손대 드리고저 |
젊어서 그리던 님을 늙어서 생각한다면 이런 넋두리가 나올 법도 하다. 임금에 대한 사모로 보아도 무방하다. |
강백년(1603∼1681)-조선 중기의 문신. |
임 그려 얻은 병을 |
임 그려 얻은 병을 약으로 고칠쏜가 한숨이야 눈물이야 오매에 맺혔세라 일신이 죽지 못한 전은 못 잊을까 하노라 |
사랑은 예나제나 그 이면적 모습은 같다. 얼마나 그리움이 깊었으면 죽기 전엔 못 잊겠다 그리 했겠는가 |
이정보(1693∼1766)-조선 후기 문신·시조작가. |
녹양이 천만산들 |
녹양이 천만산들 가는 춘풍 잡아매며 탐화봉접인들 지는 곳을 어이하리 아모리 사랑이 중한들 가는 님을 잡으랴 |
만남에서 헤어짐까지의 과정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종장에 가서 사랑이 중요하다고 해도 떠나는 임을 억지로 잡을 수 없다며 체념적인 자세를 보인다. |
이원익(1547∼1634)-조선 중기 문신. |
사랑이 거짓말이 |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뵌단 말이 그 더욱 거짓말이 날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보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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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거짓말이로다. 꿈속에 와서 보인다는 것은 더더욱 거짓말이로다. 나와 같이 잠도 못 이루는 사람이 어느 겨를에 꿈을 꾼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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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1561∼1637)-조선 중기 시대의 문신. |
여류들의 사랑을 표현한 시조 |
제목 |
시조 및 지은이 |
해설 |
청산리 벽계수야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당시 종친의 한 사람인 벽계수라는 이가 하도 근엄하여 딴 여자를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높았다. 마침 그가 개성에 와서 만월대를 산책할 때 황진이가 이것을 알고 일부러 따라가서 이 노래를 건넸더니 벽계수는 그의 시와 미모에 끌려 하룻밤의 시흥을 돋구었다고 한다. |
황진이(?∼?)-조선 중기 시인(기명은 명월). |
산은 옛산이로되 |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
변하지 않는 산과 변하는 물을 대비시켰다. 보고 싶은 사람도 물과 같아서 가면 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
황진이(?∼?)-조선 중기 시인(기명은 명월). |
청산은 내 뜻이요 |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니져 우러 예어 가는고 |
푸른 산은 나의 뜻이요, 푸른 물은 님의 정과 같도다. 물이야 흘러 가더라도 산이야 변하겠는가? 하지만 흘러가는 물도 자기가 놀던 산을 잊지 못하고 울며 흘러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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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조선 중기 시인(기명은 명월). |
동짓달 기나긴 밤을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시는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상냥한 여인의 섬세한 마음씨가 여지없이 살아 숨쉬는 예술적 향기가 그윽한 주옥같은 노래다. |
황진이(?∼?)-조선 중기 시인(기명은 명월). |
죽어 잊어야 하랴 |
죽어 잊어야 하랴 살아 그려야 하랴 죽어 잊기도 어렵고 살아 그리기도 어려웨라 저 님아 한 말씀만 하소라 사생결단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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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잊어 버려야 할지 살아서 그리워하기만 해야 할지...죽어서 잊기도 어려운 일이요 살아서 그리워하는 일도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 노래한다. 사랑에 빠진 작자의 심정이 절절히 표현되었다. |
매화-조선 시대 황해도 곡산 출신 명기. |
어이 얼어 자리 |
어이 얼어 자리 무스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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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서 자신다니 어찌된 말씀이오. 원앙침 비취금을 어떡하고 얼어 잔단말이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은 몸을 이불안에서 녹여잘까 하노라 |
한우(?∼?)-조선 중기 평양 명기 |
꿈에 뵈는 님이 |
꿈에 뵈는 님이 신의업다 하건마는 탐탐이 그리올 졔 꿈 아니면 어이보리 져 님아 꿈이라 말고 자로자로 뵈시쇼 |
꿈에서나 보는 님이 어찌 신의있다 할까마는 견디기 힘들만큼 그리울 땐 꿈아니고 다른 방법으로는 어찌 만날 수 있겠는가? 지은이는 님을 향해 꿈에라도 자주 자주 만나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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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옥-조선 시대 화성 명기(해주 감사와 연분). |
묏버들 가지 꺽어 |
묏버들 가지 꺽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밖에 심겨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닙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
고죽 최경창이 함경도 관찰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자 그를 배웅하면서 날은 저물고 궂은비마저 내리게 되자 그를 그리는 나머지 이 노래와 함께 버들가지를 보냈다고 한다. |
홍랑(?∼?)-조선 선조 때 함경도 경성 명기. |
산촌에 밤이 드니 |
산촌에 밤이 드니 먼데 개 짖어온다 시비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 잠든 달을 짖어 무슴하리요 |
숨막힐 듯한 고요 속에 승화된 외로움이 있다. 깊은 규방에서의 님 그리는 정, 사람 기다리는 한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
천금-조선 시대 명기. |
이화우 흩뿌릴 제 |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
임진왜란 대, 의병 지휘의 공으로 통정대부가 된 유희경과 정이 깊었는데 그가 서울로 올라간 뒤 소식이 없으므로 이 시조를 짓고 수절하였다고 한다. |
계랑(1513∼1550)-조선 명종 때의 부안 명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