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려 나간 등걸에도 새순은 돋는다
나무 한 그루 앞에서 오래 발길을 멈추었다. 굵은 가지 하나가 잘려 나간 자리에는 아직도 상처의 흔적이 선명했다. 거칠게 굳은 껍질은 오랜 세월을 말해 주었고, 둥글게 드러난 나이테는 잘려 나간 시간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처 바로 아래에서 연둣빛 새순 하나가 조용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죽음을 닮은 상처 곁에서 생명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자연은 참 묘하다. 사람이라면 상처를 감추려 애쓰겠지만, 나무는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 잘려 나간 자리를 그대로 품은 채 다시 잎을 틔우고, 다시 하늘을 향해 자란다. 상처를 지운 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람의 삶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기도 하며, 꿈꾸던 길이 한순간에 끊어질 때도 있다. 그때마다 삶은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잘려 나간 가지처럼 다시는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잘려 나간 자리에도 새순은 돋는다고.
새순은 상처가 없어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상처가 있음에도 피어난다. 오히려 상처 가까이에서 가장 먼저 생명이 움튼다. 그것은 단순한 식물의 생장 현상이 아니라 생명이 가진 본능이며, 존재가 품은 의지이다. 살아 있는 것은 끝내 살아가려 한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완전함으로 평가한다. 흠이 없고, 실패가 없고, 상처가 없는 삶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에는 그런 나무가 없다. 태풍을 견디며 생긴 흉터도 있고, 번개를 맞은 흔적도 있으며, 잘려 나간 가지도 있다. 그럼에도 숲은 해마다 새잎으로 푸르러진다.
나무는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상처는 살아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눈물 흘려 본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넘어지는 사람의 손을 먼저 잡아 준다. 상처는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고통을 통과한 마음에는 이전에는 없던 온기가 깃든다. 잘려 나간 등걸에서 돋아난 새순은 유난히 푸르렀다. 오래된 줄기가 깊이 품어 온 양분을 받아 힘차게 자라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새순은 과거를 끊어 버리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뿌리의 힘을 이어받아 살아간다는 사실을.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지난날의 실패와 좌절, 아픔과 눈물은 버려야 할 기억만은 아니다. 그것들은 오늘의 우리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기도 한다. 아프게 견뎌 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용기가 생기고, 외롭게 버틴 계절이 있었기에 누군가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세월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빼앗는다. 젊음을 가져가고, 건강을 흔들며, 소중한 인연도 하나둘 이별하게 만든다. 그러나 세월은 빼앗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견딘 사람에게는 깊이를 주고, 기다린 사람에게는 여유를 주며, 상처를 품은 사람에게는 타인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선물한다.
숲을 이루는 것은 곧게 자란 나무만이 아니다. 속이 빈 나무도 있고, 번개를 맞은 나무도 있으며, 가지가 부러진 나무도 있다. 그럼에도 숲은 아름답다. 서로 다른 상처들이 모여 하나의 숲을 이루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넘어졌던 사람, 실패했던 사람, 울어 본 사람, 다시 일어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지금 누군가의 상처는 내일 그의 가장 큰 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잘려 나간 가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비바람을 탓하지도 않는다. 묵묵히 뿌리에서 생명을 끌어올려 다시 새순을 틔울 뿐이다. 말없는 그 모습이 어떤 위로보다 깊게 다가온다. 우리 삶에도 잘려 나간 자리 하나쯤은 있다. 이루지 못한 꿈일 수도 있고, 떠나보낸 사람일 수도 있으며,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일 수도 있다. 그 상처를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자리에서 다시 새순을 틔울 수 있다면 삶은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잘려 나간 등걸에도 새순은 돋는다. 자연은 한 번도 상처를 삶의 끝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생명은 상처를 지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도 다시 푸르러지는 법을 안다. 그래서 희망은 상처가 없는 곳이 아니라 상처 위에서 다시 피어나는 새순처럼 오늘도 조용히 우리 곁에서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