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으로 '쥴리메 컵'(월드컵 우승 트로피의 초창기 명칭)을 영구 소유하게 된 브라질 축구. 그러나 펠레의 은퇴(1971년)와 함께 브라질 축구는 오랜 암흑의 세월을 걸어야 했다.
24년간이나 이어진 브라질의 암흑기는 1994년 미국 월드컵의 우승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당시 브라질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주역 중 한 명이 베베토다. 그는 둥가, 호마리우, 징요 등과 함께 브라질의 공격을 이끌며 향후 브라질이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27일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2003년 리우 올스타팀의 선수자격으로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는 베베토는 이번에는 리우 선발 유소년 팀을 이끌고 한국 땅을 밟은 것이다. 리우 선발 유소년팀에는 94' 월드컵 8강전서 베베토가 보여준 '요람' 세레모니의 주인공인 그의 아들 마테우스(12세)가 소속되어 있다.
경남 남해에서 11월 3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2006 MBC국제꿈나무 축구대회' 참가차 한국을 방문한 베베토를 지난 10월 31일 염창동 나이아가라 호텔에서 만났다.
세계 최고의 유망주 발굴에 나선 브라질 축구 영웅
브라질의 세계적 스타인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베베토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입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다소 피곤해 보였던 브라질의 축구 영웅은 브라질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지난 2003년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25년간의 선수 생활을 정리한 그는 현재 세계의 축구 유망주 발굴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번 한국 방문 역시 한국의 축구 유망주들을 둘러보기 위한 것.
베베토의 한국 방문을 주관했으며 이날 통역을 맡기도 했던 (주)유패밀리스포츠의 이현욱 씨는 베베토에게 특별한 초청비 등을 지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베토가 흔쾌히 한국 방문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베베토는 항공권도 자신의 돈을 보태서 한국에 올만큼 적극적이었다.
"일본은 지코(전 일본 대표팀 감독)가 유소년 축구를 맡아서 발전시키고 있지만, 한국은 내가 맡아서 발전시키고 싶다"
현재 베베토는 한국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유소년 축구학교를 세우려는 야심 찬 계획을 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항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만약 베베토의 축구 학교가 한국에 세워진다면 한국 유소년들로서는 브라질 현지 적응의 어려움과 비용의 부담에서 벗어나 브라질 선진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베베토는 브라질에서도 유소년 축구에 많은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 리우 주와 함께 브라질의 빈민층 유소년들에게 무료로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브라질에서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TV 프로그램인 '조가 데이스(Joga dez-10번을 찾아라)'를 둥가(현 브라질 국가대표 감독) 및 자갈로(전 브라질 국가대표 감독)와 함께 진행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15세 미만의 유소년들 중 '서바이벌' 방식으로 최고의 축구 선수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로 브라질 내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대표팀 선수시절 동료이자 현재 브라질 대표팀 감독인 둥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나는 대표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이 즐겁다" - 베베토
이런 세계적 스타의 유소년 축구에 대한 투자가 있기에 브라질 축구가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94월드컵 당시의 베베토(아랫줄 7번). 둥가(좌)-징요(우)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FIFA
베베토에게 직접 듣는 94', 98' 월드컵 이야기
베베토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단연 1994년과 1998년 월드컵에 관한 것들이었다. 사실 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훈련 중 부상을 당해 코스타리카전에 단 6분만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불세출의 스타'였던 호마리우와 호흡을 맞춘 베베토는 총 3골을 터트리며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홈팀 미국과의 16강전에서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트렸으며,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보여준 '요람' 세레모니는 그를 단숨에 세계적인 골잡이로 인식시켰다.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한 베베토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호나우두와 호흡을 맞추며 브라질을 결승전까지 끌어올렸으나 프랑스에 패하며 월드컵 2연패에는 실패했다.
베베토가 이처럼 화려한 경력을 가졌던 만큼 그의 주변에는 늘 갖가지 소문들로 무성했다. 1994년 월드컵에서 호마리우와의 불화설, '요람' 세레모니 그리고 1998년 호나우두의 무리한 결승전 출전 및 결승전 패배 등 축구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소문들을 베베토에게 직접 물어봤다.
- 과거로 돌아가 보자. 당신과 호마리우가 투톱을 이룬 1994 월드컵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러나 당시 브라질이 ‘브라질답지 않은 축구’, 다소 수비적인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축구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절대 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우리는 이기기 위한 게임을 했다. 지난 독일 월드컵을 생각해보라. 브라질이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었지만 월드컵을 우승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4년에는 우승을 했다.
- 1994년 당시 당신은 호마리우와 최고의 콤비를 이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웃음) 호마리우와는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다. 그런 모든 이야기들은 신문사 기자들이 지어낸 이야기다. 나는 호마리우와 내가 이룬 공격진이 지금까지 최고의 공격진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인생이 다르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최고의 친구다. 1994년 월드컵 때 우리가 이뤘던 공격진보다 더 나은 공격진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잘 통했다.
- 호마리우와 호흡을 맞추면서 가장 힘들었던 상대 수비진이 있다면.
특별히 어느 팀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당시 브라질과 상대한 모든 팀이 전부 수비만 했다. 199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승부차기까지 가려고 수비만 했다. 결국 브라질이 우승을 했지만 팀마다 모두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96 아틀랜타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베베토 ⓒFIFA
-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수비수가 있다면.
모든 수비수들이 힘들었다. 그러나 1994 월드컵 결승에서 만났던 이탈리아의 바레시 선수가 힘들었고 특별히 기억이 난다. 그는 당시 최고의 수비수였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이 있다면.
1989년에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 출전했는데 당시 넣었던 발리슛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바이시클 킥과 비슷하게 골을 넣었다.
- 199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프랑스에 졌다. 독일 월드컵에서도 브라질이 프랑스에 졌는데, 98년 당시 경기에 뛰었던 선수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1998 월드컵에서는 호나우두가 브라질을 망쳤다. 호나우두는 경기 당일 아침에 상당히 아팠지만 경기 출전을 강행했다. 그래서 팀이 와해됐다. 독일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이 경기 자체를 너무 못했다. 프랑스에 진 것은 그 때마다 이유가 있어서이지 특별히 브라질이 프랑스에 약한 것이 아니다.
- 당시 호나우두의 출전에 대해서 브라질 공식 용품 지급업체인 나이키의 압박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
나이키와는 상관없다. 나이키는 브라질 팀에게 호나우두를 넣어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호나우두가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경기에 출전한 것이다. 그날 다른 선수가 나갔어야 했다.
- 1998년 월드컵에 우승하지 못해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
나는 세 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했다. 1990년 월드컵에는 연습 때 다쳐서 게임을 뛰지 못했다. 그러나 1994년에는 우승을 했고, 1998년에는 준우승을 했다. 그것에 만족한다.
94월드컵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호마리우, 마징요와 함께 요람 세레모니 ⓒFIFA
- 1994년 월드컵 8강 네덜란드전에서 요람 세레모니로 유명하다. 경기 전에 특별히 준비를 했나.
그 세레모니는 내가 다른 데서 보고 따라한 것이 아니다. 그때 당시 마테우스가 태어나서 내가 아기를 안고 흔들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던 것이다. 내가 그런 세레모니를 하니까 호마리우와 마징요가 옆에서 따라해 줬다. 특별히 준비하거나 연출한 것은 아니다.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었다.
- 아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겠다. 아들 이름이 마테우스라고 했는데, 혹시 독일의 유명한 축구선수와 관계가 있는 이름인가?
독일 축구 선수 마테우스와는 전혀 상관없다.(웃음) 브라질에서는 독일의 마테우스를 '마따우스'라고 부른다. 브라질에서 마테우스는 성서에 나오는 이름 중 최고의 이름이다.
- 다시 이야기를 이어보면 당신이 그 세레모니를 선보인 이후 많은 선수가 따라하고 있다. 후배들이 당신의 세레모니를 따라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즐겁다. 후배들이 내 세레모니를 따라하는 것은 모두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하는 것이다. 그들의 세레모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한국축구여! 뛸 땐 뛰고 드리블할 땐 드리블 하라'
베베토의 월드컵 이야기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면서 화제는 자연스럽게 한국 축구로 이어졌다. 한국 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베베토는 "한국 축구는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많은 발전을 했다"라며 한국 축구의 성장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또한 베베토는 “한국축구는 2002 월드컵에서 4강에도 진출했고, 축구 시설도 굉장히 좋아졌다. 어린 선수들의 의욕도 높아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베베토가 이야기하는 한국축구에 대해서 들어보자.
- 이번에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가졌던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가 더 세련된 축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어떤 플레이가 더 세련된 플레이인가.
한국축구는 뛰는 축구를 주로 한다. 축구는 뛰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드리블을 해야 할 때에는 드리블을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박지성에 대해 알고 있는데, 그는 많은 기술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축구는 너무 뛰기만 하니까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독일 월드컵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였다. 이런 것이 경기에 녹아들려면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체제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98월드컵 당시의 베베토(아랫줄 20번) ⓒFIFA
- 당신은 스트라이커로서 체격이 작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골잡이로서 명성을 날렸는데 이것이 한국 스트라이커들에게 의미하는 것이 있을 것 같다. 당신이 세계적인 스트라이커가 된 이유가 있다면.
내가 어렸을 때 많은 사람이 나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 내가 너무 작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빅토리아라는 팀에서 프로를 시작했고 당시 국가대표에도 뽑혔는데, 사람들은 나를 믿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플라멩고로 이적해 힘을 더욱 키우고 스피드를 붙이니까 사람들의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나에게 좋은 능력을 줬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이 작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공을 받기 전에는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빠른 동작과 기술을 가지고 덩치 큰 선수들을 대비했다. 내가 상대 수비수와 부딪히면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크니까 항상 빠른 공 처리와 드리블을 생각하고 있었다.
(베베토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수비진 속을 헤쳐 나가며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살아남았다. 실제로 그는 호마리우와 같은 빠른 드리블이나 호나우두처럼 강력한 파워를 가진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볼 소유 시간을 최소로 줄였고, 화려한 플레이를 하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위치에서 팀플레이를 만들고 득점을 성공시키는 선수였다.
그의 영리한 플레이는 분명 한국 축구 선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지적한 것과 같이 간결한 공 처리를 하면서도 효율적인 공격을 하는 것이 한국 선수들에게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베베토의 플레이에서 배울 점이다. -편집자 주)
- 바스코 다 가마에서 뛸 당시 현재 K리그 전북에서 뛰고 있는 보띠와 함께 뛴 적이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그를 '보치'라고 부른다. 그가 축구를 시작할 때 우리가 같이 뛰었다. 그는 굉장히 좋은 선수였다. (보띠가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참가하고 있다고 하자) 세계에 있는 모든 행운이 전북으로 가길 원한다. 하느님이 보치와 전북을 돕고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보치 외에도 많은 브라질 선수들은 이쪽으로 와서 한국 축구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실제로 큰 도움이 되길 원한다.
- 한국의 유망주들 중에는 언론의 갑작스런 관심에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이 더러 있다. 대스타로서 이 선수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그것은 큰 선수가 되기 위한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타는 언론에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준비가 되지 않은 선수는 언론에 쉽게 좌지우지되니까 슬럼프에 빠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을 컨트롤해야 하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대스타로서의 자질이다.
- 한국의 어린 선수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일찍 자고, 술이나 담배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몸을 피곤하게 만들면 안 된다. 열심히 훈련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라.
저기 94월드컵 베스트11 사진중에.... 상단 젤 오른쪽 선수. 카를로스가 등장하기 이전... 브라질 왼쪽 풀백의 주인이셨죠. 카를로스의 왼발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 분의 왼발이 브라질의 최고 왼발이셨죠.^^ 브라질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 [브랑코]!!!!!! 완전 카리스마 있음. 꺄악~~~
첫댓글 언제나 웃는 모습이 선한 베베토~ 본인이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데 이런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축협은 진짜.........
저기 94월드컵 베스트11 사진중에.... 상단 젤 오른쪽 선수. 카를로스가 등장하기 이전... 브라질 왼쪽 풀백의 주인이셨죠. 카를로스의 왼발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 분의 왼발이 브라질의 최고 왼발이셨죠.^^ 브라질의 데드볼 스페셜리스트 [브랑코]!!!!!! 완전 카리스마 있음. 꺄악~~~
멋집니다 베베토^^
아 멋지다..ㅋㅋ유소년 축구맡아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있는데 ㅋ
감동감동..ㅜㅜ 브라질 선수중 나의 가장 멋진 영웅입니다 불리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음에도 무서워하는 선수가 없었죠.. 그나저나 바레시가 언급되네요 역시 ㄷㄷㄷ
베베토 94월드컵때 진짜 멋졌음- 한국과 계속 인연을 맺으세요
베베토 진짜 조낸 좋아했는데.ㅠ_ㅠ
진짜 유소년 맡아줬으면 좋겠다.ㅠ_ㅠ
멋진 분이시네요~
일단 인터뷰에 성의것 응한티가 맘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