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의 축구스타 클래식 64.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준결승전에서 한국과 브라질이 만났다. 한국VS브라질 경기는 평일 오전 KBS를 통해 위성 생중계(TV 및 라디오)됐는데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수업을 중지하고 이 경기를 학생들이 시청 및 애청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예는 그 이전까지 없었는데 과연 당시 누구의 발상으로 이러한 융통성(?)이 발휘된 건지 지금도 궁금할 다름이다. 필자는 당시 이 경기를 라디오 중계로 들었다.(중계 캐스터는 조춘제 아나운서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 날 한국의 스트라이커 김종부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온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갔으나 저력의 브라질에게 이후 2골을 허용하면서 결국 2대1 역전패를 당했다. 당시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 공격진에 베베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건 그로부터 10여 년이 훨씬 지난 후였다. 허기야 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한국의 첫 게임 상대였던 아르헨티나의 스트라이커 호르헤 발다노(스타 클래식 7)가 어느 정도 수준의 선수인지도 몰랐던 판국에 그깟 브라질 청소년 대표 선수를 알 리가 있었겠는가.
베베토의 본명은 '호세 로베르토 고마 다 올리베이라'다. 애칭인 베베토는 '아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어릴 적 빅토리아 바히야 유소년 클럽에서 볼을 차기 시작한 베베토는 플라멩고 주니어팀을 거쳐 17세에 플라멩고 톱팀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이 때부터 베베토는 '지코의 후계자' 로 불리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베베토는 플라멩고에서 6시즌(83년~88년)을 재적하면서 83년, 84년 브라질 선수권 연패를 경험하는 등 204시합/98골을 기록했다.
1985년 테레 산타나 감독(스타 클래식 38)에 의해서 브라질 대표팀에 발탁된 베베토는 그 해 4월 페루戰을 통해 대표팀 데뷔전을 가졌다. 베베토는 테레 산타나 감독이 선호하는 타입의 공격수였다. 그러나 베베토는 86년 멕시코 월드컵 직전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불운을 맛봤다. 부상의 후유증이 길어지면서 베베토는 일시적으로 대표팀에서 제외됐다가 87년에 다시 복귀, 8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이 40년 만에 우승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아울러 베베토는 이 대회에서 6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등극했다. 또한 88년 서울 올림픽에 호마리오와 함께 참가해 소련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89년 바스코 다 가마로 이적한 베베토는 그 해 리오주(州)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뛰어난 골감각을 선보이면서 90년 이태리 월드컵에 참가했다. 그러나 이태리 월드컵에서 베베토는 조별 예선 두 번째 게임인 코스타리카戰에서 후반 종반에 에이스 스트라이커인 카레카와 교체 출전해 고작 10분 밖에 뛰질 못했다.(브라질은 16강전에서 아르헨에게 1대0으로 패하며 조기 귀국) 당시 브라질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는 카라카와 뮬레르였고, 베베토와 호마리오는 백업 멤버였다.
그러나 베베토는 브라질 국내에서 기복없이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92년 리오주(州)득점왕을 또다시 차지했다. 그리고 나서 스페인 1부 리그 팀인 데포르티보 라코르냐로 이적했다. 베베토는 입단 첫 해인 92-93시즌에 29골을 터뜨리며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베베토가 스페인 리그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브라질 및 유럽 축구 전문가들은 ‘가냘픈 체격의 베베토가 과연 스페인 축구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베베토는 그 의구심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그 무렵 데포르티보는 베베토의 맹활약으로 인해 3시즌 연속 리그 2위에 올랐다.
베베토는 최고의 절정기에 94년 미국 월드컵을 맞이했다. 베베토의 투톱 파트너는 '악동' 호마리오였다. 대회 전서부터 이미 베베토-호마리오 콤비는 ‘세계 최강의 투톱’이란 평을 받았는데 두 선수 모두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베베토는 미국 월드컵에서 3골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미국과의 16강전 그리고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터뜨린 골이 매우 귀중하고 또 의미있는 골이었다. 그 경기를 조금만 회상해 보도록 하겠다.
94년 7월 4일 미국과의 16강전. 이 날은 미국의 독립 기념일이었다. 경기가 벌어지는 샌프란시스코 스텐포드 스타디움에는 8만 4천명의 대관중이 운집을 했다. 스타디움에 입장하는 브라질 서포터들에게 ‘미국은 축구를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들은 ‘No! 미국은 농구와 야구 밖에 모르는 민족이다‘라는 답변을 했다. 그러나 브라질 대표팀의 페레이라 감독은 ‘16강전에서 미국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고 조심스럽게 인터뷰했다.
페레이라 감독의 우려대로 미국은 의외로 강하게 나왔다. '세계 최고의 목표 달성인' 밀루티노비치 감독(스타 클래식 40)은 미국 선수들에게 수비를 두텁게 하면서 카운터 공격을 지시했고 선수들은 밀루티노비치 감독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경기의 주도권은 브라질이 쥐고 있었다. 그런데 전반 종료 2분을 남겨 놓고 하프라인 부근 왼 쪽 측면에서 브라질의 레오나르도가 미국의 레이모스와 볼을 다투다 오른쪽 팔꿈치로 레이모스를 가격하는 바람에 레드카드를 받았다.(부상 당한 레이모스는 안면 골절로 인해 수술 받음.) 브라질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브라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10명으로 11명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는 팀이었다. 후반전에 들어서 미드필더인 둥가-마지뇨-지뇨(이후 카프)의 움직임이 더 활기찼고 베베토-호마리오 투톱은 전반전 보다 오히려 더 세차게 미국 문전을 위협했다. 그러나 골이 좀처럼 터지질 않았다. 미국은 은근히 승부차기로 몰고 가려는 듯한 눈치였다. 벤치에 앉아있는 페레이가 감독의 입술은 계속 타들어갔는데 그 갈증을 해소시켜준 선수가 베베토였다.
후반 30분 경 하프라인 부근에서 미드필더 마지뇨의 패스를 받은 호마리오가 볼을 키핑한 뒤 짧게 드리블을 치며 미국 진영으로 돌파해 들어갔다. 호마리오의 드리블은 대단히 섬세했다. 그러자 미국 수비수들 4명이 호마리오에게 달라붙었다. 그 순간 호마리오가 미국 페널티에이리어 오른 쪽 부근에 있는 베베토에게 쓰루패스로 연결해줬다. 베베토는 이 볼을 침착하게 오른발 인사이드킥으로 득점했다. 베베토가 슛을 하는 순간 미국의 스위퍼 ‘염소 수염’ 라라스가 슬라이딩을 했지만 이미 볼은 베베토의 발을 떠난 상태였다. 골을 넣은 베베토는 호마리오의 머리를 감싸며 감격해 했다.
5일 후 8강전이 벌어졌다. 상대는 유럽의 강호 네덜란드였다. 전반전에는 양팀 모두 조심스럽게 경기 운용을 했고 후반전에 들어서 난타전을 벌였다. 후반전 7분 경 브라질 스토퍼 아우다이르가 네덜란드 진영 왼 쪽 측면에 있는 베베토에게 롱패스를 해주자 베베토는 이 볼을 키핑한 뒤 드리블을 친 후 왼발로 네덜란드 골문 정면으로 뛰어드는 호마리오의 발 앞에 떨어뜨려줬다. 호마리오는 이 볼을 가볍게 발등에 맞히며 선제골을 터뜨렸다. 세계 최강 투톱의 진가를 확인시켜주는 너무도 멋진 장면이었다.
10분 후 베베토가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하프라인 부근에서 브라질 왼쪽 사이드백인 블랑코가 헤딩으로 네덜란드 진영으로 넣어준 볼을 네덜란드 수비진이 오프사이드(호마리오가 볼을 잡으면 오프사이드였다.)인 줄 알고 다들 서 있었다. 그러나 호마리오는 볼을 잡지 않고 그냥 밑으로 내려왔고 그 순간 2선에 있던 베베토가 뛰어들며 골키퍼까지 제치고 가볍게 득점했다. 골을 넣은 베베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모아 좌우로 흔들면서 아기 어르는 골세레모니를 펼치자 호마리오, 마지뇨도 달려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 그 장면에 전세계 축구팬들을 열광했다.
(94년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두 번째 골을 터뜨린 베베토가 아기 어르는 골세레모니를 펼치자 마지뇨(왼 쪽)와 호마리오도 합세했다.)
이 후 네덜란드의 베르캄프와 빈터가 연속 득점을 올리며 2대2를 만들었으나 후반 종반에 브라질의 블랑코가 30여 미터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네덜란드를 주저앉혔다. 브라질은 준결승전에서 스웨덴을 1대0으로 이기고 결승전에 올라 이태리와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브라질로서는 무려 24년 만의 월드컵 우승이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인 베베토)
이 대회에서 베베토는 '타겟맨'인 호마리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기 위해 자신은 조연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베베토는 중요할 때 꼭 골을 터뜨려줬다. 미국 월드컵에서 베베토는 두뇌 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줬다. 또한 미국 월드컵 기간 중에 베베토의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 이름을 마테우스로 지었다. 베베토 부부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기 이름을 정해 놓았다고 하는데 아들이 태어나면 ‘마테우스’, 딸이 태어나면 ‘티파니’ 로 짓기로 결정했단다.
베베토는 96년 아틀랜타 올림픽에 둥가와 함께 와일드 카드로 출전했다. 브라질은 아틀랜타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노렸으나 준결승전에서 그만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나이지리아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 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나이지리아 선수들 몇 명이 베베토에게 달려가 악수를 청하고 유니폼을 바꾸려하자 베베토는 동생 벌 되는 나이지리아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포옹을 해주고 뺨에다 가벼운 키스까지 해주는 멋진 매너를 보여줬다.(아틀랜타 올림픽에서 나이지리아가 보여준 축구는 너무도 무서웠고, 또한 훌륭했다.)
베베토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베베토는 백넘버 7번이 아닌 20번을 달고 출전해 호나우도와 투톱을 이루며 3골을 터뜨리는 등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이 대회에서 베베토는 7개의 슛을 날려 3골을 기록한 것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 수비수 프랑크 데 부어와 볼을 다투고 있는 베베토)
사실 베베토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쟈갈로 감독은 베베토를 최종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쟈갈로 감독은 월드컵 전부터 베베토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베베토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자랑하는 스트라이커다. 그의 화려한 드리블, 정확한 볼터치, 탁월한 득점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스트라이커 치고는 몸이 마른 편이지만 운동량이 대단히 풍부하고 활동 범위도 매우 넓었다. 베베토는 중앙 뿐 아니라 측면으로 빠졌을 때의 플레이도 좋기 때문에 타겟맨과 셰도우 스트라이커 둘 다 가능했다. 베베토는 미드필더 못지않게 패싱 능력이 좋은 걸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의 패스를 '킬러 패스‘라고 칭했다.
94년 미국 월드컵 이후에 J-리그 카시마 엔틀러스에서 베베토를 영입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당시 카시마 엔틀러스는 베베토에게 최고의 조건을 내걸었으나 베베토가 거절을 했다. 그 무렵 베베토는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대단히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존경하는 지코가 활동하고 있고 또한 바스코 다 가마 시절 팀메이트였던 비스마르크도 J-리그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나도 J-리그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고 할 즈음에 고오베 대지진이 일어났다. 나는 그 지진이 몹시 두려웠다.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신(神), 축구, 그리고 가족이다. 나는 내 가족들이 반대하는 일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 당시 가족들이 J-리그 진출을 반대했다....‘ 고 말을 했다.
그 후 베베토는 2000년 시즌에 결국 J-리그 카시마 엔틀러스에 입단했으나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10게임도 채 뛰지 않은 걸로 필자는 알고 있다.) 바스코 다 가마로 이적했다. 그 뒤 베베토는 아메리카 클럽을 거쳐 사우디 알 이테하드에서 두 시즌(02-03)을 뛴 후 2003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베베토는 술,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을 뿐더러 지금까지 문란한 생활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베베토는 7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지금껏 축구 외에 다른 것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조용하고 온순한 성격의 베베토는 팬들이나 기자들에게도 대단히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대하는 걸로 유명하다. 베베토는 ‘세계의 연인’ 로베르토 바지오와 함께 상대팀 서포터스에게도 사랑을 받는 선수였다.
베베토(Bebeto) 국적: 브라질 나이: 1964년생 포지션: FW 신장: 177cm 소속팀: 빅토리아 바히야(80/82)- 플라멩고(83/88)- 바스코 다 가마(89/92)-스페인 데포르티보 라코르냐(93/96)- 플라멩고(96)-스페인 세비야(96/97)-빅토리아 바히야(97)- 보타포고(98/99)-트로스 네사(99/00)-일본 카시마 엔틀러스(00)- 바스코 다 가마(01)-아메리카(02)-사우디 알 이테하드(02/03)
브라질 대표팀 데뷔:1985년 A매치 기록: 75시합/39골 월드컵 출전: 90, 94, 98년 대회
주요 타이틀 및 개인 타이틀 83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우승 83년, 84년 브라질 선수권 2연패(플라멩고) 88년 서울 올림픽 은메달 89년 코파아메리카 우승 및 득점왕(6골) 94년 미국 월드컵 우승 98년 프랑스 월드컵 준우승 92-93시즌 스페인 리그 득점왕(데포르티보) 95년 스페인컵 우승(데포르티보)
* 언제가 될 지 모르겠으나 [스타 클래식]에서 호마리오도 반드시 다루려고 합니다. 그 때 가서 '베베토-호마리오 투톱'에 관해 좀 더 보충 설명 드리겠습니다.
[관련링크] 베베토는 누구인가? |
첫댓글 세레머니중일때 중간에 바죠삘 ㅋㅋㅋ
준결승전에서 그만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나이지리아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준결승전에서 그만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나이지리아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준결승전에서 그만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나이지리아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당시 나이지리아는 정말 강했죠.특히 은안코 카누는,...심장질환만 아니었으면 훨씬 대단한 선수가 되었을텐데...애틀랜타 브라질 올대에는 와일드 카드인 베베토와 히바우도를 비롯해서 호나우두,카를로스,디다,주닝요 파울리스타(리옹의 주닝요 페르남부카노가 아니라 미들스부르에서 맹활약했던 주닝요 파울리스타입니다.)등이 초호화멤버였는데도 전반이 끝났을때 3-1로 앞서고도 후반 막판 2골을 허용해서 연장으로 끌려간뒤 결승골을 허용해서 무너진...당시 카누가 동점골과 연장에서 결승 골든골을 터트렸었죠,.
브라질에... 플라비우 콘세이상도 있었죠. 그 대회에서 베베토, 호나우두, 콘세이상 이 3명이 4골 이상씩은 집어넣었던걸로 기억.^^ 특히 8강 가나전에서... 베베토가 사각에서 넣었던 슛은... 카를로스 0도슛에 버금가는 정말 멋진 득점이었죠.ㅎㅎㅎ 이거 기억하는 사람 별로없는거 같아서 아쉬워요 ㅠㅠ
그당시 브라질 스쿼드가 덜덜덜이네요 . 베베토 히바우두 호나우두 카를로스 디다 주닝요 파울리스타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호마리우가 타켓맨이었나?
전형적인 타겟맨이죠.^^ 활동폭이 꽤 넓은, 골 넣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전형적인 타겟맨 호마리우.^^
우리가 흔히 타겟맨 하면 루드나 모리엔테스 같은 선수를 떠올립니다만 그건 잘못 알려진것이죠. 타겟맨은 최종 마무리 패스를 받아 골을 결정지을수 있는 공격수를 말합니다. 즉 호나우도(레알), 앙리, 오웬같은 선수들도 타겟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빙고!! UrbanTrax님께서 잘 짚어주셨네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타겟맨은... 너무 구체화되어있죠.ㅎㅎ 이제 바로잡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