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베네딕토 신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도행전 22,3-16 마르코 16,15-18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인물이지만, 회심한 뒤에 그가 보여 주었던
열정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으로 옮아갑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넘어 시리아와 소아시아 지방뿐 아니라 유럽에도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가 남긴 많은 편지는 당시 교회의 상황을 보여 주며, 초대 교회의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그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신 예수님의 사명을 가장 잘 실천한 사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표징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예수님의 활동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때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입니다.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열거된 기적들은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실현된 적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선포하며 마귀들을 쫓아내고(사도 8,7 참조),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언어를
말하며(2,4; 19,6 참조), 손으로 뱀을 잡거나(28,3-6 참조),
안수로써 병자를 고쳐 줍니다(28,8 참조).
복음은 믿는 이들 모두 이와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의 선포와 활동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징이 일어났던 것처럼,
표징은 지금도 교회의 선포와 활동을 통하여 지속될 수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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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덕 베드로 신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도행전 22,3-16 마르코 16,15-18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한 번의 들음이 바오로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필리피서는 바오로 안에서 어떤 내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다음과 같이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3,7-9).
예수님을 얻고 싶은 마음, 예수님 안에 있고 싶은 마음, 바오로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예수님에 대한 진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참된 회심은 ‘들음’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할 때, 우리의 믿음은 영적인 힘을
되찾게 됩니다. 바오로에게 일어난 영적인 변화가 우리 안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얻으려는 열망, 예수님 안에 있으려는 열망과 함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10,17)라는
로마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은 들음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듣는 것이 중단된 신앙생활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심’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영적인 기쁨도 사라져 버리게 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그 힘을 잃어 가게 됩니다.
하느님보다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구원을 가져다주는 신앙생활이
짐처럼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신앙생활은 “믿는 이들에게” 일어나게 될
영적인 표징들을(마르 16,17-18 참조) 체험하게 이끌어 줍니다.
대전교구 김재덕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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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도행전 22,3-16 마르코 16,15-18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코 16장 15절)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참된 방향이다.
방향을 틀어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금 처절하게 깨닫게 하는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이다.
가장 아픈 삶이 가장 기쁜 삶이 되게 하는 회심(回心)이다.
하느님의 방식은 참된 회심의 방식이다.
회심은 참된 구원에 이르는 생명의 참된 길이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보게 되는 회심이다.
회심으로 하느님께로 가는 복음을 믿게 된다.
하느님과 우리의 새로운 관계가 회심의 탄생이다.
다마스쿠스의 회심으로 성 바오로 사도가 탄생한다. 회심이 참된 사랑이다.
삶을 되돌려주고 되돌아가게 하는 빛은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성 바오로 사도는 회심의 여행을 떠난다.
되돌려주어야 할 복음의 사랑이다. 회심으로 자라나는 교회의 삶이다.
우리의 회심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할 사랑의 빛임을 믿는다.
다마스쿠스와 수도원 사이를 이어주는 회심의 빛이다.
한 사람의 참된 회심이 필요한 때이다. 하느님 사랑을 향하는 기쁜 회심 축일이다.
가장 좋은 회심의 때를 선물로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