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중독! / 정일근
잘 익은 대봉감 홍시를 먹고 둔 감 찌꺼기에
정체불명의 날벌레 떼가 빼곡히 몰려들었다
크기가 한글 10포인트 온점의 반의반 정도 될까?
출처를 알 수 없는 점의 군단이 날아와
남아 있는 단맛을 공격하듯 빨아먹는다. 저들의 본향이
단것인지 태어나 단맛의 유혹을 안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중독의 시작이었다
어디에 숨어 나와 같이 사는지 단맛이 있는 곳에는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인 듯 떼로 날아와 점령했다
그 작은 점들이 먹어야 얼마나 먹을까마는
내 잔신경에 점들이 튀는 것 같아 내가 조심할 수밖에
먹을 것이 없으면 저들 또한 지워지듯 사라지리라 믿으며
잘 치우며 정리하며 살았는데, 그러다가 보고 말았다
내가 쓰는 치약이 묻은 흔적에까지 앉아 단맛을 빠는
미물의 저 중독을! 살기 위해 단맛을 빠는 저 열중을!
나는 탓할 수 없었다 온종일 폰을 들여다보는
자다 꺠면 폰부터 찾는, 이미 폰과 한 몸이 돤 나 역시
중독자다,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수많은 세상 중독과
살려고 발버둥치면 더욱 빠져드는 중독자들 속에 나 또한
작디작은 한 점에 불과한 날벌레이니, 내가 저 점들을
파리채를 들고 모조리 두들고 잡고 싶었던 분노처럼
신이 있다면 회초리를 들어 나의 중독을 때려 주었으면
독이 풀려 약이 될 수 있도록 피멍 들도록 패 주었으면.
- 계간 《가히》 2024년 봄호
* 정일근 시인
1958년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4년《실천문학》 등단, 1985년<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 『소금 상자』 등 다수
시와시학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이육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경남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