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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영적 장자여! 담을 넘는 축복을 받으라!”
+ 본 문 : 창 세 기 49장 22절 - 26절 (구약성경 79쪽)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아멘!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아멘!(신 33: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원하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행복은 구원해 주신 주님 안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진정한 행복은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에 있다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22절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아멘!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가까운 제 고향 동네, 제가 살던 집에서의 제 어린 시절을 회상하곤 합니다.
저의 옆집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참 무성했습니다. 그 가지가 우리 집 칙간 땀똑을 넘었습니다.
그 가지에 달린 무화과는 참으로 달고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 가지를 잘라 버렸드라구요.
왜 잘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담을 넘은 무성한 무화과 가지의 열매를 따먹었던 한 소년의 행복도 잘라버렸습니다.
그냥 두었더라면, 담을 넘은 그 무성한 무화과 가지의 열매 때문에 제가 두고두고 축복했을텐데 말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축복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아버지 야곱의 이 축복은 아들 요셉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담을 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요셉이 받은 축복은 자기만 누리는 축복이 아니라, 그 가지가 담을 넘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면 요셉의 축복이 담을 넘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요셉이 넘은 담은 과연 어떤 담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요셉의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넘은 담은 감정이라는 담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은 축복이 감정의 담을 넘지 못하면,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 털어 3대 인물, 그러면 구약에서 모세, 신약에서 베드로, 바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이 세 분이 감정의 담을 넘지 못하였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크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모세를 보십시다. 모세는 혈기라는 감정의 담을 넘지 못해, 싸움을 말리다가 살인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런 모세가 혈기라는 감정의 담을 넘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40년 동안 양을 치면서 온순하여졌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2장 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이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이렇게 감정의 담을 넘은 모세가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면서,
그 어떤 혈기가 나는 일이 벌어져도 꾹 참았습니다. 그렇게 감정의 담을 넘어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베드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매사에 감정을 이기지 못해 덤볐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로마 병정의 앞잡이 말고를 죽이려고 칼로 내리쳤습니다. 피할 때 귀가 잘라졌습니다.
그렇게 감정의 담을 넘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그 후 시몬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감정의 담을 넘어, 위대한 사도로 크게 사용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름 받기 전, 곧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감정의 담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감정을 담을 넘어 참았을 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주인공 요셉은 어떠했습니까? 요셉의 17살부터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도록 미워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죽이겠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제안으로 애굽의 종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인신매매 사건입니다.
그렇게 애굽의 장군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다가, 간음사건으로 애매한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의 꿈과 바로왕의 꿈을 해석한 일로, 일약 국무총리가 되는 출세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요셉은 국무총리가 되고 나서, 보디발 장군의 아내에게 복수하지를 않았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팔았던 형들을 오히려 사랑하고 돌보았습니다. 감정의 담을 완전히 넘어 선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의 축복의 가지가 담을 넘었다는 말씀은, 요셉이 감정의 담을 넘어 복의 근원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정의 담을 넘어 모세처럼 온유하고, 베드로처럼 겸손하고, 바울처럼 잘 참으며,
요셉처럼 축복의 가지가 감정의 담을 넘어, 저와 여러분 모두가 복의 근원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요셉의 무성한 가지가 넘은 담은 축복이라는 담이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나서 강대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죽을 때까지 형제들의 중심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 같은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 을 풍성하게 받았습니다.
그렇게 요셉이 받은 복은 개인이라는 담을 넘어, 부모 형제자매들과 온 가족들에게로 넘쳐 흘렀습니다.
한 사람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었기에 70명의 가족들이 애급으로 피난하여 바로 왕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무성한 가지 요셉은 자기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담을 넘어 그 가족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 이 두 아들이 다 지파로 분리되어 각각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만 두 배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요셉의 축복은 담을 넘어 그 자손들에게까지 미쳤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요셉의 무성한 축복이 담을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넘치게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보디발 집에 들어가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창세기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급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아멘!
요셉이 하나님께 받았던 축복은,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는, 감옥을 주관하는 전옥이 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창 39:21)
이같이 요셉이 받은 무성한 축복의 가지는, 애굽이라는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임하였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면서, 애급이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변 다른 나라들이 7년 흉년으로 고통을 당할 때, 애급만은 오히려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지혜로운 통치로 7년 풍년에 모아두었던 양식을, 주변 국가들에게 팔아 국가의 부강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이 받은 축복은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자, 자신은 물론 가문이 복을 받고, 자손이 복을 받고,
그가 살고 있는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함께 복을 받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나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 한 사람이 복 받으면 모두가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위하여 복을 내리시므로, 여러분은 물론 여호와의 복이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셋째로, 요셉의 무성한 가지가 넘은 담은 악 조건이라는 삶의 담이었습니다.
요셉의 삶을 보십시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 그로 인해 애굽의 종으로 팔려 오랜 종살이,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까지, 요셉의 인생은 인생 최 밑바닥의 비참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런 모든 악조건이라는 삶의 담을 넘어, 당시 최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잘 들어 보십시오. 바로 왕이 요셉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바로라. 애급 온 땅에서 어 요셉의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창 41:44)
이런 대역전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 같았으면 자살할 환경에서, 담을 넘어 일어선 것입니다.
리빙스턴의 후계자 덴크로포드는 주머니에 신약 성경을 넣고 다니며 읽었던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죽고 났을 때, 그의 주머니에 있었던 낡은 성경 속에 이런 글이 적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혼자 할 수 없다. 파도는 빠르고 높이 밀려온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과 함께하면 이김을 안다.
비겁함과 나약함, 그래서 오늘은 아주 강하고 용감할 수 있다. 그러나 내일은 또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나는 승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그 어떤 악조건이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잘 됩니다.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 악조건의 담을 넘어, 여러분의 축복의 가지가 무성하여 모든 삶의 환경을 이깁니다.
넷째로, 요셉의 무성한 가지가 넘은 담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의 담이었습니다.
요셉은 17살에 종으로 애급에 팔려 갔습니다. 그리고 30살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13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 종살이와 옥살이를 하면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신앙의 동지도 없었습니다. 요셉은 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은 이제 요셉이 종으로 판 일로 자기들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벌벌 떨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미리 찾아가 이렇게 애원하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창 50:18)
그 때 요셉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아멘! (창 50:19-21)
이처럼 요셉은 모든 문제를 오직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었기에, 원수 갚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정글 속에 살고 있는 스프링벅이라는 사슴들은 풀을 한가롭게 뜯어 먹고 있다가도,
한 마리가 뭔가에 깜짝 놀라 뛰기 시작하면, 나머지 사슴들은 왜 뛰는지조차도 모른 채 그냥 같이 뜁니다.
그러다가 낭떠러지가 나오면, 속도를 늦출 수가 없어서 다 떨어져 죽습니다. 참 어리석은 사슴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다른 사람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앙의 담을 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의 무성한 가지가 넘은 담은, 감정의 담이었습니다.
축복의 담이었습니다. 최악의 조건이라는 힘든 삶의 담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담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담도 감정의 담, 복의 근원인 축복의 담,
힘든 삶의 담,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의 담 - 이 모든 담을 넘어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넘어 할 감정의 담, 축복의 담, 힘든 삶의 담,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의 담을 넘어,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알아야 우리가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될 수 있잖아요.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되는 첫 번째 비결은, 우리가 샘 곁에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2절 말씀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샘 곁에 있는 나무는 그 가지가 무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샘 곁에 있어야 무성하게 잘 됩니다.
저와 여러분에 샘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라는 샘 곁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잎이 항상 푸르른 무성한 축복의 가지를 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샘에는 말씀의 샘, 기도의 샘, 찬송의 샘, 사역의 샘, 성령 임재의 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샘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을 때에, 저와 여러분의 축복의 가지가 담을 넘도록 무성한 가지가 되어,
사랑하는 가족들이, 자녀들이, 직장동료들이, 내 곁에 있는 사람들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풍성한 복을 받습니다.
하는 모든 일이 다 잘 됩니다. 성공하고, 승리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됩니다.
애드가 프랭크(Edgar Frank) 라는 분이 “크리스챤 센츄리” 지에 “제단” 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공장 작업대를 제단으로, 어떤 이는 상점 계산대를 제물과 거룩한 봉사의 장소로 삼았으며,
어떤 이는 일상 사무를 보는 책상을 강대상으로 알고, 일반 사무를 하늘의 하나님의 사업으로 여겼으며,
우리 중 마르다와 같은 분들은 부엌 조리대를 성찬 테이블로 여겨, 성찬을 준비하듯 식사를 준비합니다.
일상 다니는 길을 성전 안에서 다니는 발걸음으로 생각하고, 매일 일어나는 일은 주님과의 약속 성취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나의 환경이 길가의 소중한 성전이 되어야 하리라.“ - 참으로 의미 있는 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교회 중심의 삶으로, 담을 넘는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되는 두 번째 비결은,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복 주실 것을 바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 25절 말씀입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무엇이나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요.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겸손이요. 능치 못함이 없는 참 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었던 링컨은, 전쟁터에 나가서도 모세가 두 손 들고 기도한 것처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텐트에 하얀 수건이 걸려 있으면, 그것은 링컨이 두 손 들고 기도하고 있다는 표시였습니다.
이 때 밖에서는 링컨의 간절한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누구도 링컨과 면담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반드시 응답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열어 축복해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 이렇게 복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감동을 먹을 것입니다.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꼭 부탁한다. 결코 아침 기도를 무시하거나 짧게 하거나 급하게 하지 말아라.
신앙생활에서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 하나님과 교제를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건강하여라. 급한 기도는 실패를 가져온다. 기도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네 삶에 시간이 절약된단다.
하나님께 모두를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복 받는 지름길임을 꼭 잊지 말고 기도하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복 주실 것을 믿고,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되는 세 번째 비결은, 축복기도를 받고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야곱은 요셉을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아멘!
야곱은 자기가 요셉을 축복하는 것이 자기 아버지 이삭이 자기를 축복한 것보다 크리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요셉은 이 축복기도를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축복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었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말씀을 선포하면서 축복할 때에, 여러분은 아멘으로 크게 화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아멘은 축복을 내 것으로 만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선포된 축복을 받아 드리십시오. 가지가 무성하여 담을 넘는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아멘!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성막에 가서 술 취한 듯이 울부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엘리 제사장이 이렇게 축복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 이 축복을 선포될 때 한나는 아멘으로 받아 드렸습니다.(삼상 1장)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축복이 선포될 때에 아멘으로 화답하여, 담을 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은 물론 특별히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자녀들을 많이 축복하십시오.
아비의 마음으로 축복, 어미의 마음으로 축복, 조부모로서의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사랑하는 모든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미리 성경에 약속된 축복의 말씀을,
준비하였다가, 그 축복의 말씀으로 축복을 선포하여, 담을 넘는 축복이 넘치는 기도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라는 샘,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라는 샘 곁에 살며,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고 복을 주실 것을 바라며, 축복기도를 받고 아멘으로 받아 드림으로,
우리가 넘어 할 감정의 담, 축복의 담, 힘든 삶의 담,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의 담을 넘어,
무성한 축복의 가지가 되는 영적 장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