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린공원, 물푸레나무과 「이팝나무」
생각날 듯 말 듯, 이름을 몰라 두어 번을 찾아갔었다. 때마침 지나가는 분이 있어 물었더니, “이거 흰 꽃 피는 이팝나무 아닙니까!” 했다. 다시 살펴보니 이팝나무가 맞았다. 고마웠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이팝나무가 그런 경우다. 안면 있던 나무도 꽃이 지고 나면 긴가민가해진다. 길가에서 하얀 꽃을 맨날 보았으면서도, 꽃 떨어져 알아보지 못했다. 이 하나의 실수로 이팝나무를 다른 나무로 여길 뻔하였다. 묵언 수행하는 이팝나무가 섭섭했지 싶다. 같은 나무를 보고도 다른 나무를 생각한 것은 뭐 때문일까, 뭔가 옛 모습이 아니어서 그럴지 모른다. 화장하고 외출할 때 본 여인의 모습과 평상복에 맨얼굴을 한 것이 다른 것처럼, 꽃 떨어진 이팝나무가 그랬다.
큰 키 이팝나무는 보통 10여 미터에서 최대 20미터까지 자란다. 5월 중하순에 무성한 잎과 함께 탐스러운 흰 꽃이 활짝 핀다. 어느 지방에서는 길가에 모두 이팝나무를 심어 오가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 옛날 보릿고개 농사철에 흐드러지게 핀 이팝나무꽃을 보면서 쌀밥을 상상한 조상들의 애틋한 마음은 이해가 된다. 꽃이 많이 피면 그해 풍년이,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니, 심적으로 농사에 영향을 준 나무이기도 했다.
‘이팝’의 뜻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흰 쌀밥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쌀밥을 뜻하는 옛말이 ‘니밥’이고, 이것이 ‘이밥’으로 변해, 여기에 나무를 붙여 ‘이밥나무’가 되었다가 자연스럽게 ‘이팝’이 되었다고 했다. 주식인 쌀을 연상시키는 나무여서 이름만 들어도 특별한 나무 같았다.
꽃지고, 잎 떨어지면, 대번에 이팝나무인 걸 알지 못한다. 비슷한 수피가 있어 헷갈리기도 한다. 오래전에, 기억해 둔 것이 생각났다. 바로 잔가지에 층계 같은 흔적이다. 이팝나무는 헌 가지에서 새 가지가 나고, 거기 2년생 가지에서 잎이 나고 꽃이 핀다. 가지 끝에 달린 서너 장의 잎 바로 아래가지를 보면, 마치 계단처럼 된 촘촘한 가로줄 무늬가 나 있다. 아주 자그마한 층계를 닮았다. 다른 나무에는 거의 없는 흔적이 있어 이팝나무인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겨울눈을 감싸고 있던 비늘조각이 떨어져 나간 지국이고, 그 흔적이 가로로 계단식 층을 형성한다. 이를 보통 ‘아린흔芽鱗痕’이나, ‘눈비늘자국’, 또는 ‘인편흔鱗片痕’이라고 부른다.
5월의 거리를 환하게 밝히는 이팝나무꽃, 우린 그 꽃의 아름다움을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나에 따라 마음의 풍요와 빈곤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그 감동이 진하면 기억도 진하게 된다. 하지만, 난 이팝나무꽃과 그 나무에 그러지 못했나 보다.
이팝나무가 근린공원 운동기구 근처에 어림잡아 열 그루 정도가 서 있다. 꽃지고 잎 떨어지는 계절이 되었지만, 지난 계절 소복하게 핀 이팝나무꽃을 상상할 때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이것은 쌀밥에 대한 유전인자가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팝나무의 열매는 10~11월에 달린다. 색은 흑벽색黑碧色을 띠고 핵과다. 이것을 까보면 난상타원형의 씨가 나온다. 씨에 아주 가느다란 줄무늬가 나 있다. 예쁘기도 하고 모양이 독특하다. 2026.10.25.일. 게재.