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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불쌍한 게 낚시꾼이다
사량도 하도뻘쭉 조행기
2011년 4월 14~16일
낚시꾼 돈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
모처럼 낚시여행을 떠나니 준비할 게 수두룩하다.
꾼들끼리야 움직인다면 모두가 숙련된 ‘자초한 노숙자 모드’에
모두가 익숙해있어 별 걱정이 없다만,
전문꾼이 아닌 친구 아들이 따라 나섰으니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간신히 짬을 내어 따라나선 친구 아들 녀석 탓에 챙겨야 할 짐이 예사가 아니다.
한적한 어촌에서 밥을 얻어 먹일려니 밑반찬 걱정도 되고,
단일 어종만 노린 출조가 아니고 다양한 낚시를 경험해 볼 2박 3일 여정이다 보니
장비며 미끼가 한 짐이다.
봄철이니 우선 밤낚시에 볼락을 노려야겠기에 볼락대비를 해야겠고,
새벽에는 내만으로 마구 밀려들어 올 감성돔을 봐야하고,
어신 한가한 낮에는 시즌에 든 도다리낚시도 해 봐야겠지?
시장에 가서 신선한 밑밥용 해산물들을 이리저리 챙기고,
출항지 낚시가게서도 미끼들을 다양하게 챙기니
그야말로 이제 아무데나 가서 전을 펼쳐 해산물장사에 나서도 되겠다.
간신히 짬을 내어 따라나선 아들을 데리고 나선 친구는,
혹시나 ‘황을 치는 불상사’가 일어날까 싶어 2박 3일 여정의 조행에
온갖 어종의 갖은 낚시기법을 모조리 요구한다.
가방 크면 공부 잘하나?
가져간 미끼만큼이나 많은 고기가 문다면 뭔 걱정?
그러나 여차하면 쓸어 담아 볼 요량으로 외줄 낚싯대까지 챙겨 간다.
많이 피곤하고, 경비가 많이 들 거라는 나의 걱정에
모처럼 자식을 대동하고 나선 것이니만큼 각오하겠단다.
자식도 품에 있어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며 키울 때가 좋았지
멀리 떠나 있는 자식이 찾아와서
모처럼 아버지 따라 조행에 나섰으니 늘그막에 상전이 따로 없다.
이 지극한 애비의 자식사랑을 아들놈들이 알기나 할까.
봄철이면 꼭 찾아가는 곳이 통영 앞바다 사량도 아랫섬 남쪽에 있는 양지리다.
꾼이라면 우선은 얼마나 좋은 포인트가 있느냐가 조행지 선정에 선결요건이다.
사량도 아래섬은 코앞에 낚시터가 즐비하다.
포구 왼쪽 백학리 쪽에서 뻗은 빨간 등대 방파제나
오른쪽 하얀 등대 방파제 모두가 밤볼락 마릿수 낚시터이고,
포구 앞 잠도나 화도도 볼락시즌이면 어김없이 집어등이 켜지는 볼락명소들이다.
왼쪽 통포 마을을 돌아간 조리암이나
오른쪽 곶부리를 돌아서 있는 사포, 말목섬과 더 돌아간 은포, 외지 일대의 갯바위는
5월이면 말 그대로 볼락소굴들이다.
낚싯배라도 빌려 타고 나무여 일대까지 나가서 대를 담근다면
굵은 볼락에 감성돔, 참돔까지 심심찮게 낚여주는 황금낚시터가 즐비한 곳이
사량도 아랫섬이다.
그러나 매년 봄철이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선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어촌포구인 양지리 마을이 있어서다.
지명 그대로 남쪽으로 향해 양지바르고 평온하게 펼쳐진 어촌이 양지리 마을이다.
완만히 펼쳐진 들녘과 호수 같은 포구를 안고 있는 양지리는
있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마을이다.
5월이면 통영 앞바다 섬 중에 가장 붐비는 곳이 사량도다.
사량도는 위섬과 아래 섬이 조그만 수도를 끼고 마주보고 있는데
연도교 개설 작업이 시작되었기에 두 섬이 곧 연결될 모양이다.
상춘등산객이 붐비는 섬은 한려수도 최고의 조망 등산로가 있는 사량도 위섬이다.
나라 안 등산객은 한 번씩은 모두 다녀간다는 위섬은
맑은 날 멀리 지리산까지 볼 수 있는 지리산(망지리산)을 타는 등산로가 있다.
처음 오르는 여성등산객의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는 옥녀봉이 꽤나 유명하다.
맑은 날은 한려수도 조망으로, 흐린 날은 구름 속에 잠긴 옥녀봉을 오르는 것이
마치 선계로 오른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해서 많은 등산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그러나 옥녀봉의 가파른 철 계단과 해풍에 삭은 삐쭉 돌들이 계속되는
윗사량도의 등산로는
매년 안전사고가 일어날 정도로 위험한 코스인데 반해
아래 사량도의 칠현산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등산로이다.
여객선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운행하는 마을버스도
그나마 승객이라곤 고작 두어 명이 타고 다닐 정도이니
낚시꾼이나 등산객이 아니면 인적이 뚝 끊기고 만다.
야생 방목하는 흑염소 가족들이 툭하면 간선로 한 복판에 나와 퍼질고 있으면
지나가던 버스기사도 차 세워두고 그 놈들 곁에 앉아 한가하게
같이 놀고 있는 길이 소위 사량도의 주 간선 도로 풍경이다.
이러니 그야말로 섬을 찾는 외지인들이
등산, 낚시, 섬 일주 트레킹, 사이클링, 해안로 산책 등등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지상낙원 같은 곳이 아래사량도이다.
더구나 양지리에 최근 심성 좋은 현지민, ‘갑장 아지메(차 여사님)’가
아늑한 ‘사철나무 펜션(010-4039-7039)’이라는 동화 속 궁전처럼 민박집을 지어서
쾌적한 숙박시설마저 마련되었으니 금상첨화이다.
지난 4월 14일 오후, 고성 가오치에서 사량도 카페리를 타고 사량도로 들어갔다.
미끼 준비차 들른 통영 항에서 수집한 정보로는
수온이 아직 낮아 볼락은 아직 제대로 피지 않는다한다.
민박집에서 여장을 풀고, 낚싯배를 수배하니 신통찮다.
현지에 낚시유어선 허가를 득한 낚싯배가 있어
예전처럼 아무 어장배를 빌려 타고 낚시하는 수월함이 원천 봉쇄되었다.
허가 없는 낚싯배로 낚시하면 분쟁이 생긴다나 뭐라나.
시즌이 아직 일러 양지리 방파제는 온통 눈만 붙은 젖볼락 뿐.
할 수 없이 이웃마을인 외지부락에 있는 낚싯배를 소개받아
제대로 된 볼락 밤낚시를 하기로 한다.
그런데 뱃삯이 도통 만만찮다.
선장은 바람타령을 계속하며 초저녁 밤낚시 용선을 못마땅해 하더니
결국 첫날 밤낚시와 다음날 오전 감성돔 선상낚시까지 묶어 30만원에 용선하는데 응한다.
통영서 사 온 충무김밥으로 부랴부랴 저녁식사를 마치고
장비만 챙겨 외지부락에 도착하니 오후 8시.
바람이 아직 세다.
외지방파제 너머 내만은 아직 물결이 높다.
원래 볼락 밤낚시야 바람 한 점 없이 호수같이 잔잔한 날이 제격.
또한 달빛이 없는 날, 하현 반달(밤중에 달이 떠서 낮에 진다. 곧 초저녁에는 달이 없다.)인
12물인 음력 20일부터 그믐, 삭망을 지나 초승달인 5물때까지 사이가 최적기이다.
여기다 수온까지 상승하는 날을 만나면 그야말로 ‘땡’잡는 날이다.
이 날은 4물. 날이 흐려 달은 아예 없다.
이 시기에 초저녁에 부는 바람은 자정쯤이면 잔다.
그런대도 꽤나 바람이 불어 아직까지 배가 많이 흔들린다.
선장은 외지부락 방파제 바로 벗어나며 왼쪽 갯바위 앞에 닻을 내린다.
수심 4~6m. 나오느니 젖볼락, 방생사이즈다.
애처로워 못 낚겠다.
현지 노련한 선장은 파도 때문에 제 포인트로 더 나갈 수가 없단다.
2시간 반 남짓 낚시하다 밤 11시쯤 철수한다.
바람이 쉽게 잘 것 같지 않다는 현지 노련한 선장의 견해를 받아 들였다.
고개 넘어 숙소 양지리로 돌아오니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포근한 양지리니까.
찜질방을 방불케 할 정도로 슬슬 끓는 구들장에서 자느라 통닭 될 뻔했다.
추위와 바람에 고생한 낚시꾼들에게는
그저 지글지글 끓는 구들장이 최고라는 민박집 ‘갑장 아지메’의 배려가 너무 지나쳤다.
그래도 따뜻하게 자고나니 몸은 개운하다.
간신히 고르고 고른 중치 볼락 벗겨먹고 구워먹고 하면서
밤이 이슥하도록 통음한 탓에
다음날 감성돔 선상낚시 출조가 너무 늦어버렸다.
전화로 부른 낚싯배가 양지리로 온 시각은 아침 9시.
잠도 앞으로 나간다. 5물. 중썰물이 한참 빠르게 빠져 나갈 시간이다.
갯바위꾼들 몇몇이 흘림낚시를 하고 있다.
굵은 감성돔이 나온다는 포인트라며 선장이 배를 묶었건만 물이 아예 흐르지 않는다.
집어제를 들이다 붓듯 해보지만 감감 무소식.
이상하다. 어젯밤, 때 이르게 철수하며 우리를 위로하던 말씀은,
분명 오늘은 단단한 손맛을 볼 거라며 너무 아쉬워 말라 했는데?
현지 노련한 선장은 감성돔이 무는 시간이 이미 지났다고 한다.
게다가 아직 감성돔이 붙을 철이 이르단다.
덧붙여 낮 12시에 이미 다른 약속이 잡혀 있으니 철수하잔다.
다시 겨우 2시간 반짜리 용선으로
감성돔 선상낚시는 ‘황’을 기록하고 양지리로 돌아오고 만다.
어찌되었던 선비 30만원을 지불하고.
친구 아들 녀석의 수상한 눈빛이 비수가 되어 자꾸만 뒤통수로 꽂혀 온다.
신사임당 지폐를 6장이나 받아 든 현지 노련한 선장께서
일행 세 사람의 어두운 표정을 읽고는 우릴 다독인다.
까짓것. 서운할 테니 자기가 한 번 더 나서겠단다.
초저녁 바람이 잦아드는 밤 12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연장해서
선장의 비장의 포인트로 가서 밤볼락 낚시에다가,
멀리 나무여까지 나가 외줄낚시도 해보고,
새벽 물때를 맞추어 감성돔 선상낚시까지 스트레이트로 집중 공략을 해 보잔다.
현지 노련한 선장의 마지막 ‘집중공략 작전’을 들은 친구의 얼굴은
다시 설램으로 밝아지고
얼른 10만원을 더 얹어 모두 40만원을 흔쾌히 지불하며 수고를 부탁한다.
모처럼 데리고 온 아들의 눈치를 연신 살피면서.
날밤을 새울 ‘집중공략 작전’을 대비해 초저녁에 잠을 푹 자고난 일행이
패턴이 다른 세 가지 낚시(봄볼락 배치기, 나무여 외줄낚시, 감성돔 선상낚시)를 대비해
만반의 채비를 차리고 약속한 외지부락에 도착하니 정확히 밤 12시, 자정이다.
바람은 고요하다. 바람이 고요하니 바다는 잔잔하다.
더구나 낮게 깔린 구름 덕에 달빛은 오간데도 없다.
드디어 모든 조건이 맞아드는군, 모두 쾌재를 지른다.
현지 노련한 선장이 느릿느릿 나타난다.
선장의 보폭이 도통 마음에 안 든다 싶더니
대뜸 아침에 탔던 배의 스크루가 고장이 났단다.
핸들을 많이 감았더니 갑자기 잠겼다면서 배를 팔아먹은 일본 사람 욕을 냅다 해댄다.
곁에 있던 설레기낚시 전용인 듯 한 나지막한 낡은 어선배로 갈아타란다.
조그만 배에는 망태기니, 녹슨 도르래 같은 기계 등등이 잔득 실려 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나무여는 커녕 내만낚시도 나가기에 불안할 일엽편주다.
간신히 일행 세 사람이 비집고 앉아 낚싯대를 펼친다.
현지 노련한 선장의 비밀 포인트란다. 외지부락 등대 안쪽의 내만홈통이다.
수심 6~8m.
5.4m 낚싯대에는 젖볼락이, 6.3m 낚싯대에는 간혹 손바닥만 한 덩치의 볼락이 낚인다.
중치급 손바닥 사이즈 볼락이 올라오니,
현지 노련한 선장은, ‘부산가면 세 마리에 5만 원짜리’라고 혼자 좋아 한다.
1시간 정도 흘렀다. 젖볼락 30여 수, 중치급 4수를 낚을 무렵.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가 온다?
얼른 멀리 건너 섬마을의 불빛들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초롱초롱하다.
실결같이 겨우 느껴지는 바람마저 차갑지 않다.
그러면 지나가는 비일 따름이다.
그러나 현지 노련한 선장은 쉽게 그칠 비가 아니라며 자꾸만 하늘을 쳐다보며 울상이다.
갑자기 후드득하며 빗방울이 다소 굵어진다.
평상복차림의 아들 눈치만 살피던 친구는
현지 노련한 선장의 반복되는 기상예보에 겁먹고 덩달아 철수하잔다.
방수기능 낚시복을 입지 않은 젊은 손님의 건강이 무척 걱정이 된 선장은
곧 한바탕 장대비가 쏟아질 거라며 얼른 철수하자고 끝내 닻을 사린다.
친구까지 빨리 나가자 안달이다.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을 무슨 수로 말릴까?
그러나 불과 5분 거리의 선착장으로 불과 1시간의 밤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니
금세 빗방울은 사라지고 사위가 고요하다.
왕창 쏟아지며 쉽게 그칠 비가 아니라던 하늘도 되레 말개져
얼핏 설핏 별빛마저 보이려 한다.
하늘도, 바다도, 바람도, 방파제도 말갛다.
방파제 끝에서 말간 바다와 하늘을 살펴보고 오니
현지의 노련한 선장도 어느새 사라지고 배위도 말갛다.
이런 저런 낚시를 해 볼 거라고 잔득 짊어지고 온 낚시장비만 선창에 가득하다.
말간 심정으로
방파제 끝에 집어등을 켜고 말간 바다로 향해 낚싯대를 던지니
바로 밤바다에 화려한 빨간 불꽃, 파란 불꽃을 피우더니
희한하게도 손바닥만 한 중치급 볼락이 덥석덥석 물어준다.
눈이 초롱초롱한 잘 생긴 볼락들이다.
볼락 눈동자는 언제 봐도 눈부시게 말갛다.
모두 6시간 남짓 배를 타고 거금 40만원을 용선비로 쓴,
시커멓게 타들어 간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볼락의 눈빛은 말갛기만 하다.
아름다운 사량도의 멀건 낚시여행을 마치고 시원하게 뚫린 거가대교를 달린다.
차 안에는 화제가 된 거가대교 관련 부실공사로 이야기가 만발하다.
‘어느 놈이 어떻게 해 먹었고, 어느 놈이 얼마를 해 먹었는지 모른다.’ 등등.
그러나 나는 종일 혼자 중얼거린다.
‘낚시꾼 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 낚시꾼 돈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고.
씨불씨불..............
천하에 불쌍한 게 낚시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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