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찍는 이별의 얼굴 / 송이현
글 쓰는 사람은 집에만 있지 말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옮겨야 한다고 한다. 생각난 김에 한가로이 시내를 거닐다가 지하상가로 들어갔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곳, 폭염 같은 날에 딱 좋은 피서 장소다. 로터리 한가운데에는 노년층이 많이 앉아있었다. ‘동물끼리 만나면 의식적으로 경쟁한다’는 말이 있는데, 서로 마주 본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이왕 나온 김에 ‘영정 사진’을 찍어볼까 하고 사진관에 들어섰다.
기사는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벌떡 일어나 내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말했다.
“영정 사진 찍으려고 왔어요.”
그는 잠시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표정과 건강 상태를 살피는 듯했다.
“실례지만 나이가 몇인데요?”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살아있을 때 가장 편안한 얼굴로 찍어두고 싶어요. 내가 죽으면 누가 사진을 만들어 주겠어요.”
그러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아직 이르죠. 30대처럼 목주름도 없는데 벌써 그런 생각을 하세요?”
원하는 대로 찍으면 좋으련만, 그는 여러 번 만류했다. 얼마 전에는 팔순을 넘긴 노인이 ‘폐암’ 진단을 받고 죽음 준비를 위해 영정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한다.
“그 정도 나이와 사정이 돼야 찍는 거죠.”라는 것이다.
괜히 멋쩍어져서, 나는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의 사연만 들었다. 평소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며느리가 있었다. 시어머니가 아프자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사진을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들으니 나 역시 철없던 시절 시어머니께 마음 아프게 한 일이 떠올라 마음이 뭉클했다.
“장례식에 걸 사진은 어떤 표정이 좋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는 얼굴은 좋지 않습니다. 조문객들은 슬픈데, 고인이 활짝 웃고 있으면 어색하죠. 지나치게 멋을 낸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죽기 전 1~2년 이내의, 무게 있는 표정이 가장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이 이해됐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놀란 마음으로 조문했다. 모두가 충격과 슬픔에 잠겨있었는데, 영정 속 그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마치 피에로 같았다. 그때 느낀 이질감이 사진기사의 말과 겹쳤다.
결국 사진은 찍지 못한 채, 지하상가 로터리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은 영정 사진을 준비해 두었을까. 내일 일을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지금이 금이라는 걸 잊지 말고,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첫댓글 왠지 마음이 울적하고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몸인 것을 알면서도 천년 만년 살 것처럼 그렇게 계획을 많이 하면서 살고, 앞으로 살아갈 걱정을 참 많이 하고 사는 것 같아요. 깊이 공감합니다.
어느새~ 영정 사진이 아니라 좋은 날 편안한 얼굴을 담아둘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
나는 가끔 내 영정 사진은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조문객들에게 이질감을 준다는 걸 몰랐네요. 그래도 나는 웃으렵니다. 이 세상 이별하는 날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