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460)
돌다리
수선 마님의 팔짱에 이끌려
황 참봉은 안방에 들어가는데
사또가 보낸 이방이 추 선달네 사랑방에 앉아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장마철만 되면 외나무다리가 떠내려가 돌다리를 놓으려 하는데 관찰사가 내려보내는 국고는 돌값에도 미치지 못하지 뭡니까!” 남촌과 북촌을 가르는 와우천은 유월 장마만 오면 흙탕물이 외나무다리를 흔적도 없이 삼켜버린다. “킬킬킬∼ 걱정하지 마시오, 이방.” 추 선달은 또 그 낙천적 웃음을 날리고, 이튿날 석장(石匠) 우 처사를 찾아가 술잔을 나누며 품속에서 곱게 접은 한지를 꺼냈다.
달포가 지난 어느 날 추 선달이 구두쇠 천석꾼 부자 황 참봉을 찾아가 그의 소매를 잡고 간 곳은 와우천이다. 강가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다가 황 참봉을 보고 짝짝짝 손뼉을 친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뒷짐을 진 채 가봤더니 석축을 단단히 쌓는 둑에 윤이 나는 새까만 비석이 서 있고 비석 위에는 해태 조각상이 앉았고 옆면엔 양각된 용이 꿈틀거리며 승천하고 있었다. 그 복판에 ‘황만술교(黃萬述橋)’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황 참봉은 깜짝 놀랐다. “추 선달∼ 내 이름이 뭣이오?” “황, 만자, 술자지요.” 비석 뒷면엔 황만술 어른이 일금 ○○○을 희사해 온 고을의 숙원인 돌다리를 놓았다는 연혁이 음각돼 있었다. 단 금액란만 아직 공란으로 비워져 있었다. 이것을 보고 황 참봉이 지시해 일만냥을 적었다. 와우천이 떠나갈 듯 “와∼” 환호성이 터졌다. 황 참봉이 앞장서고 그 뒤로 추 선달과 석장 우 처사 그리고 이방이 뒤따라 기생집 춘매옥으로 갔다. 질펀하게 술판이 벌어졌는데 통시에 간 선달이 돌아오지 않는다 했더니 고을 사또를 모시고 왔다.
젊은 신관 사또가 합석하기 전에 넙죽이 엎드려 “황 참봉 어른 훌륭하십니다”라며 큰절을 올리자 황 참봉은 쩔쩔맸다. 수많은 손님이 가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춘매옥 주인 수선 마님이 오늘은 웬일인지 들어와 상석을 차지한 황 참봉 옆에 앉았다. 부엌에서는 갈비를 굽고, 고수는 “두둥둥둥 얼쑤” 장단을 맞추고, 행수기생 꾀꼬리는 “추야장∼ 밤도∼ 길더라∼” 남도창 육자배기를 뽑고 술잔은 쉼 없이 돌아갔다.
삼십대 중반의 이 집 주인 수선 마님은 수수께끼에 싸인 여인이다. 춘매옥 단골들도 수선 마님을 본 적이 없다. 한양의 대갓집 딸로 혼례식 첫날밤에 청상과부가 돼 아직도 처녀로 안방에서 사군자만 친다느니 소문만 파다했다. 그때 이방이 발딱 일어나 품속에서 한지를 꺼내 펼쳤다.
방(榜)
우리 고을의 숙원인 돌다리를 놓기 위한 모금책의 일환으로 하기 사항을 입찰 공고합니다.
하기(下記)
최고 금액에 낙찰된 분은 하룻밤 춘매옥을 독점해 주연을 접대받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접대할 사람은 낙찰자가 지명한다.
춘매옥주 수선백
“와∼.”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때 황 참봉은 이방이 들고 있던 방을 빼앗아 북북 찢어버렸다. “소인이 일만냥에 응찰하겠습니다.” 이 집 주인 수선이 분명하고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낙찰입니다.” 그걸로 희한한 입찰은 끝났다. 수선 마님이 물었다. “누구를 지명하시렵니까? 일전에 새로 들어온 열다섯살 동기(童妓)? 아니면 육덕이 푸짐한 행수?” 황 참봉이 계속 고개를 흔들더니 한다는 말이 “당신이요”하며 이 집 주인 수선을 껴안았다.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날짜는 언제로 할까요?” 이방이 묻자 황 참봉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오늘 밤으로 하겠습니다” 하니 “와∼” 함성과 박수가 터졌다.
수선 마님은 얼굴을 감싸고 “어머머∼”만 이어갔다. 이방이 일어섰다. “황 참봉께서 일만냥, 그리고 수선 마님께서 일만냥을 모금하셨습니다.” 사또가 소피를 보러 간 사이 이방이 말하기를 “사또 나리의 아버님께서 오천냥을 내려보내셨습니다” 하니 모두가 놀랐다. 삼경이 넘어 술판이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갔지만 황 참봉은 수선의 팔짱에 이끌려 안방 금침으로 들어갔다.
처서가 지나자 우마차에 다듬어놓은 화강석이 바리바리 실려 오고 한 떼의 석공들이 몰려와 와우천변에 차양막을 치고 정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시월 상달 추석날에 황만술교 완공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반짝이는 오석으로 빚은 황만술교 비석은 첫 다리난간인 동자기둥이 됐다. 뒤이어 오년 전에 상처한 홀아비 황만석의 혼례식이 천변에서 이어졌다. 신랑은 새 신부 수선 마님을 업고 사물놀이패를 따라 돌다리를 건넜다.
첫댓글 가진 돈을 좋은곳에 쓰고 함께 살아갈 짝을 찾았군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흠흠!!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