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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30511.html#cb
[책&생각] 존재에서 생성으로, 생성에서 존재자로
이정우 ‘세계철학사’ 완간
19~20세기 철학사 두텁게 집적
현대 철학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859~1941). 위키미디어 코먼스
세계철학사 4
탈근대 사유의 지평들
이정우 지음 l 길 l 5만원
우리 학자가 세계철학의 광대한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담아내려고 한 야심 찬 기획이 13년 만에 완결됐다. 이정우(65) 소운서원 원장이 집필해온 ‘세계철학사’가 ‘지중해세계의 철학’(1권), ‘아시아세계의 철학’(2권),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3권)에 이어 ‘탈근대 사유의 지평들’(4권)로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작업을 “전통과 근대성 그리고 탈근대성이라는 구도에 입각해 철학·사유의 역사 전체를 음미하는 여정”이라 갈무리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세대와 함께 살았던 전통의 세계, 그 후 아버지 세대와 함께 살아온 근대 세계, 그리고 지금 내가 아이들 세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탈-근대적 세계”, 이 세 세계를 모두 이어서 사유해야 했기에 자신의 작업은 ‘세계철학사’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 구성의 실타래는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근대여야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권은 “탈근대적 철학으로서의 현대 철학이 전통 철학의 한계를 넘어 전개된 근대 철학을 이어받되 그것이 여전히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 살핀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현대 철학의 핵심은 ‘형이상학의 귀환’이다. 3권에서 지은이는 고대의 형이상학을 거부한 근대 과학기술과 그에 영향을 받은 근대 철학이 과학적 탐구를 위해 고안된 방법들에 존재론적인 실재성까지 부여하는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자연과학에서 성립하는 패러다임을 인간·사회에 덮어씌운” 결과, 근대 철학은 인식 주체가 세계 바깥에 서서 세계의 총체적 그림을 파악해낸다는 식의 인식론, 세계를 공간적 좌표와 양적 척도로 환원해버리는 등질화, 결정론, 인과론 등의 오류들을 내장하게 됐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현대 철학자들은 철학사의 원점, 곧 ‘존재’의 의미를 묻는 형이상학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만 현대의 형이상학은 고대의 형이상학과 다르다. 지은이는 현대 형이상학의 핵심적인 특징을 ‘생성존재’라는 개념으로 묶어낸다. 책의 1부인 ‘형이상학의 귀환’은 이 새로운 사유의 흐름을 ‘존재에서 생성으로’, ‘창조하는 삶’, ‘사건의 철학’ 등 세 갈래로 짚는데, 앙리 베르그송과 질 들뢰즈 등이 그 주역으로 호명된다.
존재, 영원, 필연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서구의 고대 형이상학은 각 개별자들이 각각 존재의 어떤 본질을 구현하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동일성’에 대한 사유로 흘렀고, 그것은 ‘x는 왜 존재하며, 왜 바로 그렇게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충족이유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근대 철학에서 부각된, 세계를 공간·외연·양으로 환원하는 능력인 ‘합리적 이성’과 그 근저에 흐르는 ‘등질화’ 역시 “영원한 본질”을 찾으려는 이 서구 사유의 흐름에 포획되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대 형이상학의 핵심 갈래인 생성존재론은 ‘존재’가 아니라 ‘생성’을 일차적인 실재로 봄으로써 철학의 모든 문제를 새로이 했다.” 그 출발점은 무(無), 시간, 우연이다. 존재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경계가 무너질 때 비로소 생성되며, 이때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생성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생성이 세계의 본질이라는 것은 그 근저에 이미 주어진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가져오는 ‘시간’이 놓여 있음을, 또 그것을 움직이는 원리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것을 뜻한다. “세계는 시간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결정론적인 곳이 아니라 새로운 질들이 끊임없이 창발하는 곳이다.” 이제 현대 철학은 영원한 본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동감 있게 흘러가는 생성을 사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은이는 시간과 지속, 창조 등을 중심에 놓은 베르그송 등 생성존재론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유들,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진화론을 놓지 못한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와 다르게 ‘횡단’으로서 창조적 ‘절화’(折化)의 사유까지 나아간 들뢰즈와 가타리, 생성존재론의 한 갈래로서 실천적인 문제를 강하게 내포하는 ‘사건의 철학’ 등을 살펴본다.
“이 시점에 이르러 서구 철학은 역(易)과 기(氣)를 근간으로 사유해온 동북아 철학사, 화(化)의 사유를 전개해온 인도 철학사와 만나게 된다”고도 짚는다.
지은이는 생성존재론과는 다른 차원에서 근대의 합리성을 유연하고 참신하게 갱신하려 한 시도들, 현상학과 구조주의, 심리/자연철학 등 인간 주체의 여러 측면들을 논의해온 시도들도 두텁게 다루며 19~20세기 철학사의 흐름을 총망라한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 이념의 문제도 충실하게 다룬다.
특히 지은이는 ‘타자의 사유’를 “20세기 후반의 철학이 일구어낸 가장 중요한 흐름들 중 하나”로 주목한다. 푸코가 집중한 타자의 역사, 레비나스와 데리다가 펼친 타자의 윤리학,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자 윤리학 등을 이런 흐름 아래 묶는다.
지은이가 “이들의 논의를 다른 철학자들의 것과 변별해주는 중요한 한 측면은 그것이 생성존재론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라 보는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타자에게로 생성해가려고 하는 행위”, 곧 ‘타자-되기’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의 시대가 타자의 철학이 실현된 시대는 아니지만 실현되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타자의 철학을 더욱 잘 가다듬기 위해 앞으로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도 새긴다. 자연·인간·기계가 서로 맞물려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생태철학이 요구되는가, 인간·동물·기계 3자의 관계는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인간의 인간 지배를 깨기 위한 저항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 이를 위해 인간 자신에게 어떤 주체성이 요구되는가 등이다. 이런 물음의 배경에는 우리가 아직 깨지 못한 근대성의 딜레마가 있다. 인간을 창조적 ‘주체’로 만들어줬으나, 다른 한편에선 ‘인간 개체군’의 한 요소로 지배당하게 만든 자유주의와 그 극단적인 변형태인 ‘생명정치’다. 지은이는 “근현대의 철학은 이렇게 주체로서의 인간과 ‘인간 개체군’의 한 요소로서의 인간이라는 양극의 인간상 사이에서 전개된 드라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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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과 편견을 타파한 관점
서구와 비서구, 역사와 철학, 과학과 기술을 두루 유목한 성찰의 결실
이정우는 국내 철학계에서 보기 드문 학문적 깊이와 폭을 겸비한 학자이다. 이미 다수의 저작들과 대안공간(철학아카데미, 소운서원)에서의 강의를 통해 전통과 현대, 서구와 비서구, 과학과 철학을 회통하는 철학을 모색해왔고, 또한 공대를 나와 서양 고대철학(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 서양 현대철학(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으며, 한학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한문에 능하고 일본 학자들과의 교류까지 활발히 해온 보기 드문 학문적 편력이 쌓여 이 역작이 나올 수 있었다. 덧붙여 현대 수학과 과학, 기술의 영역까지 섭렵함으로써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과 편견을 타파한 보편적인 관점을 장착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내공을 갖추었다.
그런 그가 구상한 『세계철학사』 전체의 구도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두고 인류 문명의 사유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권은 부제 “지중해세계의 철학”이 말하듯,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이슬람세계까지 포함)에서 고대와 중세에 전개된 철학의 역사를, 두 번째 권(“아시아세계의 철학”)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동북아와 인도)에서 고중세에 전개된 철학의 역사를 다루었다. 특히 2권에서는 이미 확고하게 정립된 서양 철학사와는 달리 개념과 구도는 물론이고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아시아 철학사에 자리를 제대로 잡아주었다.(언어권이 다른 동남아시아와 인도는 접어둔다 쳐도, 한문을 공통언어로 하는 동북아 삼국의 철학사조차 개념과 구도를 갖추지 못했다.) 이를 위한 그의 전략은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지중해세계의 그것과 계속 비교해가며 논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세 번째 권에서는 동과 서를 구분하지 않고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두고 함께 다루며 근대의 사상지도를 그렸다. 근대 이전에는 따로 전개되었던 두 세계의 철학이 근대에 들어와 만났고, 함께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3권에서는 대략 17세기에서 19세기 중엽까지를 근대성이 형성된 시대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근대성이 전개되는 시기로 보아,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친 “근대” 300년간의 여러 사유들의 알짜를, 서구와 비서구, 자연철학(자연과학)과 형이상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엮어냈다.
이제 마지막 권은 지금 우리 세계가 마주한 파국적 상황들을 배태한 근대성과의 대결, 그 한계를 돌파하려는 사유의 시도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현대의 철학은 탈-근대의 철학으로서, 근대 철학을 이어받되 그것이 내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려는 철학이다. 근대의 철학은 인간을 주체로 우뚝 세우는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성취의 이면에서 제국주의, 전쟁, 환경 파괴, 인간 소외, 기술 지배 등 고통과 어두움 또한 태어났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근대의 사유/철학에 내장되어 있는 문제로부터 비롯했다. 등질화, 결정론, 일방향적 인과론, 환원주의, 발생적 오류 같은 측면들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세계의 어려움들은 결국 근대성과 대결해야만 극복이 가능하다. 근대성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사유의 시도들, 그것이 현대 철학의 지형도를 이루고 있다. 이 책은 그 ‘탈근대’ 철학의 여러 갈래들을 서구뿐 아니라 동북아를 포함한 비서구까지 포괄하여 두루 살핀다.
단순한 철학사가 아니라 ‘철학하기’이다
허울 좋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 진정한 세계 보편성을 찾으려는 시도
책으로 3,220쪽, 원고지로 18,000매에 달하는 이 엄청난 작업은 철학사를 그저 균형 있게 다시 정리하려는 학자적 야심의 발로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문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철학관과 역사관이 깊이 녹아 있다. 서구 중심의, 허구에 가까운 역사/철학사 서술은 결국 오늘날의 일방적인 세계화를 낳았다. 저자는 편견이 낳은 사유의 정향을 타개하고 “비서구를 전근대로 보는” 허울 좋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 진정한 보편성을 찾고자 이 대규모 기획을 감행했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사 집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철학하기이다.
“철학사를 통하여 철학을 수행한다.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러한 수행은 뜻깊다. 철학의 회로 안에만 머무는 철학사, 철학 바깥에서 맴도는 철학사가 많다. 저자의 철학사 작업은 철학의 안과 바깥을 자유로우면서도 절제 있게 드나든다. 사상사, 지성사를 겸한다. 드문 성취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이제 우리는 이 「세계철학사」 4부작의 완간과 저불어 “우리 철학자의 손으로 쓴 최초의 세계철학사”를 가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특정 문명과 언어권의 헤게모니에 지배당하며 반쪽짜리 사유만을 배태했던 사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진정한 ‘철학하기’를 만나게 된다. 이는 남의 잣대가 아니라 스스로 사유의 주체가 되어 세계를 균형 있게 바라보기 위한 주춧돌이 된다.
내가 꿈꾼 것은 할어버지 세대의 세계, 아버지 세대의 세계,
그리고 아이들 세대의 세계를 모두 이어서 사유하는 것
무엇보다 저자는 자신이 “세계”철학사를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왜 ‘세계’철학사가 되었는가? 나는 소은 선생께 배운 서구 존재론사에 깊이 경도되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세계가 늘 변치 않는 산하처럼 온존(溫存)하고 있다. 이 세계는 태극도, 각세교(覺世敎), 한의학, 고전 문헌들, 붓글씨, 가사(歌辭), … 같은 전통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세계이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세계는 너무나 급격히 변해갔고, 이 예스러운 시대는 이내 서구의 근대성을 모델로 한 ‘개발’에 매진하는 시대로, 그리고 그 시간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다시 ‘글로벌’과 ‘디지털’로 상징되는 탈-근대적 세계로 쏜살같이 이행해갔다. 내가 꿈꾼 것은 내가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경험했던 이 세계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세대와 함께 살았던 전통의 세계, 그 후 아버지 세대와 함께 살아온 근대 세계, 그리고 지금 내가 아이들 세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탈 -근대적 세계, 이세 세계를 모두 이어서 사유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써야 할 철학사는 서양 철학사도 아니고 동양 철학사도 아닌 세계철학사여야 했고, 그 구성의 실타래는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근대여야 했다.” (「맺는 말」에서)
철학이란 철학자가 책상에 앉아 고민하며 수행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보여준다. 이미 강단이 아닌 여러 대안공간들을 열어 시민들과 함께 철학과 철학사를 공부해왔던 그는 그것이 나와 이웃이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공부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공부가, 사유가 향하는 곳은 우리의 미래이다.
“아무리 난해한 철학도 결국 사람이 생활하면서 봉착한 문제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철학자의 고민과 일반인의 고민이 다른 것도 아니고요. 그걸 파악하는 방식, 서있는 전통, 동원한 자료가 다른 것이지 궁극적으로 칼로 자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봐요. 문학·철학·역사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을 마치 유목을 하듯이 가로질러 오면서, 서로 다르다고 여긴 것들이 겉보기만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정우 인터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일종의 수수께끼와도 같았던 그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를 세계철학사의 수준에서 반추해본 이제, 내 시선은 현재 우리의 삶과 미래의 가능세계들로 향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2000년에 대안공간을 열어 시민들과 함께 철학사를 공부하던 패기만만했던 젊은이는 이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사유는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벌써 초로에 접어들었지만 내 곁에는 뜻을 함께하는 젊은이들이 있고, 이제 그들과 함께 우리 시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계속 사유해나갈 것이다.” (「맺는 말」에서)
형이상학의 부활과 함께 시작된 탈근대의 철학
탈근대와의 대결을 통해 전개해나가야 할 새로운 단계의 보편철학, 세계철학
근대 철학을 이은 20세기의 철학은 ‘형이상학의 부활’로 특징지어지며, 이 새로운 형이상학은 근대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점들과 대결하면서 펼쳐진다. 근대성의 어떤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 현대 철학의 여러 갈래들이 상이한 방식으로 분기하여 전개되었다. 근대 철학의 빛나는 한 성취가 자연철학(오늘날의 자연과학)과 그것이 응용된 새로운 문명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대의 철학자들은 근대 문명이, 나아가 그것을 떠받친 근대 과학기술의 세계관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담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근대 과학기술의 근저에 존재하는 존재론적 정향들, 즉 데카르트 이래의 기계론, 정신-신체 이원론, 갈릴레오 이래의 고전 역학적 세계관에서 비롯해 근대 사유 전반을 관류한 등질화, 결정론, 환원주의, 일방향적 인과론을, 아울러 헤겔 이래 전개된 목적론적 진화론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근대 철학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고자 한 현대 철학의 정초자들은 시간과 생명에 대한 성찰, 다원성과 이질성의 중시, 단순한 인과론에 대한 비판과 우연의 역할에 대한 분석, 주객의 통합적 이해 등에 대한 참신한 성찰들을 통해 이 과제를 수행해나갔다.
이 모든 사유들의 근저에는 무엇보다도 우선 ‘생성’에 대한 새로운 존재론적 음미가 깔려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시점에 이르러 서구 철학은 역(易)과 기(氣)을 근간으로 사유해온 동북아 철학사, ‘화(化)’의 사유를 전개해온 인도 철학사와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이런 흐름을 ‘생성존재론’이라 부를 수 있으며, 현대 철학은 이 생성존재론으로의 ‘존재론적 전회’에서, 보다 넓은 시각에서 본다면 형이상학의 부활에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논의되는 탈-근대적 사유들, 즉 근대 철학의 본질주의 및 결정론을 극복하면서 전개된 생성존재론, 근대적 실증주의 인식론의 한계를 극복해나간 규약주의 이래의 여러 인식론과 합리주의적 형이상학, 인간존재를 둘러싼 현상학, 구조주의, 생명철학 등 여러 결의 참신한 시각들, 그리고 유난히 어두웠던 20세기의 현실에 부딪쳐나가면서 전개된 여러 실천적 철학들, 이 사유들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현대의 고전’들로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이 사유들과 대결하면서 전통, 근대, 탈근대를 가로지르는 사유를, 철학의 새로운 단계로서 보편철학, 세계철학을 전개해나가야 할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본 철학사를 마무리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이런 사유에로의 나아감을 밑받침해줄 하나의 지반을 다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