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2주간 화요일
히브리 6,10-20 마르코 2,23-28
“풍요로운 우정으로 꽃피우는 하느님 사랑과 만남으로써, 또는 그 사랑과 새롭게 만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고립감과 자아도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 8항을 열쇠 삼아 오늘 복음의 문을 열어 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제자들과 급히 밀밭 사이를 질러가십니다. 다른 이웃 고을에 복음을
전하시러 가시는 길일까요, 아니면 누군가 크게 아프다는 전갈을 받으시고 서둘러 그를
찾아가시는 길일까요. 그런데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던 중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호호 불어 먹기 시작합니다. 볕에 익어 가는 밀 내음과 밀 이삭을 흔드는 산들바람!
간단하고 조촐하지만 주님이신 예수님 곁에서 이루어지는 근사한 안식일 식사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따져 묻습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 2,24)
사실 구약의 율법은 매정한 법이 아닙니다. “너희가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곡식 한 묶음을
잊어버리더라도 그것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
너희가 올리브 나무 열매를 떨 때, 지나온 가지에 다시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몫이 되어야 한다”(신명 24,19-20).
따스함이 묻어 있는 법입니다. 안식일 법도 일을 금하는 법이기에 앞서 돌봄의 법입니다.
그럼에도 바리사이들은 완고합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자아도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안식일을 누려보면 어떨까요.
의정부교구 김동희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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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2주간 화요일
히브리 6,10-20 마르코 2,23-28
안식일은 예수님과 유다교 지도자들의 갈등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입니다.
유다인들은 안식일을 주간의 축제로 여겼습니다. 안식년과 희년이 있는 것처럼 매주 안식일은
하느님의 창조를 기억하며 일상의 일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함께 머물며 감사를 드리는
하루의 축제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똑같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을
한 주간의 축제로 지내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지키던 수많은 율법 가운데 1/3 정도가
안식일에 관련된 규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안식일이 얼마나 중요하였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독실한 유다인들은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사이들이 규정의 문구에만 집착하는 것을 비판하며
율법의 본래 정신과 의미를 기억하도록 합니다.
물론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은 세상 창조의 모든 것을 완성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창조된 모든 것을 보존하고 보살피도록 맡기셨고
(창세 1,28 참조), 사람은 그 창조 업적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사람도 피조물이면서 유한한 존재로 휴식과 회복이 필요합니다.
안식일의 의미는 모든 피조물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주객이 뒤바뀌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럴 때일수록 본래의 의미를 찾고 되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것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하느님의 뜻을 온 마음을 다하여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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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식 토마스 신부
연중 제2주간 화요일
히브리 6,10-20 마르코 2,23-28
마르코 복음서에서 ‘사람의 아들’은 분명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확언하시며, 모든 제도와 율법 위에 당신의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은 분명 앞에 나온 마르코 복음서 2장 10절의
‘사람의 아들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진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 때 받은 은총의 수혜자로 자유로이 살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올바른 의미로 어려운 상황에서 위축된 사람들을 회복된 삶,
구원된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안식일은 선과 생명에 도움을 주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거룩한 날로,
이런 개념은 모든 안식일의 규정이나 법규를 넘어섭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때 기도를 많이 할까요? 그리고 어떤 때에 기도하여야 하느님께서
잘 들어주실까요?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청하기만 하면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언제 기도를 하여야 주님께서 잘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나요?
사실 매일매일 기도 가운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고 계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너무
규범적이고, 율법과 같은 법규 준수에 머물러 있거나, 바리사이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따지고
자신의 생각대로만 분석하려고 하여 올바로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과 율법을 보호하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 위에 계신 최고 권위시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진 권위만을 주장하게 됩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말씀은 잘 짜여진 그물 같은 바리사이들의 세상에 하나의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로 주님을 받아들이지 말고, 그분께서 말씀하신 사랑과 기도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의 삶이 구원으로 초대된 삶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원주교구 신우식 토마스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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