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이순화
아편처럼 가루약처럼 봄이 내리고 있다
나는 죽어서 살아있으므로
내 하늘을 덮으며
얼음 낀 강을 덮으며
굽이굽이 마비된 시간을 덮으며
내리고 있는
이 달콤한 몰약을 한 스푼
한 스푼 삼키고
중독처럼 눈이 맑아져
봄을 앓고 있다
---이순화 시집 {밤의 캐리어}(근간)에서
삼월은 마약과도 같은 대자연의 계절이고,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아편이나 가루약과도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삼월의 중독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편이나 가루약의 중독증 환자들의 이성이 마비되어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죽어서 살아있으므로”라는 역설적인 반어법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죽었다는 것은 모든 사건과 현상을 전면적이고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내가 죽어서 살아 있다는 것은 이성적 인간이 아닌 반이성적인 중독증 환자라는 것을 말한다.
모든 천재는 정신병 환자라는 말이 있다. 모든 천재들이 정신병 환자라는 말은 그 천재들의 광기 때문이고, 그들의 광기는 오직 그들이 가고자 하는 단 하나의 목표에만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발정기에는 모든 생명체들이 목숨을 걸듯이 삼월은 자연의 발정기이며, 모든 생명체들이 자기 짝을 찾아 꽃을 피우는 계절인 것이다. “내 하늘을 덮으며” “달콤한 몰약 한 스푼”을 삼키고, “얼음 낀 강을 덮으며” 달콤한 몰약 한 스푼”을 삼킨다. “굽이굽이 마비된 시간을 덮으며” “달콤한 몰약 한 스푼”을 삼키고, 그 결과, “중독처럼 눈이 맑아져”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을 창출해낸다.
봄날은 봄바람의 계절이고, 봄바람은 기나긴 엄동설한을 뚫고 이순화 시인의 [삼월]의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이 세상의 환각제인 아편과 가루약이 종의 쇠퇴와 소멸을 가져올 뿐이라면 자연의 몰약인 봄바람은 종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된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봄이 만물의 소생이자 천지창조의 계절이라면 “봄을 앓고 있다”는 것은 대자연인 [삼월]의 산통이라고 할 수가 있다.
천재는 대자연과도 같고, 천재에게는 아편이나 가루약이 필요가 없다. 천재는 언제, 어느 때나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그 일의 황홀함에 중독되어 수많은 작품들을 창출해낸다.
기나긴 엄동설한을 뚫고 꽃을 피우는 힘, 푸르고 푸른 힘으로 만물을 성장시키고, 그 결과, 만산홍엽의 아름다움처럼 그 모든 결실을 맺게 하는 힘이 모든 천재적인 힘의 진수인 것이다.
이순화 시인의 [삼월]은 자연의 마약이고 중독이며, 모든 생명체들의 텃밭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