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찾아오는 순간 / 박노식
시도 아닌 것을 붙들고 누워서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애걸복걸하는 때가 있지
쓸쓸한 날은 비를 부르고
들뜬 날은 햇살을 찾고
우울한 날은 눈을 그리워하면서, 불현듯
녹음 속을 걷기도 하지만
이 견딜 수 없는 울렁거림이
동시에 오는 날은
눈물로 꽃을 피우고
잠시 독한 술에 취한 채
맨살로 쓰러져서
아픈 꿈을 꿀 때가 있지
새벽이든 아침이든 대낮이든 초저녁이든 한밤이든
시도 아닌 것을 붙들고 앓는 동안
말의 무게에 짓눌려 다투거나
솜사탕 같은 빈말에도 응석을 부릴 때가 있지
그러나 시는 오지 않고
기다림마저 떠나버릴 때
어느 고적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지
눈을 뜨니까 그가 몰래 와서
내 곁에 누워 있었던 거야
시는 그래,
가끔 그렇게 찾아올 때가 있어
ㅡ 시집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문학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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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식 시인
1962년 광주 출생. 조선대 국문학과 졸업, 전남대 대학원 국문학과 수료
2015년 《유심》 등단.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